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12화 (12/141)

헬하운드-9

일주일 후에도 더위는 계속되었다.

2차 쇼크는 ‘사하라 바이러스’로 불리는 신종 독감의 유행이었다.

교회는 장례식 스케줄로 꽉 찼고, 합동 장례식마저 등장했다.

굿데이는 인명 피해를 논하지 않았지만, 폭염 발생은 정확하게 예측했고 ···. 보기 좋게 무시당했다.

겨울이 따듯해진 건 사실이지만, 뜬금없이 40도가 넘는 폭염이라니?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영국 기상청은 정밀 분석을 거듭했고, 겨울철 40도가 넘는 폭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이용료를 내고, 푸리에 구조방정식 모형도 사용했다.

푸리에 구조방정식은 하나의 결과를 출력하지 않는다. 입력 자료에 따라 수천수만 개의 결과를 뽑아낸다.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인간의 몫이었다.

소방차가 동원되어 뜨거운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고, 공공기관은 난방장치를 뜯어내고, 냉방장치를 돌렸다.

헬스케어 관련 주식이 뛰어오르고, 에어컨 제조업체와 전력업체의 주가도 뛰었다.

항공업체는 비행기 값을 내리면서 광고했다. ‘불타는 런던을 탈출하라!’

한 달 후, 굿데이는 상하이의 겨울 폭염을 예측했다.

중국정부는 영국과 다르게 행동했다.

길거리에 그늘막을 설치하고 대형 송풍기를 준비하고, 빈곤층 가정에 얼음과 차가운 물을 공급할 준비를 했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빌딩을 대피소로 정하고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지낼 수 있도록 했다.

중국 기상청은 굿데이에 감사패를 증정했다.

위험을 미리 알려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영국 정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영국 의회는 ‘폭염은 없다!’라고 단언한 영국 기상청장과 고위 공무원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었다.

이른바 뜨거운 심판이었다.

수많은 네티즌이 굿데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일종의 성지순례 코스였다.

예측보고서는 오픈 페이지였고, 이제 정규 뉴스로 보도된다. 굿데이 예측보고서의 적중률은 100%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조지프 펙스턴은 영국 정부에서 파견 나온 조사원이었다. 체크무늬 양복과 홈즈 모자를 썼고,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는 영국첩보부의 분석팀 소속이었고, 굿데이가 공개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고 확신했다.

에바는 미소를 잃지 않고, 능숙하게 응대했다. 적중률 100%의 정체를 밝히려는 사람은 조지프가 처음이 아니었다.

“푸리에 구조 방정식을 이해하시나요? 증명하실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저는 수학자가 아니어서 잘 모릅니다.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푸리에 구조를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거나, 20년 후에나 가능할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의 공식 입장은 ‘선택은 예술’이라는 겁니다. 푸리에 모형의 결과를 확인하셨다면 아시겠지만, 선택 방법이나 선택 기준은 없습니다.”

“선택이라 ···. 랜덤하게 고르신 건가요?”

“무작위로 골랐다면, 선택이 아니라 추출이라고 말했겠죠.”

“그러니깐, 아무 기준도 없어 골랐는데, 그게 하필 미래에 일어난 사건과 일치했다는 건가요?”

“네. 그래서 예술의 영역이라고 한 겁니다. 느낄 순 있지만, 설명할 수 없으니깐요.

“예술이라 ···. 이미 아시겠지만, 영국 기상청은 굿데이의 예측을 부정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요. 우리는 예측할 뿐, 판단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어느 조직도 비난하지 않아요. 미래에 관한 일이잖아요. 언젠가 우리도 틀릴 수 있겠죠.”

에바는 단정하게 오전 할인 메뉴를 설명하듯, 말했다. ‘바쁘다. 안 사려면 빨리 가라!’

조지프는 그녀를 꿰뚫어봤다.

금융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옷차림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반항적인 패션감각이 엿보였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굿데이가 정규직 직원이 한 명뿐이고, 사무실도 킹스덤 벤처 단지의 작은 방을 사용한다는 게 놀라웠다.

수천 명이 근무하는 영국 기상청에서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단 두 명이 이렇게 좁은 사무실에서 해내다니, 손뼉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의 임무는 감탄하는 게 아니라 굿데이의 예측 정확성의 비결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푸리에 모형이 출력한 분석 결과 중에서 정확한 결과를 선택하는 요령 같은 게 있을까요? 전문가들이 필터링이라고 하던데 ···. 특별한 필터링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에바는 조금 짜증이 났다. ‘내가 말했지. 선택 기준 따윈 없다고. 그냥 감이라고! 이 새끼야.’

“그래도 ···. 뭔가 있을 거 아닙니까?”

“탁 트인 느낌이요.”

“네?”

“데이터를 보다 보면, 탁 트인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감각을 익히는 게 중요하죠.”

“느낌 ···. 감각?”

조지프는 절로 웃음이 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생각 같아서는 세무조사를 빌미로 굿데이의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싶었다.

그러나 굿데이는 영국 기업이 아니었다.

그는 에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더 캐내야 했다.

그의 의도를 눈치챈 에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저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

‘투자금 모집’ - 이 짧은 문구로 킹스덤 대학은 몸살을 앓았다. 두 사람만 모이면 투자금 이야기를 했다.

“못해도 두 배는 벌 수 있지 않겠어?”

“투자할 돈이 있어야 하지.”

“그게 무슨 소리야? 굿데이라고 굿데이! 빚을 내서라도 집어넣으면, 팝콘처럼 몇 배로 불어날 거라고! 투자 기간도 한 달이야! 한 달! 한 달 후에 투자금과 수익금을 돌려받는 조건이라고!”

인근 지역 은행 대출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택 담보, 자동차 담보, 신용 담보 ···. 대부분 굿데이에 투자하려는 목적이었다.

대학생, 전업 투자자, 직장인, 콜걸, 범죄조직까지 달려들었다.

파루시아를 예측하고, 캘리포니아 가뭄과 헬 런던까지 맞췄다.

파루시아의 수익률은 스물두 배였다.

그 후 굿데이의 창업자는 도서관에서 수련했다. 보통 사람에겐 이번 투자 기회를 놓치는 것이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 자리 잡은 준은 호숫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잔잔한 물결에 햇빛이 비치면 호수 표면이 눈부시도록 반짝이곤 한다. 지금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그랬다.

그들은 근접할 수 없는 준의 아우라 때문에 감히 말을 붙이지 못했지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이번에 돈을 투자하면, 얼마나 벌 수 있니?’

표정, 몸짓, 눈빛, 심지어 호흡에서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데스먼드 학과장은 열람실 입구에서 멈췄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기묘한 풍경이었다.

준은 고요한 자세로 책을 읽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뚫어지도록 준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눈빛이 레이저라면, 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데스먼드는 거울을 보고 나서야, 준을 찾는 그의 눈빛도 다른 사람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절실하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는 학과장의 자격으로 준에게 다가갔다.

누가 뭐래도 준은 킹스덤 대학의 학생이었고, 데스먼드는 준을 지도하는 교수이자, 학과장이었다.

“준!”

그가 말했지만, 준은 책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준 옆에 서 있는 것뿐이었는데, 엄청난 집중력이 느껴졌다. 지식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있다면, 이러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데스먼드로 옮겨갔다.

그는 휘청거렸다. 보통 부담스러운 시선이 아니었다. 혈관이 좁아지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숨 막힐 거 같았다.

“준!”

이번에는 준의 어깨를 흔들며 불렀다.

그제야 준이 그를 보았다. 아직도 책 속에 있는 듯한 몽롱한 눈빛이었다.

“잠깐 시간 좀 내주게.”

준은 읽던 책을 힐끔 보곤, 책장을 덮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

데스먼드가 말하자, 준은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거 같네요.” 라고 대답했다.

“그분이 기다리고 있어. 누군지 알면 놀라 자빠질 거야.”

데스먼드는 밖을 가리켰다.

“누군지 알아요. 킹스덤 대학 총장이죠?”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바위처럼 고요하고 담담했다.

데스먼드 학과장은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알았지? 혹시 브라이언 총장이 여기 있나? 그는 헛되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

브라이언 총장은 집무실에서 준을 맞았다. 벽에는 그를 닮은 초상화가 있었는데, 단추가 크고 어깨가 강조된 중세시대 복장이었다.

초상화 속의 주인공은 브라이언의 조상으로 킹스덤 대학 설립자, 토머스였다.

“저분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나?”

그는 과장된 미소로 준에게 물었다. 토머스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했고, 대화의 물꼬를 트기에는 적당한 주제였다.

“사기꾼이자 도박꾼이었고, 알코올 중독자였죠. 서커스를 따라다니면서 배운 기술로 인디언들을 속이고 땅을 빼앗았죠.”

“맞아! 굉장한 쇼맨십을 가진 분이지. 그분이 킹스덤 대학을 세운 이유를 아나?”

“종교 보조금이죠.”

“역시 책을 많이 읽어서 잘 아는군. 그 당시에는 인디언 한 명을 개종하면 정부에서 돈을 줬어. 킹스덤 대학은 인디언이 최초로 의사 면허증을 딴 곳이기도 하지. 인디언 최초의 수의사, 건축가, 변호사, 세무사, 하원의원까지. 내 몸에도 인디언의 피가 흐르지. 킹스덤은 낡아빠진 오두막에서 시작됐어. 토머스는 영국에 아내가 있었지만, 이곳에서 인디언 여자를 아내로 삼았지. 그 당시에는 고아들이 흔했어. 인디언, 백인 흑인 황인종까지, 길거리의 개와 고양이를 합친 것보다 고아들이 더 많았지. 최초의 킹스덤은 대학교보다는 고아원에 더 가까웠어. 토마스는 열 명을 죽였는데, 네 명은 카드 게임을 할 때 속임수를 썼고, 세 명은 돈을 훔쳤고, 두 명은 거짓말을 했지. 나머지 한 명이 죽은 이유를 아나?”

“실수였죠.”

“그런 시대였지. 실수로 사람을 죽여도 그냥 넘어가는 시대. 자네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게. 기분이 어떤가?”

“제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나요?”

“그렇다고 치지. 어처구니없는 실수 앞에서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원하시는 대답은 다른 사람이 저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거겠죠?”

“정확하군. 그 대답을 원했네. 더 좋은 대답이 있나?”

“문제의 원인을 제거해야죠.”

“불가능해. 결함 없는 사람은 없어.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야.”

“그 뜻이 아닙니다. 죽음을 아예 없애겠어요.”

섬뜩할 정도로 단조롭게 담담한 말투였다.

준의 대답은 모든 신성모독을 합친 것보다 도발적이었다. 그것은 ‘거역’이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인간이 손대서는 안 되는 금단의 것이었다.

“그만하게! 준!”

데스먼드 학과장이 헛기침하며 상황을 끝내려 했다.

“데스먼드 학과장님, 준은 아주 중요한 질문에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학과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브라이언 총장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대화를 살렸다. 어쩌면 뜻하지 않은 지혜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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