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4)

     ☞셋째 이야기: 남자 좀 불러 주세요

     "아저씨! 여기, 남자 좀 불러 줄 수 있죠?"

     호텔 객실에서 걸려 온 여인의 전화에 프런트 데스크에서 전화를 받

   던 성일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옛! 뭐...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이, 이 아저씨 눈치 되게 없기는...이 방에 남자 하나 불러 달라

   고요."

     "아 예 손님, 그런 건 곤란하군요. 이  밤에 어디 가서 남자를 불러

   드립니까."

     "아니, 여관에 남자가 그렇게도 없단 말입니까?"

     "남자들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만, 숙박 업소에서 매춘 행위를 알선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손님."

     전화기에서 잠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 나왔다. 목소리로 보아서 여

   인은 서른 중반쯤의 나이 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여관에 와서 남자를 불러 달라니. 성일은 의아스러웠다.

     기실 남자들이 술 한잔씩을 걸치고 췻김에 여관에 와서 여자를 찾는

   일은 이따금씩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찾는 일은 여관

   종업원 생활 10년 경력의 성일로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잠시 말을 끊었던 여인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이 아저씨  되게 멋대가리 없네. 누가 남자를 알선해 달

   라고 했어요? 그냥 아무라도 좋으니 남자 하나만 불러 달란 말입니다.

   화대를 주고받는 일도 아닌데 뭐 법에 걸릴게 있다고 자꾸 그래요"

     "아... 예 예,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리죠."

     갑작스레 야기된 사태에 서둘러 전화를 끊은 성일은 손님 안내 일을

   보고 있는 진수를 불렀다.

     "이봐! 미스터 조. 303호 손님 대체 누구야?  여자 손님인데 남자를

   불러 달라는군."

     군대를 갓 제대하여 아직 머리가 짧은 스포츠 머리 그대로인 진수가

   마악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데스크로 걸어왔다.

     "남자를 불러 달라고요? 세상에 별꼴을 다 보는군요"

     ".그렇게 말하지 말고  자세히 설명을 해봐! 잘하면 좋은 건수가 될

   수도 있잖아."

     "그 손님, 전에도 가끔씩 남자와 오던 손님입니다.그런데 오늘은 이

   상하게 혼자 왔다 했더니 그 남자에게 바람을 맞았나 보군요."

     "제길, 그럼 맨 정신으로 그런 단 말야. 술도 안 마시고..."

     "아니, 술은 들어올 때부터 조금 취해 있었습니다.그리고 한시간 전

   에 또 맥주 몇 병을 시켜서 가져다 주었고요."

     "그래, 그래도 그렇지...."

     "생각 있으면 형이  한 번 가보시구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불쌍한

   아줌마의 외로움을 잠시 덜어 주는 것도 다 보시가 아니겠어요."

     "이런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군, 우리 마누라 알면 집에서 쫓겨나는

   꼴을 보려고 그래. 아무튼 내가 이 불야성 호텔에 입사한지 어언 10년

   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야. 그리고 여관에 와서 혼자 저

   러는 여자들  잘못 건드리면 꼭 뒷  탈이 나기 마련이지. 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 술에 취해 남자의 등에 업혀 들어와 강간을 당해 놓고

   는 술이 깨자 종업원들의 소행이라고 벌컥 신고를 했지 뭐야! 결국 그

   남자 친구의 범행으로 밝혀져  누명은 벗었지만 의외로 한심한 여자들

   이 부지기수라구."

     성일의 말에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구하던 차에 우연하게도 숙박업소로 발길을

   들여놓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기 그지없었다. 늘상 그런

   진수에게 자랑스레 10년 경력을 내세우는 성일 이었다.

     "형 말이 아무래도  일리가 있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여자들이 무서

   워지는군요."

     "그래, 이 여자도 적당히 달래 보아야겠군.괜히 건수 잡으려다 신세

   망치는 수가 있지."

     성일은 곧바로 303호로 전화를 했다.

     "예, 손님 프런트 데스큽니다. 제가 알아보았는데요.아무래도 좀 곤

   란하겠군요. 직원들도 모두 지금 바쁜 시간 이라서요. 외로우시더라도

   한숨 푹 주무시면 나아지실 겁니다."

     잠시후 여인의 성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아저씨가 지금 장난을 하나?"

     "네. 장난을 하다뇨?"

     다시 여인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잘 하시고 여기 맥주

   나 몇 병 더 같다 주어요. 마시고 푹 잘 터이니..."

     "예. 그거야 어렵지 않죠.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괜히 좋은 건수  하나를 놓치는구나. 전화를 끊은 성일은 후회의 마

   음도 들었지만 곧  자신의 결정이 현명했다는 판단을 했다. 이런 여자

   잘못 건드려 낭패를  본 경험이 어디 한두번 이었던가. 성일의 눈가에

   낯선 여인의 신비로운 향취가 아련히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을 지워 버

   렸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궁금하다는 듯 진수가 다가오며 물었다.

     "꿈깨시고 일이나 해. 다 끝났으니까. 맥주나 몇 병 더 가져다 달라

   는군. 마시고 자려나 보지. 서서히 열기를 식히면서."

     "하하하...맥주라... 그건 얼마든지 줄 수 있죠."

     젠장. 직업을 바꿔야겠군.  어쩌다가 내가 이런 여자들의 술 뒷바라

   지나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까.  이래봬도 명색이 군대까지 갔다

   온 몸인데...

     냉장고에서 맥주 두 병을  꺼내 든 진수는 곧바로 303호실로 올라갔

   다.

     "손님. 룸 서비습니다."

     "잠시만요."

     노크를 하자 방안에서 끈적끈적한 여자의 대답이 이어졌다.

     "들어오세요."

     "앗!"

     다음 순간, 쟁반에  맥주를 받쳐들고 문을 열던 진수는 당황해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여인이 하얀 속옷 위에 아이보리색 슬립만을 걸친

   채로 태연하게 문을 열고는 빙긋이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 손님... 옷을 입으셔야죠."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언 꺾어진  20대라고 자부하던 진수 였지만 그동

   안 여자 경험이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였던지라 얼굴이 붉어

   지며 뒤로 주춤거렸다.

     "에이 왜  이래 창피하게, 그 나이에 여자 속옷 한 두번  보는 것도

   아닐 텐데.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나 그 표정은 또 뭐야.복도에서 그렇

   게 서 있지 말고 어서 방으로 맥주를 가지고 들어와요?"

     여인의 당돌한 말에 기선을 제압 당한 진수는 엉겁결에 맥주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빨간 색 스탠드 불 하나만이  켜져 있는 방안은 마치 진수를 기다렸

   다는 듯 색색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탁자 위에 맥주를 내려놓고 잠시  여인의 육체에 넋을 잃고 서 있는

   진수에게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 뭐 해요 앉지 않고, 건물 바치고 서 있으려고 그래요?"

     "예. 저는 바빠서요. 내.. 내려가 봐야 하거든요."

     "참나,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답디까. 애인한테는 바람을 맞고 혼자

   처량히 있으려니 잠이 안 와서 그래요. 별다른 뜻은 없으니 이양 들어

   온거 맥주나 한잔 마시고 가세요?"

     "근무 중엔 술을 못 마십니다."

     "에이 근무는 무슨,  여기가 철책선 이라도 된답니까? 딱 한잔만 하

   세요. 더는 권하지도 않아요"

     여인은 영화 속의 샤론스톤처럼 다리를 꼬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때야 비로서 진수는  여인을 천천히 흩어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어깨에까지  늘어트린 긴 생머리.  서른 중반쯤의 나이답지 않게

   매우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바람 맞춘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진수는 여인의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제가 참 바보처럼 보이죠. 미친 여자 같지 않아요?"

     진수의 잔에 맥주를 부으며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제 남자는 지금쯤 다른 여자를 만나 침대를 뒹굴고 있을 거

   예요. 오늘 여기서 날 만나기로 해 놓고는 개자식, 그전부터 따라붙던

   젊은 년이 만나자고 하니까 그리고 달려간 거죠. 내겐 이렇다 할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지요. 뻔히 기다리고 있

   을 줄은 알면서.그래서 난 배신감에 몸부림을 쳤지요. 아까 남자를 불

   러 달라고 한건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죽고 싶은 그 심정 이해하시겠어요? 그렇게 라도 해야 마음

   속에서 용서가 될 듯 싶었지요."

     "그런 딱한 사정이 있었군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넘겼다.  하지만 성숙한 여인의 반

   나신을 바로 코앞에 두고 태연하게  앉아 있자니 속에서 한 움큼씩 불

   길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의외로 여인의 사유는  간단했다. 애인의 바람에 맞바람으로 복수를

   하고 싶은 심리. 여인은  오직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을 것이

   다. 여인에겐 지금 남자가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복수의 대상

   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쉽게 내 던질 정도로 여자가 한을 품으

   면 이토록 무섭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식의 복수라니 참으로 이상한

   복수가 아닌가.

     진수는 일도 잊어버리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총각은  몇 살이나 먹었지요?  얼굴도 꽤 미남이군요. 몸도

   튼튼해 보이고..."

     그러고 보니 마른침을 삼키는 건 진수만이 아닌 듯 했다.

     여인의 눈길이 묘하게 진수의 아래위를 ㅎ고 지나갔다.

     "예. 전 스물 여섯입니다. 몸이야 군에서 3년동안 체력 단련만 했으

   니 이리 될 수밖에 없죠. 전엔 약골 이었걸랑요."

     "그럼 여자 경험은 있겠군요. 얼굴이 이렇게 미남이니  당연히 여자

   친구도 있겠고..."

     "그 그야... "

     진수의 얼굴이 벌개짐을 여인은 놓치지 않았다.

     여인이 지금 무엇에 목적을 두고 있는지를 직감한 진수의 호흡은 갈

   수록 빨라져 갔다. 여인은 진수의 젊고 건장한 육체를 보자 복수심 위

   에 또 하나를 얹어 색기마저 발동했는지도 몰랐다.

     단숨에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운  여인이 갑자기 입고 있던 얇은 슬립

   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던 그녀가 술기운이었는지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괘... 괜찮으세요?"

     여인의 의도 따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달려든 진수가 여

   인의 몸을 부축했다.

     "아, 어지러워요. 저 좀 침대로 부축해 주시겠어요. 쉬고 싶군요."

     여인의 봉긋 솟아오른 젖가슴이  진수의 얼굴을 짓누르며 뒤이어 풋

   풋한 살내음이 코를 자극시켰다. 그녀의 몸은 익을 대로 익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따 주기를 기다렸던 농익은 과일처럼.

     이미 이성을 잃은 진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몸을 침대에 눕힌 후

   젖가슴으로 손을 옮겼다.

     아.. 짧게 신음 소리만을 토할 뿐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마치 모

   든 것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오히려  등뒤로 그런 진수를 힘껏 끌어 앉

   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모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러브호텔 불야성의 밤은 더욱 깊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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