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4)

              제 14화:순결을 잃는 데이트 코스(下)

       분위기가 제법 무르익을 무렵 이과장이 말했다.

       오히려 미자는 좀더 앉아서  분위기에 젖고 싶었지만 못내 아

     쉬운 마음으로 따라  일어섰다. 더구나 별 흑심 없이 자신을 대

     하는 이과장이 미덥기도 했다.

       "괜찮지. 미스 김."

       "예, 좀 어지럽긴 하지만... "

       "늦었으니 이젠 집에 들어가 봐야지."

       시계를 한번 흘깃 처다 본 이과장은 차에 시동을 걸며 미자를

     바라보았다. 차에 오르자  못하는 술을 마셨음인지 졸음이 쏟아

     져 미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과장은 두어 번 길을  돌고 돌아서 처음 강화도로 들어섰던

     강화 대교 부근으로 차를 몰아갔다. 서울로 빠져나가는 다리 난

     간에서는 마침 음주 단속을  하는지 차들이 꼬리를 물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차가 멈추고 가지를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미자가 눈을 뜨며

     물었다.

       "큰일인데 이를 어쩌지. 하필이면 오늘따라 음주 단속을 하나

     본데."

       "그럼 어쩌죠?"

       "어쩌긴. 걸리면 면허 정지에 감옥엘 가야 한다구. 일년에 한

     두 번이나 있는 일인데 하필 오늘이 그날이나 보네."

       "야단이군. 음주 단속을 한번 하면 아침까지 꼬박 할텐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 이과장은 다시 아까 카페 쪽으로 차

     를 몰았다.

       "어떻게 하죠?"

       그때까지도 추호도 이과장의 의도를 모르고 있던 미자는 오히

     려 자신으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으로 미안한 마음

     이 앞섰다.

       "할 수  없지. 아까 카페에 들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나 그들이 카페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불이 꺼진 후 였

     다.

       "이런 카페도 오늘따라 일찍 문을 닫아 버렸네."

       대부분의 카페들이 밤 두 시 정도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모

     르는 미자로서는 모든 상황이 우연스레 닥친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다시 검문소가 저만치 바라다 보이는 언덕길에 차를 주차시킨

     이과장은 연신  담배를 피워 물며  검문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검문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

     았다.

       "저어... 길이 이곳밖에 없는 거에요?"

       이과장이 차의 시동을 끄고 있던 터라 밤이 깁자 추위가 닥쳐

     왔다.

       "이봐. 미스 김. 여긴 강화도야. 섬이라구.저 다리 하나로 육

     지와 연결된걸 몰라서 묻는 거야."

       진심으로 힘이 드는지 이과장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

     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죄송하긴. 미스  김 잘못이 뭐 있다고. 잘못이 있다면 다 내

     잘못이지."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미자는 자꾸 속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때까지 멀쩡하던 정신이 다시 흐려지며

     속이 뒤집혔다. 차  문을 열고 길가로 내려선 미자는 먹은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났군."

       어느새 뒤를 따라 내려왔는지  등을 두드려 주며 이과장이 말

     했다. 그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할 수 없군."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이과장은 미자가  차에 오르기 무섭게

     차에 시동을 걸고는 다시 온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스 김.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운전을 하며 이과장은 미자에게 물었다.

       "뭘 말인 가요. 과장님?"

       "이를테면 인간성이라든지..."

       "... ..."

       "나를 믿지. 미스 김은?"

       "... ..."

       "믿으니까 여기까지  나를 따라서 왔고 술도  마신 것 아니겠

     어. 그러니까 믿은 김에 한번만 더 믿으라구.이런 일이 본래 이

     상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이상한 일이지만 믿으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지."

       그러면서 이과장이 언덕길 하나를  넘어 차를 세운 곳은 화려

     한 네온이 반짝이고 있는 커다란 모텔 앞이었다.

       "왜, 이런 곳엘..."

       "최선의 선택이야. 미자도 몸이 정상이 아니지만 나도 마찬가

     지야. 또 밤이 깊었고. 검문 때문에 서울로 돌아갈 방법도 없잖

     아. 지금까지 그랬듯이 나를 믿고 따라와 준다면 이곳에서 잠시

     피곤한 몸을 쉬고 몸이라고 씻은 후에 단속이 끝나는 즉시 돌아

     가는 게 어때?"

       "정말 다른 뜻이 있으신 건 아니겠죠?"

       미자는 거절을 하고 싶었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야 한다고 생

     각을 했지만 우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장 에라도 쓰러져

     잠을 자고 싶은 것은 오히려 그녀 자신인지도 몰랐다.

       "이봐, 미스 김.그런 소리 자꾸 하면 오히려 내가 화를 낼 거

     야. 사람의 선의를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만 보는 것도 잘못이라

     구. 몰론 세상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긴 했지만."

       이과장은 정말로 별다른 뜻이 없어 보였다. 어깨 한쪽을 그에

     게 부축 당한  채 미자는 난생 처음으로 모텔 안으로 들어섰다.

     흐릿한 그녀의 눈빛 안으로'모텔 하이눈'이라고 써진 간판이 언

     뜻언뜻 스치고 지나쳤다.

       그러나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이과장의  태도는 백 팔십도

     바뀌었다. 보이가 숙박료를 계산 받고 나가기 무섭게 그는 억센

     팔로 미자를 끌어안고 그녀를 침대로 쓰러트렸다.

       "악! 무슨 짓이에요 과장님!"

       놀란 미자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처 보았지만 이미 소용이 없

     었다.

       "이봐 미자. 사 사실은.... 난 미자를 사랑한다구..."

       그 동안 서너 시간의 미끼  질을 만회나 하려는 듯 그는 미자

     의 비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의 옷을 거칠게 찢다시

     피 벗겨 냈다.

       "안돼요 과장님..."

       힘을 잃은 미자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

     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치밀한 계획 하에 오늘을 손꼽아

     기다려 왔던 이과장의 눈에  그녀의 눈물은 오히려 그를 흥분시

     킬 뿐이었다. 날이 밝도록 처녀지에서 마음껏 욕심을 채운 이과

     장은 새벽이 다 되어서야 한쪽 옆으로 몸을 뉘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울고  있는 미자에게 그는 조금의 죄책감

     도 없이 한마디를 던질 뿐이다.

       "울지마. 여자란 다 이렇게 겪어 가면서 성숙하는 거야. 앞으

     로 내 말 잘 들어. 그러면 아무런 문제 될 것 없으니까."

       그는 신입 여사원이  들어올 때마다 벌써 여러  번째 써 왔던

     오늘의 작전을 돌이키며 만족한 듯 담배를 비벼 끄고 다가가 미

     자를 안았다.

       기실 이과장의  작전 코스는 비단  이곳 강화도뿐만이 아니었

     다. 주로  경기도 권을 중심으로  양수리 방면이나 포천 송우리

     방면, 장흥 유원지 방면,미사리 방면,남한산성 방면, 백마 역이

     나 행주 산성 방면 등, 그 어느 드라이브 코스이건 여자들이 쉽

     게 분위기에 젖을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와 예쁜 카페들이 즐비

     하게 있었고 분위기 있게 술 한잔을 걸치고 서울로 진입하는 곳

     에는 용하게도 평소에는 간첩  한번 제대로 못 잡는 검문소들이

     설치되어 음주 단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음주 단속이 술집이나

     카페 등 운전자들이 경유할 법한 곳에 설치되는 것은 당연한 이

     치이고 또 그것이 교통사고  예방이라는 주 목적도 있긴 하지만

     이과장과 같은  플레이 보이들에겐 오히려  그것이 여간 고마운

     정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정책인지는 몰라도 그런 검

     문소 못 미친 곳들에는 참으로 용하게도 러브 호텔들이 마치 관

     과 짜기라도 한 듯이  들어서서 순진한 처녀들을 유린하는데 일

     익을 담당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다들 이러는 판인데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여인들이

     여. 그대들의 몸을 알아서 잘 들 챙기시거라. 세상은 다 도둑놈

     들 뿐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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