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6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킹스덤 중앙도서관이 떴어.”
웹 쇼핑하던 에바가 에어스크린 알림 창을 보며 말했다. 트리탄이 살아 돌아갔지만, 여전히 어수선한 사무실이었다.
DNA 컴퓨터 중심에서, 악마의 눈동자처럼, 형광이 반짝여서 더 혼란스러워 보였다.
적당한 부동산을 찾던, 준은 ‘킹스덤 중앙도서관’을 검색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특정 단어들이 딸려왔다.
‘난동, 학내폭력, 아이언 오거, 총격, 폭발, 테러, 사망자, 도서관 전쟁, 킬러들의 파티 ···.’
일상적인 도서관과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연관단어들은 진화하는 듯 보였다. 난동으로 시작해서 끝끝내 전쟁까지 갔다.
“로켈?”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이것도 모르면 넌 준짱이 아니야. 투였다.
“나는 천리안이 아니야. 아침에 일어나 눈뜰 때, 밖에 비가 오는지 아닌지도 몰라. 누구처럼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지진 감지 능력도 없고. 유령도 보이지 않아. 신의 목소리도 안 들리고.”
준은 평소처럼 솔직하게 말했는데, 로켈은 지나친 겸손이라고 여겼다.
준은 아침에 일어날 때, 날씨와 이웃집 아침 식사 메뉴까지 간파하고, 인도네시아 지진을 감지하고, 지진으로 죽은 유령을 볼 것이다. 그리고 신과 대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신의 노래, 중얼거림, 재채기까지 들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른 척하는 것은 ···. ‘나에게 직접 보고받고 싶은 거겠지.’ 평범함까지도 탐내다니. 준짱은 탐욕스럽군. 로켈은 준짱이 더 맘에 들었다. 깔끔하게 설명해주지!
“실버 드래곤의 징벌자들이 도서관에 진을 쳤었습니다. 준짱을 노린 포석이었죠.”
로켈은 징벌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물꼬를 텄다. 중앙도서관은 준의 생활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난장판이 되었다. 이건 모두 아홉 명의 징벌자 때문이다.
동영상으로 불타는 도서관이 보였다. 폭탄 전문 징벌자와 화염 전문 징벌자의 합작품이었다.
웅장한 불길은 전투갑옷을 차려입고 티타늄 합금 방망이를 든, 토그를 돌파하려는 피눈물 나는 몸부림이었다.
징벌자들은 타고난 냉혈한이었지만, 전투갑옷을 입은 토그는 악몽이었다.
징벌자는 최후의 순간, ‘나는 야구공이 아니에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성냥을 그을 때, 비참하고도 무서웠도다.
도서관 내부에 샤워장치가 훌륭하게 작동했지만, 불길을 막지 못했다.
대리석과 콘크리트 그리고 철근으로 만든 도서관은, 기름을 머금은 종이상자처럼, 활활 탔다.
빨간 불꽃, 파란 불꽃, 노란색 불꽃, 주황색 불꽃 ···. 불꽃의 무지개였다.
소방차 아홉 대가 물을 뿌려댔다.
소방수들은 도서관 앞에 있는 분수대 물까지 끌어썼다. 뜻하지 않게 딸려 들어간 잉어들은 책구경도 하고 불구경도 하면서 아름다운 구이가 되었다.
‘역시, 군사용 폭탄과 연소제는 성능이 좋아.’
로켈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약간의 자부심을 느꼈다.
전쟁터에서 살아온 그에겐 도서관보다 연기 냄새가 친숙했다.
준은 단숨에 진상을 파악했다. 로켈이 여기 있고, 토그와 디아나가 없다는 것은 ···. 로켈만이 도서관에서 빠져나왔다는 뜻이다.
트리탄과 본부장들의 행동을 보면, 답은 간단했다.
‘징벌자는 내 목숨을 노린 게 아니야. 로켈을 잡아두려는 거였어.’
징벌자가 로켈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시온이 그다지 비밀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결론-1.
도서관 화재 사건은 로켈의 발목을 묶으려는 조치에서 시작된 일이다. 다시 말해, 로켈이 없었다면 도서관은 무사했다.
아이언 오거는 로켈의 부하일 것이다. 로켈 부하의 무리한 대응이 불길을 키웠다.
준은 로켈이 선전 효과를 노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건들면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타죽는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준은 이런 의문을 가지고 로켈을 쳐다보았다.
마음이 통한 걸까? 로켈이 미소 지으며 지껄였다.
“보세요! 역시 핵물리학 코너가 가장 잘 타네요!”
*
보트 공장이었던 창고는 남쪽 출입구가 나루터였다. 준은 지하감옥처럼 음습한 이 창고가 맘에 들었다.
굿데이의 새로운 둥지.
“농담이지?”
에바는 안되는 이유가 이백 개는 있다는 듯 말했다.
그녀의 핑크 광택 람보르기니는 진흙으로 얼룩졌다. 람보르기니가 워낙 잘 빠져서, 미녀가 머드팩 하는 모양새였지만, 1km가 넘는 진창길은 충격적이었다.
갈대가 무성한 강가에는 플라밍고 무리가 강렬한 핑크를 뽐냈고, 그 주변에는 따오기가 서성이고, 강 중심부에는 백조와 야생 오리가 눈송이처럼 떠 있었다.
하늘에는 물수리가 맴돈다.
흙 곰팡내와 강 특유의 물비린내.
“여기엔 악어가 있어!”
그녀는 악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존재인 양 말했다.
갑자기 준이 그녀 뺨을 때렸다. 강하게 후려친 건 아니었지만, 손바닥 감촉이 느껴지는 분명한 싸다귀였다.
그녀는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몰라, 눈동자만 커졌다.
따끔한 건 알겠는데, 지금 뭘 느껴야 하지? 모멸감? 배신감? 아니면 이 둘을 5대 5로 섞어야 할까?
“띠발노옴!”
파블로 무조건 반사처럼 욕이 나왔다.
준은 욕을 막아내듯 손을 폈다. 그리고 짧은 한마디 ···.
“모기.”
손바닥 한구석에 핏자국과 으깨진 모기가 보였다.
모기는 평화를 위한 제물처럼 보였다. 최소한 휘갈겨 쓴 면죄부 정도는 되는 거 같았다.
에바는 핸드백을 움켜잡고, 준의 온몸을 샅샅이 훑었다. 모기 비슷한 티끌만 보여도 있는 힘껏 후려치려 했다.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 그러나 준의 몸에는 티끌 비슷한 얼룩 하나 없었다.
그의 몸을 곰곰이 보던 그녀 얼굴이 새빨개졌다. 준의 몸은 단단했다.
몸의 선과 윤곽이 강한 필체로 '남자'라고 쓰여 있었다.
에바는 방금 따귀 맞았지만 ···.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즐겁고 유쾌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 ···. 피부접촉.
약간의 배경음악을 곁들이면 그가 나의 뺨을 쓰다듬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의 응징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나의 소중한 피를 빨던 모기에게 행해진 것이다.
준은 무심한 듯하면서도 나를 지켜보았어. 나에게 관심이? 어쩌면 그럴 수도 ···. 그렇지 않다면 그 쟁쟁한 지원자 중에서 나를 뽑았을까? 에바는 움켜쥔 핸드백을 슬며시 내려놓으며, 준의 팔짱을 껴 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레즈였고, 레즈라서 행복했다. 그런 내가 남자에게 흔들린다고? 안돼! 남자는 모두 똥이야!
여자의 마음은 갈대 ···. 뭐 괜찮아. 준은 특별하니깐.
*
창고 안은 열대 우림 습지 같았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고, 이름 모를 풀이 자라고,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개구리를 따라 뱀이 날아다녔다.
뱀이 날아?
“플라잉 스네이크. 말레이시아에 사는 건데, 여기도 있네.”
준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다.
그는 원시 생태계로 꽉 찬 창고가 맘에 드는 눈치였다. 그의 눈길이 허공을 짚었다. 에바도 준을 따라 허공을 응시했다.
공기 반, 날벌레 반.
들어설 때, 갑자기 어두워져서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개구리가 뛰었던 이유는 허공을 가득 메운 곤충을 먹기 위함이었다.
대왕고래가 크릴새우를 먹듯이, 입 벌린 개구리가 점프할 때마다 입안 가득 벌레가 들어왔다.
모든 날벌레가 개구리의 한입꺼리는 아니었다. 날벌레 중에는 개구리보다 큰 것도 있었다.
탱크에 날개가 달렸으면 저럴 것 같은, 곤충이 날면서 지나갔다. 긴 더듬이의 짙은 갈색이었다.
“저거 하늘소지?”
에바는 물으면서도, 뭔가 불안했다.
“바퀴벌레.”
준이 콕 집어서 말한 ‘바퀴벌레 탱크’는, 2차 세계대전 폭격기처럼, 무리 비행을 했다.
에바는 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애원했다.
“내 뺨을 때려줘.”
그녀 얼굴에 노린재가 붙어 있었다.
노린재는 방귀벌레로 불리는 곤충이었다. 준은 요령 있게 손끝으로 노린재를 쳐냈다. 에바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주 세게 때려줘.”
“왜?”
“기절하고 싶은데, 바닥이 너무 더러워서 맨정신으로 못 하겠어.”
그녀가 말하는 동안 이마에 또 다른 벌레가 붙었다. 어깨에도, 가슴에도, 허벅지에도, 명품 핸드백에도, 벌레들은 새로운 지형을 탐사하듯이, 좀비가 피를 탐하듯이, 몰려들었다.
물웅덩이가 크게 출렁거렸다. 악어가 짝짓기 중이었다. 살면서 별 더러운 꼴을 다 봤지만, 악어의 짝짓기라니!
눈물과 함께 욕이 터졌다. “니-기미, 띠-브럴.”
그녀는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준을 보았다.
놀랍게도 준에게 하루살이 한 마리 달라붙지 않았다. 준 주위에 강력한 보호막이 작동하는 거 같았다.
*
드래곤 빌딩 93층, 실버 드래곤 본부장들은 파산 절차를 논의했다.
부실규모는 아이슬란드 GDP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실버 드래곤의 파산은 아이슬란드가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같다. 세계적인 경제 공황은 피할 수 없다.
마진콜에 응하지 못해서, 모든 포지션에서 반대매매가 이뤄졌고, 이 사실은 액면 그대로 공시되었다.
언론은 실버 드래곤 사태를 특집기사로 다뤘다.
트리탄 회장은 실종상태였고, 본부장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책임을 회장에게 넘겼다.
회사는 망했지만, 파산 회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본부장들은 각자 솟아날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어서 빨리 회의를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맘이었다.
전략관리 본부장 키노시타와 리스크 관리 본부장 찰스 그리고 시큐리티 본부장 로베르가 회의를 이끌었다.
“금융감독위원회 청문회는 피할 수 없지만, 교도소에 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로베르가 말했다. 그는 트리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른 헤지펀드들도 굿데이를 경계하고 있어요. 우리가 당했다면, 그들도 안심할 수 없죠. 내일부터 대대적인 역공이 시작될 겁니다.”
“헤지펀드 연합이 굿데이를 공격? 유진 악마를 상대해야 하는데, 가능할는지.”
“헤지펀드 우호 언론이 인공지능 투자를 악의 축으로 몰아붙일 겁니다. 여론이 형성되면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유진 악마 스타일의 인공지능 투자를 제재하고요. 모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조만간 더 높은 몸값을 받고 ···.”
리스크 관리 본부장 찰스는 입을 다물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트리탄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파괴자, 용의 주인, 파괴 군주.
장례식에서나 볼법한 검은 양복과 블랙타이였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은 로베르를 내려보았다.
“놀랍습니다. 죽음까지 극복해내시다니.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로베르는 사자 앞에서 뒷걸음치듯이 조용히 움직였다.
트리탄은 품위 있게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본부장들은 숨을 멈췄다. 트리탄은 불사신이란 말인가!
“파산 절차를 논의 중이었습니다.”
찰스가 간신히 말했다.
트리탄은 로즈우드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손목으로 턱을 받쳤다. 본부장들은 감히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참마도처럼 무거운 트리탄의 목소리가 울러 퍼졌다.
“실버 드래곤의 빚은 ‘일곱 자매’가 가져간다.”
일곱 자매의 또 다른 이름은 어둠의 연금술사. 그들이 실버 드래곤의 빚을 갚아준다고?
“조건이 무엇입니까?”
전략관리 본부장 키노시타는 목숨을 걸고 물었다. 야쿠자였던 그는 이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안다.
“너희 목숨이다. 너희는 죽는 그 날까지 빚을 갚아야 한다.”
본부장들의 얼굴이 일제히 꿈틀거렸다. 그들의 생각은 하나였다.
나의 목숨을 담보로 일곱 자매와 거래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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