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5
로켈은 무너져내린 출입문을 보고 ‘아차!’ 했다.
징벌자에게 집중했던 것이 실수였다. 머릿속에 단어 하나가 반짝거렸다.
‘임무실패.’
미션 실패 보고서를 써야 한다. 그리고 이런 수법에 대응할 매뉴얼도 만들어야 하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정화의 시기’도 거쳐야 한다. 우울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고, 바닥에 있는 트리탄을 보고 멀쩡한 준과 에바를 확인하자, 생생했던 머릿속 단어가 지워지며, 안도와 감탄이 뒤섞인 표정이 나왔다.
뭔지 모르겠지만, 미션 실패는 아니었지만, 성공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지금이라도 바닥에 누워있는 트리탄이 벌떡 일어나 준과 에바를 지워버릴 것만 같았다.
“방금 당나귀 같았어.”
준은 에어스크린으로 이사할 장소를 찾으며 짧게 평했다. 로켈은 마주한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트리탄은 강화인간이었다.
“준짱의 작품입니까?”
존댓말이 절로 나왔다.
“문을 부수고 바닥을 훼손한 것은 트리탄이야. 힘이 좋더라고.”
“그게 아니라, 요거.”
로켈은 나자빠진 트리탄을 가리켰다.
“그의 부하 작품.”
“부하요? 본부장들?”
실버 드래곤의 본부장은 충성스럽기로 소문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배신을?
“트리탄은 실버 드래곤을 너무 사랑했어. 어떻게든 실버 드래곤을 살리려 했지. 부하의 재산을 모두 털어서라도 말이야. 부하들은 그게 죽기보다 싫었지. 실버 드래곤이 망하면 모아 둔 재산으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 그 재산만큼은 지키고 싶었지.”
“본부장답지 않군요.”
“노후보장이 절실했겠지.”
“그게 아니라 ···. 뒤처리가 허술하네요.”
로켈은 덩그러니 누워있는 트리탄의 시체를 확인했다.
시체는 살인 사건의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시체를 확실하게 치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내가 두고 가라고 했어.”
“시체를요? 그런 취미가 있으십니까? 시체는 기념품이 아닙니다. 사법 레이더에 걸리면 교도소입니다.”
“트리탄과 부하들이 연기했을 수도 있고 ···. 최종적으로 네가 마무리하는 게 맞잖아.”
준은 로켈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런데 반말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관록과 권위가 붙은 것이었다.
마무리라니? 죽었는데 무슨 마무리? 로켈은 몇 군데를 짚어보았다. 확실하게 ···.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다.
본부장 중에 트리탄을 능가하는 실력자가 있었던가? 그리고 준의 저 자연스러운 태도는 ···.
“오호! 준짱께서는 제가 올 줄 아셨군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죄송합니다. 이렇게 험한 일을 겪지 않게 해야 했는데 ···. 제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본부장 중에서 누가 ···.”
찰칵!
준의 손끝에서 소리가 났다.
일렉나이프의 스위치를 켠 것이었다. 손잡이 끝에 고농축 전자파가 푸른 촛불처럼 일렁거렸다.
“궁금해할 거 같아서, 얻어놨어.”
준은 푸른 불꽃 위로 손을 가져갔다.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불꽃은 엑스레이처럼 손을 통과했다.
“일렉나이프군요.”
로켈의 눈매가 먹이를 발견한 매처럼 날카로워졌다. 많은 것을 알려주는 눈빛이었다.
“원리를 알아?”
“정확하게 모르지만, 증거를 남기지 않는 살인 도구입니다.”
“여기 보이는 불꽃은 자기장에 갇혀 있는 고밀도 전자파야. 손이나 다리에 대면 별 느낌이 없지만, 심장에 닿으면 심장이 멈춰. 전자파 간섭작용으로 심장의 전기신호를 차단하지. 누가 만든 거지?”
“이름은 모릅니다.”
“선택받은 자였어?”
“네. 준짱과 같은 씨앗이었습니다.”
“밟혔지?”
준은 스스럼없이 물었다.
로켈은 아릿한 통증을 느꼈다. 간혹 선택받은 자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은 천재들에게 위험한 곳이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만들다 만 거 같았어. 몇 가지 기능이 아쉽더라고. 일부러 뺀 거 같기도 하고 ···.”
준은 일렉나이프를 로켈에게 던졌다. 로켈은 가볍게 받아냈다.
“마무리 부탁해.”
준이 말했지만, 로켈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설마 자결하라는 소린가? 젊은 것이 잔인하구먼 ···.
“저어 ···. 무슨 말씀이신지 ···.”
“트리탄을 치워야지.”
“아! 그래야죠.” 그는 트리탄의 왼쪽 발을 잡고 밖으로 끌었다. 트리탄은 무거웠다.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에바 ···. 좀 도와주겠어?” 말했다.
에바는 못 들은 척 손톱을 다듬었다.
“로켈 지금 뭐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저 혼자 해야 하는데 ···. 이런 일은 토크가 제격인데. 조금 기다리시면 ···.”
“트리탄을 살려서 내보내면, 쉽잖아.”
“메~에?”
로켈의 목구멍에서 배고픈 염소 소리가 나왔다.
낙하산 없이 고공 점프한 느낌이었다. 그는 천천히 에바의 반응을 확인했다.
그녀는 손톱 정리를 끝내고 웹 쇼핑을 시작했다. 빤히 보이는 에어스크린으로 브래지어와 팬티를 넘겼다.
시체도 치우지 않은 살인 사건 현장에서, 그것도 관련자가 둘이, 하나는 부동산을 살피고 다른 하나는 웹 쇼핑을?
잔잔한 컬처쇼크였다. 뭘까? 저 평범함은? 굿데이에서는 죽은 자도 살리는가?
또 다른 질문.
트리탄을 살리는 게 좋은 생각일까? 뇌용량 초과로 아랫배가 아파졌다.
로켈의 고민을 본, 준은 에어스크린의 자동목록을 잠갔다. 로켈 ···. 똑똑한 줄 알았는데, 손이 많이 가네. 수준에 맞게 쉬운 질문부터 ···.
“벌레 밟기 놀이를 알아?”
“그런 놀이도 있습니까?”
“바퀴벌레, 개미, 땅거미, 굼벵이를 밟으면서 노는 거야. 아버지는 벌레를 밟지 않는 건, 벌레에게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도 중요하다고 하셨어. 의미를 깨닫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 벌레를 밟는 건 가치가 없어. 그 시간에 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해. 벌레 밟기로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쯤 나는 벌레를 주워 먹으며 살고 있겠지.”
로켈은 놀랐다.
트리탄을 벌레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트리탄이 이 사실을 안다면, 눈 뒤집힌 멧돼지처럼 날뛸 것이다.
로켈은 트리탄이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죽은 지 몇 분 되지 않았는데, 죽어서 좋은 이유가 늘어났다.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죽은 자를 되살릴 기술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걸 줬잖아.”
“일렉나이프?”
“설정 값을 조정하면 심제세동기로 쓸 수 있어.”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
“미안,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했어. 유진!”
소녀의 모습이 홀연히 나타났다.
유진은 준과 에바에게 계속 보였지만, 준이 명하자, 로켈에게도 모습을 드러냈다.
로켈은 ‘저것이 트리탄의 영혼인가?’ 싶었다.
트리탄에게 까칠한 여성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저토록 순박한 소녀의 모습일 줄이야.
유진은 낭랑하게 지껄였다.
“일렉나이프 컨트롤 프로그램 접속. 부족 전력량은 천정에 있는 전기배선에서 끌어올게. 35 기가테슬라, 5kV 펄스간격 1.4 파이, 유효지속 시간 25초, 바이탈 카운트 다운 설정 ···. 빌어먹을 개새끼를 살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유진은 보고 들은 대로, 특히 에바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참고했다.
“로켈 뭐해 빨리 꽂아!”
준이 재촉했다.
“이걸 어디에 ···.”
로켈은 일렉나이프를 손에 든 채 허둥댔다.
멕시코의 비열한 거리와 코소보의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도 정신 줄을 놓지 않았던 그였지만, 지금은 적응되지 않았다. 친절한 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젖꼭지.”
“아! 네!”
그렇지! 인간은 포유류였지.
로켈은 서둘러 오른쪽 젖꼭지에 일렉나이프를 갖다 댔다. 트리탄은 오른쪽이 왼쪽보다 컸다.
“아니야! 왼쪽이야.”
“아! 네!”
그는 진땀 빼며 위치를 바꿨다.
크기로 위치를 결정했던 자신이 미웠다. 그의 키를 생각한다면, 자포자기나 자아학대에 버금가는 판단이었다.
푸른 불꽃이 트리탄의 심장을 꿰뚫고, 천장 전기배선에서 불꽃이 튀었다.
트리탄의 몸 전체에 푸른빛이 돌았다. 그의 몸은, 전극에 연결된 개구리 뒷다리처럼 움찔거렸지만, 의식적인 동작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역부족이야.”
준은 아주 가볍게 투덜댔다.
로켈은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준이 이미 죽은 적의 시체를 욕보이며 만족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밟아!”
준이 소리쳤다.
“네?”
“트리탄의 왼쪽 젖꼭지를 밟으라고!”
“네?”
로켈은 황당했다.
“배선 전력까지 쏟아부었는데, 일렉나이프의 용량이 받쳐주질 못해. 발로 밟아서 전력을 보충해!”
“아! 네!”
로켈은 얼떨결에 트리탄의 가슴을 밟았다.
“왜 그렇게 밟아! 두 번 죽일 셈이야!”
“그럼, 어떻게?”
로켈은 자신도 모르게 겁먹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브레이크처럼 말고! 엑셀처럼!”
“아! 네!”
“이제 오른쪽을 밟아!”
“아! 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심장은 왼쪽에 있는 왜 오른쪽을 밟으라는 거야! 내가 이 짓 하려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온 걸까?
이 모든 것은 준의 악취미에 불과하다.
진작에 화를 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친 걸까? 지금이라도 화를 내야겠지?
트리탄 위에 우뚝 선 로켈이 준을 노려보았다. 네가 똑똑하고 잘난 건 알지만, 이건 아니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지.
로켈은 한 번 더 생각했다.
무슨 말이든, 입 밖으로 내기 전에 검토해봐야 한다. ‘액면 그대로 말하면 너무 거칠겠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
“더 밟을까요?”
시큰둥한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발밑에 있는 트리탄의 입에서 ‘쿨럭!’ 하는 기침 소리가 났다.
유진은 상냥한 얼굴과 발랄한 동작으로 한 마디하고 사라졌다.
“빌어먹을 개새끼 리셋 종료.”
‘쿨럭! 콜록 ···.’
서너 번 반복 기침하던 트리탄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되살아났음을 깨달았다.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은 거야. 그래서 그분들이 날 되살린 거지.
그는 바이오 뉴트리 리큐드 실린더나 수준 높은 케어 배드에 누워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가슴 위에 서 있는 로켈을 봤을 때 꿈의 요정으로 생각했고, 악어에게 물어뜯긴 얼룩말처럼 반쯤 벗겨진 천장을 보면서 투시 능력이 생겼다고 믿었다.
로켈은 슬그머니 위에서 내려왔다.
죽음에서 깨어난 트리탄도 착각에서 깨어났다.
준이 날 살렸구나.
부하들에게 배신당한 나를.
“무엇을 원하느냐?”
트리탄은 휘청거리며 무겁게 말했다.
죽음을 경험한 그는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졌지만, 갚을 건 갚아야 했다.
준은 에어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짧게 말했다.
“꺼져.”
이상하게도 트리탄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암. 꺼져야지. 그래야지. 그전에 ···.
“다시 한 번 청한다! 실버 드래곤을 ···.”
준이 왼쪽 눈을 치켜떴다. 평소 볼 수 없는 표정변화! 더는 유치한 장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러나 트리탄도 자존심이 있었다. 이미 시작한 말을 끝맺어야 했다.
“ ···. 기억해 주면 감사요.”
호흡이 짧아서 마지막 말도 짧아졌다.
그는 준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스럽게 기억해줄 거 같았다.
트리탄은 뻥 뚫린 출입구로 몸을 옮겼다. 출입구에서 사라지기 전에 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날 살려준 이유가 뭐냐?”
“옮기기 귀찮아서.”
대화의 기술이라는 책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어쨌든 고맙다.”
트리탄은 조용히 사라졌다.
홀로 거리를 걷는 트리탄은 가슴에 수많은 발자국을 봤지만, 애써 못 본 척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