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호텔 1
첫째 이야기: 몰래 카메라 사건
"돈을 가지고 나오세요! 더도 덜도 아닌 삼백만원입니다. 반드시 당신 혼자 나와야 합니다. 만약 엉뚱한 생각을 한다거나 경찰에 신고를 하는
날에는 당신과 당신의 여비서가 주인공이 된 이 삼류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를 당신의 마누라 앞으로 보내 주겠소. 명심하세요."
전화를 끊은 진수는 괜스레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바야흐로 오랫동안 구상해 오던 사업의 첫 단추를 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날 저녁, 서울역의 시계탑 밑에서 오십을 조금 넘긴 뚱뚱한 사내 하나가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사내를 지켜보던 진수는 경찰의 잠복이 없는 것을 오랫동안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그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검은 선글라스에 챙이 큰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었다.
"이봐! 어쩌자고 이런 해괴한 짓을 하는 거야? 누구 신세 망칠 일있어? 액수도 가볍고 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터이니 어서 그 비디오
테이프를 내 놓으시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내가 다가오는 진수를 알아보고 서둘러 가방을 건네주며 말했다.
"액수는 틀림없겠죠?"
"그걸 말이라고 하나?"
돈 가방을 건네 받은 진수는 신문지에 감싸 놓았던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사내에게 내밀었다.
"자, 그럼..."
진수가 무어라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사내는 총총히 사라졌다. 유유히 근처의 지하 커피숍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은 진수는 가방을 열고 사내가
건네준 돈을 확인했다. 빳빳한 만원 짜리 신권 삼백장, 틀림없는 삼백만원 이었다. 진수의 입가에 잔잔히 미소가 번져 갔다. 진수에게 돈을 건네준
사내는 제법 잘 나가는 전자 회사를 운영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런 사내가 그의 딸 같은 나이의 어여쁜 여비서와 함께 러브호텔에 들러서 재미를
보다가 재수 없게도 진수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적나라한 둘의 정사 장면을 비디오에 찍혀 가면서.
진수가 이곳 경기도 외각의 모 유원지 근처에 있는 러브호텔에 취업을 한 것은 대략 일년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두어 번의 사업 실패로 인해
심신은 지쳐 있었고 나이는 어언 삼십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 그는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새로운 희망으로 일어서려는 그에게 어느 날 작은 시련이 닥쳐왔다. 전날이 어머님의 생신이었던 관계로 집엘 들렀다가 아침 일찍 출근을 했던
그는 첫 손님에게 갑작스레 뺨을 얻어맞은 것이다. 주차장으로 검정색 외제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올 때부터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참으로 싸가지 없게 생긴 어린 계집아이 하나와 문을 밀치고 들어선 사내는 다짜고짜 진수를 쳐다보며 말했었다.
"야! 깨끗하고 조용한 방 하나 줘라!"
참으로 기가 막혔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이십대 중반을 갓 넘긴 듯한 나이였다. 그런데 예사롭게 반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숙박
업소의 종업원이 술집의 웨이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인식 때문에 어느 정도의 반말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이처럼 나이도 어린 애송이 같은
손님들까지 반말을 하는 데에는 정말 화가 치밀었다. 돈푼께나 있다고 안하무인격으로 되어 가고 있는 부모 잘 만난 부류들이었다.
"얼마냐!"
객실로 안내를 하고 방값을 지불할 때에 또다시 그가 건들거렸다. 방값을 받고 돌아서던 진수가 순간 획 돌아섰다.
"손님! 들으시기에 기분 나쁘시겠지만 아무에게나 그렇게 반말하는 버릇 좀 고쳐 주세요. 듣기에 기분이 불쾌하군요."
잠시의 기분을 참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순간, 돌아서던 사내의 손바닥이 진수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이유는 숙녀 앞에서 무안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진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았다. 손님과 문제가 생기면 불리한 것은 언제나 종업원이었다. 또한 업주들은 그 누구도 문제가 생겨
경찰들이 드나드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날 이후, 진수는 모두에게 톡톡히 복수를 하기로 했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해 꾹 참고서 일년 동안 일은 해 왔지만 팔자 좋게 러브호텔을
찾는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증오스러웠던가? 모두가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있을 벌건 대낮에 그것도 대부분 자신의 어린 딸과 같은 새파란
계집아이들을 끼고서, 보기에도 그 얼마나 역겨운 일들이었나..
며칠후, 서울 청계천 전자상가를 찾은 진수는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한 가게에서 담뱃갑 만한 크기의 최신형 소형 비디오 카메라 한대와
부속품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자신이 일하고 있는 러브호텔로 돌아온 직후, 칠층의 제일 복도 끝쪽 객실 안 커튼 사이에 교묘히 위장을
한 후, 사온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그리고는 그 뒷편에 있는 자기 숙소의 텔레비전과 비디오로 선을 연결해 놓았다. 그러다가 돈이 있어
보이고 바람을 피우는 것이 분명한 듯한 남녀가 호텔로 들어서면 그 방으로 태연히 안내를 하고 재빠르게 숙소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비디오로
녹화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알몸이 찍히는 줄도 모르고 들어선 남녀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정사를 벌일 것이다. 그 첫 케이스로 걸려든 것이 모
전자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는 오십 줄의 나이에 땅딸막한 체격의 소유자였지만 스물을 갓 넘긴 여자와 온 것으로 보아서 바람을 피우는 것이 분명
하였다.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 문을 열고 자동차 등록증을 꺼내어 주소와 이름을 알아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약 석달 후, 철저하게 바람을 피우고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로만 골라 약 오십 여명의 정사 장면을 비디오로 찍고 리스트를 작성한 후, 진수는
서서히 행동을 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그 첫 작전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커피 한잔을 서서히 들이킨 진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어차피 그런 인간들은 쓰레기들이다. 돈 좀 있다고 우쭐대고 자기 자신들만 알고 집에서 자식을 속이고 마누라를 속이고
짐승처럼 욕망에 쫓겨 사는 인간들... 그런 작자들의 돈을 뜯는다고 해서 그리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안절부절 하지 못하던 아까의 그 사내가 떠올라 이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마누라가 무서우면 왜 숨겨 가며 몰래 바람을 피울까.
남자들이란... 하지만 돈이라면 자신의 육체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던지는 요즘의 젊은 여자들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남자들의 가슴에 안겨 그 더럽고 추한 몸뚱이들을 흔들어대면서 그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할까. 물질 만능이 가져온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제부터 그 벌레 같은 년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리라.
진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대략 스물 다섯개의 전화번호와 신상이 적힌 종이 쪽지를 소중하게 매만졌다. 하나에 삼백만원씩만 잡아도 스물 다섯
명이면 칠천오백만원의 거금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가 좀 맘씨 좋은 사람을 만나면 오백에서 천만원 까지도 액수를 높여 보리라. 돈 몇백만원에
함부로 신고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늘 고생만 시켰던 어머니. 그 돈으로 실패한 사업도 일으키고 못다한 효도도 해야겠다.
얼마를 걷던 진수는 한적한 골목길에 이르러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섰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보세요. 거기 박전무님 댁이죠?"
"네?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 신지요?"
"예, 안녕하세요. 저 같은 회사에 일하고 있는 미스터 김입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전무님 좀 바꿔 주세요."
"아, 그러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사십 줄쯤 돼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 나왔다. 진수가 두 번째로 점찍은 모 대기업의 전무였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이봐요? 정신 차리고 잘 들으세요. 지금 나는 당신이 불륜을 저지른 정사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봐! 그게 무슨 소리야? 테이프라니..."
"지난 달, 토요일에 들렀던 러브호텔을 기억하지요?"
"헉!"
"그날 방에서 비밀리에 찍은 비디오 테이프를 내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삼백을 준비해서 내일 종로 삼가 전철역 지하 매표소에서 기다리세요.
원한다면 테이프를 돌려주겠습니다. 저녁 여섯 시에 반드시 혼자 나와야 합니다."
"그... 그럽시다. 제발 테이프를 꼭 돌려주시오."
의외로 일이 쉽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바람을 피웠으니 어느 누구인들 테이프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한심한 인간들... 다음날 저녁 여섯시,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종로 삼가 전철역으로 향한 진수는 가방을 들고 서성이고 있던 사내를 발견하고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갔다.
"물건은 준비되었습니까?"
"그러문요. 자 여기!"
순간, 손을 내미는 진수의 팔에 사내가 재빠른 동작으로 수갑을 채웠다. 잠복 중인 형사였다.
"앗! 어떻게 된 일이야! 이거 놔! 놓으라고!"
발악을 하는 진수에게 낯선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그래요, 이놈이 틀림없어요. 그날 그 호텔에서 방 안내를 했던 놈이. 이봐! 그 테이프는 어디에 있지?"
"감히 신고를 하다니... 약속이 틀리잖아?..."
"이봐! 이 미친 녀석아, 우린 부부야.. 나이 차이가 좀 나서 그렇지.. 넌 잘못 짚었던 거라구. 집에서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기에 여관을
이용했을 뿐이야. 마누라가 워낙 소리를 잘 질러서. 젠장, 그것도 죄가 되나?"
"......"
모든 것을 체념한 진수는 순순히 형사들의 연행에 따랐다.
이 이야기는 경기도 인근에 있는 한 러브호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실제의 범인은 의외로 선한 마음씨를 가진 청년이었고 돈보다는 세상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을 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경찰의 잠복근무를 눈치채고도 도망가지 않고 순순히 연행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대낮에 러브호텔에 들리는 여관족들은 방에 들어서면 혹시나 숨겨 놓은 카메라가 있지나 않을까 살피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고 세상에
하나의 경종으로써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연출된 것이 아닌 실제의 생생한 포르노를 담은 그 많은 비디오 테이프들이
후에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둘째 이야기: 비극의 아버지와 딸
날씨는 구질구질 오후부터 쉬지 않고 가을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제기랄, 이놈의 날씨가 또 술생각을 하게 만드는구먼."
퇴근을 위해 양복 상의를 챙겨 입던 김과장은 사무실 창문 너머로 뿌옇게 흐려 있는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과장님! 퇴근 안하세요? 저희들 먼저 들어갈께요."
느그적 거리는 과장의 동작을 못 기다리겠다는 듯 여직원인 미스백과 미스홍이 먼저 조르륵 사무실의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쯧쯧,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서 탈이라니까."
김과장은 다소 불쾌한 듯 그녀들이 분별없이 풍기고 간 독한 향수냄새의 뒤를 핥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어이, 김과장! 날씨도 그런데 한잔 안 하려나?"
마찬가지로 퇴근을 하다가 복도에서 마주친 영업부 민부장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넸다.
"아 아닙니다. 민부장님, 오늘이 마침 마누라 생일날 이라서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김과장은 자기 자신이 그렇게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 놀랐다.
"아- 그래, 그렇다면야 할 수 없지. 대머리라도 꼬셔 보는 수밖에."
대머리라 불리우는 영업2부 신과장은 나이 사십을 갓 넘긴 나이답지 않게 전직 모 대통령처럼 대머리가 일찌감치 벗어진 민부장의 유일한 술 파트너
였다.
"흥흥, 한참을 젊고 혈기 왕성할 나이를 술로 보내다니... 쯧쯧 불쌍하도다."
저만치 사라지는 민부장을 바라보며 김과장은 흘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김과장의 머릿속엔 이미 오늘을 멋지고 황홀하게 보낼 훌륭한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던 그는 잠시 집에서 바가지를 들고 용감무쌍하게 안방을 지키고 있는 푹 퍼진 마누라를
떠올렸다. 지금부터 추진해야 할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일면의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시집 올 때만 하여도 예쁘다는 소리를 숱하게
듣던 그녀였다. 그러던 것이 굴비 새끼처럼 세 딸을 줄줄이 낳아 버리더니 이제는 아예 몸매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고구마 자루처럼 푹 퍼져
버린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식욕만 왕성했으면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만 밤의 욕구는 그것 이상으로 왕성하여 늘상 김과장을 의무방어전으로
내몰았다.
"크~ 지겨운 놈의 마누라."
회사를 한참을 벗어나 한적한 골목에서 택시를 내린 김과장은 전에도 두어 번은 왔을 법한 능숙한 폼으로 근처의 포장마차를 찾아 들었다.
"어머머 김사장님 오셨네. "
자신이 꽃다운 시절부터 청상 과부 였다고 누누이 강조하던 오십대의 포장마차 여주인이 그런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아는 채를 했다. 우연히
포장마차를 찾았던 어느날 작은 중소기업의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것인데 그녀는 그 말을 진짜로 알아들은 모양 이었다. 하지만 듣기에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기실 이런 곳 아니면 언제 말년 오십 줄을 바라보는 과장이 사장님 소리를 들어보랴만.
"그래, 김천댁은 자식도 없이 내내 혼자 살었수?"
그의 단골메뉴인 소수 한병에 골뱅이를 시켜 놓고 김과장은 형식적인 물음을 던졌다. 머릿속에는 잠시 후의 프로젝트에 흥분해 하며 저만치 한쪽
길모퉁이에 비를 맞고 서있는 `로망스'란 네온 간판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바라볼 따름 이었다.
"에그 차라리 혼자 였으면 이놈의 팔자가 이렇게 사납지나 않지. 왠수 같은 자식놈 하나 때문에 녀석 대학 뒷바라지하며 이렇게 살고 있지
않겠수."
'흠. 열녀 났구먼.'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김과장은 서둘러 소줏잔을 비웠다.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해야만 그의 목표는 100% 달성할 수 있는 터였다.
"그래, 김사장님은 자식이 어떻게 되시우?"
김천댁이 코를 훔치며 물었다.
"나야 딸만 오지리로 셋이니 아들 하나만도 못하지. 막내가 이제야 고등학교 3학년이고 두 년이 다 대학교엘 다니니.. 그럼 뭐하나. 멀쩡하게
키워 놓으면 언제고 훌쩍 떠나면 그만인데."
"정말 맞는 말이지요. 요즘 딸 키워봤자 소용이 없다니깐."
적당히 술이 오르자 김과장은 뚱뚱하고 자그마한 키를 흔들며 벌게진 얼굴로 포장마차를 나왔다. 거리는 어둠이 내려앉아 색색의 네온등들이 더욱더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잠시후 이리저리 골목길을 휘두르던 김과장은 조금은 멋쩍은 얼굴로 '로망스'라고 쓰여진 간판 안으로 빨려 들듯
들어갔다. '로망스'는 일종의 러브 호텔이었다.
"아 사장님 아니세요. 기다렸습니다."
이십대 중반의 보이 하나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잠시 후 방으로 안내된 김과장은 다짜고짜로 보이의 허릿춤으로 시퍼런 만원 짜리 한
장을 찔러 넣으며 거칠게 속삭였다.
"야. 너 아까 한 약속 잊지 않았겠지."
"아 김사장님도 성미도 급하셔. 금방 불러 드릴 테니 잘좀 해 주십쇼."
주머니의 팁을 확인한 보이 녀석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야야, 근데 말이다. 정말 스무살을 갓 넘긴 영계에다가, 에 그 뭣이냐. 대학생이 맞는감."
"아 그럼요. 제가 돈 받고 뭣하러 거짓말하겠습니까. 다들 알아주는 일류대에 쪽쪽 빠진 애들이에요. 요즘은 그렇게 감쪽같이 하루에 한두껀씩
아르바이트 삼아 몸을 파는 애들이 한두명이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자기 옷도 사 입고 용돈도 하고 학비도 내고 남자 친구 밀린 하숙비도 내주고.
요즘 애들이 얼마나 약았는데요."
"캬~ 기가 막힐 노릇이군. 여기 돈 있으니 어디 그 중에서 제일 기가 막힌 놈으로 한번 불러 봐라."
"예, 예, 그러문입쇼."
보이가 나간 후 김과장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욕조에 물을 받고 옷을 훌라당 벗어 던진 채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사실 김과장이 이 여관에 드나든지도 어언 일년이 다 되어 갔다. 마누라한테 싫증이 나도 벌써 날 나이였지만 말년 과장에 변변치 못한 외모 때문에
그럴싸한 바람 한번 피워 보지 못하고 지내다가 우연히 알게된 곳이 이곳이었다. 전에는 주로 전문 콜걸들과 일부 집안이 가난한 여성들이 낮엔
회사에 다니고 밤엔 몸을 팔았고 그 맛에 그럭저럭 회포를 풀며 지내 온 그였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관 보이 녀석으로부터 정말 반가운 전화가
왔던 것이다.
"아 글쎄 말입니다. 대학생 몇년이서 그 짓을 하겠다고 찾아왔지 뭡니까.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재발로 걸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김사장님께 전화 드린 겁니다."
"어 어 험. 그래 그래."
전화를 받으며 김과장은 떨리기까지 했다. 세상 정말 말세로다.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더러운 놈의 기집년들. 어찌됐든 좋도다. 그래야 우리
같은 놈들도 영계 구경하며 살맛 나게 세상을 살지...
대충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친 김과장은 흐뭇하고 흡족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서 잠시 후의 일을 회상했다. 꼬깃꼬깃 마누라 몰래 감춰 두었던
비상금을 화대비로 모두 날렸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저어-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스물도 채 되지않은듯한 가녀리고 어린 목소리 였다.
"네에, 들어오시죠."
그는 다소 점잖은 목소리로 그러나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억누르며 다가가 문을 열었다. 붉은 취침등 밑에 드러난 소녀의 옆모습은 보이의 말대로
어리고 청초해 뵈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창피했음인지 뒤로 돌아서서 입고 있던 옷들을 한커풀 두커플 벗어 던졌다. 불빛을 타고 인어같이
완벽한 그녀의 나신이 마치 꿈을 꾸듯 김과장 앞으로 넘실거렸다.
"아악... 더 더는 도저히 못참겠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김과장은 방안의 불을 환하게 바꾸고는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그녀를 껴안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까무러치듯 놀란 두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잡았던 몸을 놓고 뒤로 나자빠졌다.
"앗- 아.. 아빠얏!"
"아악.. 미...미영아..."
이 참으로 우연하고도 불행한 비극의 덫에 걸린 두 부녀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해 듣지 못했다. 당시 종업원의 말을 빌리면 그
김과장이란 사내는 딸이 방문을 밀치고 도망치듯 여관을 빠져나간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줄담배를 피워 대며 그 자릴 떠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애지중지 금지옥엽 키워 놓은 딸이 그렇게 물질 만능에 쫓겨 타락해 가고 있음에 그는 눈물을 흘렸으리라. 더군다나 자신 또한 아버지로서의 모든
인격을 무너트린 채 그렇게 더럽고 추한 모습을 딸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셋째 이야기: 남자 좀 불러 주세요
"아저씨! 여기, 남자 좀 불러 줄 수 있죠?"
호텔 객실에서 걸려 온 여인의 전화에 프런트 데스크에서 전화를 받던 성일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옛! 뭐...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이, 이 아저씨 눈치 되게 없기는... 이 방에 남자 하나 불러 달라고요."
"아 예 손님, 그런 건 곤란하군요. 이 밤에 어디 가서 남자를 불러드립니까."
"아니, 여관에 남자가 그렇게도 없단 말입니까?"
"남자들이 없기야 하겠습니까만, 숙박 업소에서 매춘 행위를 알선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손님."
전화기에서 잠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 나왔다. 목소리로 보아서 여인은 서른 중반쯤의 나이인것 같았다. 그런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여관에 와서
남자를 불러 달라니. 성일은 의아스러웠다. 기실 남자들이 술 한잔씩을 걸치고 췻김에 여관에 와서 여자를 찾는 일은 이따금씩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찾는 일은 여관종업원 생활 10년 경력의 성일로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잠시 말을 끊었던 여인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이 아저씨 되게 멋대가리 없네. 누가 남자를 알선해 달라고 했어요? 그냥 아무라도 좋으니 남자 하나만 불러 달란 말입니다. 화대를
주고받는 일도 아닌데 뭐 법에 걸릴게 있다고 자꾸 그래요"
"아... 예 예,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리죠."
갑작스레 야기된 사태에 서둘러 전화를 끊은 성일은 손님 안내 일을 보고 있는 진수를 불렀다.
"이봐! 미스터 조. 303호 손님 대체 누구야? 여자 손님인데 남자를 불러 달라는군."
군대를 갓 제대하여 아직 머리가 짧은 스포츠 머리 그대로인 진수가 마악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데스크로 걸어왔다.
"남자를 불러 달라고요? 세상에 별꼴을 다 보는군요"
".그렇게 말하지 말고 자세히 설명을 해봐! 잘하면 좋은 건수가 될 수도 있잖아."
"그 손님, 전에도 가끔씩 남자와 오던 손님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혼자 왔다 했더니 그 남자에게 바람을 맞았나 보군요."
"제길, 그럼 맨 정신으로 그런 단 말야. 술도 안 마시고..."
"아니, 술은 들어올 때부터 조금 취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시간 전에 또 맥주 몇병을 시켜서 가져다 주었고요."
"그래, 그래도 그렇지...."
"생각 있으면 형이 한번 가보시구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불쌍한 아줌마의 외로움을 잠시 덜어 주는 것도 다 보시가 아니겠어요."
"이런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군, 우리 마누라 알면 집에서 쫓겨나는 꼴을 보려고 그래. 아무튼 내가 이 불야성 호텔에 입사한지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야. 그리고 여관에 와서 혼자 저러는 여자들 잘못 건드리면 꼭 뒷탈이 나기 마련이지. 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 술에 취해 남자의 등에 업혀 들어와 강간을 당해 놓고는 술이 깨자 종업원들의 소행이라고 벌컥 신고를 했지 뭐야! 결국 그 남자 친구의
범행으로 밝혀져 누명은 벗었지만 의외로 한심한 여자들이 부지기수라구."
성일의 말에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구하던 차에 우연하게도 숙박업소로 발길을 들여놓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기 그지없었다. 늘상 그런 진수에게 자랑스레 10년 경력을 내세우는 성일이었다.
"형 말이 아무래도 일리가 있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여자들이 무서워지는군요."
"그래, 이 여자도 적당히 달래 보아야겠군. 괜히 건수 잡으려다 신세 망치는 수가 있지."
성일은 곧바로 303호로 전화를 했다.
"예, 손님 프런트 데스큽니다. 제가 알아보았는데요. 아무래도 좀 곤란하겠군요. 직원들도 모두 지금 바쁜 시간 이라서요. 외로우시더라도 한숨 푹
주무시면 나아지실 겁니다."
잠시 후 여인의 성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아저씨가 지금 장난을 하나?"
"네. 장난을 하다뇨?"
다시 여인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잘 하시고 여기 맥주나 몇병 더 같다 주어요. 마시고 푹 잘 터이니..."
"예. 그거야 어렵지 않죠.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괜히 좋은 건수 하나를 놓치는구나.'
전화를 끊은 성일은 후회의 마음도 들었지만 곧 자신의 결정이 현명했다는 판단을 했다. 이런 여자 잘못 건드려 낭패를 본 경험이 어디 한두번
이었던가. 성일의 눈가에 낯선 여인의 신비로운 향취가 아련히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을 지워 버렸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궁금하다는 듯 진수가 다가오며 물었다.
"꿈깨시고 일이나 해. 다 끝났으니까. 맥주나 몇병 더 가져다 달라는군. 마시고 자려나 보지. 서서히 열기를 식히면서."
"하하하... 맥주라... 그건 얼마든지 줄 수 있죠."
'젠장. 직업을 바꿔야겠군. 어쩌다가 내가 이런 여자들의 술 뒷바라지나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까. 이래봬도 명색이 군대까지 갔다온
몸인데...'
냉장고에서 맥주 두 병을 꺼내 든 진수는 곧바로 303호실로 올라갔다.
"손님. 룸 서비습니다."
"잠시만요."
노크를 하자 방안에서 끈적끈적한 여자의 대답이 이어졌다.
"들어오세요."
"앗!"
다음 순간, 쟁반에 맥주를 받쳐들고 문을 열던 진수는 당황해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여인이 하얀 속옷 위에 아이보리색 슬립만을 걸친채로
태연하게 문을 열고는 빙긋이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 손님... 옷을 입으셔야죠."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언 꺾어진 20대라고 자부하던 진수였지만 그동
안 여자 경험이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였던지라 얼굴이 붉어지며 뒤로 주춤거렸다.
"에이 왜 이래 창피하게, 그 나이에 여자 속옷 한두번 보는 것도 아닐 텐데.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나 그 표정은 또 뭐야. 복도에서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방으로 맥주를 가지고 들어와요."
여인의 당돌한 말에 기선을 제압 당한 진수는 엉겁결에 맥주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빨간 색 스탠드 불 하나만이 켜져 있는 방안은 마치 진수를
기다렸다는 듯 색색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탁자 위에 맥주를 내려놓고 잠시 여인의 육체에 넋을 잃고 서 있는 진수에게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 뭐 해요, 앉지 않고, 건물 바치고 서 있으려고 그래요?"
"예. 저는 바빠서요. 내.. 내려가 봐야 하거든요."
"참나,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답디까. 애인한테는 바람을 맞고 혼자 처량히 있으려니 잠이 안 와서 그래요. 별다른 뜻은 없으니 이왕 들어온거
맥주나 한잔 마시고 가세요?"
"근무 중엔 술을 못 마십니다."
"에이 근무는 무슨, 여기가 철책선 이라도 된답니까? 딱 한잔만 하세요. 더는 권하지도 않아요"
여인은 영화 속의 샤론스톤처럼 다리를 꼬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때야 비로서 진수는 여인을 천천히 흩어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어깨에까지 늘어트린 긴 생머리. 서른 중반쯤의 나이답지 않게 매우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바람 맞춘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진수는 여인의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제가 참 바보처럼 보이죠. 미친 여자 같지 않아요?"
진수의 잔에 맥주를 부으며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제 남자는 지금쯤 다른 여자를 만나 침대를 뒹굴고 있을 거예요. 오늘 여기서 날 만나기로 해 놓고는 개자식, 그전부터 따라붙던 젊은
년이 만나자고 하니까 그리고 달려간 거죠. 내겐 이렇다 할 연락 한번 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지요. 뻔히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알면서. 그래서 난 배신감에 몸부림을 쳤지요. 아까 남자를 불러 달라고 한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죽고
싶은 그 심정 이해하시겠어요? 그렇게 라도 해야 마음 속에서 용서가 될 듯 싶었지요."
"그런 딱한 사정이 있었군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넘겼다. 하지만 성숙한 여인의 반나신을 바로 코앞에 두고 태연하게 앉아 있자니 속에서 한 움큼씩 불길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의외로 여인의 사유는 간단했다. 애인의 바람에 맞바람으로 복수를 하고 싶은 심리. 여인은 오직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을
것이다. 여인에겐 지금 남자가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복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쉽게 내 던질 정도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이토록 무섭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식의 복수라니 참으로 이상한 복수가 아닌가.'
진수는 일도 잊어버리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총각은 몇 살이나 먹었지요? 얼굴도 꽤 미남이군요. 몸도 튼튼해 보이고..."
그러고 보니 마른침을 삼키는 건 진수만이 아닌 듯 했다. 여인의 눈길이 묘하게 진수의 아래위를 흩고 지나갔다.
"예. 전 스물 여섯입니다. 몸이야 군에서 3년동안 체력 단련만 했으니 이리 될 수밖에 없죠. 전엔 약골이었걸랑요."
"그럼 여자 경험은 있겠군요. 얼굴이 이렇게 미남이니 당연히 여자친구도 있겠고..."
"그 그야... "
진수의 얼굴이 벌개짐을 여인은 놓치지 않았다. 여인이 지금 무엇에 목적을 두고 있는지를 직감한 진수의 호흡은 갈수록 빨라져 갔다. 여인은 진수의
젊고 건장한 육체를 보자 복수심 위에 또 하나를 얹어 색기마저 발동했는지도 몰랐다. 단숨에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운 여인이 갑자기 입고 있던 얇은
슬립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던 그녀가 술기운이었는지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괘... 괜찮으세요?"
여인의 의도 따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달려든 진수가 여인의 몸을 부축했다.
"아, 어지러워요. 저 좀 침대로 부축해 주시겠어요. 쉬고 싶군요."
여인의 봉긋 솟아오른 젖가슴이 진수의 얼굴을 짓누르며 뒤이어 풋풋한 살내음이 코를 자극시켰다. 그녀의 몸은 익을 대로 익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따 주기를 기다렸던 농익은 과일처럼. 이미 이성을 잃은 진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몸을 침대에 눕힌 후 젖가슴으로 손을 옮겼다.
"아.."
짧게 신음 소리만을 토할 뿐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오히려 등뒤로 그런 진수를 힘껏 끌어 앉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모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러브호텔 불야성의 밤은 더욱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