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31화 (30/141)

요빅-6

요트는 즐거운 속도로 바다를 달렸다.

에바는 뱃머리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았다. 작은 파도는, 광합성 하듯, 끊임없이 하얀 거품을 빚었다.

푸른 수염 선장은 에바를 보며, ‘돈 많은 여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반지, 시계, 머리핀,  옷, 운동화 그리고 '하는 짓'까지···. 모든 것이 명품이었다. 요트도 현금으로 계약했다.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녀 눈 밑에 고생한 흔적이 있다. 그리고 ···.

‘저년은 레즈다.’

요트 선원 중에는 영화배우 같은 남자들이 있지만, 에바는 제대로 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성 취향은 알겠는데 ···.

“원하시는 장소가 이곳이 확실합니까?”

푸른 수염이 에바에게 물었다.

“네. 이제 속도를 줄이세요.”

에바는 에어스크린을 보며 말했다. 스크린에는 해상지도가 플레이 되었다. 관광용 지도였지만, 군사작전에 써도 될 정도로 정밀했다.

“섬에서 10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여긴 볼 게 없어요. 향유고래가 있는 해상 국립공원은 반대편입니다.”

이곳은 관광지에서 너무 멀다.

모로섬 주변 바다에는 궁궐 같은 해저 도시가 있고, 섬에는 이구아나와 파란발부비, 열대 펭귄이 있다. 물개들이 벤치에서 낮잠은 잔다.

푸른 수염의 요트도 파티 장소로도 임대되곤 했다. 돈 많은 여자가 임대해서, 뷔페 맛 좀 보나 했는데 ···. 먼바다에서 정처없는 항해라니.

볼거리와 파티가 끊이지 않는 곳에서, 볼 거라곤 물밖에 없는 이곳으로 온, 에바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웠다.

“바다를 충분히 보셨으면, 이제 돌아갈까요?”

“안 돼요. 그분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하셨어요.”

에바는 에어스크린의 한 지역을 확대했다.

“여기서 사람을 낚는다고요? 물고기 잡기도 힘든 곳입니다.”

푸른 수염은 고개를 흔들었다. 에바는 미친년이 분명하다. 고생 끝에 너무 많은 돈이 생기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이 변한다.

도대체 에바에게 사람을 낚으라고 한, ‘그분’은 누굴까? 푸른 수염은 신흥 종교의 교주라고 짐작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종교만큼 돈 잘 버는 사업도 드물다.

정신 나간 놈이 돈 벌기엔, 종교만한 게 없다. 푸른 수염은 그렇게 생각했다.

선원 한 명이 소리쳤다.

“사람이다!”

선원이 가리킨 곳에는 주황색 부유물을 껴안은 표류자가 있었다.

선원들은 표류자를 갑판으로 끌어올렸다. 푸른 수염은 놀란 눈동자로 에바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입니까?”

“아뇨. 저는 모르지만, 그분은 아실 겁니다.”

에바는 표류자에게 우유 한 잔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마셨다. 굳은살이 배긴 손이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마실 법도 했지만, 서둘지 않았다. 푸른 수염은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에바의 말대로 둘이 아는 사이 같지는 않았다. 푸른 수염이 표류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신 거죠?”

“하늘이요.”

그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허!”

푸른 수염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

비행기 격추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리처드를 포함한 여덟 명이었다.

비행기 엔진이 꺼지는 순간, 호세 특무상사가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탈출했다.

낙하산도 제대로 매지 않은 허술하고 숨 가쁜 탈출이었지만, 목숨을 구하기엔 충분했다.

아쿠타미 부대는 전원 무사했지만, 비행기 기장은 탈출하지 못했다.

푸른 수염은 구조된 사람에게 물었다. ‘그분’을 아느냐고?

아무도 몰랐다. 리처드는 아는 눈치였지만, 한쪽 팔 한쪽 다리 로봇이라서 예외로 했다.

마지막 표류자를 구조할 때, 푸른 수염이 에바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조난당하면, 그분께서 신경 좀 써주시려나? 저 친구들을 보니, 그분에 대한 믿음이 마구 샘솟네. 요트 대여비를 좀 깎아줄 수 있는데 ···.”

*

프란츠는 젖가슴 같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의 이름은 ···. 모세의 길잡이.

모세의 길잡이는 방황하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효능이 있다.

프란츠가 젊었을 때, 그는 고해신부였다.

고해신부는 고해성사를 들어주고, 하느님을 대신해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준다.

프란츠는 인기 있는 고해신부였다. 특히 범죄자들이 프란츠를 자주 찾았다.

몇 년이 지나자, 프란츠는 그 어떤 범죄자보다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범죄 수법에도 능통해졌다.

누가 배신자이고, 누가 진범인지도 알았다.

범죄 세계의 이치와 질서 그리고 논리가 보였다. 그 세계를 동경하게 된 것은 콜걸의 고해성사를 들을 때였다.

어느 날, 그는 깨달았다.

‘나는 종교라는 감옥에 갇혔어!’

프란츠가 신부를 그만두려 할 때, 주교가 모세의 길잡이를 주었다.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이 될 거다.”

*

시몬은 프란츠 앞에서 팔을 들어 손목 흉터를 보였다. 프란츠가 터보 라이터로 새긴 흉터였다.

“물건을 빼앗겼습니다.”

“얼굴을 보았나?”

“준입니다.”

“굿데이의 회장?”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혼자 새장을 부쉈습니다. 세이턴 마스티프도 놈을 따라갔습니다.”

프란츠는 준 혼자 새장에서 날뛰는 모습을 상상하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책벌레가? 왜? 더 놀라운 것은 하얀 악마 세이턴 마스티프가 놈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길들이지 못했던 그 악마가 순순히 따라갔다고?

프란츠가 맡은 일은 카멧을 납치하는 것뿐이었다. 포스마일이 준을 암살하려 했던 사실은 모른다.

부드러운 반지 감촉이 손끝에서 더뎌졌다.

뭔가 틀어졌다. 그것도 단단히.

그는 반지에서 손을 떼고, 시몬 뒤에 있는 부하에게 신호를 보냈다. 부하는 망치 같은 주먹으로 시몬의 뒷목을 쳐서 단숨에 죽였다.

이번 의뢰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누군가 책임져야 했다. 새장이 부서진 것은 시몬에게 넘기면 된다.

이제 준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물건을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 전에 준이 왜 개지랄을 떨었는 지 알아야 했다. 카멧과 아는 사이였을까?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

“척살조를 보낼까요?”

부하가 말했다. 갑자기 프란츠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렇군!”

“그럼 바로 ···.”

“그 뜻이 아니다. 준은 이유 없이 날뛰는 괴물이 아니야. 얻을 게 없으면, 철저한 방관자가 되지. 누군가 준을 자극했어.”

“누가 감히, 우리 준을!”

부하는 스스로 한 말에 당황했다.

방금 척살조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삼자가 준을 자극했다는 말을 들으니, 괜한 분노가 샘솟았다.

굿데이로 돈맛을 본 사람이 많다.

굿데이는 자동현금 ‘공용’인출기였고, 준은 그 인출기를 돌리는 소스였다. 준은 공원과 같은 ···. 공유재였다.

우리의 소중한 공유재를 어지럽힌 자가 있다니!

논리가 여기까지 진행되고서, 부하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했다.

‘준 = 돈줄’ 이었다.

*

“엄마! 저예요!”

카멧의 목소리를 들은 누네즈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울지 마세요! 무사히 빠져나왔어요!”

“정말 괜찮니?”

“네.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어요.”

카멧은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이제 준이 누군지 확실하게 안다.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킹스덤의 명물. 굿데이 회장. 중앙도서관의 책 읽는 붓다를.

그녀 역시 캠퍼스에서 준을 여러 번 봤다. 그 무심하고 시크한 표정이라니, 가까이에서 보니 더 멋졌다.

“옆에 있니?”

“네.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화도 안 내고, 착하고, 싸움도 잘하고 ···. 그리고 여자를 안 밝혀요!”

“남자니?”

“네!”

“놀랍구나!”

준은 운전석에 있었고, 카멧은 뒷좌석에 있다.

그녀 발밑에 있는, 세이턴이 나른한 표정으로 그녀 무릎에 머리를 올렸다. 애쓴 건 아니지만, 그녀의 통화내용이 다 들렸다.

누네즈는 ‘그가 널 구했으니, 네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라는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페루에서 유행하는 정치 논리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엄마!’

약혼, 결혼, 아이는 넷.

준은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심어줘야 했다.

‘준을 건들면 망한다.’

집에 와보니 포스마일의 시체는 깔끔하게 없어졌다.

로켈은 걱정이 가득 차서 철철 넘치는 표정으로 준을 맞이했다.

“무슨 일입니까?”

“예방접종.”

준의 등 뒤에서 카멧이 빠끔히 머리를 내밀었고, 카멧 뒤에서 세이턴이 혀를 내밀었다.

“저 ‘짐승들’은 뭡니까?”

로켈은 카멧까지 싸잡아서 짐승으로 묶었다.

“돌봐줘라.”

*

호세는 에바의 스마트 폰으로 누네즈 장관에게 연락했다.

이번에도 누네즈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미안해요.”

“카멧은 ···.” 호세는 에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 ···.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래요. 통화했어요. 호세 ···. 정말 미안해요. 저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게 무슨 ···. 채굴권을 허가하신 겁니까?”

“아니요. 장관직을 내려놓았어요.”

호세의 머리가 멍해졌다.

아마존의 어머니가 물러서다니! 이제 샤나이슈카는 고래가 해체되듯이 폐허가 될 것이다. 빌어먹을 황금!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네즈를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할 만큼 했다. 남편을 잃었고, 그녀 인생도 망가졌다. 누구도 그녀를 비난하지 못하리라.

호세는 내가 뭘 했나? 하는 허무감에 빠졌다. 한 게 없다. 그나마 리처드가 준과 연락이 닿아서 천만다행이었다.

목숨을 구한 것도 ···. 호세의 눈에는 에바가 천사처럼 보였다. 에바가 우유를 건넸다.

“바다에 오래 있어서, 체내 염분이 많이 빠졌을 거예요. 우유를 더 드세요.”

*

누네즈 장관의 사임 소식을 듣자, 로베르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해냈다! 그 망할 할망구를 쫓아냈다! 신임 장관이 누가 되든, 미다스 그룹의 채굴권을 허가할 것이다.

포스마일이 암살에 실패하고 증발했지만, 새장이 털리고 앵무새를 놓쳤지만 ···. 목적은 달성했다.

슈베르트의 마왕 - 비상 통화음이었다.

발신자 코드를 보니, ‘어둠의 성자’로 불리는 프란츠였다. 프란츠는 다짜고짜 따졌다.

“굿데이 준이 새장을 털었소.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페루 특공대가 그에게 도움을 청했지. 그 순간 놈의 운명도 결정 났어.”

“당신은 암살에 실패했고, 준의 분노만 돋았소. 그래서 소중한 새장을 잃었소. 앵무새와 개 한 마리도 잃었고 ···. 나는 준과 대립하기 싫소. 그는 소중한 ···.”

“황금알을 낳는 거위니깐.”

“그렇소.”

“그 거위가 용을 잡아먹었지.”

“그렇다면 더더욱 준과 대립할 수 없소. 당신은 내 관할 구역에 있는 유명인사를 건드렸소. 일을 저지르기 전에 나와 의논했어야 했소.”

“화가 단단히 나셨군.” 로베르는 머리를 굴렸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더 이상의 다툼은 모두 비용으로 처리될 뿐이었다. “원하는 걸, 말씀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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