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으로 가는길 (4/21)

#집으로 가는길

오후 6시를 넘어갈 무렵 현지는 지훈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늦게까지 지속된 무용과 연습으로 여느때와 같이 심신은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남자친구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힘든 생각조차 

저 멀리 지울 수 있게 만들었다.

현지는 지훈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뭘 할지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해봤다. 

우선 샤워부터 하고 저번에 그랬듯 지훈의 옷을 잠깐 빌려입고 잠시 잠을 청하리라.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늦게 들어올 지훈을 위해 요기할것도 잠시 만들어 놓으리라. 

뭐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냥 행복한 현지였다.

어느덧 지훈의 집앞에 도착한 현지는 서둘러 지훈의 집으로 들어가려 열쇠를 잠금쇠에 넣고 

돌릴참이었다. 바로 그 때였다.

어? 현지씨?

현지가 고개를 들어 돌아본 곳에는 현준이 서 있었다.

어? 아네... 안녕하세요..저...

현지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성의 존재를 마주했다. 현준이다. 

지훈의 같은과 3년선배. 일전에 지훈과 같이 다니면서 몇번 마주친 적이 있어서 인사한 

기억이 있지만, 웬지 형언할수 없는 기분나쁜 느낌이 들어 조금은 경계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훈이 꽤나 의지하는 선배여서 딱히 싫은 내색을 드러내진 않았었다.

지훈이한테 돌려줄 음반이 있어서 연락도 없이 왔는데, 이런 행운이

현준이 강조하며 말하는 '행운'이라는 말에 잠시 현준을 응시하는 현지였지만 

이내 안정을 찾고 대답했다.

아네. 지훈이 오늘 잡지 인터뷰 가서요. 오늘 늦게 올거에요

아 맞다. 저번주에 얘기들었는데 제가 깜박했네요. 그런데 현지씨는 여기 왠 일이에요?

현준이 웃으면서 묻자 현지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여자친구가 남자친구 집에 오는게 이상해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자신도 모르게 현준을 쏘아보며 말하는 현지였다.

아니요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그냥 단순한 의미로 여쭤본건데 기분 상하셨어요? 

미안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현지씨가 있길래 반갑기도 하고 해서 여쭤본거에요

얼굴빛이 붉어지며 사과하는 현준을 보며. 괜히 민감하게 반응한 조금 전의 자신의 행동이 

아차싶은 현지였다.

아. 아니요. 저도 연습끝나고 바로 와서 조금 예민했나봐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헤헤. 

잠깐 놀러왔어요. 지훈이네집이 저희집보다 좋거든요. 헤헤

다시 태연하게 웃음을 보이며 간단히 말하는 현지였다. 부모님이 어디가셨다느니 

이런저런 사정따위 이 사람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 그러셨구나. 그래도 현지씨 덕분에 시간 낭비는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하마터면 주인 없는 집앞에서 기다릴 뻔 했어요 멍하니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걸어 오셨나봐요?

여름 날씨치곤 선선한 날씨임에도 얼굴에 땀이 맺혀있는 현준을 바라보며 현지가 묻는다.

아. 걸어왔어요. 지훈이네 집은 저번에도 한번 와 봤고해서 꽤 만만하게 생각하고 걸어 봤는데. 

역시 무리였네요

학교에서 여기까지요?

현지가 놀랍다는듯 재차 묻는다.

네. 생각보다 멀었어요 역시. 뭐 어쨌든 현지씨. 괜찮다면 이 음반 나중에 지훈이에게 

전해주지 않겠어요?

현준은 다시 옅은 웃음을 보이며 자신이 들고온 음반을 현지에게 건낸다.

아네. 이따가 지훈이 오면 돌려줄게요. 근데 땀을 너무 많이 흘리세요

네 걷다가 잠시 서 있으려니, 땀이 흐르네요. 아 저기 너무 미안하지만 괜찮다면 

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현준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현지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아. 예. 뭐 그럼 들어오세요. 물이야 드릴수 있으니까요

현지가 아무리 현준을 탐탁치않게 생각한다해도, 정중히 부탁하는 사람을 한칼에 

거절할만큼 현지는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현준은 웃음띤 얼굴로 지훈의 집에 들어서는 현지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발을 들였다.

지훈이네 집은 참 언제봐도 멋져요. 

쇼파에 앉아 자신의 솔직한 감상평을 쏟아나는 현준을 바라보며 현지가 말을 이었다.

저도 자주 오는 편은 아니라, 뭐라 하긴 그렇지만 지훈이 이미지랑 꼭 맞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편안하고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 

서운해요?

뭐가요?

지훈 생각에 넋을 뺏긴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어는 현준을 깜짝놀라 바라보며 묻는 현지였다.

아니 그냥. 방금 한말 생각해보면, 아쉽다는 느낌이 많이 녹아 있는 듯 해서요.

현지는 얼음이 담긴 글래스에 물을 담아 거실로 나오며 답했다.

서운하긴요. 지금 우린 서운할 틈도 없어요. 4년 동안이나 이어온 시간인대요. 

서운한 감정같은게 서로에게 있다니 당치도 않아요. 여기 물이요

아 고마워요 현지씨

현지가 건내준 얼음물을 건네 받으며 단숨에 들이키는 현준이었다.

갈증 타셨나보다.

현준의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현지가 물었다.

아예. 걸어오느라 갈증이 심했나봐요. 그래도 현지씨 덕분에 살것 같네요

에이 별거 아닌데요

그렇게 대답하는 현지를 곁눈질로 살피는 현준이었다.

무용과에서도 알아주는 퀸카에, 현지 본인이 원한건 아니었지만 소위 '천재의 여자친구'라는 

타이틀은 대학입학후 언제나 현지의 뒤를 따라다녔고, 학내에서 현지를 꽤나 유명인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이쁘긴 이쁘네..... 그나저나 서지훈은 그렇다치고 얘는 정말 처녀일까?..... '

물 한잔을 다 마신 현준이 컵을 현지에게 건내며 말했다.

너무 고마웠어요. 현지씨. 이제 그만 가야겠네요.

아. 벌써요?

헉. 왜요? 아쉬워요? 더 있을까요?

놀리듯 웃음띤 얼굴을 들이미는 현준을 보며 얼굴을 붉히는 현지였다.

농담이에요. 농담. 저도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해요. 그나저나 현지씬 좀 쉬어야 겠어요. 

눈이 졸려운 눈인걸. 쾡하니.

아...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사실 오전부터 지속된 스케쥴로 천근만근인 현지였다. 지훈의 집에 오m 샤워부터 하고 

한숨 붙일 생각이었다.

음. 그럼 빨리 가야겠다. 나중에 현준이 오면 전해주세요. 음반

네. 걱정마세요. 담에 뵈요

어느새 문밖을 나서고 있는 현준을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잊지않는 현지였다.

후우. 그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가보네? 괜한 느낌이었나, 근데 되게 좋은 향기가 

나는것 같기도 했..... 에이 내가 지금 무슨? 빨리 씻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현지는 샤워준비를 했다.

한편 지훈의 집밖으로 나온 현준은 지훈의 집이 훤히 보이는 곳에 주차해둔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하여튼 커플이 쌍으로 조심성도 없고 경계심도 없다니까. 조금만 웃으며 말해줘도 

긴장감이 스르륵 풀려버려 저 커플은

그렇게 말하며 현지몰래 들고나온 지훈의 집열쇠를 검지에 걸고 허공에 돌려보는 현준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시간이 7시... 지훈의 인터뷰는 10시부터 시작할거고 여차저차 따져보면 

12시나 되어야 돌아온다는 말씀. 그럼 한두번은 할 수 있겠군. 기대되네....

그렇게 뇌까이는 현준의 얼굴 위로 가로등의 등불이 물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