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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 준-19화 (19/141)

유진-4

“농익은 여드름 같은 놈아! 방사능 농축 곰팡이 놈아! 똥물에 튀겨 죽을 놈아! 털 빠진 고릴라 새끼야! 뇌가 강낭콩인 놈아! 편충 회충 조충 선모충 기생충에 걸린 놈아! 변기 물로 양치질이나 해라! 진흙 파이나 처먹고 염소 오줌으로 입가심해라! 싱크홀에 빠져 죽어라! 평생 흙이나 퍼먹어라! 광우병이나 걸려라!”

에바는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정신없이 욕하던 그녀가 멈췄다.

호흡이 가쁠 정도로 힘들지만,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 괴물을 상대로 내가 해냈어! 막히지 않고 끝까지 욕을 퍼부었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거대한 덩치 트리탄은 꼼짝하지 않았다. 문을 박살 내고, 찢었던 엄청난 박력도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그리스 동상처럼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비현실적인 정지 동작.

트리탄의 목 밑과 겨드랑이에 이끼가 자랐을 것 같았다.

“에바, 이것 좀 놔줘.”

준은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탭 했다.

에바가 뒤돌아보니, 그녀의 손이 준의 바지춤을 꽉 붙잡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몸의 중심이 흔들려서, 뭔가 잡을 게 필요했었는데 ···. 그게 하필 준의 바지춤이었다.

기억을 되새겨 보니, 그냥 잡고 있었던 게 아니라, 욕을 던지는 리듬에 맞춰 마구 흔들었던 거 같다.

혁대가 풀려있었고, 바지가 내려갔다. 준의 골반에 걸려서 결정적 포인트까지 이르진 않았다.

그녀 손은, 동아줄을 붙잡듯이, 바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당황한 그녀가 화를 내며 손을 뿌리쳤다. 이렇게 화를 내는 게 그녀에겐, 어쩌면 모든 여자에게, 최선이었다.

페미니즘에 따르면 모든 죄악은 남자의 것이다.

‘범죄 - 남자에게 양보하세요.’

페미니즘 논리로 보면 남자의 것을 남자에게 돌려준 것뿐이었다.

준은 혁대를 잠그며, 중얼거렸다.

“굉장해. 트리탄의 정신이 나갔어.”

그랬다.

트리탄은 잠시나마 자신이 코딱지가 된 느낌이었다. 정신을 되찾은 트리탄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준이 말했다.

“에바는 자리를 비켜줄 생각이 없는 거 같아.”

“그런 거 같군.” 트리탄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넌 운이 좋은 놈이야. 저런 여자를 비서로 두다니.”

“비서는 아니야. 굿데이에는 정식 직함이 없어. 물건이 배달되지 않았으면, 나 혼자 있었을 텐데.”

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DNA 컴퓨터를 쳐다보았다.

유진의 홀로그램도 보였다.

유진의 홀로그램은 비주얼 필터링으로 특정 위치에서만 보였다.

트리탄에겐 보이지 않았고, 에바와 준에게만 보였다.

유진은 트리탄의 등장을 시시한 연습문제처럼 대했다.

그녀 시각에서 보자면, 좁은 사무실은 창조주 준이 관리하는 굿데이의 영역이었다. 괴물군단이 쳐들어와도 쉽게 무찔러 버릴 것이다.

준은 유진 악마의 생각을 본능적으로 읽고 나서 피식 웃었다. 나의 이 미친 통찰력은 어디까지일까?

‘그러나 아직 완벽하지 않아. 나의 계획대로라면 오늘 사무실에 혼자 있어야 했어.’

준은 오늘부터 더 열심히 책을 읽으리라 다짐하며 트리탄에게 말했다.

“여기서 바로 시작하면 어색할 텐데 ···. 장소를 옮길까?”

준의 제안에 트리탄은 굵은 쇠사슬처럼 답했다.

“상관없다. 이 세상 사람 모두 보고 있어도, 관계없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 결심을 굳힌 모습이었다.

에바가 나서려 하자, 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쿵!

트리탄은 무릎 꿇었다.

그 진동으로 출입문 쪽 천정이 내려앉고, 그 안에 설치되었던 전기 배선이 드러났다.

“이것은 나의 패배다.”

무릎을 꿇었어도 트리탄은 거대했다.

쿵!

이번에는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바닥은 소행성 충돌 크레이터처럼 움푹 팼다.

준은 패인 자국을 보고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사무실을 옮겨야 한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둘째, 트리탄은 돌머리다.

“이것은 나의 철저한 항복이다.”

쿵!

트리탄은 다시 한 번 이마를 박았다. 바닥 마감재가 부서지고 시멘트 바닥이 보였다.

그는 간청했다.

“용서해다오. 실버 드래곤을 살려다오!”

예정된 수순이었다.

준을 제거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 후에는?

실버 드래곤의 파산은 정해진 현실이었다.

준을 수천수만 번도 더 죽일 수 있지만, 마진콜도 감당하지 못하는 실버 드래곤을 살리려면 준의 능력이 필요했다.

그 어느 때보다 준의 능력이 절실한 순간이었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 실버 드래곤을 살리고, 그 후에 준을 쳐야 한다.

파괴자, 용의 주인, 파괴 군주로 불리는 트리탄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 바닥에 납작 엎드려 머리까지 박은 남자의 모습은, 그자가 아무리 좋은 체격을 가졌어도, 가련해 보였다.

에바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분위기상 소릴 내면 안 되기에, 눈빛으로 준에게 말했다.

‘이해가 안 돼? 이럴 거면 문은 왜 부수고 들어온 거야?’

준은 차분한 눈빛으로 답했다.

‘확실하게 용서받으려는 거야.’

‘확실하게?’

에바는 조용히 준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준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머릿속으로 준의 설명이 물 흐르듯 들어왔다.

트리탄은 문을 부수는 괴력을 보여서 용서하지 않거나 부탁을 거절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경고한 것이었다.

트리탄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힘없는 자는 용서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을! 힘없는 자는 더욱 가혹하게 응징당할 뿐이다.

트리탄은 강화육체의 힘을 몸소 보여서, 준이 거절하면, 찢어진 문짝처럼 될 것임을 경고한 것이었다.

“실버 드래곤을 살려주면 모든 것을 너의 뜻에 따르겠다.”

그는 머리 박은 자세로 말했다. 그의 굵은 목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그 진동으로 출입구 쪽 천정이 조금 더 무너져 내렸다.

준은 사무실에서 그나마 멀쩡한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비스듬하게 자세 잡았다.

에바의 눈에 비친, 준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점령한 황제처럼 보였다.

‘저 새끼는 책 볼 때만 멋진 게 아니구나.’

그리고 오늘 알았는데 ···. 복근도 있고, 허리도 튼튼했다.

준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답은 하나였다.

도서관에서 읽었던 역사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준의 얼굴에 부처님과 같은 인자함이 스쳤다.

“용서할 게 없어. 널 미워하거나 증오한 적이 없으니깐. 그리고 ···. 실버 드래곤을 살려줄 이유도 없어.”

에바는 그녀의 귀를 의심했다. 실버 드래곤을 살리지 않겠다고?

트리탄은 이를 악물었다.

개자식!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 실버 드래곤을 죽이겠다고?

“원하는 게 뭐냐? 다 해주겠다.”

“원하는 거 없어. 집에 갈 때 어질러 놓은 거 치웠으면 하는데 ···. 그런 부탁은 무리겠지?”

“밖에 본부장들이 와 있다. 실버 드래곤에는 이천 명의 직원이 있다. 그들을 실직자로 만들 건가?”

“보기 흉하네.”

“뭐?”

트리탄은 고개를 들어 준을 올려보았다.

여유 있게 앉아 있는 모습이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남 탓.”

준은 트리탄의 눈빛을 모두 받아주며 짧게 답했다.

트리탄의 눈빛에는 어둠, 절망, 분노가 어지러이 섞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트리탄은 의자에 앉은 준을 내려보며 이를 갈았다.

“여기서 끝장을 내주지! 각오는 돼 있겠지?”

“분노하고, 패배하고, 항복하고 ···. 용서를 구하던 거 아니었어? 태도가 너무 빨리 변하는 거 아니야?”

“다시 청하겠다. 잘 생각해서 대답해라.”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포탄처럼 단단하고 큰 주먹이었다. 도드라진 혈관은 독사처럼 위협적이었다. “실버 드래곤을 살려다오.”

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눈물도 글썽거렸다. 그는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도 준이 거절하리라는 것을.

트리탄은 금융계의 공포였다.

일반 기업뿐 아니라 멀쩡한 국가들도 그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지금 햇병아리 같은 대학생에게 구걸 같은 자비를 구하다니!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드래곤의 수명은 다됐어. 더는 매달리지 마. 나 바빠. 도서관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준은 ‘지혜로운 대화법’이라는 책을 참고해서, 솔직하게 말했다.

준은 절대 실버 드래곤을 살려줄 수 없었다. 실버 드래곤이 살면, 트리탄은 서슴없이 준을 죽이고 굿데이를 파괴할 것이다.

트리탄의 몸이 시뻘게졌다.

“네놈을 찢어 죽이겠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혼자 왔어야지.”

“무슨! 죽어라!”

분노가 폭발한 트리탄은 준의 목을 움켜잡았다.

거대한 손이 준의 목에 닿는 찰나, 강한 충격이 트리탄을 무너트렸다.

트리탄의 등 뒤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일렉나이프를 쥐고 있었다. 일렉나이프는 강한 전자기를 발생시키는 도구였다. 정확한 주파수와 파장을 입력하고, 상대의 몸에 꽂으면, 전기쇼크로 심장이 멈춘다.

일렉나이프로 죽은 사람은 심장마비처럼 보일 뿐이었다.

트리탄은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시야가 흐렸다.

‘로켈이냐? 제법 시간을 잘 맞춰군. 실력이 많이 늘었어.’

그러나 일렉나이프를 든 남자는 로켈보다 키가 훨씬 컸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시큐리티 본부장 로베르.

‘네가 왜 날?’

트리탄은 로베르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로베르가 간단하게 쳐냈다.

“회장님 용쓰지 마시고 편안하게 가십시오. 본부장 만장일치로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회장님이 저분과 화해하셨다면, 계속해서 회장님을 따르겠지요. 그러나 저분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우리 손으로 회장님을 치우기로 했습니다. 실버 드래곤이 파산해도 우리는 살아야겠습니다. 실버 드래곤의 손실은 자본금의 삼천 배가 넘습니다. 회생 불가능하죠.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로베르는 공손하게 일렉나이프를 트리탄의 이마에 박았다.

파지직! - 트리탄의 정신이 사라졌다.

로베르는 손끝을 트리탄의 목덜미에 가져갔다.

펄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호흡도 없다.

그는 트리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확실하다. 어둠뿐이었다.

“실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이곳은 우리가 모두 치우겠습니다.”

그는 절제된 미소와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준의 판단을 존중했다.

준의 입장에서 실버 드래곤은 죽어 마땅했다. 실버 드래곤 최고의 전략팀과 설계팀 그리고 뛰어난 두뇌들이 굿데이의 발목을 잡으려 했고, 아주 망하게 하려 했다.

그런 실버 드래곤을 살려둔다?

운이 좋다면 실버 드래곤에게 먹힐 테고, 운이 나쁘다면 실버 드래곤보다 형편없는 조직에게 당할 뿐이다.

큰 구멍이 난 문밖에는 본부장들이 고개를 숙여 존경심과 복종을 표시했다.

‘이들을 받아줘야 할까? 보스를 살처분한 이들을?’

칭기즈칸의 스타일에 따르면, 그렇게 해야 한다.

칭기즈칸은 왕의 목을 직접 베서 성문에 걸면, 그 성에 있는 병사와 귀족들을 살려주고, 부하로 삼았다.

칭기즈칸의 관용 - 그가 직접 정복한 땅보다 내분으로 얻은 땅이 훨씬 컸다.

비딱한 준의 자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준은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놀라운 자제력이다.’

로베르와 본부장들은 준의 무심함에 감탄했다.

로베르와 본부장들의 얼굴을 뜯어본 준은 에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

비주얼 필터로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유진은 좁은 사무실에서 일어난 권력 구조 변화를 곰곰이 분석했다.

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승리자였다. 실버 드래곤을 살렸다면 그 승리를 놓쳤을 것이다. 트리탄과 작은 거래나 협상을 했다면, 승리는 상처받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준은 트리탄을 용서하지도 않았다.

“완벽해!”

유진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사무실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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