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빅-3
밀림으로 둘러싸인 샤나이 공항은 경비행기가 간신히 착륙할 정도로 작았다.
호세와 부대원들은 25인승 터보트롭 프로펠러 여객기에 올라탔다.
여객기 실내에 갈아입을 옷이 있었다. 사이즈가 얼추 맞는 헌 옷이었다.
리처드는 의자에 기대 눈을 붙였다. 아마존의 거친 환경에 적응한 몸이었다. 안락한 의자에 닿자 자연스레 긴장이 풀렸다. 비행기 진동은 안마기처럼 느껴졌다.
“쉴 시간이 없습니다.”
호세 특무상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하얀 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군복을 입었을 땐, 드러나지 않던 복근과 가슴 근육이 뚜렷했다. 리처드는 자세를 바로 했다.
“두 시간 전 누네즈 환경청 장관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 메시지입니다.”
호세는 에어스크린을 띄웠다. 겁에 질린 젊은 여자 얼굴이 보였다. 배경은 어두웠다.
“사진 속 여자는 누네즈 장관의 딸, 카멧입니다. 메시지를 보낸 자의 정체는 모릅니다. 범인은 샤나이슈카 지역 채굴권을 승인하지 않으면 48시간 이내에 고문을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번 작전은 48시간 이전에 카멧을 구하는 겁니다.”
호세는 부대원들과 리처드를 차례로 쳐다보았다. 부대원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달리, 리처드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인질 구출 작전을 왜 아쿠타미 부대가?”
불법채굴에 대응하는 수색대의 성질과 인질 구출을 업으로 하는 특수부대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더 이상한 것은 군용 비행기가 아닌 민간 비행기를 타고,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휴가 나온 군인들이 단체 여행하는 필이었다.
“누네즈 장관님이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채널이 오염됐다고 생각하시죠. 우리보다 뛰어난 팀도 많지만, 누네즈 장관님이 믿는 팀은 우리뿐입니다. 납치 장소는 오렌지 시티입니다. 누네즈 장관에겐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다. 5년 전 장관의 남편이 인질로 잡혔었죠. 범인들은 같은 요구를 했습니다. 샤나이슈카 채굴권을 원했죠. 누네즈 장관은 거절했고, 그녀의 남편은 살해되었습니다. 누네즈 장관님의 따님 카멧은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있었습니다. 스케줄은 비밀이었죠. 정보를 빼돌리는 내부자가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고, 외부지원을 요청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믿을 수 있는 라인도 없습니다. 리처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을 아십니까?”
“찾아보죠. 그나저나 답답한 놈들이네요. 채굴권을 노린 납치라니 ···. 그런 게 통할 리 없는데.”
“통할 거 같습니다. 대통령과 각료들은 채굴권을 승인하더라도 카멧을 구하려 합니다.”
“말도 안 돼! 그건 납치범에게 상장과 상금을 주는 꼴인데.”
“페루에는 속담이 있습니다. 악마가 원하는 것을 주어라. 그리하면 평화를 얻을 것이다.”
*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라.’
책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여성 심리를 설명했다.
남자가 섹스 생각을 할 때, 여자는 로맨스를 꿈꾼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정신으로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것, 그것이 여자였다.
스마트 폰에서 ‘델타사운드’가 났다. 델타사운드는 무음 주파수 세 개를 한 지역에 교차해서, 그 지역에서만 소리가 들리게 한다.
델타 사운드 - 음파 간섭 효과를 응용한 시스템, 일명 귓속말.
도서관 안이었지만, 준에게만 소리가 들렸다. - 뚜룻뚜룻
엄지와 검지를 벌려서 에어스크린을 띄웠다. 도서관 모드로 활성화된 에어스크린은 준에게만 보였다.
초췌한 모습의 리처드가 있었다.
수염을 깎지 않아서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배경으로 아치형 공간이 보였다. 작은 요트나 전세기의 모습이었다. 화면이 흔들리는 패턴을 보면, 비행기일 확률이 높았다.
“이 여자를 찾아줘.”
리처드의 말소리와 함께 첨부 파일이 들어왔다.
겁에 질린 카멧이 사진. 그리고 평소 카멧의 모습. 그녀의 블로그와 간단한 약력이 보였다.
갑자기 백색잡음이 피어올랐다. 음성 통화도 두절 되었다.
시스템 오류에 대한 안내가 이어졌다.
- 신호가 끊겼습니다. 통신 지역을 이탈했거나, 기기고장일 수 있습니다.
“아까 그게 누구지?”
준은 리처드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세기를 탄 노숙자라니!
신종 스팸 메일인가?
다시 독서에 집중했다. ‘지구가 기형이 된다.’ - 환경호르몬에 관한 책을 십오 분 읽고, 에바에게 전화했다.
“유조선 세 척이 필요해.”
“빌릴까요? 살까요?”
“굿데이가 키우려면 사는 게 낫겠지.”
“키운다고요? 지금 제가 아는 유조선 맞는 거죠? 원유를 가득 싣고 바다를 오가는 배.”
“정확해.”
에바는 더는 묻지 않았다. 사라고 했으니 사면 된다.
*
터보트롭 여객기는 갈라파고스 제도를 지나는 중이었다. 레이더에 이상 신호가 포착되었다.
기장은 무조건 반사로 동체를 뒤집었다. 리처드는 스마트 폰을 놓치고, 얼떨결에 발로 밟았다.
얄팍한 스마트 폰은 리처드의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레이더의 이상 신호는 점점 뚜렷해졌다.
분명한 미사일이었다. 기장은 최후의 수단으로 엔진을 끄고 자유낙하를 감행했다.
레이더가 포착한 미사일은 ‘루치페로’로 불리는 공중 어뢰였다.
최신형 전투기도 루치페로로부터 달아나지 못하지만, 모든 전자장비와 엔진을 끄면, 기적적으로 비켜갈 때가 있었다. 적어도 그런 소문은 있었다.
그러나 루치페로는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날아왔다.
“충격까지 5초. 전탑 승객 탈출!”
기장이 마이크 스위치를 켜고 말했지만,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거리를 벌리려고 다시 엔진을 가동했지만, 엔진은 조용했다. 비행기는 상어를 보고 몸이 굳어버린 고등어 같았다.
“좆됐다. 전자펄스에 물렸어!”
그랬다.
루치페로는 격파 전에 EMP를 쏴서 타깃을 마비시킨다. 돌고래가 초음파로 작은 물고기를 기절시키듯이.
터보트롭 여객기는 전기 방충망에 걸린 모기처럼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
*
시몬은 철장을 지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철장 안에 있는 세이턴 마스티프는 조용히 시몬을 응시했다. 먹잇감을 바라보는 파충류의 눈빛이었다.
시몬이 철장 안으로 개밥을 넣어줄 때에도, 세이턴 마스티프는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사탄의 개로 불리는 세이턴 마스티프는 몸무게 70kg이 넘는 대형견이었다.
며칠 전, 루마니아 똘마니가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았었다.
세이턴 마스티프는 조용히 철장을 빠져나와, 창고를 지키던 루마니아인 두 명을 물어 죽였다.
이유 없는 살육.
세이턴 마스티프는 절대 길들어지지 않는 괴물이었다.
보스의 부하들이 방패와 전투복으로 무장하고 괴물을 다시 철장 안으로 넣으려 했지만, 다섯 명이 크게 다쳤다.
손목이 부러지거나, 발목이 나가거나 어깨가 빠졌다.
전투복 헬멧을 쓰지 않았던 사람은 얼굴 절반을 잃어야 했다.
창고 주위에 철책이 둘러쳐져 있지 않았다면, 영원히 달아났을 것이다.
요령 좋은 누군가 동물병원에서 코끼리 마취제와 마취총을 가져왔고, 아슬아슬하게 놈을 잠재웠다.
시몬은 밥을 줄 때에도 세이턴 마스티프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잠깐 마주쳤을 뿐인데도, 엉겁결에 뒷걸음쳤다. 아무도 못 봤기 망정이지, 누군가 봤다면 평생 놀릿감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일까?”
시몬은 창고를 바라보았다.
창고 안에는 그가 납치해온 여자가 갇혀 있다.
보스는 협상이 틀어지면, 여자를 세이턴 마스티프의 먹이로 던질 거라 말했다.
시몬의 경험으로 보면 협상이 틀어질 확률이 높았다. 데드라인이 24시간도 안 남았기 때문이었다.
*
카라반 침대가 있지만, 그 위에서 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준은 며칠이고 자지 않고, 집중하는 것을 즐겼다. 잠은 깜빡깜빡 졸은 걸로도 충분했다.
보통 사람은 하루를 마감하는 종교의식처럼 잠을 청하지만, 준은 하루를 마감하는 기준으로 일기를 쓴다.
그날 있었던 일을 1.5초 동안 생각하고, 15초 이내에 노트에 옮겨적는다.
정확하고 빠른 기록을 위해, 새로운 글자와 언어를 만들었다. 일기장은 인디언 문자 같은 기호로 채워졌다.
“뭔가 찝찝한데 ···.”
준은 어깨를 긁적였다.
모기 한 마리가 수소 전자처럼 주위를 돌았다.
전자 오비탈 함수를 응용해서,
모기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간단하게 엄지와 검지만으로 모기를 잡아냈다.
찝찝한 느낌 - 모기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모기를 잡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오전에 받았던 신종 스팸 메일이 생각났다.
리처드의 번호가 찍혀 있었지만, 스팸 바이러스라 여겼다.
스팸 내용이 뭐였더라? ‘이 여자를 찾아줘.’ - 성매매 사이트의 새로운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다.
준은 스마트 폰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허공에 수십 장의 카드를 펼치듯, 소형 에어스크린 세트를 불러냈다.
‘이 여자를 찾아줘.’ 에 해당하는 에어스크린을 터치했다.
“발신지 위치.”
준이 말하자, 유진 악마가 홀연히 나타났다.
평소 소녀 같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준과 일대일로 만날 때만 보이는 ‘난 알아요.’ 버전이었다.
“갈라파고스 제도, 좌표 98, 07, 높이 8.5km,”
“음성 분석.”
“리처드 음성과 98.5% 일치.”
“통신 두절 원인은?”
“기기 파손으로 추정. 참고 영상을 로딩합니다.”
유진 악마는 양손을 리드미컬하게 흔들었는데, 긴 손톱 장식을 한, 인도 춤 같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인공위성 영상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자유낙하 하는 터보트롭 여객기, 여객기를 향해 돌진하는 로켓.
로켓 꽁무니에서 파란빛 플라즈마가 보였고, 플라즈마 뒤로 회색 연기가 생겨났다.
상어가 고등어를 삼키듯이, 루치페로는 여객기를 산산조각냈다.
제아무리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스마트 폰일지라도 저 폭발에서는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끔찍한 사고 영상이었지만, 준은 무덤덤했다. 1초마다 네 명씩 죽어간다. 그때마다 슬퍼할 수는 없다.
준의 흥미를 끄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그 방식이었다.
비행기 격추라니! 독특했다. 비행기 격추에 의한 죽음이라면, 1초에 네 명이 아니라, 일 년에 15명이 될까? 말까였다.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맞이할 수 있는 최후의 방식이 아니었다.
리처드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비행기 격추’보다 훨씬 희귀했다.
준의 눈동자를 분석하던 유진이 말했다.
“폭발 전 적외선 촬영 영상을 분석하면, 비행기 안에는 기장을 포함하여 열 명의 탑승자가 있었습니다.”
“리처드가 보낸 이미지 파일의 여자는 누구였지?”
“얼굴 인식 프로그램 가동 ···. 97.5% 일치율로 카멧 알드로반디입니다.”
“카멧의 위치는?”
“탐색 중입니다. 잠깐 기다려주세요. 잠깐만요. 아 ···. 조금 더 ···. 음 ···.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는 헌팅턴 거리입니다.”
유진 악마는 수정 구슬 같은 원형스크린을 손바닥 위에 띄웠다.
건널목을 건너는 카멧이 보였다. 밴 한 대가 그녀 앞길을 막았다.
그녀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그녀 배를 때리고, 밴 안으로 집어넣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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