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9화 (9/141)

헬하운드-6

153의 사나이, 로켈은 수많은 사람을 상대했다.

천재,

예언가,

재능이 넘치는 자,

타고난 용사,

지략가,

그리고 초능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운이 좋은 자도 있었다.

모두 평범함을 뛰어넘은 ‘선택받은 인간’이었다.

로켈도 선택받은 인간이었다.

그는 위험을 감지하고, 완벽하게 대처하고, 필요하면 상대를 제거한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한다. 예외는 없었다. 준을 만나기 전까지.

준은 덩치가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팡!’

격렬한 파열음이 주방을 흔들었다.

벽과 유리창이 가늘게 떨렸다.

고성능 화약의 안티몬 냄새.

준은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고,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았다. 이게 다야? 하는 투의 김빠진 모습이었다.

저능아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으로 로켈과 덩치를 쳐다볼 뿐이었다.

방아쇠를 당긴 덩치, 토그는 괜스레 무안해졌다.

그는 로켈을 쳐다보았다.

‘이 녀석이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좀 때려줄까요?’

로켈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결정하기 전에, 그럴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야지.

“죽음이 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한 거냐? 아니면 ···. 공포탄인 걸 알았던 거냐?”

로켈이 조심스러웠다.

지금까지 만났던 선택받은 인간 중에서 이렇게 당당했던 씨앗이 있었던가?

준은 기타 치듯 옷을 튕겨서, 묻어 있는 미세한 탄화 가루를 털어냈다.

“방금 뭐라고 했어? 귀가 먹먹해서 안 들렸어.”

“겁나지 않느냐?”

“겁날 상황이 아니잖아.”

“아니야! 확실하게 겁낼 상황이야! 집안 보안장치는 먹통이고, 낯선 남자 둘이 숨어 있고, 냉장고에는 빌어먹을 염소 머리통이 들어 있잖아! 방금 네놈의 심장을 겨누고 총을 쐈어! 지금 이 순간 무서워서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로켈은 양손을 하늘 높이 쳐든 채 소리를 높였다.

“미안해.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준은 왼쪽 귀를 아래로 향하고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총소리가 날 때, 왼쪽 귓속에 있는 귓밥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새끼손가락을 살짝 넣었더니, 큼직 막한 귓밥이 묻어났다. 그동안 봐왔던 귓밥이 일본이라면, 이번 귓밥은 중국이었다.

냄새도 평소 귓밥과 다른 거 같았다. 귓밥이란 게, 스케일이 커지면 향도 달라지는 건가?

“다음 단계? 좋아! 네가 생각하는 다음 단계가 뭐지?”

로켈은 성난 황소가 발을 구르듯이 말했다. 준의 태연함이 그의 성질을 돋웠다.

“지금까지 했던 짓은 이 세상이 위험하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였다고 말하고, 사실은 도와주러 왔다고 밝히는 거잖아.”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다.

“어떻게 ···.?”

로켈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준을 노려보았다.

키다리 덩치 토크는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로켈의 지시만 기다렸다.

그래도 재밌었다.

오늘처럼 로켈이 흥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 세상에 로켈을 저토록 흥분하게 하는 인간이 있다니.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놈이! 기념 삼아 한 방 더 쏴줄까?

토크는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팡!’

이번에는 공포탄이 아니었다. 준의 시야가 흐려졌다.

*

디아나는 경찰 유니폼을 입고, 돌담길 모퉁이에 있었다.

넓은 시야가 확보되는 곳이었다.

그녀는 몸을 숨기고 준을 미행하던 남자의 움직임을 살폈다.

남자는 준이 집에 들어가자, 길 건너편 그늘진 곳으로 이동했다. 실버 드래곤의 사냥개 2호였다.

디아나는 동료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남자를 내쫓아야 했다.

그녀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수상한 남자가 있다고 신고했다.

5분도 되지 않아, 순찰차가 나타났다.

순찰차를 타고 나타난 진짜 경찰들은 남자의 신원과 용건만 확인하고 떠나갔다.

첫 번째 총소리가 났다.

‘팡!’

그러나 일반인의 주의를 끌 정도로 크진 않았다. 하지만 길 건너편에서 준을 감시하는 남자의 귀가 쫑긋해졌다.

특수훈련을 받은 그에겐 명백한 위험신호였다.

그는 날랜 동작으로 길을 건너, 준의 집 앞까지 다가왔다. 디아나가 나설 차례였다.

“무슨 일이죠?”

“방금 이 집에서 총소리가 났어요.”

“그런가요? 못 보던 얼굴이네요.”

“그냥 걷는 중이에요. 새로운 곳을 걷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해서요. 블루 스트릿처럼 잘 가꿔진 곳이라면 더 좋죠.” 남자는 제법 그럴싸한 구실을 늘어놓으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분명 총소리였어요.”

“아니요. 타이어 터지는 소리였어요.”

디아나는 국경선을 긋듯이 말했다.

남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준의 현관문을 가리켰다.

“확실히 총입니다. 군에 있어봐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요. 아모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권총이었어요.”

“조사를 해보죠.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결과를 알려드리죠.”

“그럴 필요 없습니다. 같이 있겠습니다. 누가 압니까? 제가 도움될지?”

‘전혀 그렇지 않아! 이 방해꾼아!’

디아나는 시간을 끌어야 했다.

로켈이라면 3분 안에 준을 구워삶을 것이다. 3분 후에 현관 벨을 누르면, 준이 직접 나서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녀는 경찰 본부에 연락하는 시늉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3분을 흘려보내고, 현관 벨을 누르려 할 때, 처음보다 크고 선명한 총소리가 났다.

실버 드래곤의 사냥개 2호보다 그녀가 더 놀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현관 벨을 사정없이 누르고, 한 손으로 문을 두들겼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응답 벨 소리가 나고,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죠?”

“총소리가 들렸어요. 괜찮으세요?”

“큰 귓밥이 나온 것 말곤 괜찮아요.”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겠습니다. 문을 열어주시겠습니까?”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문 앞에는 멀쩡한 모습의 준이 서 있었다.

디아나는 준의 상태를 살폈다. 멀쩡했다.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로켈이 구워삶은 게 분명했다.

사냥개 2호도 준을 유심히 살폈다.

표적이 갑자기 다치거나 죽으면, 써내야 할 보고서가 백 배로 늘어난다.

총소리가 날 때마다 보고서 분량이 두 배씩 증가했다.

“총소리 분석 중이었어요. 총소리의 파열음은 노이즈 분석의 좋은 샘플이거든요. 스피커를 끈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그랬군요. 협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디아나는 한시 빨리 현관문을 닫으려 했다.

그렇게 해야 집 안에 있는 로켈과 토그가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문이 닫힐 때, 사냥개 2호가 문틈 사이로 발을 집어넣었다.

“왁스 타는 냄새 안 나요? 무슨 스피커가 냄새까지 뿜어댑니까?”

그는 억지로 문틈을 벌렸다. 집 안에 누군가 있다.

“냄새 안 나요.”

디아나가 그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는 눈빛으로 한 템포 쉬어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신호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1. 당신 말이 다 맞아요.

2. 하지만 저 안에 있는 괴한들을 자극하는 건 좋지 않아요.

사냥개 2호는 조용히 발을 뺐다.

그 순간 디아나는 소형 분무기를 그의 얼굴에 뿌렸다.

초속효성 수면마취 가스, 오즈 21이었다.

사냥개 2호가 휘청거리자, 토그가 재빨리 나와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

거실에는 소파에 누워있는 사냥개 2호를 중심으로 로켈, 토그, 디아나, 준이 서 있었다.

디아나는 사냥개 2호의 주머니에서 수첩을 찾아냈다.

2호의 이름은 노겐이었다.

“실버 드래곤 소속이네.”

디아나는 수첩에서 꺼낸 신분증을 로쉐 보보아 테이블에 놓았다.

그녀는 명쾌한 해답을 기대하며 로켈을 바라보았다.

로켈의 키는 작았지만, 팀의 리더였고 항상 최고의 해답을 안다.

그러나 오늘은 그녀가 알고 있는 로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초조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 총소리? 어떻게 된 거지?

“덩치가 기분을 냈어요. 주방 천정이 뚫렸죠.”

준이 설명했다.

“토그예요.”

“네?”

“당신이 말한 덩치의 이름이 토그라고요. 사람을 외모로 부르지 마요.”

“알았어요. 가짜 경찰.”

“내 이름은 디아나예요. 부적합 판정으로 즉결 처형당한 줄 알았어요.”

“부적합 판정? 그런 것도 있었나요?”

준이 되물었다.

디아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나에게 묻지? 일이 제대로 됐다면, 준의 질문은 로켈에게 향했어야 했다. 로켈이야말로, 진정한 선지자였다.

“로켈 어떻게 된 거예요? 포섭이 끝난 게 아닌가요?”

“시작도 못 했어.”

그는 악몽을 꾸고 막 깨어난 것처럼 참혹했다.

최악은 아직도 악몽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젠장, 디아나에게 결국 이런 모습까지 보이고 마는군. 키가 더 작아진 느낌이었다.

“요리를 직접 하려고 했는데 ···. 피자라도 시킬까요?”

준이 말했다.

“오! 피이자~!”

토그가 침팬지처럼 소리 냈다.

*

동쪽 창문은 피자 착륙장을 겸했다.

6개의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드론이 피자를 착륙시켰다. 탄력 스파게티와 특급 샐러드도 함께 포장되어 왔다.

배고파서 먹긴 먹지만, 서먹한 분위기였다. 피자 착륙 직전에 노겐이 깨어나서, 분위기가 더 이상했다.

노겐은 뭔가 따지려고 했지만,

묵묵히 피자를 먹는 로켈,

게걸스럽게 먹는 토그,

플라스틱 칼로 피자를 조각내서 먹는 디아나,

피자 테두리 치즈를 골라 먹는 준을 보고,

식사에 동참했다.

“맛있지. 로마 교황 직속 요리사 출신이 만든 거야.”

준은 패거리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이상하게 반말이 자연스러웠다.

“어쩐지 도우가 얇더라. 이런 피자는 입가심으로 젤라토나 맥주를 마셔야 하는데 ···.”

준의 말을 받아 한가한 소리를 해댄 쪽은 노겐이었다.

그는 풍부한 대화를 유도해서,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맥주랑 젤라토 냉장고에 있어요.”

“가져와도 될까?”

노겐이 조심스럽게 모두에게 물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로켈은 과묵했고,

토그는 즐거웠고,

디아나는 조용했다.

준은 테두리의 바삭한 부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노겐은 슬며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그는 주방 안에 가득한 화약 냄새에 찡그렸다. 테이블 위에 떨어진 먼짓가루를 보고 천정에 난 구멍도 찾아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피자를 같이 먹는 걸 보면, 관계가 나쁜 것 같지도 않고? 뭐 일단 회사로 가서, 찾아보면 알게 되겠지. 그나저나 내가 왜 정신을 잃었지?

그는 서브 제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서브 제로 냉장고는 연구실에서 사용되는 혈액 냉장고 성능보다 뛰어나고, 명품 옷장보다 수납공간이 넓은 제품이었다.

채소 칸에는 갓 뽑아 올린 듯한 당근과 상추, 파, 치커리, 신선초, 생강, 감자가 싱그럽게 조화를 이뤘다.

요리를 직접 해 먹는 준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위의 음료수 칸에는 맥주와 자몽 주스가 있었고, 염소가 혀를 내밀었다.

노겐은 염소 모양을 한 ···. 그러니깐 낙타 가죽 주머니처럼 ···. 몽골 유목민이 가죽 주머니에 술을 넣고 다니듯이, 뭐 그런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염소의 눈깔이 너무 리얼했다.

담황색 바탕에 길쭉한 검은 선.

눈 주위에 난 유난히 길고 하얀 털.

입천장이 보이고, 누런 이가 보이고, 콧구멍이 보였다.

헉! - 염소 눈깔에 얼굴이 반사되었다.

잘린 목 밑으로 흘러내렸던 검붉은 피는 말라서, 반질반질했고 서브 제로 냉장고의 우수한 조명효과로 그럭저럭 괜찮은 거울이 되어 노겐을 비췄다.

피에 비춘 내 모습.

타이어 펑크처럼 비명이 절로 터졌다.

“크-악!”

비명은 부엌을 가득 채우고 거실로 흘러넘쳤다.

“내가 원한 게 바로 저거야! 저게 뭐가 어려워! 얼마나 자연스러워!”

로켈은 구겨진 인상으로, 왼손에 피자를 쥔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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