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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 준-33화 (32/141)

< 요빅-8 >

킹스덤 천체 관측소 뒷산에서 57구의 시체들이 나왔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던 카리 형사는 신발에 들어간 흙을 털어냈다.

한낮이었지만, 삼나무와 아카시아 나무로 숲은 어두웠다.

숲 곳곳에서 시체에 달라붙은 과학 수사요원은 하얀 비닐 위생복을 입었다.

그들은 구더기처럼 보였다.

시체들의 숲 ···. 수사관들이 숲에 붙인 별명이었다.

천체 관측소는 인적이 드물고, 울창한 국립공원과도 통했다. 관측소 잔디밭에는 곰 발자국이 있고, 한밤중에는 늑대 울음도 들렸다. 자연과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곳이었다.

비번인 과학 수사대원까지 총출동했지만, 사건 현장을 모두 살피려면, 며칠이 걸린다.

시체들도 많았고, 범위도 너무 넓다.

천체 관측소는 과학 수사대의 임시본부가 되었다.

카리 형사는 신발을 다시 신으며, 제보자에게 물었다.

“곰일까요?”

“한두 명은 그럴 수도 있겠죠.”

로켈이 말했다.

카리 형사는 로켈을 처음 봤을 때, 그를 깔봤다. 키 작은 양복쟁이.

로켈의 명함을 받은 후에 태도를 바꿨다. 굿데이의 직원이라니!

범죄의 경계선을 넘나들던, 조무래기 에바도 굿데이 직원이 되고서, 엄청난 거물이 되었다.

‘프란츠가 에바에게 고급 승용차를 선물했다지.’

첫인상이 시시했던 로켈도 분명 엄청난 신분상승을 하게 될 것이다.

카리 형사는 안주머니에서 아끼는 콜롬비아 잎담배를 꺼냈다. 잎담배에서 향기로운 코카 향이 났다.

“담배?”

로켈은 담배를 즐기지 않았지만, 카리 형사가 권한 것은 거절할 수 없을 만큼 고급이었다.

“좋군요.”

로켈은 짜릿한 코카 향을 맡으며 눈매가 가늘어졌다. 격한 섹스 후의 나른한 느낌.

“시체는 모두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느낌이죠.”

“운이 없으시네요. 듣자니, 킹스덤 대학이 이곳을 굿데이로 넘겼다던데, 시체들의 파티라니.”

“그 반대입니다.” 로켈은 잎담배를 코끝에 갖다 댔다. “킹스덤은 이곳을 소유했지만, 관리하진 못했어요. 능력도 자격도 없었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대신하기로 한 겁니다.”

“그 뜻은? 시체의 숲에 대해서 미리 알았다는 겁니까?”

터보 라이터를 켜던, 카리 형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터보 라이터가 켜지자, 그의 눈동자는 작아졌다.

*

굿데이는 금융 생태계 최정점에서 날개를 펼친, 실버 드래곤을 죽였다. 실버 드래곤이 내뿜는 ‘정화의 불길’은 최첨단 파생 공식으로 만들어졌다.

정화의 불길 ···. 파괴적 수익 창조 ···. 최강의 공격 무기였지만, 굿데이는 그 불길을 견뎌내고, 용의 심장을 갈랐다.

굿데이는 유진 악마의 ‘스피드킬’로 실버 드래곤의 모든 포지션을 농락했다.

실버 드래곤이 죽은 후, 살아남은 펀드 매니저들은 굿데이에게 별명을 붙여주었다 ···. 용 사냥꾼.

‘레즈 년이 페루로 오고 있다!’

트리탄과 본부장들은 일제히 긴장했다.

용 사냥꾼 - 에바.

트리탄과 본부장들은 머리털이 곤두섰다. 트리탄은 에바의 찰진 욕을 기억한다.

‘이빨 사이에 낀 코딱지가 되었었지. 그리고 ···.’

엄청 밟혔다. 준은 겉보기와 달리 용서도 자비도 없다. 이제는 안다.

‘그놈이 나를 살렸던 것은 ···. 시체 치우는 게 귀찮았기 때문이었지. 만일 살아 있는 내가 성가시게 느껴진다면 ···.’

간단하게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화인간인 내가 오리지널에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세상은 넓다.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

채굴권 입찰.

굿데이에 채굴권을 빼앗기면 모든 작전은 물거품이 된다. 트리탄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전략관리 본부장 키노시타는 놀랐다. 파괴의 군주가 저토록 긴장하다니.

로베르가 사라진 지금, 이인자 자리가 비었다. 이번 일을 무난히 수습한다면 ···. 키노시타는 트리탄을 잇는 이인자가 된다.

그가 앞으로 나섰다.

“페루 작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트리탄은 조용히 키노시타를 응시했다.

페루는 자펜 출신이 대통령을 해먹었던 곳이다. 자펜 파벌의 인맥과 영향력은 막강했다. 키노시타는 자펜에서 이름을 날린 야쿠자였다.

페루의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을 포섭한 것도 그였다. 그의 별명은 ···.

은발의 메피스토 - 영혼을 계약하는 늙은 악마.

“에바는 철부지 꼬마 숙녀에 불과합니다. 제가 잘 요리하겠습니다.”

*

호세 특무상사는 갈 곳이 없었다. 페루군 수뇌부는 아쿠타미 부대를 지워버렸다.

그의 동아줄이었던, 누네즈 장관은 사임했고, 이제 비빌 언덕이 없다.

길거리에서 감자튀김이나 팔아야겠다고 생각할 때, 에바가 준 암호명 ···. 노가다 1호.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는 넙죽 엎드렸다. 그의 부대원들도 암호명을 받았다. 노가다 2호, 3호, 4호 ···.

에바는, 여왕이 기사직을 내리듯, 우아하게 이들을 채용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리처드를 보았다.

리처드는 손을 내저었다.

“난 구경꾼으로 만족해.”

“공짜 구경은 없어.”

“사악한 마녀처럼 말하지 마. 너 그런 여자 아니잖아.”

“난 정확히 그런 여자야.”

“준에게 이른다. 나 준하고 친해.”

“맘대로. 준이 나에게 원하는 모습이 바로 이거야.”

웃기시네. - 리처드는 에바를 노려보며, 스마트 폰을 찾았다.

생각해보니, 그의 스마트 폰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 요트의 통신 장비와 로봇팔의 소프트웨어를 연결하면, 연락이 가능하다.

준의 스마트 폰과 연결이 되자, 리처드의 얼굴이 환해졌다. 종군기자의 긍지. 경제 섹션 기자의 자부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준. 나야 나 리처드! 에바를 따라다니면서 취재를 하고 싶어. 오케이?”

“에바의 의견은?”

“공짜는 없대. 생각해봐! 나는 언론인이야. 미래를 위해서라도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해. 돈은 바라지 않아. 취재만 할 수 있게 해줘.”

“에바에게 직접 말할게.”

“그래 고마워.”

곧바로 에바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네~에, 준 회장님.”

그녀는 귀염둥이 새끼 고양이 같았다. 호세와 리처드에겐 보여주지 않던 모습이었다.

“옵션은 싸다귀 두 대.”

“네~에!”

그녀는 손목을 가볍게 풀고, 리처드의 뺨을 갈겼다.

찰싹! 철썩!

두 번째 싸다귀는 가속도가 붙어서, 거대한 파도가 바위섬을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코피!

“왜?”

리처드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방금 건, 준 회장님 대신이었고, 이번 것은 내가 주는 거야. 귓구멍 잘 열고 있어.”

그녀는 한껏 호흡했다. 요트 위에 앉아 있던 펠리컨은 동물적 감각으로 낌새를 채고 재빨리 날아올랐다.

“개똥으로 말미잘을 찍어 먹을 개자식아! 무좀 핀 양말로 파스타를 해먹을 놈아! 네놈 뇌는 말라비틀어진 호두냐? 네놈 눈은 단추냐? 네놈에겐 굿데이가 인터폴이냐! 왜 전화질로 준 회장님의 하루 리듬을 조져! 준 회장님은 바쁘신 분이야! 땅거지는 땅거지끼리 알아서 치고받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합의하고 살아! 네놈이 굿데이에게 보태 준 게 뭐가 있다고 전화질이야! 한 번 더 니기미 이미지 파일을 보내면, 손가락을 아홉 관절로 만든다!”

영혼이 실린 욕설은 실로 대단했다.

리처드는 쌍코피를 흘렸다. 그의 로봇팔이 파직 거리며 불꽃을 튕겼다.

로봇팔에 내장된 마이크로 칩도 에바의 욕이 내뿜는 특별한 파장을 견디지 못했다.

푸른 수염 선장은 에바가 욕을 할 때, 나침반이 반 바퀴 헛도는 것을 보았다.

‘뭐지 저 여자? 딱 내 스타일인데.’

*

킹스덤 대학 정문 앞에 장갑차 같은 둔중한 고급 리무진이 정차했다.

동서남북 - 리무진 주위에 네 명의 검은 양복 사나이들이 주위를 지켰다.

리무진 VIP 좌석에 앉은 프란츠는 로트데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로트데빌은 로트와일드의 파생 품종으로 지독하게 공격적인 대형견이었다.

프란츠가 데빌에게 속삭였다. ‘오늘 네가 할 일이 많다.’

로트데빌의 이름은 블러드 스틸.

프란츠는 인도에서 벵갈 호랑이와 싸우던 블러드 스틸을 보았다.

벵갈 호랑이 앞다리 하나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블러드 스틸은 벵갈 호랑이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져서, 끝끝내 숨통을 끊었다.

프란츠는 비싼 값을 주고 블러드 스틸을 사들였다.

로트데빌의 가죽은 총알을 튕겨낸다는 악어가죽만큼이나 질겼고, 호랑이의 발톱에도 쉽게 찢어지지 않았다. 블러드 스틸은 로트데빌 무리를 이끌던 알파였다.

“나타났습니다.”

검은 양복 사나이 한 명이 준을 발견하곤, 헤드셋으로 말했다. 프란츠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놀라운 놈이다.

암살자를 상대하고, 새장을 부수고, 앵무새를 가져갔으면,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잠수 탈 텐데 ···. 태연히 모습을 드러내다니. 도대체 준의 목숨은 몇 개일까?

그늘이 드리워졌다. 구름이 해를 가렸나?

쿵!

리무진 주위의 사나이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힘을 쓴 것은 토크였다.

토크가 사나이들을 정리하자, 디아나가 다가 와 검지 둘째 관절로 창문을 두들겼다.

운전사가 총을 꺼내자, 프란츠가 눈짓으로 말렸다. 보는 눈이 너무 많다. 그리고 ···.

프란츠가 문을 열자, 그의 옆에 있던 로트데빌이 쏜살처럼 뛰어 나갔다.

갑자기 덤벼드는 블러드 스틸은 검은 악마 그 자체였다. 디아나는 놀랄 틈도 없었다.

깽!

세이턴 마스티프 - 하얀 악마가 블러드 스틸의 대가리를 물었다.

우드득 - 콰직!

벵갈 호랑이를 잡은 블러드 스틸도 세이턴의 한 입 거리에 불과했다.

대가리가 으깨진 블러드 스틸은 부르르 떨었다. 프란츠가 어렵게 구한 애견이 고깃덩어리가 된 것이다.

프란츠는 언짢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간단하게 죽어버린 그의 애견을 내려보았다.

으르릉.

세이턴이 프란츠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가만!”

디아나가 말하자, 세이턴은 조용히 앉았다. 송곳니는 보이지 않았지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저음이 계속되었다.

“세이턴 오래간만이구나. 네 주인이 죽고서 3년이 지났구나. 네 주인도 너처럼 길들이기 어려웠지.”

자극받은 세이턴은 프란츠에게 덤벼들었다.

프란츠는 가볍게 스텝을 밟아, 옆으로 피하며 세이턴을 리무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로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이턴은 리무진에 갇히고 말았다.

‘아! 준을 노린 게 아니었나!’

디아나는 그제야 후회했다.

로켈이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판단착오였다. 준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프란츠의 꼼수를 읽지 못했다.

프란츠는 간단하게 죽어버린 블러드 스틸을 보고, 디아나 뒤에 서 있는 토그를 보았다.

“저놈처럼 먹성이 좋은 개였지. 값으로 따지면 너희보다 더 비싸지만 개값을 뜯진 않으마. 하얀 악마는 데려가겠다.”

토그에게 휘말렸던 경호원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그들은 당장 토크와 디아나에게 덤빌 태세였다.

“물러서라. 머저리들. 약국에 가서 반창고나 붙여라.”

경호원들은 입술을 꽉 다문 채, 프란츠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약국을 향해 휘어청 걸어갔다.

리무진 안에서 세이턴이 거칠게 날뛰었지만, 방탄이 되는 차제를 뚫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준이 왔다.

준은 디아나와 토그 그리고 프란츠를 차례로 보고, 리무진에 갇힌 세이턴을 확인했다.

준이 프란츠에게 말했다.

“개 도둑.”

프란츠가 준에게 답했다.

“새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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