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4)

     [시리즈  풍자소설]

     |||||||||||||||||||?러브호텔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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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째  이야기: 택시 기사 L씨의 이중생활

     구름 낀 하늘. 그러나 눈은 오지 않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다. 기사 식당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간단히 비우고 나와 자신의  영업용 승용차에 앉아서 담배를 뻐끔거리

   던 L씨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저만치 신호등 앞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거리 신호등을  조금 못 미친 곳에는 아까부터 언뜻

   보기에도 귀티가 줄줄 흘러 보이는 귀부인 차림의 여자 하나가 택시를

   세우려는지 연신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택시가 앞에 와서 서기만 하면 택시 기사의 얼굴을 한 번 힐끗 훔쳐보

   고는 그냥  보내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십여  대의

   택시가 무료하게 그녀를 스쳐 지나쳤다.

     젠장, 공동묘지에라도 갈  참인가? 꽁초까지 다 타 들어가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L씨는 속는  셈치고 그녀 앞으로  슬그머니 차를

   몰았다. 아까부터  줄곧 그녀를 지켜  본지라 잔뜩 호기심이 동하기도

   한 터였다.  아니나다를까, 택시가 그녀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또다시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는 시늉을 했다.

     넉넉잡아 여인의 얼굴은 마흔 살쯤 되었을까. 갈색으로 연하게 물들

   인 머리칼은 두어 번 주리를  틀어서 핀으로 정갈하게 올려 묶었고 긴

   검정색 주름치마 위에 걸친 잿빛 밍크코트는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산

   들거렸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사뿐히 나비처럼 부인  앞에 차를 멈춘  L씨는  투박한 전라도 사투

   리를 싹 감추고 정중하게 물었다. 며칠 전 동료 기사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던지라 L씨의 입가엔 잔잔한 희심의 미소까지 떠올랐다.

     그냥 돌아갈 참이었다는  듯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서 있던 그녀의

   눈길이 서서히 L씨의 희색 소나타 택시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

   의 얼굴에 잠시  무엇인가 망설이는 듯한 묘한  갈등의 표정이 스치고

   있었다.

     "워커힐 호텔 쪽으로 갑시다."

     결정을 내렸다는 듯  쓰고 있던 검정 선글라스를  척 접어든 여인이

   택시 앞좌석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썩 만족스런 표정의 아니었으나

   날씨가 차츰 쌀쌀해질 판이었는지라 더 이상 길거리에서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인 듯 했다.

     나이답지 않은 하얀  피부에 곱상해 보이는 얼굴, 오똑한 콧날 밑에

   까만 점 하나.자주 빛 립스틱으로 둘러싸인 도톰한 입술. 찬찬히 그녀

   를 ㅎ어보던 L씨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교차로를 지나 동작

   대교를 건넌 후  차를 강변대로 쪽으로 우회전했다. 강변 대로를 타고

   시원하게 워커힐 방향으로 갈 심산이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아무런 말

   이 없었다.  뭔가를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L씨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아직은 작전의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남 대교 부근을 지날 즈음  차가 심하게 정체되어 시간이 많이 지

   체되었으나 부인은 애초에 시간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했다. 그냥 무

   료하게 창 밖을 힐끔거리며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

   다. 젠장,건수 하나 기대하다가 차만 밀리고 합승도 못하고 오늘 하루

   도 또 죽치는 신세군. 갑자기 부화가 치민 L씨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때마침 잔뜩 찌푸린 마른 하늘  위에서 솜털 같은 눈들이 날리기 시작

   했다.

     "아저씨, 나도 담배 하나 주시구려..."

     벙어리 인줄만 알았던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눈을  보기 위해

   서인지 잠시 벗었던 선글라스를 다시 눈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담배요. 아 얼마든지 피세요."

     그러면 그렇지. 일단 말이 붙었으니 이제 술술 풀리기는  시간 문제

   겠지.

     L씨는 담배 하나를  꺼내어 건네주며 라이터로 불까지  깍듯하게 붙

   여 주었다.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저씬! 괴로우면 다 담배 피웁니까?"

     "앗, 이거 아저씨라고 하지 마세요. 이래봬도 서른 두 살,한창 팔팔

   한 총각이랍니다."

     결혼 2년째인 L씨는 짐짓 거짓말을 했다. 아무렴 아저씨보다야 총각

   이 났지  않을까 해서였다. 요즘 돈  많은 유한 마담들이 어디 아저씨

   찾는 것 보았는가.

     담배를 빨던 그녀가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니, 이봐요? 댁이 총각인지 아저씬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보기를

   했어요? 아니면 무엇으로 증명을 한답니까? 요즘은 고등학생만 되어도

   총각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랍니다. 하물며 서른 두 살씩이나 먹어

   놓고는..."

     "아, 손님도... 그렇게 따지면야 할 말이 없읍죠."

     이야기가 어찌 음담패설로  심상찮게 흐른다. 오늘 잘 하면 봉을 건

   지겠구나. 솟아오르는 기쁨을 꾹꾹 눌러 참으며 L씨는 어서 본론이 나

   오기를 기다렸다. 차는  어느덧 잠실 대교 부근을 지나 워커힐 사거리

   쪽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아저씨 그러지말고  오늘 날도 그렇고 기분도  심숭생숭 한데 나랑

   드라이브나 더 합시다. 내 합승 요금까지 생각해서 삯은 후하게 처 드

   릴 테니..."

     "요금을 주신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어디로 모시면 좋을까

   요?"

     "예까지 왔는데 다시 시내로 굳이 돌아갈 일 있나요? 저기서 우회전

   해서 그냥 양수리 쪽으로 쭈욱 내 달립시다."

     그녀는 주저 없이 차들이 미등을 깜박거리며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

   사거리를 가리켰다.  말을 하는 폼이  전에도 어느 놈팽이랑 수없이도

   와 본 길인 듯했다.

     "양수리라면 양평 가는  길 아닙니까? 거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는 곳 아닌가요?"

     "그래요, 그쪽으로 쭈욱  빠졌다가 분위기 있는 곳에서 커피나 한잔

   하고 돌아오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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