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32화 (31/141)

< 요빅-7 >

새벽에 포스마일을 상대하고, 아침에는 창고를 털었다. 그래서 기운이 남아돈다.

암살자 처치와 요새 습격 ....

뇌의 다른 부위를 활성화해야 했지만, 책 읽기에 소모하는 집중력과 에너지에 비하면, 거저먹기였다.

그만큼 준의 책 읽기는 치열했다. 그것은 뉴런 하나하나에 지식을 새겨넣는 초정밀 작업이었다.

이번 일로 분명해졌다. 독서는 죽을 만큼 위험하고 힘들다. 익숙해서 몰랐을 뿐이다.

‘범죄 세계나 평정하며 느긋하게 살까?’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너무 시시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을 펼쳤다. 요즘 그의 관심은 환경호르몬과 고래의 소화기관이었다.

이건 기회다! 이렇게 빤한 기회를 왜 다른 사람은 못 보는 걸까? 그들은 불평만 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다가 ···. 잊어버린다.

‘기회’를 보지 못한 이유는 두려움 때문에 장님이 된 탓이리라.

준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두려움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도 한때 두려움과 어리석음의 노예였다.

사람들이 정해준 위치, 바보와 노숙자의 삶을 받아들였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까 봐, 굶는 연습도 했다.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 끊임없는 탐구였다.

보라! 그가 그토록 벌고자 했던 돈은 ···. 유진 악마가 착실하게 벌어들인다. 사과 껍질을 깎듯이 티 나지 않게 조금씩 ···. 백만 달러씩.

유진 악마가 속도를 내면, 금융시장이 휘청거릴 정도로 돈을 당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금융시장이 못 버틴다. ‘금융생태계 보호’라는 관점에서 유진 악마는 속도 조절한다.

*

준이 고래의 위장과 입자 가속기의 공통점을 짚는 순간, 달짝하고 축축하고 넓적한 무언가가 뺨을 쓸었다.

하얀 악마 세이턴이었다.

준이 고개를 천천히 돌려, 세이턴을 정면으로 노려보자, 세이턴의 큰 혀가 준의 턱밑에서 이마로 밀착 전진했다.

준은 세이턴의 혀 냄새, 입 냄새, 침 냄새를 맡아야 했다.

“로켈!”

발코니 화단에서 카멧과 함께 화초에 물을 주던 로켈이 ‘스스스’ 움직여서 준의 곁으로 이동했다.

“준짱! 부르셨습니까?”

“똥개.”

“아!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기생충 약을 먹이고, 종합 검진도 받도록.”

“알겠습니다.”

로켈이 손짓으로 세이턴에게 가자고 신호했지만, 세이턴은 개무시하고 준의 곁에 착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세이턴은 차가운 눈빛으로 로켈에게 경고했다.

‘꺼져라. 똥자루’

로켈이 세이턴의 귀를 잡고 끌어내자, 세이턴이 으르렁거리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죽는다. 똥자루.’

세이턴은 로켈보다 크고 무거운, 하얀 악마였다. 준 이전까지 누구도 길들이지 못한 어둠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로켈은 세이턴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었다. 그는 세이턴의 응축된 파워를 느꼈다. 흑표범과도 맞짱 뜰 파워였다.

할 수 없군.

준에게 정갈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 로켈은 어쩔 수 없이 세이턴을 개팼다.

세이턴도 이번 기회에 서열을 확실하게 정하고 싶었다. 난쟁이 따위에게 밀릴 순 없었다.

그 결과 치열한 난투가 펼쳐졌다.

난쟁이와 개의 아귀다툼.

준은 이 사건을 일기에 짧게 기록했다. - 1차 개난쟁.

깨갱!

로켈의 승리였다.

그의 옷은 걸레가 되고, 어깨와 손등에 이빨 자국이 났지만, 목덜미에서 피가 흘렀지만, 어쨌든 승리자였다.

로켈에게 시원하게 처맞은 세이턴은 배를 보이고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어서 항복을 선언했다.

이제 겨우 섬길 주인을 만났는데, 맞아 죽을 순 없었다.

*

허공에 뜬 에어스크린에 누네즈의 우는 모습이 드러났다. 감사와 감격, 안도와 후회가 뒤범벅된 오묘한 표정이었다.

화창한 하늘 그리고 드넓은 갈라파고스 바다는 평화로웠다.

페루 원주민 출신인 그녀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녀는 꿈을 이뤘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환경이 오염된 곳에서는 소용없었다.

수은중독, 폐 섬유화, 간염, 들끓는 기생충, 편도선염과 감기는 수시로 드나들었다.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병약해졌다.

이 모든 것이 환경 오염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30대가 70대처럼 보였다.

누네즈가 정치로 뛰어든 유일한 이유 ···. 환경보호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페루가 그녀에게 바친 칭호 - 아마존의 어머니.

그녀는 장관직을 사임했지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샤나이슈카의 채굴권은 공개 입찰입니다. 굿데이가 따내 주세요.”

공개 입찰 - 누네즈의 마지막 카드였다.

에바는 누네즈의 부탁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다. 누네즈에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지만 ···.

‘도와주세요.’는 - 흔한 청탁이었다.

에바는 솔직히 짜증이 났다.

평소에 좀 잘하던지. 그게 안 되면 시원하게 포기하던지. 왜 자꾸 ‘부탁질’이야.

그렇다고 ‘알 바 아닙니다.’ 라고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에바가 발을 빼면, 저것들은 준에게 달라붙을 것이다.

그녀의 최선은 ···.

“알아볼게요.”

*

‘고해성사라니.’

로베르는 입을 삐죽거렸다. 어둠의 성자 프란츠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로베르의 고해성사였다.

로베르는 구구절절하게 떠드는 것보다 돈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프란츠는 돈이 아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죄를 즐겨 듣다니, 놈은 변태가 분명하다.’

로베르는 프란츠의 조직을 지워버릴까? 생각해봤다.

프란츠는 고작해야 오렌지 시티의 지역조직에 불과하다. 초특급 킬러 서너 명 보내면 쉽게 파투난다.

마음에 걸리는 건 ···. 준 새끼.

어떤 식으로 불똥이 튈지 모를 일이었다.

“저는 죄인입니다.”

로베르는 마음 굳게 먹고,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그의 곁에는 프란츠가 앉아 있었다. 프란츠는 모세의 길잡이 위에 손을 올려놓고 눈감았다.

“많은 이들을 죽였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사람도 죽였습니다. 많은 이들의 재물도 빼앗았습니다. 제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빨리 끝내고 싶었다.

“계속하십시오. 주님께서는 관대하십니다. 당신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모두 말하십시오.”

“사실 ···.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로베르는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별 거지 같은 ···. 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고행성사를 하는 거야! 고해성사하는 것들은 정신병자가 분명했다.

“가지 마십시오. 고해성사를 가르쳐드리죠. 저는 죄인입니다. 어제도 죄를 짓고, 오늘도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 저는 로베르를 죽였습니다.”

“뭐?”

로베르는 화들짝 놀라 거리를 벌렸다.

고해의 정원에는 그와 프란츠 단둘이었지만, 정원 밖에는 로베르의 경호원과 부하들이 있다.

로베르와 프란츠는 고해의 정원에 들어오기 전에, 서로 몸수색을 했다. 무기는 없었다.

로베르는 길거리 킬러에서 시작해서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왔다.

맨몸 격투라면 자신 있다. 하지만 프란츠는 고해성사로 얻은 범죄 조직 정보를 손에 쥐고, 거리를 평정했다.

‘일대일 싸움이라면 질 리 없다.’

로베르는 확신했다.

확신은 계획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프란츠를 해치우고 별장을 빠져나간다!

그는 개구리처럼 자세를 낮추고 프란츠를 향했다. 프란츠는 여유롭게 반지를 보였다.

모세의 길잡이 - 섬광이 반짝였다.

로베르는 앞이 컴컴해졌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듣지 않았다.

“모세의 섬광은 죄인을 마비시키지. 주님을 대신해서 용서하려 했는데, 잘 가시게.”

프란츠가 젖가슴 같은 반지 알을 돌리자, 고양이 손톱 같은 칼날이 나왔다. 그는 로베르의 경동맥을 그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프란츠는 로베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주여! 이 개자식이 주님 품으로 갑니다. 이 개자식을 용서하소서.”

*

준은 에바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샤나이슈카 채굴권? 관심 없어.”

귀찮아하는 표정이 너무나 역력해서, 에바가 무안할 정도였다. 준이 덧붙였다. ‘우리는 흙 파먹는 땅거지가 아니야.’

“누가 뭐래? 괜히 말했···.” 에바는 목소리가 엉켜서, 헛기침으로 다듬었다. “···. 그냥 내가 알아서 할걸.”

준 - 히말라야 최고봉 ‘아라키스의 달’에 서 있는 자, 개인주의 정점에 오른 남자.

그에겐 세계 평화, 환경보호, 지역 경제 활성화 따위에는 관심 없다.

그의 탐구 활동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최소한 에바의 관찰에 의하면 그랬다.

카멧을 구한 것도 오직 그를 위한 것이었다. 카멧을 구할 때 사용한 비용은 굿데이의 홍보비로 처리되었다.

한 가지 의문 ···. 리처드와 아쿠타미 특공대는 왜 구한 거지?

“노가다 뛸 경력자가 필요했다.”

준은 심드렁했다. 그것 말곤 다른 이유는 없다는 투였다.

에바는 속으로 나직이 감탄했다. ‘잔인한 놈. 호세와 부대원 그리고 리처드의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순간에도 부려 먹을 생각이었다니!

확실히 목숨을 구해주면, 뼈가 닳도록 열심히 일할 사람이긴 했다.

“유조선은 울트라 라지 급, 석 척을 매수했어. 요즘 유가가 바닥이라서 유조선도 싸게 샀어.”

“내장기관을 세팅해.”

“내연기관이겠지.”

“내장기관이 맞아.”

*

샤나이슈카 채굴권 발동!

트리탄은 오르토칸에게 받은 명령을 충실히 해냈다.

로베르의 앞뒤 가리지 않은 열정적인 지랄 때문에 가능했다. 로베르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로베르의 죽음을 전해 들은 트리탄은 남몰래 웃었다.

로베르는 트리탄의 심장에 일렉나이프를 꽂았다.

배신자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았지만, 로베르는 능력 있는 부하였고 활용가치가 높았다.

트리탄은 능력 있는 자에게 관대했다. 그가 배신자이거나 적일지라도. 능력이 있으면 기회를 준다.

복수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다.

트리탄이 짧은 시간에 ‘용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적일지라도 능력자에게 기회를 주는 관대함 때문이었다.

로베르는 최단시간에 채굴권을 따내서 능력을 증명하려 했다. 여유가 있었다면, 프란츠와 같은 지역 조직에 일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능력을 발휘하는 한, 트리탄으로부터 안전하다.

트리탄은 배신자를 처단하고 싶지만, 조직 전체가 능력을 발휘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개인감정은 접어둬야 했다.

프란츠 같은 피라미에게 죽임을 당하다니!

아쉬움보다 시원함이 더 컸다.

“정당한 대결이었나?”

“네. 둘 다 비무장 상태였습니다.”

“정정당당한 일대일 승부였다면, 벌할 수 없다.”

채굴권을 따낸 지금, 더 이상의 소모전은 반갑지 않았다. 부하는 깍듯이 인사하고 집무실에서 나갔다.

임무는 성공했고, 로베르는 제거됐다. 그런데도 트리탄의 가슴은 답답했다.

그가 국가를 흔들고 기업을 망치고, 세계적인 대공황을 연주했을 때, 그에겐 자부심이 있었다.

망한 기업의 공장 굴뚝의 연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피를 흘리겠지만, 지구는 그만큼 더 청결해졌다고.

주피터 제약회사에서 유독가스가 누출됐을 때, 트리탄은 가혹할 정도로 풋옵션을 처넣어서, 파산시켰다.

사람들은 트리탄에게 찬사를 보냈다.

지저분한 기업 범죄를 응징하는 거대 자본으로 칭송받았다.

그가 좋아하는 표현은 ‘실버 드래곤이 내뿜는 정화의 불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 아마존을 뒤집어서 금가루나 골라내는 신세라니.

다른 보고가 올라왔다.

“이번 채굴권은 공개입찰입니다.”

“그런데?”

공개입찰이든 비공개 입찰이든 미다스 그룹의 경쟁자는 없다.

“아직, 소문이지만 ···. 굿데이가 참여할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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