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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패러독스-154화 (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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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고,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파괴되는 건 파괴되고 떠나는 건 떠난다.

143

그날- 그 재앙 같았던 날. 아침부터 하루드에 소속된 자들은 일제히 미쳐 그 피해는 세계적인 규모였고, 세계의 하루드들이 전부 키오스를 향한다는 기현상을 나타냈다. 그 기이한 광기에서 제일 빠르게 그들을 제압한 곳이 키오스라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단시간 내에 안정된 키오스에서 사람들은 칼미온 기사단과 셀리안 크레이누의 대처를 찬양했다. 찬양하는 와중 검은 어둠에 휩싸여 왕궁이 사라져버리는 걸 망연히 지켜보았고.

왕궁 밖에서 검은 호수가 왕궁을 삼키는 장면을,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기억했다.

키오스는 유지되었지만 왕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하루드의 잔당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결국 그 하루드도, 하루드로부터 살아남은 자들도, 그 하루드를 제압한 사람들도 모두- 검은 호수에 삼켜져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삼켜버린 재앙이었다.

그날, 크레이누 왕족의 절반 이상이 죽었으며, 국민들의 가장 큰 슬픔은 왕족의 죽음도, 궁의 소멸도 아닌 셀리안 크레이누가 사라진 일이었다.

*

“...이렇게 무책임하다니.”

나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왕궁의 내 방에 있던 것과 똑같은 흰 침대에 앉아서. 둘러보면, 내 방을 그대로 복사한 인테리어지만, 결코 내 방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방으로 나있는 창밖에는 장미정원이 아닌, 숲이 보인다.

“무책임하다니, 뭐가 말이냐?”

침대 옆에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황금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셀리안 크레이누인 남자다.

남자는 뻔뻔스레 히죽거리며 죽을 권한다. 죽냄새가 고소하다.

“짐이 직접, 소환했다. 먹거라.”

소환이라니, 참 편한 말이다. 마법을 썼다 뿐이지 엄밀히 말해 어디선가 그냥 가져온 걸 텐데.

“왕궁으로... 안 돌아가요?”

“돌아가? 어디로? 내 왕궁이 있어야 가지.”

“만들고 있잖아요.”

그날로부터 이주일이 지났고, 이 세계의 건축기술은 원래세계와는 다른 의미로 발전해 있다. 내가 살던 세계보다 떨어지는 것 같지만 마법이 합쳐져 어떤 의미로는 더 낫기까지 했다.

“그건, 유리의 왕궁이지~”

셀리안은 태평하게 웃으며 팔을 흔든다.

“...”

그날의 재앙으로 크레이누 왕족 중 절반정도가 죽었다.

일단, 외국으로 시집 간 두 공주는 죽었다. 키오스 밖에서 일어난 하루드의 제1 행동원리는 키오스로 진입하는 것과 크레이누의 피가 흐르는 자들의 몰살이었다는 듯 하다. 아무 대비도 하지 못한 채 두 공주는 죽고 말았다.

반면 세피오스의 아들, 유리 크레이누는 살았다. 그의 영지에는 단 한 사람의 하루드도 없었으며, 검은 호수는 왕궁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리는 유능하지. 짐처럼 이런 저런 일을 하려다가, 하루드를 방치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니까. 어이쿠, 또 짐이라고 하고 말았군. 이제 나는 왕이 아닌데 말이야.”

“...”

유리 크레이누의 어머니 세피오스 역시 살아남았다. 그녀는 왕궁내의 하루드 제압을 직접 지휘했고 검은 호수의 등장에도 마도사들과 함께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하려 했다. 다만, 호수의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심복에 의해 왕궁 밖으로 탈출했고 그녀는 그 도망을 꽤나 수치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애리도 의외로 잘 해주고 있고 말이야. 정말 든든한 형제들이야.”

마놀공주와 아리나 크레이누는 그 시점 왕궁 밖에 나가 있다는 점에 운이 좋다면 좋았지만 마놀공주가 죽었다는 점에서 지독하게 운이 나빴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아리나 크레이누는 세피오스가 나와 히아신스 에이나를 불러 공연을 본 것을 마뜩찮아 했다. 그녀의 투정으로 두 사람은 밖에 나와 있었고 갑작스런 하루드의 폭주는 그녀들에게도 덮쳐왔다. 결국 마놀공주는 아리나 크레이누를 감싸려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어린 공주는, 의외로 담담하게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정리하고 있다. 크레이누 왕조 유일의 왕녀로서 말이다.

그래, 다리스 크레이누는 죽은 왕족 중 하나였다. 다른 이들이 그를 대피시키려 했지만, 그는 검은 호수가 왕궁을 삼켜가는 걸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황금 고리가 나타나 호수가 왕성을 넘지 못하게 하는 걸 보는 순간 우는 듯 웃는 듯 기묘한 표정을 짓다가 호수에 삼켜졌다고 한다. 그의 곁을 지키다가 도망친 마도사의 증언이었다.

“그보다 팔이 아프구나, 얼른 먹거라.”

“...”

“입으로 먹여줄까.”

“됐거든요.”

“하영-”

“아, 진짜.”

나는 남자의 손으로부터 수저를 빼앗아 들어 입에 넣는다. 남자는 그냥 주는 대로 먹지,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헤르티아인데 그녀는 살아남았다. 유폐된 탑의 지대가 높았던 탓에, 살아는 있지만, 셀리안 크레이누의 소멸에 절망해 많이 쇠약해진 상태라고,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셀리안 크레이누가 소멸...’

셀리안 크레이누로 말하자면, 검은 어둠이 키오스로 넘어가려는 걸 막고 어둠을 없앤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게 현재 키오스 내외에 퍼진 사실이었다.

셀리안 크레이누가 죽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에피룬 크레이누의 환신, 그 옛날 에피룬 크레이누처럼 왕가를 위해 재앙을 없애고 왕궁을 수호하기 위해 제 몸을 바친 것이다- 라는.

마치 영웅담 같은 이야기지만 잔혹한 찬양이었다. 에피룬 크레이누의 헌신을 한 번 겪었던 이 나라는 지고의 왕이 죽은 것을 슬퍼하면서도 쉽사리 영웅의 탄생과 수호를 믿고 찬양했다.

‘실상은 이거지만.’

셀리안이 권하는 죽을 오물오물 씹으며 나는 내가 있는 방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호수로부터 건져내져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이 방이 왕궁의 내 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서 머물렀던 방과 완전히 똑같은 방, 그 방이 집의 90%를 차지하는 작은 오두막에서 나는 눈을 뜬 것이었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왕궁을 덮친 검은 호수를 소멸시키는데 대부분의 마나를 사용했으며, 나머지 마나는 이 집을 만드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하-짐의 마나를 거기까지 소모시킬 줄이야. 그대를 건져내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라... 짐작은 했지만, 정말 끔찍하더군. 마법을 사용하며 ‘끔찍’하다고 생각해본 건 처음이야.]

그는 어쩐지 후련한 얼굴로 웃으며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고나니, 완전 지치지 않나. 짐도 인간이었던 거지. 호수는 사라지고, 텅 빈 왕궁터를 보자 다 귀찮아져서 말이다.]

누워 있는 나를 데리고 도망치는 걸 선택했다고 이야기했다.

“유리는 괜찮은 아이라고.”

내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셀리안은 아까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설득하는 어조지만, 열의는 없어보이는 게 얄밉다.

“그 애는 다른 것보다 나라를 소중히 여길 줄 알지. 아니, 애초에 다른 것이 위험에 빠지게 하지도 않아. 인간의 왕으로는 그 아이가 맞아.”

열의없이, 하지만 곧게 나를 보고 있다. 대체, 윤하영에게 뭘 바라는 걸까. 윤하영에게 바라긴 하는 걸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내 말에 셀리안이 자세를 고쳐앉는다.

“그건 그대의 의견인가?”

“...그럼 내 의견이지 뭐겠어요.”

“그럼 됐다.”

그제야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유리 크레이누는 괜찮은 왕이었다. 현재 왕궁의 재건과 나라 안을 수습하는 실력만 봐도 그랬다.

유리 크레이누는 셀리안 크레이누가 살아있는 걸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마력이 없는, 후비의 아들이지만 그의 뒷수습은 셀리안의 도움을 감안해도 꽤나 훌륭했다. 마력을 숭상하는 키오스 사람들 중에서도 이주일만에 새로운 왕으로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한다.

“...”

“왜, 더 안 먹느냐.”

“그...”

“그?”

“진짜, 정말 관둘 거예요?”

“...”

유리 크레이누가 훌륭한 것도, 셀리안의 의도도 어찌되었든 알겠는데-

“끈질기네. 정말 관둘 거다. 내가 왕이면 그대와 잘 수 없지 않느냐?”

“...누가 누구랑 자는데요?”

셀리안 크레이누가 왕을 그만둔다는 가정은, 내 전생에도, 내 머릿속에도 없었다. 나는 인정하면서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혼란스럽게 남자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방금 전에 긍정해놓고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긴 하다.

“짐과 그대가.”

그리고, 그보다 이 남자의 말이 더 어이가 없다. 왜 이런 쪽으로 화제가 선택된 거지.

“내가 리안을 사랑하지 않게 되어도 상관없다면서요...”

“그것과는 별개지. 짐이 사랑하는 여자를 눈앞에 두고 안지도 말라니, 끔찍한 이야기군.”

그의 붉은 눈이 너도 이해하겠지, 라는 빛을 띄고 나를 보았다.

“그건 무스...노리 야.”

불만스럽게 수저를 물고 웅얼거리면 그가 수저를 빼앗아 다시 죽을 뜨며 내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말마따나... 왕이어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좋은 마음가짐이군. 하지만 짐은 첩은 싫다.”

“처...첩?”

“그대는 짐이 아닌가. 짐이 꼭 첩이 되어야겠나.”

“그건 진짜 무슨 논리야.”

이마를 매만지며 황당하다는 것처럼 남자를 보면 셀리안 크레이누는 키득거리며 다시 수저를 내밀었다.

*

창밖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은 푸르디 푸른 숲을 감싸안는다.

나는, 아직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치료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호수의 독이 남아 있어 당분간은 셀리안으로부터 정화를 받으며 안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셀리안이 나를 데리고 온 오두막은 아셀란에 있었다. 셀리안 크레이누가 직접 만든 숲 아셀란은 대부분의 마나를 소비하고 회복 중인 셀리안 크레이누를 세계로부터 숨겨주었다.

그런 이유에서 선택된 곳이지만, 이곳은 내게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이곳은 내가 이 세계에서 엘킨을 처음 만났던 곳이기도 했으니까.

엘킨은-

떠났다고 한다. 알고 있었지만 물었고, 셀리안은 그에 대해 묻는 내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호수에서 나와 엘킨을 건져내면, 엘킨은 셀리안의 바람을 타고 나를 안전하게 뭍으로 내려놓았고, 남은 마나를 이용해 내게 회복마법까지 걸었다고 한다. 그 회복마법 덕분에 독에 당한 내가, 빨리 의식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눈을 뜬 건 호수의 일이 있고 하루 정도 지난 뒤로, 하루만 일찍 일어났으면 엘킨을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실제로 본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의 행방은 셀리안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그에게 걸린 저주 자체는 모순되게도 저주와 완전히 같은 호수에 융화되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상처지만... 해주된 엘킨 다이브라면 상처 정도로 죽진 않을 거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냉정하다고 느낄 만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그의 행방을 쫓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가 엘킨 다이브를 그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고 나는 받아들였다. 전생과는 다르지만

그리고, 히아신스... 히아신스 에이나는 에이나 가로 돌아갔다. 이것은 들은 게 아니고 내가 아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3일 전에 그녀는 이 오두막에 방문했었다.

히아신스 에이나, 아니 안나-

*

셀리안이 외출을 하고 혼자 침대에 앉아 있으면 노크소리가 들렸다.

아셀란 숲의 셀리안이 만든 오두막에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의 새로운 등장법인가 고민하면 히아신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나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녀는 히아신스 에이나의 목소리로 자신을 안나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약간 긴장했지만 그 전처럼 엄청난 불쾌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슬프다고 느꼈다. 그녀가 안나라는 것은 히아신스가 정말로 사라졌음을 뜻했고, 최근 내 곁에 히아신스의 가위가 나타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들어오세요.”

대답하면,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검은 머리카락과 녹빛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푸른 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드레스는 리본과 레이스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색을 보면 확실히 수수한 느낌이 들긴 했고, 리본과 레이스도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배치 등에 나도 모르게-

“왜 울면서 웃는 거예요?”

“드레스...”

“?”

“왜 그 드레스를...”

내 말에 안나는 허를 찔린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쑥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런 종류의 드레스가 많더라구요. 제 옷장에... ‘내’ 취향인가 했죠.”

히아신스랑 달리 그다지 표정이 풍부하지 않은 여자였다. 괴로워하거나 애원했지만 기사였던 히아신스보다도 더 표정이 단조로웠다. 그 때문인지 옷 때문에 수줍은 얼굴은 좀더 소녀같이 느껴졌다.

“...사실 전 예전에 성녀로서-”

그녀는 얼마 안 된 전처럼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먼 전생의 기억임을 알고 있다. 그녀도 그것이 굉장히 먼 옛날이란 걸 떠올렸는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말을 잇는다.

“...에피룬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사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이런 옷을 입고 싶었어요. 이번의 나는 귀족가의 영애니까 이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런 사단을 만들고 너무 어이가 없나요?”

“...아니요.”

“...”

“히아신스가 좋아했던 옷이니, 입는 게 맞아요.”

내 말에 그녀는 약간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짓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여기 온 건, 당신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별... 어디론가 가는 건가요?”

히아신스 에이나로서, 안나는 살아가기로 한 걸까. 그녀의 녹빛 눈동자에 지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체념도.

그녀는 한참 나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돌아갈 생각이에요.”

“돌아가?”

“네. 에피룬이 있는 곳으로.”

“에피룬이?”

그녀는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걸어온 뒤 손을 뻗어 내 옆의 허공을 매만진다. 순간 옆으로 히아신스의 가위가 나타난다.

피투성이 머리카락, 공허한 눈동자-

“히, 히아신스.”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사라져, 어느새 히아신스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너무 기뻐하네요.”

“그야 기쁘니까요.”

“...”

안나는 그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히아신스와 눈을 마주한다.

“이것은, ‘나’에게도 없는 기억이에요. 아마, 당신의- ‘꿈’이 만든 집념의 형태가 ‘나’였기에, 그 형태가 조금 끔찍하긴 하지만 ‘내’가 의지해버린 거겠죠.”

“...내가 만든 건가요?”

“그래요. 기원은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녀는 다시 나에게 눈을 준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다정하게 느껴졌다.

“이런 건, 일어나지 않았어요. 일어나지도 않고요.”

“...”

그 말을 기점으로, 히아신스의 가위가 흩어져 그녀의 손에 황금의 실처럼 감기고, 내 곁에는 실을 뿜는 털실 같은 황금의 마나만이 엉켜 존재하고 있다.

“...”

히아신스가 안나에 의해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봐도 되는 현상이었지만,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본다.

설마...

“‘내’가 정말로 사라지기 전에 이 몸을 돌려줄 생각이에요.”

“!”

“이곳에 나의 에피룬은 없으니까. 나의 에피룬은 이타주의자라고요.”

그녀는 약간 심술궂게 이야기한 뒤 미소지었다.

“미안해요.”

“...”

“당신에게도, 그에게도, 그리고-”

나로부터도, 황금의 마나에서도 시선을 떼 허공을 향한다.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녀는 허공에 시선을 향한 채로 천천히 눈을 감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에?”

“당신이 원한다면, 이 마나를 전부 거두어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어쩌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나는.”

*

그 후, 내 대답을 들은 녹빛 눈의 여기사는 오래도록 눈을 감은 채 서 있다가 갑작스레 눈을 떴다.

눈을 뜬 그녀는 나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며 웃었는데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눈을 뜬 사람은 ‘히아신스’였으니까.

히아신스는 ‘안나’로서의 기억을, 마치 내가 ‘셀리안 크레이누’의 기억을 꿈처럼 갖고 있듯이 품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우리는 그 전보다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

지금, 히아신스는 에이나가로 돌아갔고, 에이나가 유일의 딸로서 가주 수업을 받고 있다. 아마 다시 만나는 건, 조금 후에, 어쩌면 가까운 날이 될 걸라고 생각한다.

믿고 있다.

============================ 작품 후기 ============================

Lucyte 님 // oㅅㅜ 시무룩...

체셔빈 님 // ㅎㅎ 이제 곧 완결, 저는 나름대로 해피라고 썼는데 주변사람들이 아니라고. 진정한 해피는 모두 행복해지는 거라고. 제 안의 정의를 바꿔야 할 것 같은 위기감...;; 로맨스인데 둘이 일단 행복해지면 되는 거 아닌...(퍽퍽)

스즈카 님 // 외전이라기보다는, 다른 시점으로 보는 사이드스토리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제 외전이 그렇죠. 뭐... 엘킨 살았어요. 제가 이거 헷갈리실 줄 알았어요.ㅜㅜ 저도 헷갈릴 것 같으니까. 몇 번이고 고쳤지만 역시. 쨌든 엘킨은 살았답니다~ 호수에 삼켜진 사람들, 용들은 끝.

귀염둥이a 님 // 하영을 꼬시는 마성의 셀리안이라, 좋...군요;ㅁ; ㅎㅎ 하지만 남은 두편은...또르륵

옆집바나나 님 // 음? 저는 옆집 바나나님 덧글 너무 좋았는데.ㅜㅜ ㅋㅋㅋ 키오후는... 음... 사실 별로 매력적일 요소가 없... 마지막에 폭풍연사 랩으로 말도 많았고. 말 많은 남자는 매력있을 수도 있지만 키오후는 그렇지 못했다. ㄷㄷㄷ 옆집 바나나님의 코멘은 너무 잼께 꼭꼭 씹어 읽었는데 드릴 말씀이 생각나지 않아 방금 먹은 교X치킨에 대해 묘사하겠습니다. 그것은 반반콤보, 비오는날 교X치킨 주문은 폭주, 배달에 1시간 30분 걸리고, 나는 10시에 치킨을 먹지... 예- 맥주도 곁들여 치맥은 최고...(끌려간다)

dearmine 님 // 엘킨은 하영이가 셀리안 인 것을... 느낌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딱 셀리안=하영이냐, 하고 물으면 모르지만, 셀리안=하영이야. 라고 가르쳐주면 별로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런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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