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24)

                    제 18화: 술이 원수?

       술(酒)이란 아무리 뒤집어도 묘한 구석이 있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술만큼 묘약으로 작용하는

     식품(?)이 또 있을까.

       어렵게 어렵게  선을 넘지 못하고  진행되던 사랑도 어느

     날, 술 한잔으로 술술 풀리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서로가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남자들이야 의례히 그런 것이지만 빨리 여자를 육

     체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여자도 은근

     히 남자에게 마음은 있는데  첫 벽을 허물기란 참으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때 두 사람을 자연스레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

     로 술의  힘이리라. 굳이 술에 취하고 안 취하고를  떠나서

     이성을 흐물거리게 하는 취기로 인해서 적당히 뒷변명의 여

     운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신세대들이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

     날엔 많이들 그랬다.

       하지만 과연  술이란 것이 그렇게  항시 사랑의 묘약만은

     아닌 것 갔다. 남자들이야 별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여성들

     에 있어서는 술이야말로 가장 조심해야 할, 자신을  지키는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술만 먹으면 기억을 전부 날

     려 버리는 여성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녀들에겐 과

     히 술이란 컴퓨터 자판의 Del 키와 같은 존재이다.

       어느 날, 그런  휘발성 뇌를 가진 한 미모의 여인이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술에 약하다는 약점을 대강은 알고 있었지

     만 그래도 마주 앉은 그들은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같은 회

     사 동료 씨들이 아닌가. 거기에다가 문제는 그녀가 그런 대

     로 술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식사 후에 반주로 마시려던 술은 한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어 결국에는 그녀의 이성을 잃게 하고 말았

     다. 술자리가 끝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 중에서 비교

     적 술을 덜 마신  동료가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다주는 임무

     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였던가.  그 동안 내심 그녀를 짝사랑하

     였지만 이미 약혼자가 있는 그녀 였는 지라 멀리서 발만 동

     동 구르고  있던 처지가 아니였던가.  그 마당에 그가 이런

     우연찮게 찾아온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동료들을 따돌리고 한적하게 차를 몰던 그는 얼마를 달리

     다가 비교적 한적한 언덕길에  위치한 모텔 앞에 차를 주차

     시켰다. 그리고 취해 정신을 놓고 있는 그녀를 부축하여 방

     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슴이 뛰고 정신이 아찔했다. 늘 꿈에만 그리던 그

     녀와 한 방에 나란히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도시 믿어지지

     않는 거였다. 일이 그러했으니 그런 그의 뉘리에 자신이 지

     금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또 그것이 얼마만큼 돌이키

     기 힘든 죄악인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미쳐 숨을 돌리기도 전에 정신없이 그녀를 가진 후에라야

     그는 서서히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일인지 깨닫게 되었

     다. 더구나  그녀에겐 가을이면 결혼식을 올릴  약혼자까지

     있질 않은가.

       그러나 얼떨결에 일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확장되고 말

     았다.

       잠시 후 냉정을 되찾은 그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

     녀의 옷을 원래대로 입히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범죄자처럼

     완벽하게 처음처럼  방을 정리한 그는  작은 메모지 한장을

     남기고 황급히 모텔을 빠져나갔다.

       술이 너무 취하셨군요. 집을 몰라 이곳에 방을 잡아 드리

     고 저는 먼저 갑니다.자세한 상황은, 내일 출근해서 말씀드

     리도록 하겠습니다.  메모지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술에 취하여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켰는지

     도 모르고 마냥 골아 떨어져 있던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새벽 네 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메모지를 발견한 후에라야 또  자신이 일을 저지른 것을 어

     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혹 무슨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번쩍 정신이  든 그

     녀는 재빨리 자신의 옷 매무새부터 살펴보았다. 하지만  특

     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이미 일을 치른 동료  씨가 완벽

     한 사후 처리를 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에겐 직감 같은 것이 있질 않은가. 더구나 아

     무리 뒷처리가 완벽했다손  치더라고 폭풍과도 같은 해일이

     자신을 몸을 훔치고 지나갔는데 말이다.

       그때 또다시 핸드백 안에서  연신 삐삐가 울려 대기 시작

     했다. 음성을 들어보니 그녀의 약혼자가 아닌가. 퇴근을 하

     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어김없이 전화로 사

     랑을 속삭이곤 하던 그녀가 새벽이 다 되도록 집에도 안 들

     어오고 연락이 두절됐으니 약혼자로서는 애가 탈만도 했다.

       삐삐를 확인한  그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무슨

     말로도 자신의 현  상황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뾰족한 변명이 생각난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자신을 추스려보

     니 별 일이 있지도  않았던 터라 그녀는 약혼자에게 전화를

     걸고 사실대로 설명을 했다.

       약혼자의 화가  머릿끝가지 치솟았음은 물론이다. 세상에

     생각을 해  보시라. 어느 남자가  여자 혼자서 술에 취하여

     여관에서 잠을 잤다는데 믿을 남자가 있겠는가.

       쏜살같이 위치를 물어 그녀가  있는 여관으로 달려 온 약

     혼자는 그녀에게는 들리지도  않고 다짜고짜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주머니에 슬그머니 만원권 지폐 한 장을 밀어 넣었

     음은 물론이다.

      『이봐요, 00호 여자 손님 말이오. 언제 누구와 함께 들어

     왔는지 사실대로 말해 줄 수 있겠소?』

       잠시 돈을  곁눈으로 확인한 종업원은  짧은 순간 복잡한

     번뇌에 휩싸여야 했다. 자신의 새치 혀끝으로 두 남녀가 그

     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임은 뻔한 이치

     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대강의 사태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종업

     원은 곧바로 여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랜 숙박 업소 경험

     과 사태를 재빠르게 한눈에  파악할 줄 알았던 종업원의 반

     짝이는 재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글쎄요.. 워낙 바빠서 자세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손님

     이 술이  많이 취해서 말입니다.  동료 직원이란 분이 방을

     잡아주고 갔습니다.

      『얼마나 머물다가 갔습니까?』

      『머물기는요. 여기서 방값을 지불하고는 곧바로 가셨지요.

     대신 저보고 잘 좀 모셔 달라고 당부를 하시기에 제가 방까

     지 부축해 드리고 문도 잠가 드렸는걸요.』

       그제서냐 약혼자는 안심이  되는지 얼굴 표정이 환해지며

     그녀를 데리러 방으로 올라갔다.

       종업원은 직장 동료라는 남자가 결코 그녀를 그냥 두었으

     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방으로 올라간지 한

     시간이 더 넘어서 방을  나왔을 뿐더러 무언가에 쫓기듯 그

     표정이 불안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로 인한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하여 사랑이 깨어

     지는 불행한 일은 막고 싶었다. 어차피 육체적인 순결의 유

     무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그날 아침, 정답게  손을 마주 잡고 나가는 두 연인을 보

     면서 비로소 종업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어젯

     밤에 자신의  연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기 대문이다.

       자, 만약에  여러분이 그  모텔의 종업원이었다면 어떠한

     선택을 하였겠는가. 참으로  아리송한 세상사가 아닐 수 없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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