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7화 (7/141)

헬하운드-4

준의 하루를 다루는 기사가 인터넷에 떴다.

도서관 사서 길버트와 학생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엄청난 중독자예요. 책에 중독된 거죠. 뇌 주름 사이에 글자와 숫자가 박혀 있을 거예요.”

“원래 좋았던 도서관이었는데, 준이 있으면 더 좋은 도서관이 됩니다.”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죠. 돈을 벌기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거든요. 공부하려고 돈 번 걸까요? 아니면, 돈 쓸 줄 모르나? 재밌는 것도 많을 텐데, 매일 도서관에 나오다니! 고시 준비생인 줄 ···. 굿데이에 투자할 거냐고요? 당연하죠!”

종일 책 읽는 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특수 효과를 넣지 않았는데도, 그리스 예술품처럼 돋보였다.

준은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질문에 둘러싸였다.

“왜 이곳에 있는 거죠?”

준은 특유의 차갑고 고요한 표정으로 반응했다.

“이곳에 미래가 있습니다.”

*

트리탄은 쓰린 배를 움켜잡았다.

방향은 달랐지만, 그가 원한대로 적나라하게 준의 하루가 파헤쳐졌다.

“투자금이 또 빠져나갔습니다.”

비서가 보고했다.

“그렇겠지. 기사를 보고, 나도 굿데이에 투자하고 싶어졌어.” 그는 이를 갈았다. “굿데이와 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약점을 찾아내. 우리가 놈을 잡아먹는 거야! 우리를 배신하고 떠난 투자금을 모조리 먹어치우자고!”

그는 파루시아 때 굿데이의 거래 내용을 보고 확신했다. 놈은 아마추어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파루시아를 예측한 것은 기특했지만, 금융투자 방법은 엉터리였다.

파생상품 설계도 허술했다.

조금 주고 많이 얻어내야 하는데, 녀석의 설계는 너무 공평했다.

독소조항을 숨겨놓아야 했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파루시아를 예측한 것도 초심자의 행운일 것이다.

굿데이 정식 직원 중에 자금운용 전문가도 없다.

트리탄의 전략팀은 한 달 정도 설계해서, 베네수엘라를 파산 위기로 몰아넣었다.

금융계는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과 가장 유능한 사기꾼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고, 그중에서도 트리탄의 실버 드래곤은 상위 포식자였다.

굿데이와 같은 벤처 투자회사는 아침에 마시는 커피보다 더 쉽게 삼킬 수 있다.

“중국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 (百戰不殆)이라 했지. 우선은 준이 어떤 놈인지 알아보자고. 평소 경호원이 몇 명이지?”

“한 명도 없습니다.”

“일자리 창출에 인색한 놈일세.”

“그리고 하나뿐인 직원이 뒷구멍으로 기후예측모형을 판다는 소문입니다.”

“그나마 창출한 일자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군.”

*

베이지색 간접조명과 보라색 카펫, 로열 룸은 로마 성당처럼 고급스러웠다.

희미한 애플 민트향.

프랑스 와인과 담백한 독일식 디저트가 나왔다.

에바는 앞에 있는 남자가 웃겼다.

그는 은밀한 만남을 요구했고, 점점 더 은밀한 목소리로 다가왔다.

“기후예측 프로그램을 빼내면 ···.”

가방을 살짝 열어 보였다. 헌 지폐가 가득했다.

에바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남자의 미소는 친절했다.

돈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에바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는 확신했다. ‘넘어오셨군! 반갑소. 여성 동무.’

헌 지폐에 묶여 있던 에바의 시선이 다시 남자로 향했다.

자동차 가격과 맞먹는 고급 시계,

모피 코트에 버금가는 고급 정장,

그리고 ···.

“실버 드래곤에서 오셨죠?”

유치한 장난을 탓하는 뉘앙스였다.

남자의 호흡이 엉켰다. 그는 넥타이 매듭을 더듬거렸다.

“어떻게 ···.”

“넥타이핀에 실버 드래곤 심볼이 있네요. 별명이 ···. 학살자죠?”

“잘 아시는군요.”

그는 넥타이핀을 빼서,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주춤했다.

넥타이에는 실버 드래곤 심볼이 없었다.

에바는 건배하듯, 와인 잔을 조금 높게 든 후, 한 모금 마셨다.

‘천박한 속임수에 넘어가다니!’

“학살자가 베네수엘라와 태국 경제를 개박살 냈죠? 칠레 지진으로도 큰 재미도 보고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거죠. 에바 양도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지금 돈 가방을 드릴까요.”

“아이 좋아라! 그런데 어쩌죠. 문앞에 붙여 놓았잖아요. 기후모형은 파는 게 아니라고.”

“가격교환의 법칙이 있죠. 적당한 가격이 있으면 물건은 팔립니다.”

“적당한 가격이 얼마인데요?”

“그 전에 ···. 제가 실버 드래곤이란 걸 어떻게 아셨죠?”

“여자는 모르는 남자를 만날 때, 항상 조심하죠. 오기 전에 조사했어요.”

“좋은 습관이군요. 이 정도 가격이면 어떨까요?”

그는 에바에게 돈 가방을 건넸다.

“가방을 보니, 가격교환 법칙이 진리네요! 저는 학살자 팬이에요. 불난 집에 휘발유 뿌리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고맙습니다. 프로그램을 빼내면 이곳에서 다시 만나죠.”

남자가 일어서려 하자, 그녀가 손목을 잡았다.

농염한 눈빛이었다.

남자는 로열 룸에 보안카메라도 없고, 이쪽에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웨이터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침대는 없지만, 화장실과 샤워실이 달려 있었다. 거래를 확실히 해두려면, 역시 몸을 섞는 게 ···.

“지금 가지세요.”

에바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자의 음흉한 미소에 튀어나왔다.

“우선 샤워를 ···.”

“샤워라뇨? 그런 뜻이 아닌데, 프로그램을 가져왔어요. 무슨 생각하신 거예요?”

“아! 샤워는 은어였습니다. 도청이나 기타 보안 점검을 뜻하죠. 이런 일은 비밀이 중요하니깐요.”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열심히 변명했다.

그럴듯한 꾸밈말이라서 다행이었다.

‘잠깐, 방금 에바가 뭐라고 했지? 지금 넘길 수 있다고?’

그녀는 핸드백에서 스크린 수첩을 꺼내서, 능숙하게 키를 눌렀다. 기후예측 모형이 떠올랐다.

“이걸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아예 가지고 다녀요. 비싸게 사줘서 정말 고마워요.”

에바는 해맑게 웃으며 수첩을 건넸다.

남자는 이런 여자를 직원으로 둔 굿데이의 앞날이 빤해 보였다.

“원하시면, 매매 계약서도 써드릴 수 있는데 ···.”

그녀가 말하자, 남자는 엄숙하게 말했다.

“이런 건 비밀이 중요합니다.”

“어쩜 다들 똑같이 말하세요. 요즘 경영대학원에서는 그런 걸 가르치나 봐요?”

*

실버 드래곤 헤지펀드는 수치분석 전문가들에게 굿데이의 기후예측모형을 분석하게 했다.

기후예측모형을 분석하면, 굿데이의 투자 전략을 알아낼 수 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모든 것은 비밀스럽게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비밀서약서에 사인하고서 기후예측모형을 볼 수 있었다.

“또 이거군.”

수치모형 전문가 월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라니?”

전략분석 팀원의 왼쪽 눈썹이 올라갔다.

“굿데이의 기후예측모형이지? 요즘 이것 때문에 사방에서 난리야. 이걸 제대로 돌리려면, 푸리에 구조 방정식을 이해해야 하는데 ···. 나는 못해.”

그는 ‘전설의 솔로’만이 방정식을 풀 수 있다는 소문은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할 수 있지?”

“굿데이의 준이지.”

월슨은 능숙하게 프로그램 어를 입력했다. 스크린에 파루시아를 예측했던 시뮬레이션이 나타났다.

“보면 알겠지만, 푸리에 구조 방정식은 수천 개의 미래를 보여줘. 그중에서 한 개를 골라야 해. 우리는 이걸 ‘솔로의 선택.’이라는 문제로 부르지.”

“준은 어떻게 허리케인이 일어나는 미래를 골랐지?”

“나도 그게 궁금해서 준에게 물어봤어. 느낌이 딱 왔다고 하더군.”

“느낌?”

그런 식으로 정해도 되는 걸까? 팀원은 혼란스러웠다.

“그나저나 이거 돈 주고 샀어?”

“그건 알아서 뭐하게?”

“굿데이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거든.”

“메?”

파루시아에 격하게 휘말린 느낌이었다.

“정부와 기업에 사용료를 받지만, 개인은 공짜야. 몰랐어?”

팀원은 밖으로 뛰쳐나가서, 에바에게 전화했다.

“기후예측모형은 파는 게 아니라며?”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돈 가방을 돌려줘야겠어.”

“그건 안 돼. 이미 굿데이의 수입으로 잡혔어. 매매거래서는 써줄 수 있지.”

“사기죄로 고소하겠어!”

“잠깐 기다려봐.”

재즈 음악 신호음이 울리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스탠리 법률사무소입니다. 이번 거래는 실버 드래곤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적법한 상거래입니다. 판매대금은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많은 사람이 오갔다.

준의 자리는 창문 아래, 구석진 곳이었다.

“오늘도 오셨군.”

길버트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준의 테이블에는 음료수가 놓여 있었는데, 누군가 은밀히 놓고 간 것이었다.

옆자리에, 준의 눈에 띄기를 바라는 미녀들이 보였다.

준이 미녀들에게 포위된 형세였고, 미녀들을 중심으로 남자들이 몰려 있었다.

길버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두 명의 남자가 준을 염탐하고 있었다. 그들의 스마트 폰 렌즈 방향도 준을 향했다.

길버트는 천정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로 남자의 얼굴이 찍힌 부분을 불러냈다. 그리고 에바에게 전송했다.

에바가 몇 번이고 부탁했던 일이었다. 준에게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달라고.

에바는 얼굴 인식 프로그램을 돌려서, 남자의 정체를 찾아냈다.

스마트 폰에 에바의 아이콘이 뜨자, 길버트는 이어폰을 꽂았다.

‘실버 드래곤 보안요원이야.’

“왜 준을 감시하는 거야?”

‘직접 물어봐야지.’

“묻는다고 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줄 타입이 아니야. 둘 다 엄청 험상궂어.”

‘12번을 보내.’

*

줄리아는 준을 유혹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받은 번호 12번.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준 근처에 자리 잡고 책을 보거나 공부했다.

준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녀는 최우수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저들이 준을 감시하는 이유를 알아봐 달라고?”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에바의 부탁이야.”

“에바? 내가 직접 물어보겠어.”

줄리아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대며 에바에게 전화했다.

에바는 굿데이에 취직하자마자, 도서관의 미녀들을 불러모아 분명하게 밝혔다. ‘준을 방해하지 마!’ 욕을 조금 곁들었는데, 덕분에 메시지가 명확하고 또렷해졌다.

에바의 기세에 질린 여자 몇은 준을 포기했지만, 줄리아는 달랐다.

에바와 한편이 되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통화음이 두 번 반복되고, 에바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줄리아?”

“그래 나야. 길버트가 앞에 있어. 무슨 일이야.”

“실버 드래곤 보안요원 둘이 어슬렁거려. 특수 부대 출신인데, 요인 납치와 암살 같은 기술도 익혔을 거야. 그들의 목적을 알아야겠어. 도와주겠어?”

“도와주면 뭘 해줄 거지?”

“뭘 원해?”

“준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나랑 하는 건 싫어? 나 요즘 너무 외로워.”

“노!”

“나 상처받았어.”

“뻥 치지 마.”

“알았어. 준과의 저녁 식사! 조심해. 전쟁 중 특수작전 수행 경력이 있어. 살인 유경험자일 거야.”

“걱정 마.” 줄리아는 통화를 끊으려다, 다시 말했다. “에바, 너도 조심해. 준에게 꼬리가 붙었다면, 너에게도 붙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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