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향해 달려가다.
지난 3년간 자신의 가슴속에 응어리 졌던 모든 감정을 기꺼이 토해낸 현준은, 피아노과 건물을
유유히 빠져나가며 다시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었다.
'조금은 시원해 질줄 알았는데.'
응어리졌던 절망감과 시기, 질투와 고통을 모두 '당사자'에게 '고백'한다면 조금은 개운해지지
않을까 하고 늘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을 토해내자, 현준에게 돌아오는 것은
먹먹한 슬픔 뿐이었다.
후우.. 이제 4시인가? 다시 보고 싶어졌네 현지..
입에서 무거운 담배연기를 깊이 뿜어내던 현준이, 시계를 확인하다 이윽고 다시 몰아치는
현지의 생각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한편 현준이 사라지고 나서, 피아노 옆에 덩그러니 남겨진 지훈은 현준이 자신에게 남기고 간
알 수 없는 말들을, 퍼즐을 풀듯 차근차근 조합해 보고 있었다.
'현준이 형이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 잘못같은건 분명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왜... 왜 나를... '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증오의 말을 쏟아내던 현준의 모든 말들을, 쉽게 믿을 수 없는 지훈이었다.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자신에 대한 현준의 알 수 없는 분노, 그리고
모든 원인에 자신이 그렇게까지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마는
지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준이 마지막으로 토해낸 말에 대해선 도저히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없었던
지훈이었다.
'애꿎은 침대는 또 뭐지? 정리?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침대라니...'
그렇게 퍼즐을 맞춰가던 지훈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무언가를 결심한듯 일어섰다.
현준이형 입으로 듣지 못할 거라면, 나 스스로 확인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다짐한 지훈이 천천히 자신의 휴대폰으로 현지에게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현지야? 아픈데 연습하느라 힘들지? 그래도 힘내. 아 그리고, 나 잠깐 집에좀 다녀올게.
잠깐 확인할게 좀 있어서. 저녁 시간 맞춰서 학교에 다시 올테니까 그 때까지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 사랑해...'
어렵게 사랑한다는 말을 써내려간 지훈이, 얼굴을 붉히며 전송버튼을 눌렀다. 지금 당장에는
궁금증이라는 갈증을 해갈하기 전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지훈이 서둘러
연습실을 떠났다.
뜨르륵... 드르르륵
아?!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강의실에서 오후내 이론 수업을 듣던 현지가 자신의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짧은 진동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현지야 왜 그렇게 놀라? 문자 왔나 본데
어?. 어 아무것도 아니야. 고마워
자신의 휴대폰을 자신에게 가져다 주는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사의 말을 전하던 현지는
문자의 주인이 누굴지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액정을 확인했다.
'지.. 지훈이다..'
혹여라도 현준의 이름이 액정에 새겨질까 두려웠던 현지는, 지훈이의 이름이 액정에 떠오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 갑자기 집에? 무슨 일이지? 뭘 확인하겠다고... 혹시 현준이 이상한 짓이라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다시금 얼굴빛이 사색이 된 현지가,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교수와
학생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황급히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갔다.
'이.. 이상한 짓 같은거 했으면.. 정말 가만 두지 않아.'
섹스가 끝나면 천천히 다시금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현지의 이성이, 현준에 대한 적개심을
천천히 끌어내고 있었다. 화장실로 뛰쳐 들어간 현지가 떨리는 손으로 현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받아.. 빨리 받으라고!
자신을 애타게 만드는 수화기 너머의 신호음이, 현지의 애간장을 더욱더 끓게 만들었다.
여보세요?
이윽고 수화기 너머로 현준의 음성이 흘러 나오자, 현지는 무섭게 현준을 향해 쏘아 붙이기 시작했다.
너... 너... 지훈이한테 무슨짓을 한거야?
!
갑작스런 현지의 전화에 당황한 현준이었지만, 현지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흘러나오자 한순간 현지보다 더욱더 혼란스러워진 현준이었다.
무슨말이야? 무슨짓이라니?
시치미 떼지마. 그렇게 부탁했는데, 니가 지훈이한테 결국 이상한 소리를...
알아듣게 설명을 해. 서지훈한테 아무짓도 안했어.
뭐.. 뭐라고?... 거.. 거짓말 하지마
내가 거짓말을 왜 해? 무슨 일인지 설명이나 좀 해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현준의 음성에서 일말의 거짓조차 느껴지지 않자, 현지가 흥분했던
마음을 차츰 가라앉히고 천천히 현준에게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 그 바보가. '
아마도 자신이 아까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린 말에 지훈이 바로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현준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현지에게 말했다.
서지훈이한테 아무말도 않했으니까, 괜히 넘겨집지마. 그나저나 꽤나 기분 좋은걸? 먼저 이렇게
전화를 다하고. 그래 마침 잘 됐네. 서지훈이도 집에 갔겠다, 아까 마지막으로 뒹군지도
벌써 4시간이나 지났겠다. 후우. 말 나온김에 이쪽으로 좀 와줘야겠어
아...
순간 아차싶은 현지였다. 지레 겁을 먹고 지훈에게 먼저 답장하지 않고, 현준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 화근이었다.
왜 대답이 없어? '시키는 건 다 하겠다며.'. 후우 여기 신성관 4층이야. 404호.
수업도 없고 한적하니 좋네. 기다리마. 딸깍
자.... 잠깐. 잠깐 기다려.
매달리듯 전화기 너머로 현준을 애타게 불러보던 현지였지만,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고
휴대폰을 내려놨다.
왜 또 이렇게 되어 버린거야.
자신의 실수를 탓하며 세면대에 두 손을 얹으며 거울속 자신을 천천히 응시하는 현지였다.
바로 이순간에도 현지가 무의식중에 벌인 또하나의 실수는, 지훈에게 어떤 연락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참을 화장실 거울을 응시하던 현지가, 고민끝에 강의실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천천히 신성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어느새 잡아탄 택시 뒷좌석에 앉아있던 지훈은, 현준이 흘리고 간 마지막 말을 연신
곱씹고 또 곱씹고 있었다.
'하아.... 너무 궁금하고 두려워서 미칠것같다. 침대라니... 도대체 뭐야
현준의 입에서 쏟아진 침대니 뭐니 하는 말을 쉴새없이 되뇌이며, 자신의 집으로 조금씩
내달리던 지훈은, 이내 말없이 택시 창문에 비치는 바깥풍경을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간신히 떼고, 겨우 신성관에 도착한 현지는 점심시간이후 다시 빠르게 자신의 가슴에 휘몰아치는 낯익은 감정을 마주하고선,
천천히 쉼호흡을 내쉬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조섞인 말을 내뱉던 현지가 오늘에만 벌써 몇번을 내뱉었는지 모를 그 말을 또다시 내뱉으며,
천천히 신성관으로 발걸음을 들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계단을 걸어올라가던 현지가 4층에 도착하자, 다시한번 긴 쉼호흡을 내쉬기 시작했다.
이미 익숙해질만도 한데, 현준에게 범해질때면 언제나 그렇듯 낯익은듯 낯선 감정이
현지를 적셔왔다.
'404호.'
현준이 말한 404호 강의실앞에 다다른 현지가, 강의실에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404라는
숫자를 말없이 응시하는 현지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현지는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천천히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되게 빨리 왔네? 혹시몰라 안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전화라도 걸까 생각중이었는데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빠르게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현지와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폰
액정을 번갈아 바라보던 현준이, 휴대폰을 책상위에 내려놓고 천천히 현지 쪽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원했어? 쪽
현지에게 가벼운 키스를 보낸뒤 살포시 자신을 감싸오는 현준의 품에 그저 말없이 안기는
현지였다.
후우... 이젠 조금 기대해도 되는건가? 마음까지 내게 넘어온거라고...
입다물고...... 빨리 니가 원하는거나 해...
..........
얼음장처럼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는 현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기대가 철저히 묵살당했다는
생각에 놀란 표정으로 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현준이었다.
너 잘도 그런....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놀라며 말하는 현준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현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니가 들어놓은 그 더러운 '보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지훈이를
어떤 의미에서든 지켜주고 싶어서기도 해
이런 썅... 왜! 도대체 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것 같은 얼굴을 하고 현지를 쏘아보며 말을 올리던 현지를
내려보던 현준이 기어이 괴성을 토해냈다. 이미 지훈과의 만남에서 현준이 한번의 분노를
쏟아냈던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현지는, 갑작스레 들려오는 현준의 괴성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너 말야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것 같아서 말해주겠는데, 넌 아까 낮에도 내 밑에 깔려선
금방이라도 죽을것 같이 잘도 짖어댔었어. 왜 기억안나? 그것만인줄 알아? 확신하건데
넌 지금도 무언갈 기대하면서 잘도 여기에 찾아왔을 거야. 이젠 네 눈만 봐도 그걸 알 수 있어.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여기까지 쳐달려와서는 그따위 지랄같은 말을 해대는건데? 어?
자신의 어깨를 잡고 거세게 흔들어대며 연거푸 괴성을 토해내는 현준때문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낀 현지였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고 자신의 어깨위에 걸쳐진 현준의 팔을
내리며 천천히 현준에게 말했다.
맞아. 너하고 지난시간동안 관계를 가졌던건 사실이고, 니말대로 니 밑에 깔려서 연신
쾌락의 몸부림에 신음했던 것도 사실이야. 그래 솔직히 난생 처음 느껴본 기분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만큼...... 빠져들었었어. 하지만.. 하지만 너무 이율배반적이긴 하지만...
무서우리만큼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토해내던 현지가, 현준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다음 말을 내뱉었다.
역시 나의 마음까지 너에게 보내진 않았어. 이미 한번 말했지만, 내가 사랑하는건 지훈이야.
언제나 그래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되겠지만, 우린 결코 떨어지지 않아.
끝내 주말동안 자신의 머릿속에서 정리했던 내용들을 천천히 토해내던 현지의 얼굴에, 복받치는
설움때문에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녹아들고 있었다.
......... 큭
마지막으로 죽을 힘을 다해 현준에게 '고백'하듯 말하던 현지를 바라보며, 현준이 가소롭다는 듯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듯 서있는 책상 위에 휴대폰과 함께 놓여있던
'보험'을 잡아 들었다.
아~ 그러셔?. 그러니까 여태까지 나랑 몸을 섞고 뒤엉키면서, 소리 지르던 모든 일들이
겨우 이 잘난 '보험'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했다?... 뭔가 앞뒤가 안맞지
않아? 이 따위꺼 없어도 말이야......
그렇게 말하던 현준이 양손으로 씨디를 잡고 힘껏 꺾어버렸다.
팍
씨디가 반으로 쪼개지며 날카로운 비명을 강의실에 쏟아냈다.
이따위꺼 없어도, 넌 충분히 다시 내 밑에 깔려 미친 듯 소리지를 거라고 확신한다만?
눈앞에서 쪼개지며 사라지는 현준의 '보험'을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던 현지가 다시 말없이
현준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고백컨데 말이야. 처음에는 단순히 서지훈의 여자친구고, 니들이 생각할 땐 그저 '치졸한' 복수나
시기, 질투심의 발로로 너를 안을 뿐 이라고 몇번이고 나 자신에게 소리쳤었어. 그런데 말이야
사람의 몸이란게 놀라울 정도로 신기해서, 그렇게 몇번을 안고 또, 좋아 죽을듯한 쾌락을 서로
나누는 사이가 되어 버리고 나선말야. 자꾸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는거야.
단순히 김현지를 안고싶다. 만지고 싶고 섹스를, 그리고 쾌락을 또 나누고 싶다. 뭐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어가던 현준이, 자신 또한 지난 주말동안 충분히 생각하고 얻어냈던
그것을 현지에게 조심스레 토해냈다.
너를... 김현지를... 내 옆에 계속 두고 싶다. 그런 감정들이 생겨나 버렸다.
이내 울음을 멈추고 현준의 고백에 귀를 기울이던 현지가, 다시금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끝날때까지 자신과 또다시 쾌락을 '공유'하던 현준의 입에서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고백'이 흘러나오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현지였다.
역시 무리냐?.. 마음속까지 '통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현지를 바라보며, 언제가 그랬듯, 어렴풋이 기억나는 지난 날을
기억해내며 현준이, 그날과 같은 질문을 현지에게 던졌다.
................
이제 너를 옭아매는 '보험'따윈 없어. 그러니까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해줘
대답을 재촉하는 현준을 바라보며 이내 현지가 고개를 숙여버렸다. 이성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답은 하나인데, 자신의 입밖으로 그것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현지는 알 수 없었다.
후우... 역시 끝까지 무리인가 보네
그렇게 말하던 현준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 강의실이건 어디건,
장소따윈 이미 현준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후우
한참을 말없이 담배만 빨아대던 현준이 마지막 한모금을 깊게 빨아들인뒤, 바닥에 짧아질대로
짧아진 그것을 천천히 내던졌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현지를 힐끗 쳐다보며
또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고 서있어? 이미 보여줬다시피 더 이상 너를 협박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진부한
소설속 표현을 빌려보자면, 넌 자유의 몸이 되버린 거지. 근데 왜 그렇게 서 있는 거냐고?
반쯤 현지를 책망하는 마음이 현준의 마음안에 자리 잡은 까닭에, 현지를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말을 거는 현준이었다.
............
현준의 말 그대로였다. 우습게도 현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은 확실히 지금 '자유의 몸'이
된 상태다. 이미 방금전 현준의 행동을 통해서 모든 것을 확인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몸을
죄여오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이미 여러번 마주쳤던 낯익은 그 '기분'이 현지를 감싸며
마치 망부석 처럼 현준앞에 꼼짝없이 서 있게 만들었다.
왜? 왜 그러고 있냐고? 혹시.....
기대고 있던 책상에서 몸을 일으킨 지훈이 현지에게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내게 마음을 주는 일따윈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나의 몸 만큼은 느끼고 싶어서 그러는거야?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준을 피할 생각도 없이, 그저 자리에 서있는 현지였다.
'왜... 왜인거야. 왜 움직이질 못해...'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현준의 고백을 듣고 나서부턴, 그리고 조롱섞인
비아냥까지 모두 흡수해버린 이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현지였다.
자신을 그토록 야릇하게 만들었던 쾌락의 그림자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새에 다시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현지가 현준이 다가올수록, 알 수 없는 비참함에 더욱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거네. 아깐 사랑이니 뭐니 잘도 지껄여댔지만, 결국 나하고 몸은 비벼대고 싶다.
뭐 그런거네? 생각보다 너 음란한 구석이 있어.
본능이 고개를 들면 본능이 시키는대로 거침없이 말을 쏟아대던 현준이, 또다시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현지를 조롱하듯 떠들어댔다.
뭐 좋아. 언젠가 말했지만, 마음까지 얻을 수 없다면 몸이라도 그저 감사히 받겠어. 그나저나
강의실에서 나누는 섹스라. 벌써 '젖어' 버린거 아니야? 김현지는 충분히 음란한 여자니까말야
...........
불과 몇분전 강의실에 발을 들여놓고 현준을 마주쳤을때의 그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또다시 현준의 조롱에 말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있던 현지였다. 또다시 현준의 말에 부정따윈
할 수 없었다. 현준과 쾌락에 빠져드는 순간만큼은 현지에게 있어 현준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후우... 역시 섹스파트너밖에는 안되는건가 보네. 기껏 고백했는데,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좋아. 그럼 '니가 원.하.는.' 것을 시작해 보자.
고개를 숙인 현지에게 유독 '니가 원하는'을 강조하며 말하던 현준이 현지의 치마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틀렸어. 움직일 수 없어. 또... 이성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다.'
직감적으로 쾌락이 몰려올 것을 알아챈 현지가 이내 체념한 듯 치마속으로 들어오는 현준의
손가락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차피 갖지 못할 거라면....'
현지의 치마속에 손을 넣고 허벅지를 주무르던 현준이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너희 둘다 철저히 파멸시켜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