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루시아-3
“단위를 잘 선택해야 해요. 쿼크단위로 함수를 만들면, 계산속도가 너무 느리거든요.”
즐겁게 식사하며 유쾌하게 떠들었다.
준은 ‘오비탈’, ‘푸리에 변환’, ‘힐베르트 조합’ 같은 단어를 노래하듯이 사용했다.
데이빗과 에밀리는 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들이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준이 학교에 가고, 에밀리가 데이빗에게 말했다.
“아까 봤어?”
“녀석 조금 들떴지.”
“세상 어떤 아이가 감자 수프를 먹으면서 그 안에 든 탄소와 질소량을 계산하지? 그리고 동위원소는 또 뭐야?”
“그래야 맛나나 보지.”
“우리가 잘 키우고 있는 거 맞지?”
“솔직히 ···. 나도 잘 모르겠어.” 그는 접시에 남아 있는 수프를 빵으로 닦아 먹으며 덧붙였다. “혹시 가계부 쓸 생각 있어?”
“갑자기 왜?”
에밀리는 남편을 빤히 쳐다보았다.
평소 집안일을 도울 뿐, 참견하지 않던 남자였다. 설마 비밀을 안 건가? 지난번에 샀던 지갑이 명품이라는 사실을?
에밀리가 지나치게 당황하자, 데이빗은 얼버무렸다.
“아니, 그냥.”
“어머! 정말 그런가 보네. 남자는 나이가 들면 여자가 된다던데 ···. 당신 늙은 거야?”
“그런가 봐.”
데이빗은 몸을 의자 깊숙이 묻으면서, 말소리를 낮췄다.
*
선생님은 쉴 요량으로, 학생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냈다.
“다 풀었어요.”
“다 쓰지도 않았는데?”
“쏴 올린 로켓이 지면에 닿을 때, 로켓 안의 시계가 가장 많이 가는 문제죠.”
“그 ···. 그렇지.”
선생은 우물거렸다.
“답은 자연스러운 포물선 운동이에요. 중력장 방정식에 따르면 시공간 곡률함수는 항상 최댓값을 갖거든요.”
학생들은 분명히 봤다.
준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에 감탄이 스치는 것을.
그것이 신호였다. 또래들은 준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
‘아빠 말이 맞았어! 수학만 잘해도 먹고 살 수 있어.’
혹시나 해서 걱정했지만, 렘지처럼 죽은 다람쥐를 가져다주는 아이는 없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마다 어려운 문제를 냈고, 준은 보자마자 정답을 말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때, 나선 궤도를 따르는 건 그 궤도가 시공간에서 최단 거리기 때문이죠.”
“소금쟁이 다리 길이가 A이고 꼭짓점이 여섯이니깐, 소금쟁이의 몸무게는 표면장력의 열두 배입니다.”
준은 코프스키 방정식으로 표면장력 최댓값을 구했다.
선생님이 가진 해답지보다 간결한 풀이었다.
‘남극 빙하가 두 배 많아질 때, 지구 자전 속도 변화를 구하시오.’
선생님도 손대지 못하는 문제였지만, 준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풀어냈다.
“넌 천재다!”
선생님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갑자기 스탠리가 손들었다.
“선생님! 준의 아이큐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낮아요!”
“그래서 더 대단한 거야.”
시선이 준에게 쏠렸다.
준은 앵무새처럼 앉아서, 다음 문제를 기다렸다. 경지에 이른 무심함이 교실 전체를 압도했다.
이제 준은 말더듬이도 아니었고, 둔한 아이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선을 의식한 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저는 천재가 아니에요. 엄마가 그러는데, 보석이래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선생님과 반 전체는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준은 수학 특기생으로 킹스덤 대학교에 입학했다.
킹스덤 대학교는 최고 명문대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곳이었다. 수많은 영재가 대륙을 넘고 바다를 건너 킹스덤에 몰려왔다.
준이 킹스덤을 선택한 이유는 ···. 집에서 가까웠다.
준은 다른 친구들이 가까운 킹스덤에 입학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게 희한했고, 먼 곳에 사는 학생이 킹스덤에 오는 것도 신비로웠다.
수치해석 모형 개발 작업은 지루하고 건조했지만, 그 지루함과 건조함이 편안했다.
모두가 맥주를 마시려 갈 때에도 연구실에 앉아 새로운 예측 모형을 조립했다.
킹스덤 대학에는 괴짜들이 많지만, 준은 괴짜 중에서도 괴짜였다.
농담에는 무력했고, 파티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가 하는 것이라곤, 정해진 자리에 앉아 숫자와 방정식을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특히 단위함수의 푸리에 변환은 최고의 장난감 중 하나였다.
스티브 교수는 실험계획법과 회귀분석을 강의했는데, 중심극한정리로 통하는 현대 통계학을 숭배했다.
그의 강의는, 평균의 유일성을 믿고 표준편차의 절대성을 섬기면, 진리에 이른다는 식이었다.
준은 강의를 들을 때마다 다중회귀분석이 종교학 과목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손을 들어 질문했다.
“왜 회귀분석 오차항은 가우스 분포를 확률밀도함수로 사용하죠?”
“확률을 다룰 때 가우스 분포보다 좋은 게 없으니깐.”
충만한 믿음이 느껴지는 은혜로운 설명이었다.
스티브 교수의 강의노트 뒷장에 가우스 분포를 위한 주기도문이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인가요? 가우스분포는 너무 헐렁한데요?”
준의 당돌한 반격에 교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통계학에서 가우스분포는 십계명이었다. 준은 확률론과 통계학 전체를 모독한 셈이었다.
“헐렁하다 ···. 이거 패션 천재가 납시셨군. 자네가 생각하는 쫙 빠진 오차항은 뭔가?”
“푸리에 전개로 오차를 커버하면, 변수조합을 구조 방정식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이리 나와서 설명해보게.”
준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평균을 사용하면 극단값의 설명력이 희석됩니다. 극단값의 설명력을 살리려면, 확률밀도 함수를 버리고, 패턴 함수로 예측값을 조합해야 합니다. 패턴 함수를 푸리에 전개로 표현하고, 변수 조합을 구조방정식으로 다루면 ···.”
터치스크린에 그래프를 그려가며 설명했다. 현대 통계학의 뿌리를 흔드는 도발적인 접근법이었다.
‘저런 게 통할 리 없어.’
스티브 교수는 인정할 수 없었다.
평균과 표준편차라는 벽돌로 쌓아 올린 웅장한 현대 통계학에 비하면, 준의 방식은 너저분하고 난잡했다.
세 개의 샘플을 설명하기 위한, 일곱 개의 방정식이라니!
“그만!”
그가 소리쳤다.
그는 준에게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어린 양을 인도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다음 시간까지 자네의 예측함수를 만들어 오게.”
스티브 교수는 확신했다.
저런 게 가능하지 않다고! 어린 양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눈물 흘리며 참회하리라.
위대한 통계의 신이시여, 저 미련한 청춘을 용서하소서.
*
준이 만든 기후예측 모형은 지중해 지역에서 초강력 허리케인을 보여주었다.
제목은, ‘푸리에 구조방정식이 알려주는 날씨’이었다.
“이게 자네가 말한 새로운 예측함수인가? 어디 보자 ···.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30만 배가 넘는 초대형 허리케인이 지중해에 납신다고? 지중해는 대서양에 비하면 잔잔한 호수야. 대서양에서도 보기 힘든 괴물급 허리케인이 지중해에 생기는 건, 불가능해!”
스티브 교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스크린에 있는 모형을 삭제했다. 삭제된 모형은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일주일 후의 허리케인을 예측하는 것도 신의 영역인데, 6개월 후에 일을 장담하다니! 정신이 나갔군!”
교수의 손가락질이 교향악단 지휘자처럼 화려해졌다.
“관심을 끌려고 자극적인 논문을 만드는 건 수치스러운 짓이야!”
스티브는 처음부터 준이 그냥 싫었다.
준이 강의 시간에 튀는 짓 할 때마다, 그의 미움도 커졌다. ‘별 거지 같은 촌뜨기가 ···.’
“여러분은 저따위 모형으로 6개월 후의 허리케인을 예측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학생 모두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스티브 교수를 따라 준을 비웃었다.
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모형 평가는 엄밀한 논리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데, 스티브 교수는 정치가처럼 선동적이었다.
무시당하는 일에는 익숙했고, 조롱당하는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가 잘하는 게 있다면, 수치해석 같은 분야였다.
잘하는 것도 인정받지 못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없고, 일자리를 얻을 수 없으면, 사는 게 어려워진다.
다시 굶는 연습을 해야 하나?
‘잘하는 게 이것뿐인데 ···.’
강의실을 가득 채운 비웃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갔다.
*
렘지가 격하게 반가워했다. 그러나 준은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데이빗과 에밀리는 학기 중에 돌아온 아들이 걱정됐다.
“아들 무슨 일이니?”
에밀리가 문을 두들겼다. 문이 열렸다. 준은 늙어버린 어머니를 보았다.
“엄마 ···. 사실은 ···.”
*
그리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파루시아는 성난 짐승이었다.
거친 비바람과 함께 물고기가 쏟아지고 50톤짜리 어선이 떨어졌다.
달리던 자동차가 바람에 휘말려 날아갔고, 건물과 다리는 힘없이 무너졌다.
파루시아는 그리스를 지나 이탈리아와 프랑스까지 짓밟았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에펠탑은 ···. 무너졌다.
스티브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준을 몰아붙였다.
“그래 오늘은 어떤 패션을 연구하시나? 입고 있는 셔츠가 구멍 났던데, 그건 타원함수 패션인가?”
준이 무슨 대답을 하든 스티브 교수는 야비하게 말꼬리를 비틀었다.
학생들은 스티브 교수의 지휘에 따라 준을 비웃었다. 준을 놀리고 조롱하는 것이 최신 유행이었다.
학생들도 준이 파루시아를 예측한 것을 알지만, 우연의 일치로 여겼다.
최고로 우수한 인재들로 꽉 찬 강의실이었지만, 예외 없이 스티브 교수를 따랐다.
스티브는 인기 있는 교수였다. 그는 응용통계학회의 거물이었고, 그의 추천을 받으면 어느 대기업이든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준은 스티브 교수를 탓하지 않았다.
교수를 평가하겠다고 대학에 온 것이 아니다.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게 목표였다.
스티브 교수와 맞서는 것은 생존 가능성을 낮출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따르자니, 좁은 교도소에 갇히는 것처럼 찜찜했다.
예측모형이 공개 삭제됐던 그 날, 생존 가능성이 극적으로 낮아졌던 바로 그 날, 집으로 돌아가 바쁘게 지냈다.
굿데이라는 투자 회사를 등록하고, 초강력 허리케인이 닥쳐왔을 때, 수익을 극대화하는 포지션을 연구했다.
투자 회사라고 했지만, 주식 거래로 먹고사는 전업 투자자 수준의 플랫폼과 다를 게 없었다.
좋아서 한 게 아니었다. 정말이지, 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투자회사 등록은 투자금 모집보다, 세금 때문이었다.
투자 회사를 세우면 법인세율이 최고 22%였지만, 개인 자격으로 거래하면 최고 45%의 세금을 내야 했다.
종잣돈은 부모님이 주택담보 대출을 받아 마련해주었고, 준도 학자금 대출과 킹스덤 대학교의 창업 지원금을 활용했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 투자계획을 밝히고 투자금을 모았다.
큰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이 재미삼아 푼돈을 걸었다.
모인 푼돈은 부모님이 마련해준 종잣돈보다 많았다.
데이빗은 사업자금을 대줄 때, 망설였다. 잘못되면, 길바닥에 나앉아야 했다.
에밀리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말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믿겠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