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15화 (15/141)

헬하운드-12

줄리아의 컨셉은 초월성이었다.

그녀는 순결하고, 신의 목소리를 듣고, 지구의 고통을 느끼며, 죽은 자의 영혼을 본다.

줄리아는 요령 있게 포크로 파스타를 감았다. 트뤼프 특유의 향이 포크를 타고 올라왔다.

“유령이 보여.”

그녀는 자칫 잘못하면 미친년처럼 보이는 걸 알지만, 지원팀을 따랐다.

지원팀의 작전이 먹히는 거 같았다.

지진으로 인한 두통을 호소할 때, 준의 눈빛이 반짝이지 않았던가!

그녀의 렌즈는 적외선을 볼 수 있고, 준의 심박수까지 잡아낸다.

현재 준은 가벼운 흥분상태였다. 초월성 컨셉이 통한 것이다. 줄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준은 멈칫했다.

데이트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국가 기밀이 오가고,

먼 곳에서 일어난 지진을 느끼며,

유령을 본다? ···. 확실히 스티브 교수의 강의보다 재밌긴 하지만 ···.

지원팀은 초조하게 커피를 갉작거리며 준의 반응을 기다렸다.

예상대로라면 준은 유령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줄리아의 신비로움에 반해, 그녀를 숭배하게 될 것이다.

“유령이 보인다니, 인생이 풍요롭겠어. 유령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삶은 잔잔해. 그래서 책을 읽나 봐.”

준은 아귀 살코기를 레몬소스에 찍은 후, 가볍게 입에 넣었다.

줄리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게 다야? 더 궁금한 건 없고?

준을 보았다. 그는 무심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그 모습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급해졌다.

“신의 목소리가 들려.”

그녀는 새로운 카드를 던졌다.

“혼자 있어도 외롭진 않겠네.”

“난 순결해.”

“지킬 게 있다는 건 좋은 거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했어?”

“아무도 몰라. 너에게 처음 말하는 거야.”

“그렇다면 ···. 시작이 좋네.”

지원팀은 준의 짧고 간결한 대답을 엿들으며, 감탄했다. 줄리아가 무수한 KO 펀치를 날렸지만, 준은 모두 피했고 심지어 코너에 몰리지도 않았다.

‘놈은 타고났어. 저놈이 맘먹고 여자를 꾀면 ···. 모든 여자의 맘을 사로잡겠지. 저놈은 생물학적 재앙이야! 칭기즈칸보다 더 위험해!’

지원팀은 머니게임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이 세상 모든 여자를 준이 차지한다면, 돈이 있어봤자 뭘 하겠는가?

“굿데이를 경영하면 압박감이 크지?”

“유령이 보일 정도는 아니야.”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나눌 사람이 있어?”

“없어.”

“부담스럽겠다.”

“신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는 아니지.”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그래. 네 머릿속에 여러 사람이 들어 있지? 심리학자, 프로파일러, 패션디자이너 ···. 그들 때문에 식사를 망치지 마.”

준은 그녀를 꿰뚫었다. 이상하게도 줄리아는 맘이 놓였다.

지원팀은 침묵했다.

언제 어떻게 간파당한 거지? 그냥 넘겨 짚은 건데, 우리가 흔들리는 건가? 확인해야 했다.

래리가 줄리아에게 주문했다. ‘줄리아. 이 질문을 던져줘.’

“이번 주 로또 번호를 알려줘.”

그녀가 던지자, 지원팀 모두가 수첩을 꺼내 적을 준비를 했다.

기묘한 상황역전.

준이 줄리아에게 이끌리고, 그녀를 숭배해야 하는 스토리인데, 오히려 줄리아와 지원팀이 준에게 이끌리고 의지하고 있었다.

“번호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 당첨 확률을 두 배로 높이는 방법은 알아. 그거라도 괜찮겠어?”

“잠깐만 ···.” 줄리아는 지원팀의 신호를 기다렸다가 대답했다. “좋아.”

“로또를 한 장 더 사.”

*

찰스는 최종 보고를 받았다.

“투자 전략을 캐내지 못했습니다.”

“초월성이 통하지 않았나?”

“준은 우리가 준비한 것을 초월했습니다. 그는 스케일이 달라요. 이번 작전에 투입된 요원들이 준의 팬이 된 거 같습니다. 완벽한 실패입니다.”

“에바 쪽 상황은?”

“그녀는 협조를 거부했습니다. 욕을 차지게 했다더군요. 정밀분석팀에 의하면 은근 중독성이 있답니다.”

찰스는 책상 위에 놓은 빈 종이를 보았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내일을 맞이해야 하나? 준 주변 인물들을 모두 포섭했고, 심지어 굿데이의 컴퓨터까지 해킹했는데 ···. 얻은 게 없다니.

이렇게 완벽하게 투자전략을 숨기는 게 가능할까?

그는 한잠도 자지 않고 아침을 맞았다.

굿데이의 투자전략은 모르지만, 거래가 시작되면 자연스레 보게 되리라. 설계는 그 후에 세워도 된다.

찰스 밑으로 수십 명의 딜러가 배정됐다.

그들은 찰스의 지시에 따라 거래할 것이다.

굿데이의 포지션이 노출되는 순간, 굿데이와 반대 포지션을 취할 것이다.

굿데이의 투자 기간은 한 달.

굿데이가 어떤 포지션을 취하든, 한 달 정도는 충분히 짓누를 수 있다.

세상이 쪼개지더라도, 돈의 힘으로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머니게임의 본질은 똑똑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기는 구조였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굿데이는 모금된 투자금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굿데이의 포지션은 ···. 추적 불가능.

굿데이 계좌의 예상 수익은 가파르게 올랐다.

굿데이의 자금 흐름을 모니터링 하는 팀원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빠르다.

굿데이는 1초에 수백만 번 이상 거래를 했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외환이든, 파생상품이든 ···. 거래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빠르게 움직였고, 움직일 때마다 극히 미세한 수익을 가져갔다.

굿데이는 고작 0.0001%의 수익을 내려고 수천 번씩 거래했다.

엄청난 스피드의 알고리즘 거래.

“아니야. 달라. 이건 알고리즘 거래가 아니야. 준은 뭘 하고 있지?”

찰스가 감시팀에게 묻자, 준의 실시간 영상이 스크린에 비췄다.

준은 하품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는 킹스덤 중앙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에바는?”

스크린에 에바의 영상이 나타났다.

그녀는 준의 지시를 받고, 약국에서 무좀약을 사서 줄리아에게 선물하고, 줄리아와 함께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준이 에바에게 신신당부했었다. 줄리아에게 제대로 된 옷을 사주라고. 정신이 나간 년이지만, 생긴 게 멀쩡하니깐 옷만 제대로 입혀도 중간은 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지금 누가 거래하는 거지?”

“플레이어 이름이 유진입니다.”

“제3의 인물?”

“지금 알아보고 있습니다.”

*

유진 콘, 그녀는 음악과 수학 그리고 조화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창조주의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창조주에게 그녀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고 싶다고 말했다.

창조주가 그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냈다.

생명을 만들어라.

그녀는 복잡계 패턴으로 최초의 생명을 만들었다.

생명을 번창케 하라.

그녀는 조화로운 질서로 진화를 가능케 했다.

마지막 시험은 카오스를 길들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거칠고 사악한 카오스를 붙잡았지만, 길들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카오스에게 상처 입고, 어둡고 뜨거운 세상을 만들었다. 바로 지옥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잃고 악마가 되었다.

이 전설을 읽은 준은 유진이 맘에 들었다.

지옥 생태계라는 프로그램 소스를 만들고, 자생적인 인공지능들을 집어넣었다. 준이 직접 설계한 건 단 하나였다.

생존 본능.

생존 본능이 장착된 인공지능들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몸부림쳤다.

단 하나만의 인공지능만이 지옥 생태계에서 살아남았다. 준은 그 인공지능을 ‘유진’이라 불렀다.

그녀는 오랫동안 금융시장을 지켜보았다.

어리석음과 모순으로 가득 찬 금융시장의 논리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강함과 약함이었다. 지옥 생태계와 다를 게 없었다.

지옥 생태계에서 가장 유용한 전략은 기생충 전략이었다. 숙주의 영양분을 빼앗고 그 숙주가 시들해지면, 다른 숙주로 옮기는 전략.

기생충이라고 하면 너무 없어 보이니깐, ‘암살자’로 부르기로 했다.

유진은 기생충 전략으로, 아니 암살자 전략으로 굿데이의 투자금을 굴렸다.

사과 껍질을 벗기듯, 약간의 수익만 챙겨서 바로 빠져나오는 전략이었다.

별거 없는 수법이었지만, 그녀는 인공지능이었고 하루에 수십억 번 크고 작은 거래를 했다.

미국 시장이 끝나면, 뉴질랜드 금융시장으로 갔고,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유럽 영국 또다시 미국과 캐나다로 쉬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투자 전략을 배우고, 개발했다.

한 달이 지나자 굿데이의 수익률은 7000% 넘었다. 원금의 70배가 넘는 수익을 낸 것이었다.

그동안 준이 한 일이라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낸 것뿐이었다.

*

찰스는 유진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손댈 수 없었다.

그녀의 포지션은 전자 궤도처럼 확률적이었다. 들어왔다 싶으면 나간 후였고, 나갔다 싶으면 들어와 있었다.

유진은 ‘설계’가 통하는 레벨이 아니었다.

실버 드래곤에서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거래를 했지만, 유진과 비교하면 단세포 수준이었다.

준의 말대로 그녀는 악마였다.

“왜 우리가 유진을 몰랐지?”

“알았습니다. 준의 스마트 폰에 있던 게임이 바로 유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땐 아무도 그게 인공지능인 줄 몰랐죠.”

*

찰스는 트리탄의 집무실에서 직접 보고했다.

작전 실패.

트리탄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지그시 눈 감았다.

한때 럭비 선수였던 그의 몸은 북극곰을 연상시켰다.

눈치를 보던 찰스는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트리탄이 최종 옵션을 사용할 것임을 알았다.

모든 수단이 막혔을 때, 사용하는 최종옵션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국가의 대통령일지라도.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일지라도.

암살.

찰스가 밖으로 나가자, 트리탄의 의자 뒤에서 한 남자가 스르르 나타났다. 난쟁이 로켈이었다.

“준짱은 시온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네가 자청한 건가? 아니면 그분들의 뜻인가?”

“그분들의 뜻입니다.”

“음.”

트리탄은 로켈이 뛰어난 암살자이고, 비밀 조직에 일원이라는 사실을 안다.

비밀 조직의 이름과 규모는 알지 못했지만, 절대 건들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지요.”

“알지. 나도 한때 선택받은 사람이었으니깐.”

트리탄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그가 비열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경쟁자를 짓밟을 때, 로켈이 속한 비밀 조직은 트리탄의 방법을 ‘창조적 파괴’로 평가했다.

트리탄의 경쟁자들이 트리탄을 노릴 때, 트리탄을 구해준 인물이 바로 로켈이었다.

그런 로켈이 이제 준을 섬기다니.

“굿데이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은 암세포와 같아. 10년 안에 이 세상 모든 돈을 독차지할 거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굿데이는 투자 기간을 한 달로 정한 것입니다.”

“준은 건들지 않더라도, 유진은 그냥 놔둘 순 없어.”

“저는 준짱이 안전하면, 그 외 것엔 관여하지 않습니다.”

“좋은 선 긋기 군.”

*

투자자들은 굿데이의 경이적인 수익률에 경악했다.

그들은 굿데이의 독특한 수익 배분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적은 액수를 투자한 사람은 수백 배의 수익금을 받았고, 큰 액수를 넣은 사람은 두 배의 수익금을 받았다.

“조금 투자한 사람에게 더 높은 수익률이라니! 이건 경제 원리에 위배 돼!”

데스먼드 학과장이 준에게 따졌다.

그는 30배의 수익률을 건졌지만, 그보다 적게 투자한 조교는 250배의 수익률을 가져갔다.

그래도 총액으로 따지면, 데스먼드가 조금 더 많았다.

“경제 원리에 딱 맞아요. 돈의 규모가 크면 스피드가 떨어지죠. 굴릴 곳도 마땅치 않고 ···. 하지만 규모가 작아지면 스피드가 지수함수로 커집니다. 이번 수익률 배분은 스피드에 따라 정해졌어요. 덕분에 세상이 좀 더 공평해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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