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43화 (14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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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상태네.’

얽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셀리안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얽고, 나는 의지 없이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지만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 않고, 셀리안은 계속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상하다고, 나도 그도 생각했건만 떨어진 건 한 순간이고 다시 그는 내게 가까워졌다. 입술에, 코에, 이마에, 눈에, 눈물에, 그리고 다시 입술에. 마치 내가 자신과는 다른 누군가라는 걸 맞닿으며 인식하려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만 좀... 해.”

“응? 뭘 말이지?”

그가 약간 쉰 목소리로 대답하며 다시 내 입에 입을 맞췄다.

이런 건 상정외였다. 그의 곁에 있겠다고 생각한 때에도, 셀리안 크레이누와 입을 맞춘다는 것은 솔직히- 그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상황이 이 꼴이 된 것보다도 더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런데도, 심장은 느긋하지만 확실히 평상시와는 다르게 뛰고 있었다. 그게 기묘하게 비현실감을 더 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도 집요하게 나를 쫓고 있다. 타오르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강한 눈동자. 슬픔도 다정함도, 절망도 모두 그 눈 안에서는 티끌의 힘도 못 미칠 것 같은 절대적인 존재의 눈동자.

“...”

눈을 가늘게 뜨자 맺혀 있던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셀리안의 입술은 다시 눈가로 옮겨졌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의 티끌 같은 감정의 파도만을 보는 나도, 절대적인 존재 주제에 나에게 얽매이는 그도 코미디였다.

해를 쫓는 건 해바라기라고 하지만, 사실은 세상 모든 것이 해를 쫓고 있었다. 그런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다. 역사상 해를 신으로 모시는 문명은 많았고, 해는 지구상 모든 생물들의 신이었다는 그런 이야기- 여기가 지구는 아니겠지만 해가 있고, 그 해가 하나뿐이라면 분명 셀리안 크레이누는 이 세상의 태양이었다.

그 태양이 나를 쫓고 있었다.

‘아니지, 내가 언젠가 셀리안이었다면, 나도 태양인가.’

그렇다면 나는 지는 태양의 찌꺼기임에 틀림없다.

그래, 찌꺼기는 나다.

나는 그의 찌꺼기고, 그는 오롯이 빛나는 태양이었다.

진도, 에드나도, 키오후도 셀리안이 마치 어떤 결여가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지만, 그런 건. 그런 건 결여 축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셀리안의 인성이나 감성까지도 류마냥 무언가 부족한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틀리다고 생각한다.

안나의 부활 마법에 오류가 생긴 게 자신이라고 류는 이야기했다. 감정을 결여한 자신은 실패작이어서, 그의 어머니는 몇 번이고 그를 성공 시키고 싶어 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셀리안은 무엇도 결여하지 않았다. 성공작이라면 성공작이겠지. 그의 결여는 그가 자라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언젠가의 나 자신을 옹호하는 것 같아 뭐하지만, 그는 에피룬 크레이누의 방대한 마나를 제외하고는 평범했다. 아니 마나 이외에도 모든 건 우월해, 그런 그에게 전생을 억지로 개입시켜 뒤튼 건 마법이 아니라 그의 주위사람들이었다.

렌도, 키오후도 진도 그에게 인성적으로 결여가 있고, 내가 그 잘난 에피룬 크레이누의 따스함을 받은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반대다. 자신을 자신으로서 사랑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 그가 어떻게 순수하게 따스함을 표할 수 있었을까. 온전한 그의, 누구보다 행복했어야 할 축복의 아이에게 있지 말아야 할 결여가 있다면, 그건 모두 에피룬 크레이누를 사랑하던 자들의 탓이다.

그리고 그걸 내가 채워주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한 건 언제였지.’

그가 그의 어머니에게 상처 입을 때, 신관들에게 압박당할 때, 에피룬 크레이누에게 잠식당할 때, 사랑에 배신 당할 때. 죽은 뒤에도 너도 나도 원해 매달렸던 에피룬 크레이누와 달리, 같은 입장인데도 결국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 그를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그렇게 결심한 때.

어쩌면, 꿈 속에서 그를 만났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지긋지긋함을 느끼고 한심하다 여기면서도, 그를- 그를 위로하고, 곁에 있어 뒤틀리지 않게, 상처입지 않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

“돌아가지 말아다오.”

눈물에서 눈가로, 다시 귓가에 입을 맞추며 그가 한 번 더 조용히 속삭였다. 마냥 반발하던 권유였지만 이번에 나는 입을 다물고 셀리안 크레이누를 마주 보았다. 보았고, 의지를 담아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따뜻한 손, 미지근하게 체온이 옮겨져 뒤섞여 간다.

“왜?”

“옆에 있어주길 원하니까. 짐의 욕심이지만.”

“나로 있으라며, 나를 위해 살라며?”

지켜주고 위로하고 채워주고 싶다- 그 생각을 눈앞의 남자도 해주었던 것이다. 사실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해준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의 곁에 있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는 나로 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 역시 윤하영의 결여를 채워주고 싶어했다. 윤하영이란 인간이 셀리안 크레이누라는 또다른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이제 알겠다.

“그래, 그대를 위해 살면 된다. 짐의 곁에서."

"그게 무슨 말이야."

"돌아간다 해도, 그대는 그대를 위해 살 수 없겠지... 아닌가.”

나도- 이 세계에서 나를 위해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 라고 - 사람들에게 어느새 에피룬 크레이누의 환신으로 자리잡은 마법왕이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웃으며 이야기했다.

동시에 교활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옆에 있어주길 바란다는 간절한 소망은 상대를 위한다는 진심과 뒤섞여 미적지근해진 체온처럼 애매하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짐의 곁에 있어다오."

"그런 건 이상하잖아."

당신과 나는 같은 걸, 뒤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짐은 그대가 아니다. 그대도 짐이 아니지.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이로 맞닿아 있으니까."

억지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억지였다. 동시에 사랑에 빠져, 누구보다 나를 위해 주게 된 남자의 억지이기도 했다.

‘고작 낸 결말이 이거구나.’

그리고 아마 나도.

“그대의 모든 걸 알고, 아니까- 그대가 이유없이 자신을 잃고 울 때 짐이- 내가 위로해주마. 너도... 나를 위로해다오.”

다시 한 번 눈물이 흘렀고, 남자는 조용히 내게 입맞췄다.

*

“나는, 솔직히- 셀리안에게 아무 감정도 없어.”

셀리안이 마법으로 소환시킨 기다랗고 푹신한 의자에 나와 셀리안은 머리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지친다. 울 힘도, 도망칠 힘도 없어져- 눈물이 멈춘 건 지쳤기 때문인지 내 안에서 어떤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짓말 하지 마라. 짐이 울면, 당장 안절부절 못할 거면서.”

이 남자가.

"그야 그렇지. 나는 어쨌든- 어쨌든 당신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자학적이군."

"그런가? 자학적인 건 리안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나에게 곁에 있어달라고, 사랑스럽다고 하는 편이 더-

“무엇보다 나는 리안에게 전혀, 두근거리지- 읍.”

또 입맞춰졌다.

이번에는 그 전까지와는 약간 달랐다. 기억 속에 있는 ‘셀리안 크레이누’가 즐기는 키스가 그대로 내게 쏟아진다. 정중하게 파고 들어, 부드럽게 휘감아올리다가 급작스럽게 입천장을 핥는다. 당황하고 있으면 그대로 혀를 얽어 상대에게도 함께 빨아올릴 것을 강요한다.

방금 전 못지 않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셀리안 크레이누가 나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고집스럽게 거부하려 했지만, 숨을 쉬기 위해 움찔거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혀를 빠는 형국이 되어갔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남자는 은근히 그런 쪽으로 탐닉하는 면이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이런 쪽으로 지조가 없었다. 군림자 특유의 지조없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흠칫 떨면 그가 입을 뗐다.

다시 그가 파고들 걸 경계하며 고개를 살짝 빗겨 한숨을 쉬면, 나를 지지했던 것과 같은 바람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그를 향해 돌려놓았다.

“어...어떻게 이래?”

따지듯 간신히 말을 이으면, 그는 나른하게 웃으며 내 입술을 핥은 뒤 내 손을 잡아 맥박을 잰다.

“두근거리는구만. 뭐.”

“이건 생리적인 반응이거든. 게다가 맥박이 뭐야. 맥박이-”

“별로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다짜고짜 가슴을 만지는 건 실례겠지.”

죽일까.

남자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마치 내가 살아 있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 나도 눈을 감았다. 내 맥박을 재는 셀리안의 손의 고동도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괜찮아. 그대가 나를 사랑하게 되든, 사랑하지 않게 되든 짐은 만족한다.”

“우와. 또 거짓말.”

“아니, 노력은 별개로.”

그가 능글거리는 웃음을 짓는다. 자신만만해보이기도 하고 소극적여보이기도 하고, 내가 파악하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기억 속 그처럼 사랑에 힘들어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친 윤하영 역시- 셀리안 크레이누로는 보이지 않는 여자는 행복해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비참해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셀리안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리안?”

방금까지 나른하게 풀려있던 붉은 눈동자가 심상치 않은 색을 띄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싶어 나도 주위를 살핀다. 왕궁은 조용하고 날씨는 좋다. 창밖의 정원도 그저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라, 어떤 소란스러움도 무엇도 없었다. 없었지만, 셀리안은 의자로부터 일어났다.

일어났고 무언가 읊조렸다. 순간 황금색의 고리가 나를 감싸안았다.

“그대는, 여기 있도록 해라.”

*

셀리안이 나가고도 무언가 변한 건 아니었다. 고요하다. 고요하고 고요했다.

나는 멍하니 쇼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그가 내게 걸어준 황금의 고리를 만져본다. 만져지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따스한 촉감이 손에 스며들 뿐이다.

약간은 히아신스의 가위에 닿았을 때 받았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히아신스-’

그녀를 생각하면 옆에 히아신스의 가위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나타났다. 그녀는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진짜 히아신스는 그녀뿐이라고 진은 이야기했다. 지금 있는 히아신스는 히아신스가 아니고 안나라고.

어떻게 되는 걸까.

손을 뻗어 히아신스의 손에 손을 댔다.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든다. 황금의 마나가 주는 따스한 촉감과 비슷한 느낌이 히아신스의 손에서 느껴졌다.

안정된 건 하나도 없었다. 엘킨도, 히아신스도, 에드나도 무엇 하나 해결될 게 없다. 조금 어이가 없을 정도다.

연달아 무언가가 일어난 것 같지만 해결된 건 하나도 없다. 그게 기가 막히다.

"----"

잡음처럼, 가느다랗게 무슨 소리가 들린 건 그 즈음이었다. 혼자 남아 앞으로의 일, 현재의 상황에 대해 골몰하고 있을 때.

“어?”

눈을 깜빡인다. 깜빡이고 귀를 기울였다. 방금 전까지 고요했던 공간을 가느다란 소리가 채워나가고 있었다.

무슨 소리일까- 라고,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 가느다란 소리를 시작으로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소리는 비명이었던 것이다. 여자의, 남자의, 왕궁 사람들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나 천천히 문앞으로 다가갔다.

나가려고 하는 건 아니었다.

셀리안은 여기에 있으라고 했다. 밖은 소란스럽다. 그 소란스러움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과거에는 없었어.'

감히 이 왕궁에서-

조심스럽게 문에 몸을 기댔다. 좀더 확실히- 무슨 일인지 듣고 싶었다.

비명소리가 맞다. 더불어 발소리가 잇달아 들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느껴졌다.

바싹 문에 기대 있으면, 순간적으로 쿵 하고 무언가 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라든가 문을 열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힘에 의해 문에 부딪친 것이다.

그 소리에 놀라 문으로부터 몸을 떼면, 문고리가 가볍게 돌아가는 게 보였다. 돌아갔지만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돌려도 열리지 않는 문고리가, 다시 한 번 더 서서히 돌아가면-

역시 문은 굳게 닫힌 채고, 상대는 체념한 듯 고리로부터 손을 뗐다. 그리고.

“하영-”

하고 가늘게, 에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작품 후기 ============================

Rudbihi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닷>ㅁ/ 기쁨의 댄스를 추는 나무바라기는 너무 추워서 낙엽을 죄다 떨구고 쓰러집니다. 털썩.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듀구 님 // 못 돌아가는 게 좋으세요, 안 돌아가는 게 좋으세요.ㅎㅎ

리젯트 님 // 하영이에게는 셀리안의 기억이 있어 하영이도 마법에 조예가 있으니까요. 수시로 감지는 못하지만 그때끄때 문득문득 깨닫는 거랍니다...라고 말하면 너무 가져다 붙인건가. ㅎㅎ 저는 그런 느낌으로 썼습니다만, 미묘하네요. ㅋㅋ 하영이가 오면서 희생된 건 일단 미실랭커플이겠군요.; 하유.ㅋㅋ

여름날그하늘 님 // 뽀뽀했쪄요. 뿌뿌!

체셔빈 님 // (141) 왕창왕창 담은 외전입니다만,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기쁠 것 같아요.ㅜㅜ 이걸로 본편 연결 외전은 끝입니다~ 다음 외전이 있다면 완결 뒤가 아닐지.ㅎㅎ

(142) 분위기가 풀리지만, 해결해야 할 사건이 남아 있어 다시 굳히고 있는 나무바라기...(주섬주섬) ㅋㅋㅋ 키스는 엘킨도 류도 했는데 열렬하게 환영받는 셀리안... ㅎㅎ 좋아해주셔서 다행입니다.

月光天女璉 님 // 멘붕의 소설 루나 패러독스!! 두둥. 부족한 글이지만 완결까지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셀리안이랑 하영이랑 맘 편히 우쭈쭈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스즈카 님 // (141) 엘킨은 OOOOOOO... 그런 겁니다.

(142) 그럼 정말 재미있었겠네요. 파워 헬게이트... 하지만 셀리안은 문을 잘 잠그는 아이랍니다. 방해받지 않아...(<<)

lokoko 님// 엘킨 등장!! 데드플러그는 OOOOOOO. 그런 겁니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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