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0 105 =========================================================================
내 손을 잡고 엘킨은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정말로 행복한 듯이 웃고 있다. 나도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엘킨은 고해하는 것처럼 속삭인다.
"저는 사랑을, 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줄곧."
나는 놀라서 그를 보았다. 그건 나다. 내가 줄곧 사랑을 그렇게 보았다. 그는 내 표정에 미소짓는다. 당신도 그렇죠, 라고 그가 되묻는 것처럼 느꼈다.
"당신을 만나고,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고 사랑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렇지만 점점, 사랑이 추한 게 아니라. 제가 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엘-"
"가장 추한 건 접니다. 당신도 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시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거죠?“
그런 이야기- 그날, 엘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나를 사랑해줘서.
나를 위해 변해줘서.
그러니까, 이제는 마지막까지 엘킨 다이브 다운 엘킨으로 있어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제는 지난 일입니다만. 그날, 저 남자가 신전 앞에서 일을 벌였을 때... 제가 당신에게 입을 맞춘 건 당신이 저를 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일부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폐하의 일을... 그리고, 계속 시간을 내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달아날까, 폐하에게 갈까."
엘킨의 눈이 어두워져, 엘킨이 엘킨답지 않게 변해간다. 그게 불안했다.
"폐하를 지켜야 하는데, 지키기로 결심했는데- 당신 생각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저는 저답지 않아졌습니다. 아니, 저다운 게 뭔지도 모르게 되어서."
[엘킨-그대 답지 않군.]
[...저답다...입니까.]
엘킨은 미소짓는다. 자신의 치부를 고해하며. 사실 치부도 아닌, 사랑했을 때 당연스레 솟아오르는 어둠을 인정하며.
그는, 엘킨 다이브는 언제나 엘킨 다이브다웠다. 자신답지 않게 왜곡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행동에 눈을 돌리지 않고.
그는 나를 위해서, 변해가고 있었던 건데.
“당신이, 용기를 내주셔서 기쁩니다.”
엘킨은 행복한 듯 웃었다.
“저에게, 저답게 있어달라고 해주셔서, 그런 저를 사랑한다고 해주셔서.”
“...”
“사실, 저 남자보다 아직도 제가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만.”
그는 류를 흘끔 보았다. 류는 우리들의 대화에는 흥미를 잃은 것처럼 햇빛 아래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당신이 저를 위해, 변해주셨으니. 저도- 당신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나는-
사실 변하지 않아서.
“사랑합니다. 하영.”
“저도요. 정말 좋아해요. 엘킨.”
105
오늘 아침에는 셀리안이 찾아왔다.
류는 오늘도 변함없이 깐죽거리고 셀리안은 어느새, 류라는 남자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심드렁하게 그는 그를 무시하고 티테이블을 준비한다. 물론 마법으로.
“나 몰랐는데 너 같은 놈을 변태, 라고 하는 거지?”
류가 셀리안이 늘어놓은 과자를 멋대로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셀리안이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누가 먹으라고 했지?”
“에이, 내가 먹으면 하영도...”
“미각은 전이 되지 않는 걸로 아는데.”
셀리안이 날카롭게 말하며 류를 붕 뜨게 만든다. 그는 테이블 위로 떠올라 과자에는 손도 닿지 않는다. 그는 나 때와는 다르게 일찌감치 과자를 먹는 걸 포기하고 투덜대는 걸 선택한다. 셀리안을 벅벅 긁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매도했다.
“변태.”
“하하, 변태한테 변태 소리를 다 듣는군.”
셀리안은 서늘하게 웃으며 내 앞에 과자 그릇을 놓았다. 놓고, 류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이제 그는 류를 노려보지도 않았다. 마치 공기처럼 무시했다.
“변태지. 어떻게 내가 쟤한테 닿으려고 하기만 하면 띄우냐? 쟤가 옷 갈아 입을 때도 띄우고. 변태, 너 혹시 제약이 아니라 다 보는 거 아냐?”
...그건 나도 불안했던 일이라 물끄러미 셀리안을 바라보면 그가 장난스럽게 눈을 휜다.
“설마. 가끔 보는 건 부정하지 않지만.”
“가끔 본다고요?”
“큭, 큭큭큭.”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들짝 놀라자 셀리안이 허리를 굽히며 킥킥거린다. 그 모습이 새삼 미심쩍어져 바라보면 그가 과자 하나를 공중에 띄워 내 앞에 들이밀었다.
“그런 눈으로 보다니, 여전히 건방진 여자군.”
“음...”
“농담이야. 이제, 안 봐.”
“이제?”
“엘킨한테 혼 나니까.”
“그럼 언제까지 봤다는 거예요?”
“가끔이라니까.”
그는 붉은 눈을 여유롭게 접으며 미소짓는다. 더 이상 이야기할 생각이 없는 듯 자기도 과자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엘킨에게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셀리안은 다시 스스럼이 없어졌다. 무언가 안심한 것 같기도 하고 안정된 그는 전처럼 내게 접해왔다.
엘킨을 아끼는 그니까, 내가 마음을 정하고, 확실히 고백을 해서 안심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띄운 과자를 받아먹으며, 다시금 모든 게 잘 된거라고 확신해본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시선에, 셀리안은 곤란한 듯 웃으며 다시 한 개의 과자를 더 내밀었다.
*
엘킨과 셀리안이 찾아오는 빈도가 늘긴 했어도, 류와 하루 종일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동시에 알게 된 건데- 류라는 남자는 기본적으로-
“양파가 좋아, 당근이 좋아?”
“...양파.”
“음, 진은 당근이라고 하는데.”
빈둥댄다. 아니, 빈둥대는 것이 아주 체질화되어 있다. 그런 주제에 쉽게 무료해하고 심심해한다. 내 침대에 대자로 누워 뒹굴거리다가 금시에 질린 남자는 앉아서 벽의 무늬를 셌다. 벽의 무늬를 세는 것도 질린 그는 이제 나를 보고 있는 중이다. 나를 보며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을 묻고 있다.
이건 언제 질릴려나.
“너 일 많지 않냐? 이 주술 슬슬 푸는 게 어때?”
“일 없어.”
하루드의 수장...아니었나. 얘?
“그리고 주술은...몰라~”
“모른다고?”
나는 류의 머리맡, 침대 바로 앞에 서서 남자를 노려보았다. 류가 감고 있던 눈을 갸름하게 뜨고 나와 눈을 마주한다. 내게 질문해대는 건 질리지 않은 것 같지만 앉아 있는데는 질린 것 같다. 산만한 남자였다.
“모르지. 몇 번 마법왕과 독대도 했는데, 걔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니 영혼 깎여나갈까봐 되게 걱정하더라.”
“...그야 당연하지... 너 그래도 괜찮아?”
기가 막혀서 묻는다. 깎이는 건 내 영혼만이 아니다. 류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상하게도 내 영혼이 깎인다는 말에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영혼이라는 건 나에게는 너무 막연하게 들린다. 단지 이 남자와 계속 함께 하는 게 귀찮고, 나보다 실질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지독하게 태연한 남자의 얼굴에 의문이 들었을 뿐이다.
“내 영혼은 완전 애기래.”
“응?”
“그러니까, 아마 괜찮을 거야. 그리고 너도-”
그는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잡으려 했다. 그 순간 그의 몸이 붕 뜬다. 붕 뜨는 순간 그가 손을 팔랑팔랑 움직이고 미약한 바람이 뺨을 쓴다. 나는 떠오르는 류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뻗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황금색 눈에 내가 담기고, 내 검은 눈에 그가 담겨 있다.
“진이 그러는데 영혼이 무지 늙었대. 영혼에 어떤 타격을 받아도 영향을 받을 다음이 없다고-”
“...그게 뭐야.”
“극과 극은 통하니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진이랑 렌은 그러더라고.”
류가 씨익 웃는다. 웃으며 조금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이 된다.
“영혼의 다음이 없다는 건 무슨 의미지? 죽는 것과는 다른 건가?”
“내가 어떻게 알아?”
“...”
류의 입이 열렸다 닫힌다. 그조차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헤매는 표정이었다. 그때 가볍게 노크소리가 들렸다.
*
노크의 주인공은 히아신스였다. 드문 일이었다.
류는 노크소리와 방문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은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외면한 건 나다.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히아신스와 만나는 건 키오후와 만났던 날 이후 처음이었다.
‘키오후...’
그와도 그날 이후 만나지 못했지만-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반면 걸리는 것도 있었다.
일단, 히아는 그에게, 그의 호수에게 결국 고민을 물어봤을까.
"...히아!"
문을 열자, 히아신스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는다. 나도 마주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변함 없어보였다. 여전히, '내가 아는' 히아신스다. 그것으로 안심한다.
안심이라고?
“영-”
나는 히아신스에게 얼른 자리를 권했다. 히아신스는 방안으로 들어오며 흘끔 류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주긴 했지만 그녀 역시 류를 인식하지 못했다.
류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금빛 눈동자는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인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상태 그대로 계속, 윤하영을 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해바라기유 님, marknam7 님, YouURin님, 후원쿠폰 감사드립니다.ㅜㅜ 엉엉. 그런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당일치기로 워크샵을 갔다 왔었는데. 왕복 6시간 내리 운전해서 그런지 오자마자 기절해서.ㅜㅜ 정말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marknam7 님...ㅋㅋㅋ7인가요.ㅎㅎ
한녀름밤 님 // 남주는 남주남주 외치는 애가 남주입니다!(퍽퍽퍽퍽) 여러분이 보기에 제일 멋진 애가(?) 남주입...(퍽퍽)... 죄송합니다. ㅎㅎ 즐거운 주말 되세요!!>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