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호텔 6
열여섯번째이야기 :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애인
"세상에 만남도 하필이면 그런 만남이 어디 있겠니?"
오랜만에 만난 K는 제법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만남이라니?..."
나는 제법 궁금해진 얼굴로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건 비극도 보통 비극이 아니라구? 하필이면 그 많은 곳 놔두고 그곳에서 그녀와 부딪힐게 또 뭐야."
그러면서 녀석은 기막힌 사연 하나를 내게 말해 주었다.
"너 혹시 숙이 기억하지?"
숙이라면 녀석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죽고 못살 정도로 가깝게 사귀던 아가씨였다. 이름이 숙이라는 외자였는데 보기에도 시원스런 성격에 얼굴도
제법 예쁜 편이어서 나와도 같이 어울려서 몇번인가 술을 마신 기억이 있었다.
"기억하고 말구. 그 애와는 헤어졌다며?..."
"그래, 우린 헤어졌지. 내 직업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헤어진 건 순전히 나의 결정이었다구. 내가 헤어지자고 그녀에게 얘길 꺼냈을 때 어땠는
줄 아니?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었단다. 나 없이는 죽어도 못 산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몇년 후에 돈 많이 벌어서 번듯한 가게라도 하나
차린 후에 연락을 하겠다구..."
"그랬었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녀가 뭐 잘못 되기라도 한거야?"
나는 그럴수록 더욱 호기심이 당겼다. 내심 나도 몇번의 만남으로 그녀에게 다소간의 호감이 있던 터였다. K는 들고 있던 맥주 잔을 연거푸 들이킨
후에 말문을 열었다.
"왜, 그런 게 있다잖아. 사랑하던 연인들이 헤어지게 되면 서로에 대하여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들을 하곤 하지. 그래서 이다음 행여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더라도 서로의 그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미소로써 지난날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니?"
"녀석, 웬 서론이 그렇게 기냐? 빨리 말하지 않고는."
"그런데 나도 그녀를 만났다구. 바로 얼마 전이었어. 헤어진지 꼭 일년 여 만이었지. 내심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었는지라 얼마나 가슴이
설레였는지 아니."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만나 장소가 바로 비극이었다는 거야. 어쩌면 세상에 그렇게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였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더구나."
"그렇다면 혹시?...."
녀석의 이야길 듣고 보니 나름대로 집히는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설마 일뿐이었다.
"그래, 그녀를 다시 만났지. 그런데 그게 어디였는지 아니? 바로 내가 일하는 모텔에서야. 그리고 그날은 내가 근무하는 날이었고.. 새벽 두시
쯤의 일이었어. 낯익은 웃음소리에 깜짝 놀라 나는 현관 문을 처다 보았지. 한쌍의 남녀가 술에 적당히 취하여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더군.
한눈에 보아도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 수 있었지. 처음부터 꼭 서로를 부둥켜 안은 그들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지. 그때 우린 두눈이 마주친
거야. 세상에 비극도 그런 비극이 어디 있겠니. 생각을 해봐. 당시 내 가슴이 어떠했겠는지."
"그래서?...."
"그녀도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는 눈치더군. 그러더니 이내 냉정을 되찾고는 말하는 거야."
"뭐라고?"
"아저씨 여기 방값이 얼맙니까? 그러더군.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이야. 정말 더러워서 일 못하겠더군. 생각을 해봐. 누군 좋다고 남자를
부둥키고 왔는데 나는 바로 내 코앞에서 다른 남자와 그 짓을 하는 그녀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니...."
"정말 비극이군.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내 경우라고 생각을 해 보니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물며 녀석의 가슴은 온전했을까 만,
"잊으라는 신의 뜻이었겠지. 제길,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일이..."
"그러니까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하잖니?"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어?"
"새벽녘이었어. 같이 온 남자가 잠든 틈을 이용하여 그녀가 프런트로 내려왔더군. 우린 날이 밝은 때까지 맥주를 나누어 마셨어."
"그녀가 뭐라고 하든?"
"펑펑 울기만 하더군. 나를 잊으려고 곧바로 남자를 만나 사귀었다는 거야. 이미 결혼 약속까지 한 상태였었지."
"그런데 하필이면 그 많은 여관 놔두고 네가 일하는 곳으로 와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 건 또 뭐래?"
"내가 직장을 옮겼는데 그녀가 미쳐 그걸 모른 거겠지. 아무튼 벨보이가 아니고선 겪을 수 없는 벨.보이들만의 비극이라네."
열일곱번째이야기 : 조선족 동포 K씨의 눈물
외람된 얘기지만 조선족 동포 K씨의 이야기를 잠시 하고 넘어가야 겠다. 중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조선족 우리 동포들이 불법으로 밀입북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매스컴의 보도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이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고 또 밀입북 과정에는 비열한 사기가
극성하여 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또한 그렇게 동포들을 사기치고 속여 등쳐먹는 사람들도 대부분 우리 한 동포인
한국인들이라는 사실도.
여기 K씨도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웬만치 먹고 사는 우리네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남의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정말 피해를 입고 돌아가는 그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이야기들이다. 행여 어찌되었건 그들은 우리와 한 피를 나눈 한 핏줄, 한 동포가
아니던가.
K씨는 중국 흑룡강성이라는 곳에서 살던 사람이다. 그녀의 남편은 우리로 치면 면사무소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한국에 가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거금을 마련하여 한국행 밀입국선에 올랐다. 물론 한국에서 그쪽으로 건너간 현지 브로커들의 개입이 있었음을 말할 나위도
없다. 같은 마을의 처녀 하나와 함께 갖은 수모와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도착한 그들이 가까스로 취업한 곳은 서울 방이동에 있는 한 모텔이었다.
같이 밀입국선을 탔던 사람들이 힘든 공장이나 공사판으로 떨어진 것에 비하여 그들은 비교적 운이 좋게도 모텔 청소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힘든
공사일 보다는 비교적 일도 손쉬웠고 보수도 넉넉한 편이어서(사실 우리 나라는 직업적인 인식 관계로 그 방면의 일손이 꽤 딸리는 편이라 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끼가 가득했다. 중동인이나 외국인들에게는 의례히 내국인 근로자들 급료보다 싼 급료를 지불하는 관례에 비추어 당시 그
모텔의 사장은 인정이 후한 사람이었고 내국인 종업원들과 언제나 똑같은 급료를 지불하였다.
당시 숙식과 함께 K씨와 그 동네 처녀가 받았던 돈은 60만원 정도였고 그들은 꼬박 2년 여를 열심히 일을 했다. 간혹 K씨는 고향에 두고 온
남편과 두 아이들 생각에 눈물을 쏟기도 했고 그 동네 처녀는 약혼자와 긴 사연의 서신을 늘 주고받았다. 비록 먹고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지만
그들에게도 따스한 가정이 그리웠고 고향이 그리웠던 것이다. 가끔씩 중국으로 긴 시외전화를 하는 것을 빼고는 그들은 정말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옷 한벌, 화장품 하나 사 쓰지 않으면서 오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들은 고향에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들뜬 마음으로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아마도 겨울 초입의 시월 어느
날로 전해진다. 열심히 참고 일한 덕분으로 두 사람 모두 천여만원이라는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들의 얘기로는 그 돈이면 중국에서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큰 돈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행의 운명은 그들을 끝내 좌절의 구렁으로 몰아 갔다. 날씨가 제법 추워지기 시작한 어느 날, 불시에
불법 취업자 단속반이 들이닥쳤고 그들은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들이 불과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의 금의 환향을 보름 정도 남겨 둔
시점이어서 모텔의 전 직원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무사를 빌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국에 조사를 받게 된
K씨는 국내법을 잘 몰랐던 관계로 행여 그동안 번 돈을 압수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었고 그들을 취업시켜 주고 쭉 뒤를 봐주었던 한국인
소개업자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급히 중국의 가족에게로 송금시켜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작은 사건은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밀항선을 탔던 두 사람에게 엄청난 시련이 되었다. 믿고 돈의 송금을 부탁했던 한국인 업자는 그들의 생명 같은 그 돈을 가지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불법 취업자란 딱지를 달고 제대로 수사 한번 할 수도 없었고 결국 그들은 임시 수용 시설에 보호되어 있다가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강제 이송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 엄청난 상황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먼 동포의 나라에까지 와서 힘들여 번 돈을 모두 잃게 된 K씨의 마을
처녀는 목을 메 자살을 하였고 K씨 혼자 쓸쓸히 가슴을 쓸어 내리며 귀향선을 타야 했다. K씨의 이런 슬픈 소식을 모텔의 직원들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반 년이 흐른 어느 봄날, 멀리 흑룡강성에서 날아온 K씨의 편지 덕분이었다. 편지에 K씨는 마지막으로 덧붙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세상
그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이렇게 자신과 한 핏줄인 동포들을 등쳐먹은 민족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열여덟번째이야기 : 술이 원수?
술이란 아무리 뒤집어도 묘한 구석이 있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술만큼 묘약으로 작용하는 식품이 또 있을까. 어렵게 어렵게 선을 넘지
못하고 진행되던 사랑도 어느 날, 술 한잔으로 술술 풀리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서로가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남자들이야 의례 그런 것이지만 빨리 여자를 육체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여자도 은근히 남자에게 마음은 있는데 첫 벽을
허물기란 참으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때 두 사람을 자연스레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로 술의 힘이리라. 굳이 술에 취하고 안
취하고를 떠나서 이성을 흐물거리게 하는 취기로 인해서 적당히 뒷변명의 여운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신세대들이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엔 많이들 그랬다. 하지만 과연 술이란 것이 그렇게 항시 사랑의 묘약만은 아닌 것 갔다. 남자들이야 별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여성들에 있어서는 술이야말로 가장 조심해야 할, 자신을 지키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술만 먹으면 기억을 전부 날려 버리는 여성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녀들에겐 과히 술이란 컴퓨터 자판의 Del 키와 같은 존재이다.
어느 날, 그런 휘발성 뇌를 가진 한 미모의 여인이 회사동료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술에 약하다는 약점을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주 앉은 그들은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같은 회사 동료 씨들이 아닌가. 거기에다가 문제는 그녀가 그런 대로 술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식사 후에 반주로 마시려던 술은 한잔이 두 잔이 되고 두잔이 석잔이 되어 결국에는 그녀의 이성을 잃게 하고 말았다.
술자리가 끝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 중에서 비교적 술을 덜 마신 동료가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다주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였던가. 그 동안 내심 그녀를 짝사랑하였지만 이미 약혼자가 있는 그녀였는지라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처지가 아니였던가. 그 마당에
그가 이런 우연찮게 찾아온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동료들을 따돌리고 한적하게 차를 몰던 그는 얼마를 달리다가 비교적 한적한
언덕길에 위치한 모텔 앞에 차를 주차시켰다. 그리고 취해 정신을 놓고 있는 그녀를 부축하여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슴이 뛰고 정신이 아찔했다.
늘 꿈에만 그리던 그녀와 한 방에 나란히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도시 믿어지지 않는 거였다. 일이 그러했으니 그런 그의 뇌리에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또 그것이 얼마만큼 돌이키기 힘든 죄악인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미쳐 숨을 돌리기도 전에 정신없이 그녀를 가진
후에라야 그는 서서히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그녀에겐 가을이면 결혼식을 올릴 약혼자까지 있질 않은가. 그러나
얼떨결에 일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확장되고 말았다. 잠시 후 냉정을 되찾은 그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녀의 옷을 원래대로 입히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범죄자처럼 완벽하게 처음처럼 방을 정리한 그는 작은 메모지 한장을 남기고 황급히 모텔을 빠져나갔다.
"술이 너무 취하셨군요. 집을 몰라 이곳에 방을 잡아 드리고 저는 먼저 갑니다. 자세한 상황은, 내일 출근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메모지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술에 취하여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켰는지도 모르고 마냥 골아 떨어져 있던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새벽 네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메모지를 발견한 후에라야 또 자신이 일을 저지른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혹 무슨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번쩍 정신이 든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옷 매무새부터 살펴보았다. 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이미 일을 치른 동료 씨가 완벽한 사후
처리를 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에겐 직감 같은 것이 있질 않은가. 더구나 아무리 뒷처리가 완벽했다손 치더라고 폭풍과도 같은 해일이
자신을 몸을 훔치고 지나갔는데 말이다. 그때 또다시 핸드백 안에서 연신 삐삐가 울려 대기 시작했다. 음성을 들어보니 그녀의 약혼자가 아닌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어김없이 전화로 사랑을 속삭이곤 하던 그녀가 새벽이 다 되도록 집에도 안 들어오고 연락이
두절됐으니 약혼자로서는 애가 탈만도 했다. 삐삐를 확인한 그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무슨 말로도 자신의 현 상황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뾰족한 변명이 생각난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자신을 추스려보니 별 일이 있지도 않았던 터라 그녀는 약혼자에게 전화를 걸고 사실대로 설명을
했다. 약혼자의 화가 머릿끝가지 치솟았음은 물론이다. 세상에 생각을 해 보시라. 어느 남자가 여자 혼자서 술에 취하여 여관에서 잠을 잤다는데
믿을 남자가 있겠는가. 쏜살같이 위치를 물어 그녀가 있는 여관으로 달려 온 약혼자는 그녀에게는 들리지도 않고 다짜고짜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주머니에 슬그머니 만원권 지폐 한 장을 밀어 넣었음은 물론이다.
"이봐요, 00호 여자 손님 말이오. 언제 누구와 함께 들어왔는지 사실대로 말해 줄 수 있겠소?"
잠시 돈을 곁눈으로 확인한 종업원은 짧은 순간 복잡한 번뇌에 휩싸여야 했다. 자신의 새치 혀끝으로 두 남녀가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임은 뻔한 이치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대강의 사태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종업원은 곧바로 여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랜 숙박
업소 경험과 사태를 재빠르게 한눈에 파악할 줄 알았던 종업원의 반짝이는 재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글쎄요.. 워낙 바빠서 자세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손님이 술이 많이 취해서 말입니다. 동료 직원이란 분이 방을 잡아주고 갔습니다."
"얼마나 머물다가 갔습니까?"
"머물기는요. 여기서 방값을 지불하고는 곧바로 가셨지요. 대신 저보고 잘 좀 모셔 달라고 당부를 하시기에 제가 방까지 부축해 드리고 문도 잠가
드렸는걸요."
그제서야 약혼자는 안심이 되는지 얼굴 표정이 환해지며 그녀를 데리러 방으로 올라갔다. 종업원은 직장 동료라는 남자가 결코 그녀를 그냥
두었으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방으로 올라간지 한시간이 더 넘어서 방을 나왔을 뿐더러 무언가에 쫓기듯 그 표정이 불안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로 인한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하여 사랑이 깨어지는 불행한 일은 막고 싶었다. 어차피 육체적인 순결의 유무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그날 아침, 정답게 손을 마주 잡고 나가는 두 연인을 보면서 비로소 종업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어젯밤에 자신의 연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기 대문이다.
자, 만약에 여러분이 그 모텔의 종업원이었다면 어떠한 선택을 하였겠는가. 참으로 아리송한 세상사가 아닐 수 없다.
열아홉번째이야기 : 호모와 레즈비언들
숙박 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호모와 레즈비언들이 그리 이상한 손님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업소의 매상을 올려 주는 중요한 단골
손님이기까지 하다. 그러면 그들은 일반 손님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있을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일반 손님들과 전혀 차이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욱 얌전하고 매너가 있다. 비록 그들의 손을 잡은 서로의 상대가 같은 동성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지 그들은 남들과 똑같이 서로의 손을
잡고 애정표현을 한다. 옛날에는 사회의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서인지 여간해서는 표를 안 냈지만 요즘은 시각의 변화도 많이 바뀌었을 뿐더러 그들
스스로도 많이 당당해 지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웬만하면 업소에 들어오는 손님이 일반 손님인지 아니면 동성애 자들인지는 쉽게 구분이 간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애정 표현들을 하기 때문이다.
모텔 불야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위와 같은 동성애자 손님이 공교롭게도 각각 한 팀씩 단골로 있었다고 한다.
먼저 남성 동성애자 손님의 나이는 60이 넘은 할아버지 한분과 40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그들은 꼭 토요일 서너시쯤 하여 두시간 정도씩
대실로(숙박 손님이 아닌 잠시 쉬어 가는 손님) 여관을 이용하곤 했다.둘 중에 누가 여자 역할을 했는지 어떻게 피임을 했는지 따위는 자세히 전해
듣지 못했다. 두 사람 다 가정이 따로 있어 보였는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런 둘의 행위로 인하여 가정에서 찾지 못한 그 무엇을 채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레즈비언 단골 손님은 한달에 한두번씩 불규칙하게 들르곤 했다. 처음에는 종업원들도 그들이 레즈비언들임을 몰랐다고 한다. 남자들이야 여관의 특성상
아무리 속이려 해도 표가 나지만 여자들은 여간해서 표가 나지 않는 편이다. 인근의 술집 아가씨들도 종종 두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숙박 업소에
들려 잠을 자는 경향이 있었기 대문이다. 그런 그들이 꼬리를 잡힌 것은 빈 방으로 알고 방을 청소하기 위해 잘못 열고 들어간 청소 아주머니
때문이다. 손님이 체크아웃한 방으로 오인한 아주머니는 별 생각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만 것이다. 그녀들의 나이는 꽤
어린 편이어서 스물 한두 살이 겨우 넘은 나이였다. 그 일 이후, 그녀들은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단골 여관을 옮긴 모양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오는 단골 손님이 있었다. 물론 동성이 아닌 일반 남녀 손님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이처럼 보였고 다정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인근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으로 인하여 경찰에서 급작스레
인검이 나온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주민등록증을 조회하는) 두 남녀 중 한명이(남자처럼 분장했던) 여자로 밝혀진 것이다. 머리는 짧은 스포츠
머리였고 남자 구두에 남자 옷, 굵은 목소리는 틀림없는 남자 였건만 어이없게도 그는 틀림없는 여자의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
레즈비언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안 그들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간 친하게 알고 지내던 형으로부터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된 것이다. 그간 오직 그들을 혐오하는 눈으로만 바라보던 내 시선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취재라는 변명 하이긴 했지만 그 형을 따라서 종로의 빠(동성애자 술집)들과 극장(그들이 자주 오는 극장) 목욕탕(그들이 자주 모인다는)들을
다녀보게 되었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많은 양의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고 얼마 전엔 그들에 대한 글을
한번 써 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많은 글들이 나와 있고 또 함부로 그들의 이야길 다룬다는 것이 왠지 조심스러워 아직까지 미루고 있다.
글의 앞에서 나는 오직 흥미 위주의 동성애자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이다. 이쯤하여 우리 일반인들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고쳐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똑같은 사고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더욱 착하고
온순한 사람들 뿐이다. 다만 태어날 때부터 몸과 마음을 따로 가지고 태어난 조물주의 실수가 있었을 뿐이다. 오죽하면 그들이 목숨을 내 걸고 성
전환수술에 매달리겠는가. 이 글을 읽은 우리들 만이라도 그들에 대하여 색안경을 끼기 보다는 따스한 위로의 눈빛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이야기 : 연예인의 호텔 출입
요즘은 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서로가 사랑만 한다면 혼전에도 얼마든지 자신의 몸을 허락한다. 또한 그것이 별 이상할
것도 못 되는 세상이다. 그렇게 따지고 본다면 우리 사회의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맨, 정치가들도 다 사람이기에 생리상 우리들과 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이다. 특히 연예인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들도 따지고 보면 똑같은 사람이고 한창
혈기가 왕성할 젊은이들이 대다수인데도 우리들은 유난히 그들의 행동에, 특히 이성 문제에 있어서는 이해보다는 비난을 더 남발하며 관심을 보인다.
이 기회에 나는 그들도 사람이기에 우리와 똑같을 수 밖에 없을 뿐더러 따듯하게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옳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여관
불야성에서 이야기의 마지막 편으로 전해들은 몇몇 연예인들의 행동은 가히 정도가 지나쳐 가증스러운 것들이기에 밝히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연예인들도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도 엄연히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권리가 있고 또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되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지 않은 정말로 두 얼굴의 연예인들이 많다는 데에 있다. 알다시피 연예인들은 1급 데이트를 할 때에는 절대로 호텔에 들지
못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호텔에는 어느 곳이고 공히 그들을 노리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느 곳을
그들의 밀애 장소로 택할 것인가? 바로 변두리의 허름하고 알려지지 않은 그러면서도 비교적 깨끗한 장급 여관들이다. 그런 곳의 시설들이 대부분
어렴풋한 조명 불빛에 종업원들도 한 둘이 있기 마련이어서 행여 누가 얼굴을 알아 볼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다. 모텔 불야성도 그런 범주에 속했는지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몇번인가 단골 삼아 다녀간 모양이다.(그들이 단골로 온 이유는 종업원들은 절대로 연예인들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젊은 몇몇의 사람들에 대하여는 통상적으로 이해를 해 주고 덮어주기로 하자.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정말로 이중적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불야성 종업원들의 설명이다.
가장 웃기는 케이스가 신문에 서로 깊이 사귀고 있다고 특종 발표가 나는 커플 케이스다. 그들은 당연히 펄쩍 뛰며 교제를 부인하고 신문사를
고소한다고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그들은 모자를 푹 눌러 쓰거나 가발을 쓴 폼으로 여러번 불야성을 다녀 간 후였다. 직업상 입이 무거운 종업원들은
절대로 이런 일을(특히 이름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 더욱 웃기는 일은 그들 중에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귀던 x양을 차버리고 다른 여자와
당당히 신문에 결혼 발표를 하는 경우다. 방송에서는 특집으로 다루고 코메디로 둘이 만난 일화를 꾸미기도 하지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두번째 황당했던 일은 Y(편의상 명칭)씨의 뻔뻔함이다. 그는 잘나가는 중견 탤런트로써 연예인 커플로도 유명한 편이다. 그런 그는 곧잘 묘령의
아가씨들을 바꾸어 가며 불야성을 자주 찾는 편이라고 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쭉빠진 아가씨를 데리고 허겁지겁 밀애를 즐기기 위해
여관을 찾았다. 이쯤 해서도 그럭저럭 남자들의 습성상 이해해 줄만한 대목이다. 문제는 다음 날 생겼다. 왜, TV아침 프로를 보면 가끔 연예인
부부들이 가십으로 초대되어 사회자와 그간의 결혼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코너가 종종 있다. 문제는 어제 밤만 해도 다른 여자와 부인을 속이고
여관에 들었던 그가 다음날 아침에 부인과 자식까지 데리고 TV에 출연하여 보여주는 역겨운 거짓말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부부애를 강조하며
서로의 사랑에 대하여 확인하듯 수다를 떤다. 한술 더 떠 멋모르는 사회자는 그들의 결혼이 깨지지 않고 별실을 맺은 이면에는 서로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조롱 당하는 이들은 시청자 들 뿐이다.
그 외에도 많은 경우가 있지만 행여 실명이 거론될까 두려워 더이상의 이야기를 자제한다. 아무튼 사람들은 겉보기와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잘생긴 연예인 하나를 가슴에 품고 흠모할 바에 나같으면 외롭게 시를 쓰다가 늙어 버린 고독한 시인을
사랑하겠다. 청소년들이여! 부디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르게 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