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하운드-1
유럽 증시 인버스 매수.
보험회사와 여행 관련 업종 주식을 공매도.
국제 곡물 콜옵션과 천연가스 풋옵션 베팅.
수십 배의 레버리지가 가능한 복잡한 파생 상품도 준비했다.
로이니 투자 은행의 파생상품 팀장은 준의 설계를 보고 코웃음 쳤다.
“메이저급 허리케인이 발생하지 않으면, 자네는 망해.”
“네.”
“유럽 기상청에도 알아봤는데, 지중해에는 메이저급 허리케인이 생기지 않아. 그래도 거래를 원해?”
준은 끄덕였다.
“벤처 이름이 굿데이군. 회사 운명은 이름과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지. 그런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지.”
은행원은 서류 몇 장을 준에게 내밀었다.
준이 사인하자, 그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반짝였다.
“이런 파생상품이라면 다른 투자 은행도 관심 있을 거 같은데, 소개해줄까?”
“제가 소개료를 내야 하나요?”
“전혀! 다른 은행에서 나에게 소개료를 줄 거야. 이렇게 거저먹는 파생상품은 흔하지 않거든.”
*
굿데이는 파루시아 효과로 투자금의 수십 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굿데이의 파생상품을 사들였던 로이니 투자은행의 손해는 컸다.
로이니를 따라 했던 다른 투자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전체가 파루시아로 앓고 있을 때, 유유히 수익을 챙기는 준은 눈에 띄었다.
자잘한 금액의 투자자들은 더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투자자 한 명이 준에게 물었다.
“파루시아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데, 너는 돈을 벌었어. 어떻게 생각해?”
죄책감을 자극하는 우울한 말투였다.
“농부는 밀을 키우고, 나는 숫자를 키웠어.”
우울함이 끼어들 틈이 없는 깔끔한 설명이었다.
*
‘돈 버는 게 이렇게 쉬운 건가?’
현실은 그렇다고 한다.
먹고 살 걱정을 했던 지난날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금융투자는 게임과 같았다.
분석이 옳다면 숫자가 커진다.
슬픔이나 기쁨 따위가 낄 틈이 없다.
스티브 교수 같은 사람의 방해나 간섭도 없다.
‘분석하고 결정하고 실행해서 챙긴다.’ 이것이 전부였다.
준이 6개월 전에 파루시아를 예측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이 들끓었다.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가!
뒤따라 밝혀진 사실은, 스티브 교수가 준의 모형을 무시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것이었다.
*
리처드는 유명한 종군기자였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동유럽과 중국 러시아까지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지뢰를 밟고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을 잃고 나서, 자신의 분야를 사회경제로 바꿨다.
그는 굿데이의 기사를 쓰고 싶었다. 꽤 재밌는 기사가 될 게 분명했다.
리처드는 로봇 손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다섯 개의 로봇 손가락 위에서 동전이 굴러갔다.
“스티브 교수가 안식년을 신청했는데, 예상했어?”
“대학교수 라이프 사이클 예측 모형은 만들지 않죠. 투자에 도움되지 않거든요.”
보험규정 읽듯이 말했는데, 리처드가 웃었다.
“스티브 교수가 너를 자폐아로 부르고, 정신박약자라고 말한 게 사실이야?”
“네. 그러나 저는 자폐아가 아니라, 보석이에요.”
또 웃었다. 준은 의아했다. ‘도대체 어느 포인트가 재밌다는 거지?’
“굿데이의 다음 투자 전략은 뭐지?”
“허리케인에는 파루시아처럼 이름이 붙지만, 가뭄이나 더위에는 이름이 붙지 않죠. 최악의 가뭄과 더위가 옵니다.”
준은 앞으로 다가올 가뭄과 더위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리처드는 로봇 팔에 장착된 녹음기를 끄며 끄덕였다.
“헬하운드 가뭄이라 ···. 기사로 써도 되는 거지?”
*
수치해석이 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감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분석 작업을 할 때에도 감정적이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파루시아 같은 최악의 결과를 피하는 선택을 한다.
“그래야 맘이 편한 걸까?”
준은 갸우뚱했다.
그에게 감정은 오래전 퇴화한 꼬리뼈였다.
휴학계를 낼 때, 데스먼드 학과장이 직접 나왔다.
“학교를 그만둘 필요는 없어. 굿데이를 졸업논문으로 쳐주지. 오늘부터 굿데이가 자네 전공과목이자, 교양과목이야. 커피 한잔 하겠나?”
데스먼드가 원하는 것은 굿데이가 킹스덤 대학교에 머무는 것이었다.
킹스덤 재단은 벤처 창업을 지원했고, 캠퍼스 안에 있는 둥지에는 수십 개의 벤처가 성업 중이었다.
이런 벤처들은 킹스덤 대학교의 좋은 홍보 꺼리었다.
준은 데스먼드 학과장의 우유 크림 같은 눈웃음이 놀라웠다.
데스먼드의 별명은 시체.
개기일식보다 더 보기 어려운 것이 그의 미소였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미소가 ···.”
“웃으면서 살아야지. 요즘 굿데이의 수익률은 어떻지?”
“제로입니다.”
대답과 함께 데스먼드의 미소가 무너졌다.
기분 좋게 기지개 켜던 시체가 다시 관속으로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
“포지션을 청산하고, 투자자에게 원금과 투자금을 돌려주었습니다.”
“아! 그렇군. 소문에는 투자금의 두 배를 수익금으로 주었다던데, 대단해! 고작 몇 달 만에 원금을 두 배로 뻥튀기하다니!”
“소문이 잘못된 겁니다.”
“그렇겠지. 소문은 과장되게 마련이지.”
“수익금은 원금의 스물두 배였습니다.”
‘스물두 배?’ 데스먼드의 눈동자가 그네처럼 흔들렸다.
“다음 투자금 모집은 언제지? 나도 투자하겠네.”
*
예전과 다르게 많은 학생과 사람이 아는 체 해왔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날 반겨주다니!’
헐렁한 반짝이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준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였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또렷하게 떠오르진 않았다.
“스탠리야. 기억나지. 학교 식당에서 같이 먹었잖아. 로스쿨에 다니고 있어. 법적인 문제가 있으면 말만 해! 스탠리 가문이 널 도와줄 거야.”
그는 충성스러운 기사처럼 말했다.
음식 빼앗던 시절을 다른 버전으로 기억하는 것 같았다. 준이 앗! 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직원은 언제 뽑아?”
대답하기도 전에 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날 제자로 삼아줘!”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있어! 동업하자!”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몸에 꽂혔다.
“혼자 있고 싶어.”
분명하게 말했지만, 그들은 끈질겼다. 명함을 주고, 자기소개서를 떠넘기고, 사업 아이템 개요를 떠벌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 손 가득 자기소개서가 들려 있었고, 왼쪽과 오른쪽에서 사업 아이템을 떠들었다.
사이코드라마 속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
“기후예측 모형 가격을 불러보게.”
두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찾아온 앙리 백작은 인심 쓰듯이 말했다. 오팔로 만든 고급 양복 단추가 인상적이었다.
준은 사인 된 백지 수표를 내밀 듯이 종이를 건넸다.
종이에는 푸리에 변환과 구조방정식의 항등식이 쓰여 있었다.
“이 방정식을 풀어보세요.”
“재밌군. 내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나?”
앙리 백작은 날렵하게 다듬은 콧수염을 다듬으며 자신만만했다.
“유럽 왕실 기상청에서 오셨죠.”
“최고의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있는 곳이지.”
그가 쪽지를 수행원에게 넘기자, 수행원은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어, 왕립 기상청으로 전송했다.
“십 분만 기다리게.”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방정식을 풀었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앙리 백작의 얼굴이 붉으락 했다. 수백 명의 전문 수학자들이 고작 햇병아리 대학생에 불과한 녀석이 낸 문제를 풀지 못하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유럽왕실 기상청은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이미 파루시아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난으로 몸살 앓지 않았던가!
“기후예측모형과 방정식 해법 모두 값을 치르겠네.”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후예측모형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가르쳐주게! 교육비까지 계산하지!”
“가르치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
맹물처럼 밋밋한 말투.
앙리 백작은 눈앞에 있는 젊은 놈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인정했다.
“헬하운드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알려주면 고맙겠네. 자네가 도와주면 폭염과 가뭄 피해를 줄일 수 있어.”
“파루시아 때에도 한 달 전부터 유럽 왕실 기상청에 메일을 보냈었죠.”
“알고 있네. 담당자가 믿질 않았었지.”
앙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연구비와 상담료 명목으로 현금카드를 건넸다.
준은 자연스럽게 받았다.
요즘 이런 식의 부수입이 자주 생겼다.
가끔 아무것도 안 주고 그냥 가는 관계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잘 적어두었다가,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메일도 수신 거부로 설정했다.
앙리 백작이 말했다.
“내 밑에서 일해보겠나? 수백 개의 인공위성과 세계 최고의 입자가속기, 차세대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지. 우리에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기묘한 문제들도 많아. 기후예측도 놀랍지만, 그것보다 더 황홀한 문제가 있다네.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지.”
“싫습니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 너무 단호하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 백작이야.’ 라는 말은 참았다.
“제 일을 하는 시간보다, 설명하고 허락을 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겠죠.”
준이 쪽지에 쓴 ‘푸리에 구조 방정식’은 이런저런 경로로 널리 알려졌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푸리에 구조 방정식 밑에 재밌는 문장이 붙었다.
‘방정식을 증명하는 자, 미래를 알게 될 것이다.’
댓글처럼 문장이 늘어났다.
‘이 방정식을 풀고 암이 나았습니다.’
‘이 방정식을 풀고 무좀이 나았습니다.’
‘이 방정식을 풀고 여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만 좀 해라!’
‘그만했더니, 무좀이 재발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떠나갔습니다.’
1억 명 넘게 댓글을 읽었다. - 이유는 모르지만, 수많은 솔로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었다.
*
중앙 도서관은 피난처였다.
조용하고 방해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천체 관측소처럼 하늘이 열린 구조가 맘에 들었고, 책장마다 꽉 찬 책들도 유용했다.
준은 문학작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등장인물의 성격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주인공이 느끼는 분노와 환희도 억지스러웠다.
그가 공감하는 것은 공허감과 허무감 그리고 외로움이었지만, 이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이상했다.
감정 결핍 증후군인 준에게 공허감과 허무함은 공기와 같았다.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문학 작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사는 게 고통이라는 건데 ···.
책을 덮고 에어 스크린으로 계좌에 찍힌 숫자를 확인했다.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액수였다.
에어 스크린 인터넷으로 나와 있는 부동산 매물을 검색하고 풀옵션 자동차도 골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간절히 바랐던 안정된 생존을 이뤘지만, 기쁘지 않았다. 뭐랄까? 너무 시시했다. 오히려 공허감만 더 깊어졌다.
‘너무 쉽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편안해지진 않았다.
굶주린 늑대들에게 둘러싸인 느낌. 발가락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이게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허무라는 건가?’
준은 어둠 속 늑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늑대는 굶주린 공허감이었다.
이제 먹고 살만해졌는데, 저것들은 왜 굶주린 거지?
일자리를 걱정할 때에는 말없이 얌전한 놈들이었는데 ···.
준은 깨달았다.
공허감은 스릴과 두려움을 먹고 산다는 사실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자, 스릴과 두려움이 사라졌고, 공허감이 굶주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엾은 것들 ···.’
준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했다.
‘굶어라.’
보통 사람이 굶주린 공허감과 마주친다면, 두려워 달아난다. 가장 손쉬운 도피처는 섹스와 쾌락이다.
준은 달아나는 대신, 과감하게 사나운 공허감에 손댔다. 성난 공허감이 준을 물어뜯었지만, 손 빼지 않았다. 날뛰는 공허감을 때리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공허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체를 밝히는 것이었다. 너처럼 얌전한 애가 왜 갑자기 ···.
공허감의 입은 상어처럼 크고 날카로웠고, 발톱은 단검처럼 예리했다. 지독한 고통과 공포로 몸이 마비되었다. 그러나 눈감지 않았다.
‘가엾은 것! 그렇게 고통스럽다면, 너도 리만 함수의 이항분포 값을 구해보겠니?’
바로 그 순간, 공허감은 꼬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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