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52화 (15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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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언제 온 걸까. 나는 그 전까지 여자가 있었던 탑을 바라보았다.

“안돼요. 당신은 죽으면 끝이에요.”

"비키죠-"

그녀의 눈동자는 침착했지만 오롯이 나를 담고, 그녀의 입은 천천히 열려 나를 설득했다.

그것이 성가시게만 느껴진다. 그녀에게 가로막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시간이 없다.

"그럴, 수는 없어요. 당신은 에피룬과 같으니까."

그녀의 뒤로는 엘킨이 침몰한 호수가 있었다. 열 걸음도 안 되는 거리였다. 초조하게 나는 그녀의 뒤를 넘겨다 보았다.

저 호수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엘킨은- 그는 이미 오염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건 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고, 그런 것들은 전생의 기억을 총동원해도 윤하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것이었다.

‘파멸따위 하게 두지 않아.’

무엇보다 나는 파멸하지 않았다. 엘킨만 파멸하게 된다니- 엉망진창이었다.

전생의 기억 속, 그만은 마지막까지도 살아남았건만. 셀리안 크레이누는 그만은 지켰었는데.

“다만, 그에게는 힘이 있었어요. 키오후의 아이 같은 사람들은 쉽게 돌아서지 않지만,그에게는 그런 그들의 참담한 마음까지 눌러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그라면... 키오후의 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분명히 구원했겠죠. 그리고, 설득할 시간을 얻었을 거예요.”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저와는 완전 달라요."

"..."

안나라는 여자에 대한 감정은 미움에 가까웠다.

“이야기 끝났죠? 비켜요!”

“!”

히아신스를 앗아간 그녀에 대한 미움, 동시에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사랑스러움에 대한 부정. 나는 여자를 밀어냈다. 여자는 내게 닿을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닿는 게 가능했다. 내가 그녀에게 닿는 순간 그녀의 손이 내 손을 붙잡는다. 언젠가 잡았던 히아신스의 손과 같다. 히아신스와 그렇게 다르지 않지만 다른 사람. 그게 또 미워서, 조금 세게 여자의 손을 감싸쥐어 내팽개치듯이 나로부터 떼어놓았다.

나에게 내팽겨쳐진 그녀가 비틀거린다. 비틀거린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호소했다.

“그런 거예요. 당신은 없어요. 그런 힘이. 요정의 기사를 쫓아봤자 개죽음 당할 뿐이에요!”

끈질겨.

나는 걸었고, 여자는 그 말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껏 지껄였다.

그녀를 무시하고 둔덕의 가장자리까지 가면, 그녀는 헉, 숨을 들이켰고 가느다랗게 다시 호소했다.

“가지 말아요.”

좀더 절박하게 그녀가 읊조렸다.

“키오후, 키오후 말이 당신에게는 안 와닿을지 모르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에요. 당신은 에피룬의 마지막이란 말이에요. 죽으면 끝이에요.”

“나는 에피룬이 아니야.”

나는 그녀를 외면하고 호수 바로 앞에 서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지말아요."

망설이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자동적인 반응이었다. 새카만 호수에 대한- 생물이 갖는 본연의 두려움이 내 발을 멈추게 했고, 엘킨이 호수에 잠겼다는 끔찍한 현실을 곱씹자 몸이 굳은 것뿐이었다.

한심하게도, 윤하영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자였다.

그럼에도, 할 수 밖에 없어서. 그렇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신이 히아신스였다면 좀더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

냉정하게 일갈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절망에 찬 것처럼 나를 보는 그녀를 느꼈지만 외면하고 한 발을 내딛는다. 방금의 말은 그녀에 대한 일갈인 동시에 나 자신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심호흡과 비슷했다.

“가지말라고 했잖아!!”

호수와 내 사이로 여자가 다시 한 번 파고들었다. 그녀도 바로 호수 앞, 아슬아슬한 곳으로 파고든다. 거의 안길 것처럼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비켜요-”

“싫어-”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큰 소리를 내며 도리질쳤다. 도리질치며 두 팔을 벌린다.

“그러다가 빠져요. 아니, 빠져도 상관없어-”

이건 위협이다. 상대가 아무리 미워도, 히아신스의 모습을 한 그녀를 죽게 할 생각은 없다. 그런 후회는 싫다. 다만, 나를 막는 그녀가 성가셔 손을 뻗어 거부하면 그녀는 연신 도리질 칠 뿐이었다.

“싫어, 못해. 그런 건 싫어! 넌, 에피룬의 마지막 잔재에 불과하단 말이야."

그 말을 할 때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았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알았어. 키오후 말대로 이 나라 때문인지...아, 아니면 나...나 때문인지 모르지만. 에피룬의 마지막 환생은 셀리안 크레이누였어. 완전히 같은 마나와 모습으로 환생이라니...그런 건 영혼에 무리가 갈 게 뻔하니까.”

평정을 유지하며 호소하던 말은 흩트러지고 그녀는 애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모르는 이야기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너는 거대한 영혼의 잔재야. 바스라지기 전의 잔재이기에 그들의 기억을 자연스레 가지고 있지만, 그것뿐이야. 너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힘도, 지식도- 아무것도.”

“...”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마.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언가 해도 소용없는 일 뿐이었잖아, 안 하는 게 오히려 나았잖아?”

"..."

그랬다. 점점 꼬여간다. 대체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래도.

'나는... 그래도, 할 수밖에 없어.'

멈출 수가 없다. 지금도- 아무 보증도 보장도 없이 엘킨에게 가고 싶다. 내가 어떻게 된다 해도.

‘나에게는 안 어울리지만.’

엘킨을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까. 새까만 물 속, 그 안으로 침몰하던 가장 맑은 사람.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것 같았다. 여자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마치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입을 다물고, 곧 툭 하고, 그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놀라고 만다. 히아신스의 몸이기 때문일까.  녹빛의 눈동자가 떨리고 뚝뚝 하고, 보석처럼 눈물이 방울져 내려-

“윽- 하, 하지만-”

본인도 자신의 눈물에 당황한 것처럼. 히아신스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히아신스가 그런 사람이었다. 강한 사람,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

눈앞의 여자도 그런 걸까.

“그래도 싫어. 가지마...”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당황하듯 눈물을 닦는 그녀는 새빨개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갑작스러운 자신의 눈물보다 내가 더 급한 것처럼.

“이제 못 만나는 건 싫어...”

“...”

“싫어... 에피룬.”

이 여자에게는 나도 에피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냉정하게 잔재니 어쩌느니 이야기해도 그랬다. 에피룬 크레이누를 사랑해, 제 몸을 깎아, 제 후손들에게 망집을 씌워 이 모든 사단의 최초가 되는 여자-

“...”

하지만, 눈앞에서 울고 있는 여자는 그냥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단 하나뿐인 상대를 향한 마음을 버리지 못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평생에 걸쳐, 죽음 이후까지도 전부 지배당했다-

“당신이 사라지는 것 따위 싫어-”

싫어, 라고 가느다랗게 우는 목소리-

언제였지. 히아신스가 히아신스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 했을 때, 나는 화를 냈다. 그녀조차 전생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게 끔찍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히아신스는 울었다. 마음이 아파, 당혹스러워, 그저 그녀에게 미안해서 나는 그녀를 소중하다고 좋아한다고 깨달았다.

“하하.”

“에?”

“...역시...”

이건 무슨 감정일까. 어린 아이처럼 울면서 내 옷자락을 잡는 모습을 보고 사랑스러움이 끓어오른다. 안타까움이 솟는다. 그것은 그녀가 히아신스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고, 동시에 여자가 울기를 바라지 않는 내 안의 먼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윤하영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순수함, 지금 내가 찾으려는 것이 바로 앞에 있음을 알았다. 어리석을 정도로 맹목적이고, 상대만을 보고 있다.

나는 다른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에피...룬.”

히아신스가 아닌, 이 여자를 이렇게 다정하게 어루만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엘킨이 이렇게 걱정되는데, 이런 여자에게 감정을, 시간을 소비하게 될 줄도 몰랐는데.

[안나, 미안해.]

순간, 머릿속에 겹쳐지는 기억이 있다. 언젠가 꿈 속에서 보고 다음날 사라졌던 그런 꿈 같은 기억. 셀리안 크레이누의 꿈보다 더 아스라이 사라지는, 깊게 가라앉은 그런 꿈.

“미안해요.”

“왜... 사과를...”

[안나, 걱정마.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다시 한 번 너를 찾아낼 테니까.]

“미안.”

“에, 에피룬?”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안나-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 분명히 내 안에 있다.

[제가 기다릴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내 앞을 가로막는, 윤하영이 소중히 여겼던 여기사와 같은 영혼을 공유할 소녀를 끌어당겼다.

“이제 기다리지 않아도 돼.”

녹색 눈이 크게 벌어진다. 놀라움과 기쁨이 슬픔과 뒤섞여- 그대로 그 모습 전부를 수용해 끌어당겨 나는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입맞춘 뒤, 문득 굳어버린 그녀를 뒤로 하고 호수로 몸을 던졌다.

*

셀리안 크레이누였던 전생의 기억이 그의 마법에 대한 확신을 준 건 사실이다. 더불어 그의 마법이 갖는 한계도 나는 알고 있다.

'실제로 한계를 느낄 일은 별로 없었지만-'

검은 호수 안은 진득하게 깊다.

애초에 수영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그저 깊게 깊게 가라앉는 걸 택했다. 엘킨이 고꾸라진 그 자리로 몸을 떨어뜨려, 깊게 깊게- 마치 움직이지 못한 채 침몰하던 엘킨 처럼.

호수가 나를 삼키고 싶어했기 때문일까, 깊게 가라앉는 건 어렵지 않다. 오히려 모르긴 몰라도 더 빠른 느낌마저 들었다. 깊게, 깊게- 마치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는 누군가와, 증오스럽게도 여기는 누군가가 나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호수 밑으로 빠져든다.

썩은 호수의 눅눅한 냄새도 그 안에 오랜 시간 있자면 감각이 마비되어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은 미적지근하고 그 촉감은 물이 아니라 진흙처럼, 살점처럼 나를 휘감는다. 물살 사이로 비명이 들린다.

왕궁 사람들의 비명- 에드나의 비명-

그 사이로 들리는 조롱의 목소리- 희미하게 끊어질 것 처럼 옅게, 분노하는 것처럼 강하게 귀 안으로 파고든다.

- 하, 엘킨 다이브를 버려놓고 잘도 찾아오셨군요.

알고 있다.

- 애초에 버릴 생각이었으면서.

그렇다. 그가 무사한 모습으로 나에게 등을 돌렸다면, 한 번 그를 부른다고 해도 나는 결국 그를 놓아버렸을 것이다. 결국, 그래 결국.

그래도-

- 정말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불행하게 만드네요.

손을 뻗어 물살을 헤친다. 가늘게 눈을 떠 엘킨을 찾고 있다.

깊게, 깊게- 숨을 쉬는 것부터, 호수에 삼켜지는 것까지 보호해주는 황금의 링이었지만 그것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이 링이 있다면, 지금이라면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갈 수 있다고, 내 안의 셀리안 크레이누가 속삭이는 것 같이 느꼈지만, 좀더 좀더 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나는 밑으로 밑으로 침몰했다.

‘엘킨을 찾아야 해.’

라고-

-찾아서 무얼 할 건데?

라고, 내 안의 누군가도, 물 속에서 나를 조롱하는 누군가도 속삭여왔지만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니까. 엘킨이 이미 삼켜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나는 좀더 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안으로 안으로 침몰해간다.

끝없는 검은 진흙의 안으로, 안으로-

엘킨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더 깊게 안으로, 안으로.

엘킨이 호수로 추락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추락하는 순간은 순식간이지만, 그 순식간이 마치 영원 같았다. 엘킨 다이브는 나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청명한 눈동자로.

“!”

얼마나 깊게 왔을까.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뭍이 멀어졌을 무렵, 황금의 고리에 감싸인 채로 숨이 가빠질 무렵- 희미하게 푸른 빛이 보였다.

푸른 머리카락 아래 푸른 눈동자는 탁하게 가라앉아 있고, 그의 피부는 백지장처럼 하얗건만 그 스스로 찌른 심장 부근은 붉디 붉은 피를 뿜어내고 있다. 붉은 피를 뿜어내는 심장 부근의 살은 검다. 푸르고 붉고 희고 검은 남자- 그 자체가 새하얗기 때문에 그런 색들이 너무 두드러져 처연함까지도 주고 있었다.

“엘킨-“

물 속에서 말은 발음이 되지 못하고 입안에서 맴돈다. 신기하게도 그는 내 부름에 반즈음 감겨 있던 눈을 떠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올려다본다는 건 착각이다.

그저 물살로 인해 그의 눈이 나를 봤다고, 보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그는 내게서 시선을 피한 적이 없으니까. 그의 눈동자도 몸도 미동조차 없다. 그것이 무섭다.

“엘킨-“

한 번 더 부르며 손을 뻗으면 그는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멀어져 갔다. 마치 나와 닿고 싶지도 않은 것처럼-

언제나 나는 도망가고 그는 나를 쫓았다. 나는 그를 거부하고 그는 나를 긍정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가 더 사랑했던 주제에, 윤하영조차 그를 사랑했던 주제에

‘엘킨에게 닿고 싶어-‘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암흑 같은 진흙 속에서 겨우, 겨우 이제야 그런 생각을 했다.

“!”

순간 고리가 터지듯 황금의 무리가 흩어지고 나는 좀더 빠르게 엘킨을 향해 다가섰다. 검은 물결이 황금의 막을 잃은 나를 삼킬 것처럼 조여온다.

이 속에 엘킨은 있던 것이다. 엘킨은-

손을 뻗으면, 이번에는 엘킨에게 닿았다. 나는 엘킨에게 닿아 그대로 몸을 밀어붙여 그를 감싸안았다.

“엘킨-“

엘킨, 하고 그의 귓가에 명확하게 읊조린다.

엘킨은 대답이 없다.

나는 숨이 막혀오고 사라져가는 황금의 막이 옅어질수록 곧 -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고통 속에 삼켜질 거라고 막연하게 예감했지만, 힘껏 그를 끌어안는다.

“엘킨-“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부르면, 그의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나를 본다.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분명하게 나를 봤다.

“엘킨!!”

순간 황금의 고리가 완전히 사라진다. 호수는 나를 삼키기 위해 달려들었고 엘킨은 손을 뻗어 나를 껴안는다.

-이미 용에게 오염된 저는 삼킬 수 없습니다.

말은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왜… 온 겁니까.

나는- 왜 온 걸까.

엘킨이 죽는 게 싫어서, 엘킨이 사라지는 게 싫어서- 그런 여러가지 이유는 말이 되지 못한 채 입안을 맴돌 뿐이다.

어떤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엘킨이, 나를 구하러 와, 키오후에게 조롱당해, 호수에 침몰하는 그가-

-저는 당신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 놀랍지 않다. 내심 그에게라면, 이라고 생각했을까. 윤하영 자신도, 셀리안 크레이누를 위해서도 죽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죽고 싶지도 않았지만-

-저를 떠나는 당신을, 쫓고 쫓아 당신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그의 목소리는 어감없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당신이 용의 주인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찌르는 순간 그런 마음은 사라졌어요.

천천히, 천천히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탁하디 탁한 검은 물 속에서 엘킨 다이브의 눈동자는 청명하게 푸르고, 그 안에 비치는 윤하영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당신은 너무 많이 다쳐요. 너무 위태로워서- 저는 또다시 당신을

엘킨의 말은 거기서 끊긴다. 그는 그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엘킨-

그것은 누구의 감정이었고, 누가 이어 받았으며, 누가 결국은 품게 되었는가.

-  엘킨

나는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음을 담아, 마음의 끝까지.

‘내’가 사랑하고 증오한 사람. 사랑한 만큼 보답받지 못해 어느새 돌려서는 안 될 미움의 화살을 돌려버린 사람이었다.

-당신의 시선이 품은 감정을 알았습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윤하영이 있었다. 그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진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더없이 사랑하고, 증오하는군요- 마치 지금의 저처럼.

엘킨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좀더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걸 기점으로 검은 호수는 우리를 영원히 삼킬 것처럼 감싸안고 그보다 따스한 황금빛이 나와 엘킨 다이브를 들어올렸다.

============================ 작품 후기 ============================

적매화님, 후원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못난 하영이와 못난 작가에게 이런 단 비를...ㅜㅜ 크흡, 꿀꺽꿀꺽. 열심히 받아먹겠습니다.

체셔빈 님 // 저는 사실... 로맨스는 남녀주인공 둘만 행복하면 된다고 생...(퍽퍽퍽) 둘보다는 많이 행복해질 예...예정입니다. 음... 하지만 나무를 믿지는 마세요.(퍽퍽퍽퍽) 헤헤, 항상 리코멘 요청 감사드립니다.ㅜㅜ 체셔빈님과의 대화도 루패에서는 얼마 안 남았다니 제 마음이 찢어지구.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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