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24)

     [시리즈 풍자소설]

                   ■♂러브호텔 스토리♀■

     ☞아홉째 이야기: 택시 기사 L씨의 이중생활(下)

     눈은 점점 그쳐 가고 있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언제나 차량으로 붐비는  곳이 워커힐 고갯길이

   다. 스키 캐리어를  장착한 차량들과 그만 그만한 남녀들로 쌍쌍이 히

   히덕 거리는 차들이 대부분 이었다. 모두들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L

   씨는 창문을 조금  열고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부인은 이번에는

   담배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작은 핸드백 가방을 열고 콤팩트

   와 립스틱을 꺼내어 막 화장을 고치는 중이었다.

     L씨는 카세트 테이프에 '조용필 골든'이라고 써진 낡은 테이프를 밀

   어 넣고 볼륨을 올렸다. 이쯤 나이의 대부분의 여자들 치고 조용필 싫

   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마침 흘러나온 노래가 '그 겨울의 찻집'이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

   지. L씨는 흡족한 듯 내심 쾌재를 불렀다.

     "노래하면 역시 조용필이 최고지요."

     L씨는 슬쩍 부인을 돌아보며  운장을 땠다. 기분만 잘 맞춰 주면 자

   기가 최고 인줄 알고 열을 올리는 것이 그 나이의 배부른 중년 부인네

   들의 공통된 특성이 아니었던가.

     "어머, 조용필을 좋아하세요.이 아저씨 뭔가를 아시는 분이네. 아휴

   요즘 나오는 노래는 영 노랜지 춤인지 구분이 안가요. 십여 명씩 우르

   르 물려 나와서는 가사만 틀릴  뿐인 똑같은 노래에 비슷한 춤으로 철

   모르는 학생들만 유혹을 하니...또 거기에다가 그것을 앞 다투어 방송

   하는 방송사의 어른들이나.. 몰지각 하기는 다 마찬가지 에요. 요즘은

   가요 대상을 받은 노래도 다음해 지나면 잊혀져 버려요. 그게 무슨 노

   랩니까. 몇 년, 몇 십년이 지나도 꾸준히 불리는 노래가 노래지요. 요

   즘은 노래에 혼들이 없어요."

     "맞습니다. 노래하면 실력으로 보나 노래로 보나 당연  옛날 가수들

   이 더 낫지요."

     부인은 기다렸다는 듯 열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L씨는 적당히 맞장

   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투가 영 못 배워먹은 여자는 아니

   었다.

     차는 시내를 빠져 나오자 한적해진 길을 속력을 내며  내달렸다. 구

   리를 벗어나면서부터 차량들이 좀 뜸해졌다. 몇 곳의 공사  구간을 지

   나자 청평호를 낀 이차선 도로가 주욱 펼쳐져 있었다. 이제 곧장 내달

   리면 양수리에 닿는다. 양수리에 닿아서 이 여인은 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물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호반 길을 삼십분여 내달리자 양수리에 닿

   았고 어느덧  시간은 하오로 치닫고 있었다. 검문소 삼거리에서  차는

   양수대교를 건너지  않고 춘천 가는 길로 좌회전을 했다.  양수대교를

   건너자마자 철길을 건너 좌회전을  해도 되었지만 강 건너보다는 아무

   래도 강 이쪽이 개발이 더 된 까닭이었다.

     양수리.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개의 강줄기가 합쳐져 하나로 된다는

   뜻에서 양수리란 지명이 붙은 곳이었으나 늘어나는 러브호텔과 까페들

   로 오히려 불륜의 장소로도 더 많이 이용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곳이기

   도 했다.

     강 언덕에 궁전처럼 지어진 몇 개의 러브호텔과 음식점들을 스쳐 지

   나 얼마쯤을 달릴  무렵, 한 곳을 가리킨 부인이 차를 세우자고 했다.

   그곳은 '파라다이스'란 간판이 걸린 중세 유럽의 성 모양을 본딴 마치

   궁전을 방불케 하는 호텔이었다.

     젠장, 파라다이스라니..  파라다이스란 천국이 아니던가. 착한 짓을

   해야만 갈 수 있다는 이상향의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데  대낮 불륜족

   이 대부분인 이런 곳의 이름이 파라다이스라니... 어차피 죽어서 지옥

   에 갈 몸들, 살아서라도 낙원을 즐겨보잔 이야기인가. 그 추한 몸들을

   지느러미처럼 흔들어 가면서... 그래, 어디 갈 때까지 가 보자...

     심호흡을 한 번 길게 내뱉은  L씨는 각오한 듯 주차장으로 미끄러지

   듯 차를 몰았다. 차가 주차장에 깔아 놓은 자갈에  부딪히는지 바퀴에

   서 자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부인이  곁으로 다가오며 능숙한 폼으로 팔장

   을 꼈다.

     "차들이 많군요. 아직은 대낮인데..."

     멎적어진 L씨가 한마디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차장에는 벌써 이

   십여대의 차들이 저마다 번호판을  가린채 얌전히도 주인들이 일을 끝

   마치고 나올때를 주욱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꾸 대신 부인은  L씨를 호텔 일층에 마련된 까페로 이끌었다.

     카페 안은 어두웠다. 일부러 아는 사람을 피하게 하기  위해 조명이

   어둡다는 사실을 L씨가 안  것은 좀 더 이 생활에 프로가  된 한참 후

   의 일이었다.

     이름 모를 피아노 반주가 흐르고 있던 실내는 훈훈했다.  저만치 벽

   난로가 타고 있는 구석 자리  옆으로 자리를 잡은 부인은 웨이터가 다

   가오자  L씨에겐 묻지도 않고 양주 한 병과 안주를 시켰다.

     "탁 까놓고 얘기합시다. 기사 양반..."

     "뭘... 말입니까?"

     대(大)자 패스포트 한 병이 반 이상 비워진 후였다. 별 말없이 술잔

   을 비우던 그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지요? 이런 경험 처음이세요?"

     "처음입니다만..."

     대강의 짐작을 했지만 L씨는 짐짓 의외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마 주면 되겠어요?"

     "알아서 하세요. 주는 데로 받아야지요."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핸드백을 열고 수표 한 장을 꺼내어

   L씨 앞으로 내밀었다. 하얀 오십 만원짜리 수표 한장이었다.

     "아니...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습니다."

     의외로 액수가 많았던지라 L씨는 돈을 받지 않고 잠시 망설였다. 오

   십 만원이면 입금 빼고도 일주일은  부지런히 뛰어야 벌 수 있는 돈이

   었기 때문이다.

     "그냥 받아  넣어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택시비가 아닌 가요. 택시비를 조금 더 얹어 주었을 뿐인데 뭐가 잘못

   될 것이 있답니까?"

     그녀는 까르르 소리를 내어 웃기까지 했다.

     L씨는 잠시 자신이 화대를 받는 창녀가 된 느낌으로 앉아 있었다.

   애라...모르겠다. 어차피 썩어빠진 세상인데..L씨는 연거푸 남은 술잔

   을 비워 냈다.

     "호호...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군요."

     갑자기 부인의 말이 많아졌다.

     "후...내가 오늘따라 얼마나 고생을 한지 알아요. 아. 내가 돈이 없

   어 차가 없어 택시를 잡겠어요. 다 이유가  있어 서지요. 그런데 오늘

   일진이 영 아니라  걱정했어요. 오늘따라 미남 택시 기사 양반들은 다

   어디로 가고 늙은 쭈그렁  탱이들만 지나가는지 얼마나 고생을 했다구

   요. 그냥 집으로  들어가서 찜질방이나 갈까 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후

   후.. 우리의 젊은 오빠가 나타난거지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들을 내뱉는  것을 보니 이미 그녀는 이런 식

   의 남자 사냥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그녀의 익숙한 말솜씨와 행동은 이미 여럿 그런 친구들이 있는 듯했다.

     까페를 나오자 시간은 저녁 다섯시를 넘기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검정 가운을 입은 종업원 하나가 다가와 둘을 엘리베이터 앞으로 안내

   했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자 문이 열리며 흡족한  표정의 남

   녀 한  쌍이 팔짱을 낀 채 나오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파라다이스를

   본 얼굴들이다.

     "제일 높은 층으로 주세요"

     올라가면서 그녀는 한마디했을 뿐이다.  07호실이라고 써진 방 앞에

   서 따라온 종업원에게 방값을  지불한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가기가 무

   섭게 L씨의 몸으로 달라붙었다. 술기운이기도 했지만 몹시도 남자에게

   굶주린 모양이었다.

     반쯤 열려진  창문으로 저만치 북한강의  강물이 넘실거리며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방안에는 계속해서 끈적거리는 유혹이 흐를 뿐이

   다. 부인은 어쩌면 그렇게 제 남편에게도 해주지 않았을 법한 온갖 몸

   짓들을 L씨에게 해대었다. 더는  견디지 못한 L씨는 황급히 옷을 벗어

   던지고 부인의 일에 동참했다. 적어도 택시비 이외로 받은 팁 값은 해

   야 되겠다는 투철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텔  파라다이스는 후끈한 남녀들로  인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들은 아무도 서로에 대하여 묻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는 얼마간의 돈이나 몸의 대화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후세 그들의  풍광 좋은 정사(情事)를 위하여 북한강은 옛부

   터 그 자리에서 그렇게 흐르고 있었던 것인지... ...

     "저 혹시 연락처라도..."

     처음에 그녀를 태웠던 방배동의 고급 빌라 단지 부근에 이르러 차를

   세울 무렵,  L씨는 차에서 내리려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시간을 보니 저녁  아홉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그녀와 함께 호텔방

   에 들어간지 세시간  남짓 얼마나 시달렸던지 L씨는  다리가 후들거려

   어떻게 브레이크와  액셀레이터를 밟으며 운전을  여기까지 해 왔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과연  예상은 했지만 그녀는 한창 왕성한 중년 여성

   답게 끝없이 L씨를 괴롭히며 확실하게 본전을 뽑는 눈치였다.

     "아저씬 매너 없이 왜 그래요?"

     차에서 내린 그녀가 탁 쏘아 붙였다.

     "저도 실례인 건 압니다만 워낙 부인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궁합?도

   잘 맞았고..."

     저만치 두어걸음 옮기던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궁합이 어쨌다구요. 나참.. 솔직히 말해 줄까요. 지금 내

   기분이 어쩐지. 솔직히 본전 생각이 간절한걸 요. 젊은 사람이 그렇게

   금방 나가 떨어져서 어디... 쯧쯧..."

     그녀는 더 이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즐길 때는 즐기고 확실하게 맺고  끊을 줄 아는 과연 프로다운 모습

   이었다. 그래야 지질한 후환도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철저한 이중 생활의 모범을 가르쳐 준 부인이 사라진 언덕

   길을 바라보며 공허하게 담배를 태워  물었던 L씨는 겨우 몸을 추스리

   며 차에 올랐다. L씨의 뇌리  속은 한 몇 시간 푹 자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글을 쓴다는 걸 알고 택시 모는 친구가 전해 준 자료입니다. 실화

       자체를 떠나 이제는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참 웃기는 세

       상이지요. 궁금하시다구요? 그럼 택시를 몰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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