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1
킹스덤 대학 정문 기념탑이 빨간색 페인트로 휘갈겨졌다.
‘굿데이여! 영원 하라!’
‘굿데이가 진리다!’
술 취한 학생들의 짓이었다.
그들은 굿데이를 통해서 농축된 돈맛을 봤다. 처음 콜라를 마신 것처럼, 짜릿함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동했다.
고작 200달러를 투자해서, 79만 달러를 받았다. 세금을 뺀 금액이었다.
100달러를 투자한 사람은 79만 달러에서 96달러가 부족한 금액을 받았다.
1달러를 투자했다면, 79만 달러에서 198달러가 빠진 금액을 받는다.
100달러 투자액과 1달러 투자액은 100배 차이였지만, ‘스피드 수익배분’을 거치면 그 차이가 미세하게 좁아진다.
비율로 따지면, 1대 100이 1대 1.00011로 줄어든다. 1대 100의 불균형이 1대 1.00011로 치유된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평등한 분배.
스피드 수익배분 방식은 그 어떤 경제학자도 해결하지 못한 부의 불균형 문제를 단숨에 풀어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악마 유진의 작품이었다.
준이 한 일은 악마를 세상에 풀어 놓은 것뿐이었다.
킹스덤 대학을 중심으로 돈이 넘쳐났다.
파티가 끊이질 않았다.
나뭇가지와 창가 그리고 국기게양대에 빨간색 리본이 걸렸다.
‘사랑해요! 굿데이!’
유진 악마가 돈을 굴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빨간색은 굿데이의 컬러가 되었다.
준은 커피를 주문하고 카드를 냈다.
몸매가 아담하고 얼굴이 예쁘장한 점원은 카드를 긁지 않았다.
“내가 사는 거야.”
그녀는 벚꽃처럼 활짝 웃었다.
사람의 얼굴에서 피어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절로 따라 하게 되는 그런 미소였다. 준은 요즘 그런 꽃을 자주 봤다.
몸 바쳐 뭔가 해주겠다고 덤비는 글래머도 있었고, 남자의 기쁨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며, 나대는 여자도 있었다.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준을 향해 90도로 인사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준을 인생의 은인으로 여겼다. 어떤 노인은 무릎 꿇고 엎드렸다.
오늘, 감사의 물결은 공짜 커피로 시작되었다.
“고마워.”
준은 커피잔을 받아들고, 시크 하게 뒤돌아섰다.
점원의 눈에는 준의 말투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내가 더 고마워. 오늘이 마지막 알바 날이야. 내일부터는 ···.”
그녀는 가슴이 북받쳐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내일부터는 쉴 수 있다!
*
헬하운드 시즌이 끝났지만, 실버 드래곤은 굿데이를 감시했다.
굿데이의 유진은 그 어떤 파생상품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그 악마가 계속 날뛴다면 금융계의 지각 변동은 피할 수 없다.
실버 드래곤의 최고 분석가들은 유진을 전염병이나 암세포로 생각했지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시간이 지나자, 유진은 토끼들만 사는 세상에 나타난 독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 좋은 토끼가 모여서 덫과 그물을 만들었다. 덫은 덧없이 산산조각 났고, 그물은 쓰지도 못할 걸레가 됐다.
유진은 분석가들의 분석 범위를 넘어선 존재였다.
그녀는 전염병이나 독수리 따위가 아니라 소행성 충돌이었다.
금융계의 대륙 하나가 침몰하고도 끝나지 않을 재앙이었다.
굿데이의 내부 전신망을 감시하던 해커의 스크린이 깜깜해졌다. 스크린 속에 악마가 보였다.
“헉!”
그는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자세히 보니, 어두워진 스크린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 것이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스크린 전원과 연결 부위를 살폈다. 장비는 오직 해킹을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최고의 장비와 최고의 해킹 프로그램. 모든 것이 세계 최고였다.
실버 드래곤 해킹팀은 보안이 가장 두껍다는 중앙은행의 정보까지도 엿본다. 그러고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꼬리 잡힌 적도 없다.
실버 드래곤의 우월한 능력 - 알아도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구조였다.
자본과 기술 그리고 자부심으로 구축한 해킹 시스템의 코드 네임은 ‘드래곤 아이’였다.
드래곤 아이는 전산시스템의 태생적 결함을 바탕으로 작동했다.
이진법과 전자 신호로 얽히고설킨 곳에는 이진법 틈새가 존재한다.
극미세한 전자의 튕김 현상.
그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 바로 드래곤 아이였다.
해킹 역사상 가장 완벽한 솔루션. 그 어떤 암호화 블록도, 방화벽도, 프로토콜도, 드래곤 아이를 피할 수 없다.
해커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전지전능한 드래곤 아이가 방금 ···. 차단됐다. 해킹의 성배로 불리는 드래곤의 수정 구슬이 깨졌다.
“말도 안 돼!”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단순히 차단된 정도가 아니었다. 눈알을 뽑힌 것처럼, 드래곤 아이 전체가 암흑이었다.
현존하는 기술 중에 드래곤 아이를 막는 것은 없다. 제아무리 복잡한 암호화 블록도 이진법 틈새를 메우지 못한다. 그런데 드래곤 아이를 차단하고 역으로 작동불능 상태로 만들다니!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핫라인 채널을 열고 시큐리티 본부장에게 보고했다.
드래곤 아이를 공격하려면 내부 배신자가 있어야 한다. 배신자가 파트장이나 팀장 부대장이라면, 핫라인 채널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모든 계통을 건너뛰고 곧장 시큐리티 데이터 본부장에 연결했다.
“로베르 본부장님. 실제 상황입니다···. 드래곤의 눈이 멀었습니다.”
“반복해보게.”
“드래곤 아이가 차단됐고, 관련 시스템이 다운되었습니다.”
“통제권은?”
“우리 쪽은 끊겼고, 외부 라인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매뉴얼대로 모든 증거를 소각하고 빠져나오게.”
해커는 장비 틈새에 분무형 발화제를 주입하고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
외떨어진 창고형 건물은 단숨에 화마에 휩싸였다. 열화우라늄을 녹이는 강력한 불길이었다.
먼 곳에서 소방차 사이렌이 들렸다. 소방차가 아무리 많은 물을 뿌리고, 소방액을 쏴도, 화룡은 모든 증거를 모두 먹어치운 후에야 사라질 것이다.
그는 매뉴얼대로 걸어서 이동했다.
공용 주차장의 보안 카메라 사각지대에는 낡은 볼보 승용차가 있었다.
매뉴얼대로 기둥 밑에 열쇠가 있었다. 승용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과거의 내연 자동차와 달리, 전기 자동차는 곧바로 시동이 걸렸다.
터치스크린에 캐릭터가 떠오르고, 네비 음성이 들렸다.
‘목적지를 선택해주십시오.’
“13번.”
그는 매뉴얼대로 번호를 말했다. 자동으로 안전띠가 채워졌다.
뒷좌석 바닥에 누워있던 징벌자는 앞좌석 등판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커의 심장을 꿰뚫었다.
“헉!”
해커는 안전띠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제야 자신도 드래곤 아이의 증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죽음과 함께 모든 증거가 소각되었다.
*
드래곤 빌딩 93층에서 비상회의가 열렸다.
본부장급 중에서도 핵심 멤버만이 모였다. 그들은 트리탄이 총애하는 능력자였다. 특급 설계자 찰스도 참석했다.
찰스의 공식 직함은 리스크 관리 본부장이었다.
그는 담당한 모든 설계와 작전을 성공한 전설적인 존재였고, 여간해서는 직접 만나기 어려운 거물이었다.
최소한 굿데이를 상대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처음 굿데이 파괴공작을 시작했을 때에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했는데 ···. 그것이 최악의 오점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게 모두가 모인 것이 얼마 만이지?”
트리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18년 전, 블러드 메리 이후로 처음입니다.”
전략관리 본부장, 키노시타가 말했다. 예순을 바라보는 그의 머리는 은빛이었다.
“영국인들의 피는 정말 달콤했지.”
트리탄은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며 미소 지었다. ‘블러드 메리 작전’으로 영국 중앙은행의 파운드화 가치가 흔들렸다. 실버 드래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영국중앙은행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실버 드래곤의 공격에 맞서, 발권력을 동원해서 파운드화를 찍어냈지만, 그 결과는 50%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야말로 실버 드래곤이 원했던 것이었다. 덕분에 평소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던, 건실한 영국기업과 공공기관의 살이 말랑말랑해졌고, 강철 같던 그들의 뼈도 막대 사탕처럼 쉽게 씹혔다.
미소 끝자락에 희미한 한숨이 묻어났다.
파괴자, 트리탄이 한숨을 내쉬다니! 본부장들 사이에서는 ‘파괴의 군주’로 통하는 트리탄이었다.
본부장들은 일제히 침을 삼켰다. 방금 내가 본 것이 맞나? 파괴의 군주가 한숨을? 누가 파괴의 군주에게서 한숨을 뽑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었다.
굿데이. 악마 유진. 준 ···. 이들은 저주의 삼위일체였다.
실버 드래곤은 항상 수익을 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시작된, ‘차이나 쇼크’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했던 ‘런던 거지 사태’ 그리고 브라질 모라토리엄으로 시작된 ‘아마존 눈물’과 정크본드로 폭탄 놀이를 하던 월스트리트에서 기어이 폭탄이 터졌던, ‘고난의 세월’에서도 ···. 실버 드래곤은 위대하고도 거룩한 수익을 냈다.
“현재 손실 비율은 마이너스 45%입니다. 레버리지를 계산하면, 순수 자본금의 일곱 배 손실액이 발생했습니다.”
재무관리 본부장이 현재 상황을 정리하자, 회의실에 있는 모든 본부장이 일제히 움찔거렸다.
뭐라고? 손실액이 자본금의 일곱 배라고? 실버 드래곤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손실액을 1/7만 메울 수 있다. 이 정도 손실이라면, 자본잠식이라는 단어도 은혜롭게 느껴진다. 이건 뭐 파산도 아니고 ···. 그냥 파멸이다.
국제 시너지 본부장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보였다.
“웃어?”
트리탄이 눈을 부릅떴다.
“죄송합니다.”
국제 시너지 본부장은 자신의 손으로 있는 힘껏 자신의 뺨을 때렸다.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흘러나왔다.
“48시간 동안 마진콜을 열두 번 당했습니다. 누군가 우리 포지션을 허물어서, 손절 라인까지 몰아붙였습니다. 손절 횟수는 삼천 번이 넘습니다.”
전략 총괄 본부장이 말했다.
“누군가라니?”
레버리지 집행 본부장의 시선은 시큐리티 데이터 본부장에게 향했다.
실버 드래곤이 ‘누군가’에게 호되게 공격당하고 있다. 그 개자식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 책임자가 바로 시큐리티 데이터 본부장, 로베르였다.
평소 로베르의 모습은 사무라이 검처럼 예리했지만, 오늘만큼은 대충 만든 허수아비처럼 보였다.
책상 밑을 응시하던 로베르의 눈동자가 떠오르는 태양처럼 천천히 움직여서, 전략 총괄 본부장을 노려보았다.
헉!
눈빛만 마주쳤을 뿐인데, 전략 총괄 본부장의 호흡이 엉켰다.
아차! 로베르가 지능형 연쇄 살인범이라는 소문이 있지! 전략 총괄 본부장은 시선을 피했다.
몇 년 전 의문의 사고로 숨진 잭 라이언이 생각났다. 잭 라이언의 자리를 물려받은 자가 바로 로베르였다.
“징벌자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깊은 동굴 속처럼 로베르의 음성이 울렸다. 인간의 정신을 빼앗는 목소리였다.
모든 본부장의 시선이 로베르를 따라 트리탄에게 향했다.
트리탄은 고민에 빠졌다. 준에게 징벌자를 보내야 할까? 로켈이 신경 쓰였다.
로켈은 분명 준을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전쟁을 시작한 것은 준이었다.
실버 드래곤은 눈이 멀었고, 심장마저 식었다. 한 번만 더 마진콜을 먹으면, 공중 분해될 위기에 처한다. 트리탄은 생각했다. ‘이건 정당방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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