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23화 (12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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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전생의 기억에서 몇 번이나 그는 엘킨에게 애원했다. 가지 말아 달라고, 호위기사가 되어 달라고, 네가 원하는 모든 걸 주겠다고, 모든 걸 갖춰주겠다고- 그것을 엘킨 다이브는 몇 번이고 거절한다. 많은 것을 원한 게 아닌데, 그저 옆에 있어주면 되었다. 그저 내 옆에, 내 곁에서 나를 인정해달라고. 왕은 애원한다.

거절하고 거절하고 올곧은 기사는 마치 그게 옳은 것처럼, 아마 옳겠지만- 옳았겠지만 상대는 세계에게 사랑받는 셀리안 크레이누다. 기사가 옳게 생각해도, 그 말이 왕을 상처 입히고 세계를 뒤튼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엘킨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했던 왕은, 결국 그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는다.

“가요.”

나에게도 이제 이 세상에는 빼앗길 게 너무 많다.

“하영-”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빼앗기지 않길 바라는 건-

눈앞에는 내 말에 안심한 듯 미소짓는 지고의 왕이 있다. 그는 나를 구하러 온 것이다. 나는 용들에게 붙잡힌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혹시 내가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불안하게 나를 보고, 내 끄덕임에 미소를 짓는다.

“그래, 가자. 모두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

“네.”

“하지만, 문제군. 왜 이렇게 우는 거지. 마치 짐이 울린 것 같군.”

셀리안이 조금 웃는다. 웃으며 다시 한 번 내 눈가를 어루만진다.

“리안 때문이 맞아요.”

“짐 때문에?”

“네, 리안 때문에 오늘 너무 놀라서 그래요.”

“그거, 미안하군.”

그의 붉은 눈에 기묘한 불안함과 만족감이 공존한다. 엘킨 다이브를 향한 그의 사랑은 뒤틀려, 그는 굳이 엘킨이 멀어지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를 가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엘킨이 자신을 걱정하고 흔들리는 건 그를 만족스럽게 했다.

‘정말로 나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방법은 명확해졌다. 나는 그의 곁에서 행복해지면 되는 것이다.

언젠가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대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 마음에 걸리는 것 따윈 전부 없애줄 만큼 사랑해줄 거다.]

그래, 엘킨이. 그리고 셀리안이.

오늘은 셀리안의 탄신일, 지금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돌아가서 그의 생일을 축하하자.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생일 좋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하니까. 그런 건 말도 안 된다. 나조차 내 생일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런 다음 히아신스를 안정시키는 걸 지켜보고, 에드나를 위로하고, 엘킨에게 키스해야지. 그리고, 그래. 언젠가 셀리안이 이야기했던 대로,  그에게 일을 받아야지. 일을 하고 죽죽 승진해 세르미아를 더 크게 부흥시켜보는 야망을 꿈꾸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좋겠지. 나는 꽤 야심가였었으니까, 그랬으니까. 무엇보다, 엘킨은 매우 좋은 남자니까. 나를 사랑해주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드디어 윤하영은 일에서도 성공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을 손에 넣고.

셀리안 크레이누는 어떤 죄도 짓지 않은 채, 성군으로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지켜볼 것이다. 그는 외롭게 죽지 않고, 그의 곁에는 엘킨과 내가 있고, 히아신스가 있고, 자녀들이 있을 것이고.

‘오래 살아야겠네.’

그것이야말로 해피엔딩이 아닌가.

그게 그가 원하는 거라면. 나는 내 눈을 어루만지는 셀리안의 손을 잡는다. 안심하라는 것처럼, 교활하게.

“저는 괜찮아요. 돌아가요. 리안.”

그리고 미소 지었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것도 곧 멈추겠지. 엘킨에 대한 사랑의 통증이 멈춘 것처럼.

*

셀리안은 진으로부터 나를 가리듯 앞에 섰다. 진은 기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의 은색 눈이 느릿하게 나와 눈을 마주한다. 마주한 뒤, 천천히 입을 연다. 기가 막힌 것처럼 내뱉는다.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아?”

기가 막힌 건, 나를 데리고 돌아가겠다는 셀리안이 아니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황당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상상도 못한 무언가를 본 탓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헤매고 있었다.

그가 우리를 막은 건 일단 ‘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막기로 한 것이다.

“짐이 못 할 것 같나?”

“너는 물의 호수를 제 마나로 채우고, ‘치유마법’까지 쓴 뒤, 내가 결계로 막은 이 곳으로 넘어왔다. 아무리, 마법왕이라도- 이 나를 상대하긴 힘들 걸.”

“글쎄-”

“아니, 안다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너의 영혼을 잘 아니까.”

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다시 지면을 밟는다. 그의 손이 붉은 용의 손으로 변했다.

“진, 나는 돌아갈 거예요.”

나는 셀리안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의 뒤에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멈추지 않는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릿하다. 흐릿한 시야로 셀리안의 등이 보이고, 그 앞에서 곤란한 표정을 짓는 진이 보였다.

“돌아간다고? 미안하지만-”

용의 손이 가볍게 우리를 향했다.

“반은 렌과 류의 장단에 맞춰졌던 거지만, 지금은 절실히 ‘너희들’을 같이 두면 안 될 것 같아. 하영, 너는 여기에 있는 편이 좋을 거다-”

“납치범의 헛소리군.”

“아니- 오래 산 자의 감이다.”

셀리안이 자세를 취한다. 긴장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여유롭지도 않다. 진의 말대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문득 엘킨이 왜 함께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렌에 의해 공격받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다친 걸까. 에드나나 셀리안 생각에 신경쓰지 못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가 없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

골몰하고 있으면 진의 눈이 의아한 듯 벌어졌다. 셀리안도 그 기색을 눈치채 뒤돌아 보았다. 순간, 내 몸을 감싸안는 손이 있었다. 알고 있는 차가운 체온이다.

“엘킨?”

“진- 붉은 용이여-”

청명한 푸른 눈동자가 거울처럼 호수처럼 똑바로 나를 비추며 나와 눈을 마주했다.

“당신의 주인으로부터 전언입니다. ‘셀리안 크레이누’로부터- 저희가 도망칠 수 있게 조금만 잡아주십시오.”

“엘킨!!!!”

셀리안의 붉은 눈동자가 엘킨을 향해서는 있을 수 없는 ‘감정’을 담았고, 동시에 눈앞이 새하얗게 부서졌다.

*

훅,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뜨는 순간 나는 푸른 하늘의 상공에 있다. 내려다보면, 화산재로 뒤덮인 케틀리아가 있고, 케틀리아의 허공 위로 황금색으로 찢겨진 작은 틈이 반짝인다.

나를 뒤에서부터 엘킨이 감싸안듯 붙잡고 있다. 우리는 새하얀 말 위에 타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유니콘의 피가 흐른다는 천마 아니온이다. 몸은 다른 말의 두 배이며 날개를 가지고 있는 이 말은, 달리는 속도는 화살과 같고, 나는 모습은 바람과도 같은 명마 중의 명마였다. 확실히 엘킨이 그의 아버지 미론 다이브에게 받은 말이었지만, 그는 칼미온에 입단한 그 날부터 단 한 번도 이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인간의 전쟁에 자신의 친구를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인간의 기사, 셀리안의 기사 엘킨 다이브가 결정한 단 하나의 엘프로서의 선택이었다.

그 아니온에 올라타 엘킨과 창공에 떠있었지만, 나는 그저 저 아래의 황금색 틈만을 보고 있다. 그것만을, 그곳에는 셀리안이 있으니까.

“여기 그대로 있다가는 곧 셀리안 크레이누가 달려올 걸.”

“!”

“알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귀를 울리는 목소리가 있다. 황금색 틈으로부터 무심코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주면 류가 있었다. 그는 아니온의 고삐를 잡고, 허공에 떠 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나를 보며 웃은 뒤 엘킨의 뒤로 풀쩍 뛰어 올랐다.

“자, 가자고~ 하프엘프!”

“류-, 어째서 류가, 아니- 엘킨 대체 이건-!!”

정신을 차리기 위해 부러 소리를 질렀다. 바로 아래에는 황금의 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야 한다. 셀리안에게로, 왕성으로.

“아니온, 달려주십시오.”

순간 엘킨이 고삐를 휘두르고,  순백의 백마가 날개를 퍼득이며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기 시작했다. 황금의 틈은 점점 멀어져 간다. 백마의 속도는 빠르고, 나는 엘킨의 이름을 부르며, 멀어지는 황금의 틈을 바라보았다. 빠른 속도로 나는 바람에 눈이 아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엘킨, 엘킨! 이게 무슨, 셀리안하고 이미 말이 된 건가요. 어째서 셀리안을!!”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면, 엘킨이 고삐를 쥔 손을 들어 내 눈을 가린다. 내 아픈 눈을 배려하는 것처럼, 동시에 황금의 틈이 있던 방향을 향해 있던 고개가 부드럽게 엘킨의 품에 파묻힌다.

“엘킨!!”

“주무십시오.”

“뭐?”

그 말이 울리고, 눈 위로 달콤하기까지 한 무거운 수마가 내려앉는 게 느껴진다. 마법이다. 그것도 수면 마법-

‘지금 나 재우는 거야?’

니가 셀리안이냐!!!

비명은 소리가 되지 못한 채 삼켜지고 나는 잠으로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빛아래날개 님 // 그건, 비밀입니다...랄까, 끈기 있게 쓴 건 패러디정도네요. ㅎㅎ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니엘 님 // 진 입장에서야, 렌에 의해 이미 망가진 미실랭을 이용한 건, 재활용이고 어찌 보면 그 대가로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호의를 베푼 거지만. 셀리안이 한 건... ㅋㅋ 진 안티 생기겠다. 잘생겼으니 용서합시당. 헤헤.

여름날그하늘 님 // 셀리안이 리코멘을 달아주는 이벤트라긔여? 매우 멋진 생각이십니다만, 나무바라기의 손이 오그라드는 이벤트라 무리일 것 같습니다.;ㅁ; 셀리안은 다른 세계에 사는 왕님이라, 리코멘을 달려면 저에게 빙의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비루한 나무바라기는 그저 식물일 뿐이라 감히 마법왕님을 빙의시켜 리코멘을 달 수가 없사옵니다.ㅜㅜ 흑흑. 헤헤헤. 셀리안 좋아해주셔서 너무 기뻐요! 뭔가, 매너남과 얀데레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노력형 성군 남주인데(까보면 폭군) 사랑해주시는군요.ㅜㅜ 기뻐요.

dmdjsjwkal 님// 나는 얄궂은 사람입니다. 사람이지만... ㅎㅎ dmdjsjwkal님이 코멘 달아주셔서 더 콧대가 높아져 점점 얄궂은 나무바라기가 될 예정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시는 거죠? 그럼 기쁠 것 같아요.ㅜㅜ 화이팅할게요!!

月光天女璉 님 // 골뱅이가 그 뜻이었습니다! 月光天女璉 님도 소설 쓰시는군요! 헤헤헤! 영혼은 반으로 쪼개진 게 아니라, 셀리안 다음에 태어난 게 하영이니까요. 그냥 온전히 그 영혼입니다. 다만 셀리안은 영혼이 고장나기 바로 전, 뭔가 쌩쌩한데 나사 하나 빠진 영혼이고, 하영은 본격적으로 고장난 영혼!! 이라고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분, 질문이 다 스포를 원하시네요. ㅋㅋ 나무바라기는 입에 지퍼를 채웁니다. 지이익♥

음식과의애증 // 리안은 성군입니다. 척 안 해도 성군이고 척해도 성군이고 그는 세계의 정의입니다! 뚜둥!! (퍽퍽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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