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24)

             제 16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애인

       "세상에 만남도 하필이면 그런 만남이 어디 있겠니?"

       오랜만에 만난  K는 제법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들

     었다.

       "만남이라니?..."

       나는 제법 궁금해진 얼굴로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건 비극도  보통 비극이 아니라구?  하필이면 그 많은

     곳 놔두고 그곳에서 그녀와 부딪힐게 또 뭐야."

       그러면서 녀석은 기막힌 사연 하나를 내게 말해 주었다.

       "너 혹시 숙이 기억하지?"

       숙이라면 녀석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죽고 못살 정도로

     가깝게 사귀던 아가씨였다. 이름이 숙이라는 외자였는데 보

     기에도 시원스런 성격에 얼굴도 제법 예쁜 편이어서 나와도

     같이 어울려서 몇번인가 술을 마신 기억이 있었다.

       "기억하고 말구. 그 애와는 헤어 졌다며?..."

       "그래, 우린  헤어졌지. 내 직업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헤어진 건 순전히 나의  결정이었다구. 내가 헤어지자고 그

     녀에게 얘길 꺼냈을 때  어땠는 줄 아니?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었단다. 나 없이는 죽어도 못 산다고...그래서 내가 그

     랬지. 몇 년 후에 돈 많이 벌어서 번듯한 가게라도 하나 차

     린 후에 연락을 하겠다구..."

       "그랬었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녀가 뭐 잘못 되

     기라도 한거야?"

       나는 그럴수록 더욱 호기심이 당겼다. 내심 나도 몇 번의

     만남으로 그녀에게 다소간의 호감이 있던 터였다.

       K는 들고 있던 맥주 잔을 연거푸 들이킨  후에 말문을 열

     었다.

       "왜, 그런 게 있다잖아.사랑하던 연인들이 헤어지게 되면

     서로에 대하여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들을 하곤  하지.

     그래서 이다음  행여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더라도 서로의

     그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미소로써 지난날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니?"

       "녀석, 웬 서론이 그렇게 기냐? 빨리 말하지 않고는."

       "그런데 나도 그녀를 만났다구. 바로 얼마 전이었어.헤어

     진지 꼭  일년 여 만이었지.  내심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었는지라 얼마나 가슴이 설레였는지 아니."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만나 장소가 바로 비극이었다는 거야. 어쩌면 세상에 그

     렇게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였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더

     구나."

       "그렇다면 혹시?...."

       녀석의 이야길 듣고  보니 나름대로 집히는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설마 일뿐이었다.

       "그래, 그녀를  다시 만났지. 그런데 그게 어디였는지 아

     니? 바로 내가  일하는 모텔에서야. 그리고 그날은 내가 근

     무하는 날이었고..새벽 두시 쯤의 일이었어. 낯익은 웃음소

     리에 깜짝 놀라 나는 현관 문을 처다 보았지.  한쌍의 남녀

     가 술에 적당히 취하여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더군.

     한눈에 보아도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 수 있었지. 처

     음부터 꼭 서로를 부둥켜  안은 그들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

     지. 그때 우린 두 눈이 마주친 거야.세상에 비극도 그런 비

     극이 어디 있겠니.생각을 해봐. 당시 내 가슴이 어떠했겠는

     지."

       "그래서?...."

       "그녀도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는 눈치더군.  그러더니 이

     내 냉정을 되찾고는 말하는 거야."

       "뭐라고?"

       "아저씨 여기 방값이 얼맙니까? 그러더군. 눈빛  하나 변

     하지 않고 말이야. 정말 더러워서 일 못하겠더군.생각을 해

     봐. 누군 좋다고  남자를 부둥키고 왔는데 나는 바로 내 코

     앞에서 다른 남자와 그 짓을 하는 그녀를 보고만 있어야 했

     다니...."

       "정말 비극이군.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내 경우라고 생각을 해 보니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물며 녀석의 가슴은  온전

     했을까 만,

       "잊으라는 신의 뜻이었겠지. 제길,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일이..."

       "그러니까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하잖니?"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어?"

       "새벽녘이었어. 같이 온 남자가 잠든 틈을 이용하여 그녀

     가 프런트로 내려왔더군. 우린 날이 밝은 때까지 맥주를 나

     누어 마셨어."

       "그녀가 뭐라고 하든?"

       "펑펑 울기만 하더군. 나를 잊으려고 곧바로 남자를 만나

     사귀었다는 거야. 이미 결혼 약속까지 한 상태였었지."

       "그런데 하필이면 그 많은 여관 놔두고 네가 일하는 곳으

     로 와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 건 또 뭐래?"

       "내가 직장을  옮겼는데 그녀가  미쳐 그걸 모른 거겠지.

     아무튼 벨.보이가 아니고선 겪을 수 없는 벨.보이들만의 비

     극이라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