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4)

                 제 14화:순결을 잃는 데이트 코스(上)

       다음은 직장 생활 중에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여성들이 조금만 더 성에 대한 관념이 강하다면 얼마

     든지 피해 갈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갔다. 문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혹은 가

     장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일이기에  그만큼 여성들이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조금만 눈치가

     빠르다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는 상황들이다. 살아가는데 너

     무 착하고 순진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 요즘 세상인가 보다.

       "자 미스 김, 한잔 더 받아. 사회생활 하려면 다 술도 마실줄

     알아야 해요. 너무 순진해도 숙맥 소리를 듣는 다구."

       모처럼 있는 회사  총무부의 회식 자리 였다. 일곱 명의 총무

     부 여직원들과 함께 자비를  털어 회식 자리를 마련한 이과장은

     유독 미자에게 관심을 나타내며 술을 권했다.

       "과장님도... 우리도 술 좀 주세요. 미자만 직원 인가요."

       총무부 언니 격인 미스 신이 그런 과장을 보며 한마디를 던졌

     다.

       "아, 그야 물론이지.다들 술을 잘하는데 우리 미스 김만 아직

     술을 입에도 못 대니 그러지."

       "흥, 다 처음엔 그런 다구요. 조금만 있어 봐요. 미자도 우리

     못지 않을 걸요."

       "하하.. 그럴까?"

       "좋아요.그러면 우리 다같이 건배할까요. 총무부의 무궁한 발

     전을 위하여!"

       "위하여!"

       자정이 다 되어서야 일행은 술집 문을 나왔다.

       저녁을 겸한  술자리 였는지라 많이  마신 술들은 아니었지만

     미자는 처음으로 여러 잔의 맥주를 받아 마신 지라 기분이 묘하

     게 취해 왔다.

       "미자 괜찮니?"

       택시를 잡으려고 늘어서 있는 가운데 미스 신이 물었다.

       "괜찮아요."

       미자는 짐짓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긴. 얼굴이 발그스름한데 뭘?"

       그때 이과장이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일행 앞으로 다가왔다.

       "어머, 과장님.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겨우 맥주 두어 잔 했을 뿐인데. 미스 김과 차에 타라

     구. 내 오늘은 특별히 두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 줄 테니?"

       "후, 그러시다 사모님께 혼나시면 저희는 책임 못집니다요?"

       "후후, 별걱정을.. 미스 신은 괜찮은데 미스 김이 취한 것 같

     아서 말이야."

       "오늘따라 과장님이 멋져 보이시네.  웬일로 이런 선심을  다

     쓰십니까?"

       "선심은 무슨. 자기 부하 직원들 위하는 것도 선심인가.다 일

     잘하라고 하는 짓이지."

       이과장은 서른 중반이 조금 넘은 나이 였지만 일찍 능력을 인

     정받아 과장으로 진급을  했고 회사의 신임도 두터운 편이었다.

     자기 휘하의 여직원들에게도 철저하게 일을 시키는 완벽 주의자

     였기에 미스 신도 그의 이런 면모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참 미스 김은 집이 어디라고 했지?"

       "사당 동입니다."

       "마침 잘되었군. 미스  신이 방배동 이니까 방향도 같은 곳이

     네."

       "호호 그러시다가 사모님이 문 안 열어 주시는 거 아니에요"

       "안 열어 주면 말지. 내가 갈 때가 없을 줄 알아."

       잠시 후 방배역 부근에 미스 신을 내려놓은 이과장은 역을 우

     회전하여 사당동 쪽으로 차를 돌렸다.

       "죄송해요. 과장님.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

       미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별일도 아닌데 뭘. 참 미스 김은 혼자 사나 보지?"

       "예."

       "후. 외롭 겠는 걸.그래, 서울 생활이 처음엔 누구나 다 그런

     거야. 부지런히 벌어서 어서 시집가야지."

       사무실에서는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이과장이었지만 마음만은

     따스한 남자라고 미자는  생각했다. 더구나 다른 여직원들 중에

     서도 미자에게 만은 친 오빠처럼 잘 대해 주는 그였다.

       "기분도 그런데 우리 이왕 차 탄 김에 드라이브나 할까?"

       사당동 큰길 쪽으로 차가 다다랐을 무렵, 이과장은 짐짓 미스

     김을 처다 보며 물었다.

       "밤에 한강을  끼고 달리는  것도 기분 전환엔 최고라구.  어

     때?"

       미자가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을 미루는 눈치를 보이자 이과장

     은 다음 말을 막듯이 한마디를  더 던지며 차를 강변 쪽으로 향

     했다.

       "늦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평소에도 차를 타고 한번쯤은  서울의 야경 속으로 달리고 싶

     은 마음이 없지 않았기에 미자는 딱히 거절의 말을 못하고 머뭇

     거렸다. 더구나 그는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고 직장 상사 였기에

     다른 뜻이 있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동

     안 보여진  이과장의 꾸밈없고 성실한  인간성이 그녀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잘못될 것도 없지. 미스 김도 조금은 갑갑할 테고 나도 워낙

     회사 일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말이야. 한번쯤 이렇게 기분 전환

     하는 것도 나쁠 것 없지."

       이과장의 제의가 별다른 뜻  없는 순수한 제의 였기에 미자는

     그를 따르기로 했다.

       담배 하나는 꺼내 문 그는 능숙한 솜씨로 차를 올림픽 대로로

     진입시켜 강변을 끼고 공항 방면으로 내달렸다.

       "어때? 기분 좋지 않아?"

       "예, 좋아요."

       이과장의 물음에 미자는  웃으며 대답을 했다. 도심을 벗어나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기분도

     상쾌했다.

       삼 사십 분 남짓  차를 달려 다다른 곳은 강화도 였다. 섬 안

     으로 차를 몰아 해안을 끼고  얼마를 더 달리자 언덕 위에 동화

     의 나라에서나 보았음직한 아름다운 모습의 통나무집 카페 하나

     가 나타났다.

       "자, 내리시지요. 우리 여기까지 왔는데 저기 들러서 차나 한

     잔하고 가지?"

       "어머. 정말 집이 예쁘군요."

       "허허. 미스 김은 이런 곳이 처음 인가 보네."

       "네."

       차나 한잔 마시자는  제의에 미자는 별 의심  없이 그를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이층으로 된 카페 안은  통기타 가수의 잔잔한 라이브 음악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수십  명의 연인들이 앉아서 저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처음으로 이런 곳을 들른 미자에겐  모든

     것이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차를 마시자던 이과장은 처음과는 다르게 종업원이 오자 맥주

     를 시켰다. 미자는 차를 마시겠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주위 대부

     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기에 분위기에 압도되어 묻지를

     못하고 그가 하는 대로 따랐다. 오히려 잘못하면 촌스럽게 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운전은 어떻게 하죠?"

       술이 오자 건배를 하자는  그를 바라보며 미자는 걱정스레 물

     었다.

       "이봐. 미스 김. 지금이 몇 신줄 알아?"0

       이과장은 약간은 바보 스럽다는 투로 미스 김을 처다 보았다.

       "... ..."

       "그래, 지금은 새벽 한시라구.한시가 넘었는데 이곳에는 버젓

     이 장사를 하고 또 지금이 가장 손님이 많은 시간이야. 그건 뭘

     뜻하는지 알아.  이런 곳은 정부에서 일부러 풀어 주는 곳이야.

     이를 테면 관광  특구와 같은 곳이지. 조금 마신다고 운전에 지

     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속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 말고

     마시자구. 다른 사람들처럼 분위기에 어울리면 돼."

       이과장의 말이  오히려 힐책의 성격을  띠었기에 더 묻다가는

     바보가 될 판이었다. 이과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줄은 미자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간단히 한잔만 하고 데려다 주세요."

       "그럼, 그야 물론이지. 집에까지 얌전히 모셔다 줄 테니 걱정

     말고 들어."

       이과장은 따스한 웃음까지 웃으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딱 한잔만 먹겠다던 술이었으나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

     다고 했던가. 과장의  데려다 준다는 약속도 있었는지라 미자는

     자구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면서  이과장은 나름대로 부인과의

     문제나 회사 일로 괴로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고 미자

     도 어려운 집안 형편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그만 일어나야지."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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