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는 저물고 달은 차오른다. (12/21)

#해는 저물고 달은 차오른다.

욕실에서 현준과 격정적인 정사를 나눴던 현지는 가까스로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의 머리위에 내려앉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으며 일어났다.

벌써 몇번째 현준에게 자신의 육체를 탐닉하게끔 허락한 현지는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며 마음을 정리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샤워기의 물줄기에 몸을 맡기며

지난 새벽 그랬듯 서서히 다리를 벌려 자신을 스쳐간 현준의 흔적을 차근차근

본능적으로 정리해 나갔다.

'아... 아파... 하지만..... 뜨거워'

자신의 여성에 손을 얹고 현준의 흔적을 지워가던 현지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짜릿한 고통에

단발마의 신음을 토해냈다.

그 짧은 시간동안, 하지만 그만큼 길고 격렬했던 현준과의 정사를 통해 자신이 차츰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방금전의 흩뿌려진 시간들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된 현지였다.

하지만 우습게도, 지난 시간동안 단 한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자신의 연인을 머릿속에 겨우 

그려내며 자신의 정말 솔직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현지였다.

'지... 지훈이...'

나지막하게 지훈의 연인을 기억해 내던 현지는 물과 함께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맞으며 말없이 샤워기에 몸을 내맡겼다.

서둘러야겠다. 벌써 8시야.

한참을 멍하니 샤워기 앞에 서 있던 현지에게 욕실 밖에서 현준이 크게 소리쳤다.

이런저런 생각에 정신없이 방황하던 현지는, 욕실까지 크게 울려퍼지는 현준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샤워기의 스위치를 내려 쏟아지는 물줄기를 멈췄다. 

지난밤과 바로 방금전까지 현진을 최고수준의 쾌락에 빠지게 만들었던 현준이었지만,

큰 소리로 자신의 의식을 잡아준 현준에게 어떤면에서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현지였다.

닦는둥 마는둥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현지는 현준의 욕실에 걸려있던 수건으로 자신의

머리를 털어낼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아니 가리지 않았다.

'보기좋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현준은 조금 만족한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의 나신을 현준에게 내보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현지였다. 아니 이제와서

그런 사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온몸에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욕실앞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내고 있던 현지는, 자신을 응시하는 현준을 바라보며 그저 방금전

나눴던 섹스의 쾌락이 길게 가져다 주는 여운을 뿌리치지 못하고 곱씹어 볼 뿐이었다.

제대로 닦아야지. 바닥에 물 떨어지잖아

그렇게 말하는 현준이 욕실안에 있던 다른 수건을 손에 들고 현지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몇번의 질펀한 정사로 자신의 모든걸 현준에게 허락하고 내보인 현지에게 더 이상의 수치심 

같은건 남아있지 않은 듯 보였다. 다만 자신의 몸을 수건으로 감싸오는 현준의 촉감에 다시한번 

야릇한 감정이 돋아나고 있음을 감지할 뿐이었다.

옷 정리해서 방안에 놨어. 가서 입고 그만 나가자

어느새 깔끔하게 외출복 차림으로 차려입은 현준이 현지의 몸을 정리하며 말했다.

짧게 대답한 현지는 천천히 현준의 방으로 향했다.

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현준은 휘몰아치는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느라 쉴새없이

머리를 굴렸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문밖으로 나서는 현지와 현준은 아침이 가져다주는 신선한 공기를

가슴깊이 빨아 들이며 천천히 집앞에 세워진 현준의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뜨거웠던

지난밤의 질펀했던 섹스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온몸을 시원하게 적시는 아침공기였다.

문 열어줄게

현준이 차 옆에 서서 현지를 내려다보며 보조석의 차문을 열어준다. 그런 현준을 애써 외면하며

현지가 천천히 차에 올라탔다.

뒤이어 운전석에 올라타며 시동을 거는 현준을 보며 현지가 조용하게 말했다.

학교로 가지말고, 우리집으로 가줘

!

현지의 갑작스런 한마디에 현준은 말없이 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집? 학교에 안가고? 오늘 수업있을거 아니야

........

추궁하듯 묻는 현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현지가 이내 입을 다문다. 

그런 현지의 얼굴을 바라보던 현준이 이내 단념한듯 천천히 운전대를 잡고 엑셀을 밟는다.

현지의 집은 학교까진 한시간 정도 걸리지만 현준의 집에선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현준의 차로 15분정도 달리자 현준은 현지의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여기야?

........응

현준이 자신의 집앞에 차를 세우자, 천천히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몸을 빠져 나가는 현지였다. 

그 모습을 보고 현준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현지를 따라 내렸다.

집에서 쉬려고?

바보같은 질문인건 알지만, 지난밤과 오늘 아침 뻔뻔하리만큼 많은 말들을 현지앞에 술술 

풀어내던 것과는 다르게 좀처럼 쉽게 운을 때지 못하는 현준이었다. 

이렇다 저렇다 별다른 말도 없이 현지는 천천히 자신의 집앞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무슨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현지가 자신의 집안으로 사라질때까지 끝내 아무런 말도

건내지 못하는 현준이었다.

??. 삐리릭

전자음과 함께 현지가 이내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안... 전화할게'

무슨 말이든 해보려던 현준은 끝내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이미 모습을 감춘 현지가 남긴

흔적속에, 입속에 그저 몇마디가 쳇바퀴처럼 맴돌 뿐이었다.

미안? 사과? 자신은 물론 현지까지도 말할 수 없는 쾌락에 빠져들었던 지난시간동안, 차마

느끼지 못했던 뜻모를 감정이 현준을 순식간에 파고 들었다. 현지가 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한참을 자신의 차 옆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는 현준이었다.

후우.... 정말 알 수가 없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던 현준이 이내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학교로 향했다. 캠퍼스로 향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에도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 무던히 애쓰는 

현준이었다.

현지가 겨우 자신의 집안으로 들어왔을땐, 지방에 내려가셨던 부모님이 아직 올라오시지 

않았는지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난밤 동안 부모님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현관에 털썩 주저않은 현지가 자신의 가방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아마도 지난밤 자신이 

현준밑에 깔려 최고의 쾌락을 경험하는 동안 몇번이고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을지도 모를

지훈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밀려오는 죄책감과 함께 내려다본 휴대폰의 액정에는 지훈의 전화번호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던 현지가 겨우 몸을 일으켜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자신의 침대의 감촉을 천천히 느끼며 쓰러져갔다.

흑.... 흑... 흑

한참을 침대위에 쓰러져 있던 현지가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그것은 지난밤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수놓았던 아찔한 쾌락이 지나가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죄책감과 절망감에 대한 진한 회한의 눈물이었다.

자신과 마주한 쾌락을 마냥 웃으며 맞이할 만큼 현지는 강한 여자가 아니었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후회의 몸부림과 고통의 탄성이 바로 조금전까지도 자신의 몸을 뒤덮었던 

육체의 향락을 몰아내고 아주 빠른 속도로 현지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하아.... 흑..... 흑

그렇게 한참을 침대위의 시트를 적시는 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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