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2 Side story4 =========================================================================
Side story4
물뱀의 일족, 그리고 가깝게는 그들의 후예들은 호수와 함께 했다. 호수는 그들의 부모요, 친구이고, 조언자이며 세계였다. 때문에 호수의 마나와 가장 가깝게 연결된 자가 다음대 장로 후보가 된다.
현재의 장로는 뱀일족의 막내 공주 에드나의 부친으로, 그는 근 300여년 간 물뱀의 장로였다. 그만큼 호수와 가까운 마나의 대리자가 태어난 건 최근에는 막내공주 에드나가 있었고, 그녀가 그의 부친을 넘어 호수와 가장 가까워지는 건 100년 안에 이루어질 거라는 게 공인된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 막내공주가 대장로 케오후의 전성기만큼이나 호수와 가까운 마나를 가지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그녀는 호수 뿐 아니라, 뱀일족의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특히 케오후는 그녀를 자신의 친손녀처럼 예뻐했다.
에드나는 어린 시절부터 호수의 이야기, 세계의 사명, 고대왕과 성녀의 사랑 이야기 등을 그에게 직접 들었다. 케오후는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옛날이야기처럼.
그녀는 그것을 조금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기분 좋다고도 생각했다. 호수는 그녀의 친구였으며, 케오후는 그녀가 존경할만한 스승이었다. 그녀는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처럼, 케오후처럼 되고 싶다고.
다만, 케오후의 모든 이야기가 고루하지만 아름다운 무언가, 과거의 지켜야할 무언가로 받아들여졌던 반면 고대왕과 성녀의 사랑 이야기만큼은 에드나에게는 약간 껄끄러운 것이었다. 사실 그 이야기는 물뱀의 일족에게는 꽤 유명한 일화였는데, 여자 물뱀의 아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대장로의 이야기는 매우 아름답게 들렸다. 에드나도 그것이 제법 아름답다고는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동경 할 수는 없었다. 그 이야기에는 껄끄러운 느낌이 있었다.
뭔지 딱 집어낼 수는 없지만, 그랬던 것 같다. 그것이 명확해진 건, 그녀가, 인간의 나이로 사춘기 무렵 즈음이었다.
물뱀의 장로가 호수를 정화하는 작업을 돕게 했던 첫날이었다. 아버지인 장로와 대장로가 보는 앞에서 에드나는 호수의 중심으로 몸을 던진다. 다른 물뱀의 일족도 호수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거나 이야기하는 게 가능했지만, 밀폐된, 흐르지 않는 호수를 정화하는 건 장로만이 가능했다.
물론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일족 모두에게 어느정도 가능하긴 했지만 가장 맑게 정화할 수 있는 건 호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마나를 가진 장로뿐이었다.
그날은, 공인된 행사는 아니었지만 그녀 개인에게는 자질을 시험받는 날이기도 했다.
호수 중심 깊숙한 곳에서 에드나는 헤엄친다. 긴장도 녹아, 헤엄칠수록 마치 어미의 자궁에 있는 것처럼 따뜻했다. 차가운 물인데도. 그녀는 자유롭게 헤엄쳤다. 그들 일족은 알에서 깨어나지 자궁 따위는 모르지만. 그래, 유니콘의 손님들이 이야기했던 포유류의 자궁이란 게 이런 게 아닐까, 에드나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가장 깊숙한 곳으로 에드나는 손을 뻗는다. 정화한다. 호수에 말을 건다.
사랑스러운 우리의 호수-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모든 것, 사랑스러운 그대-
그녀의 몸이 완전히 물뱀화 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푸른색 비닐이 매끈하게 몸을 감싸고, 그녀의 등에 돋은 날개는 그녀가 가장 고대 물뱀과 가깝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지느러미 같은 투명한 비취색 날개가 물에서 유영한다.
깊이 깊이 깊게, 호수 밑으로 잠수해 손을 뻗는다.
'정화해야지, 정화를 해야지.'
뱀들이 호수에 던졌던 수많은 고민을 들으며 세월 속에서 지친 호수의 기운에 접한다. 탁해지거나 오염된 게 아니다. 그저 지친 호수의 피로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깨달아간다.
'?'
거의 정화가 되었을 무렵, 에드나는 민감하게 호수가 드러내길 거부하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호수가 꼭꼭 숨긴 어떤 고민. 에드나는 순진한 치기로 물었다.
‘뭘 고민하는 거야?’
라고.
에드나는 바닥의 바닥까지 헤엄쳐 들어가 호수에게 물었다. 호수는 흔들린다. 흔들흔들
흔들리기만 하던 호수가 재차 묻는 어린 물뱀에게 대답을 한 건 얼마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그 이야기를 해준 게 줄곧 고민이야.]
라고, 호수가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
에드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좀더 깊숙하게 손을 뻗는다.
[그런 이야기 따위 해주지 않을 걸.]
무슨 이야기냐고 묻는다. 호수는 토로한다. 후회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에피룬 크레이누와 성녀의 사랑 이야기. 퇴색되고 퇴색되어 아직도 계속 된다.
이미 죽은 성녀가, 그 기억이, 그 영혼의 조각이 찌꺼기처럼 계속 된다.
호수는 고민하고 있다. 그것이, 세상의 균열로 이어지는 것을. 언젠가 그 찌꺼기가 소망을 이루고 이뤄 누군가가 상처 입고 세계가 다치는 순간에 대해- 예언하듯 고민하는 것을-
‘...’
그걸 듣고 그녀는 함께 고민한다. 고민하듯 호수 가장 아래까지 손을 뻗을 때 그녀의 손을 누군가가 막았다.
거대한, 초록 물뱀.
‘대장로님?’
대장로가 고개를 젓는다.
그 순간 에드나는 깨달았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전달한 자, 그 사랑이 역사 속으로 잊혀지는 걸 용납하지 않은 또 한 존재에 대해-
언젠가 봤던 갈색 머리의 여자'들'을 기억한다. 대장로와 즐거운 듯 이야기하는 여자, 아니 여자들. 대장로는 그녀들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먼 어느 순간을 갈망하고 있었다.
에드나는 키오후의, 자신과 같은 호박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괜찮아?”
괜찮다니,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에드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붉은 머리의 어린 소년은 눈을 찢은 상처에 툭툭툭 피를 흘리며 에드나를 보고 있다. 웃고 있다. 손을 내민다. 실명할지도 모른다. 영원히 그의 한 쪽 눈은 빛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소년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혹시나 다칠까봐 걱정하고 있다.
다쳐봤자, 볼이 조금 찢기는 것 뿐이다. 팔이 조금 긁히는 것뿐이다. 그 정도인데.
“바보같은.”
에드나는 씹어뱉듯이 이야기했다.
이건 멍청이다. 아무리 재능있는 기사 소년이라 해도, 인외생물인 에드나에 비해서는 약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는 아직 10살을 갓 넘었다.
그런 그가 에드나를 감쌌다. 아니 감쌀 필요도 없었다.
“너무한데, 구해줬는데.”
“안 구했거든!!”
그럼 더 다행이지, 라고. 자신이 없었는데 안 다쳐서 다행이라며 헛소리를 해대는 소년. 환하게 햇살처럼 웃는 소년과 눈을 마주하며 에드나는 황당함에 화를 냈다. 화를 내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인외생물은 인간의 귀족 따윈 잘 알지 못했다. 에드나도 그랬다.
다만, 미실랭가의 인간들은 대부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물뱀의 일족을 떠날 수 있었다. 언젠가 돌아와야 했지만, 그녀는 한 번은 일족을 떠나야 한다 생각했고, 미실랭의 조모, 그녀를 만났을 때 그 당당한 여기사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와 함께라면, 한순간이라도 바람처럼 살 수 있다고. 모든 오욕의 감정과 과거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따랐다.
그리고 키도스 미실랭을 만났다.
소년, 작은 소년. 미물 같이 작은 소년은 말그대로 바람처럼.
미실랭가의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소년, 어쩐지 마음이 끌렸던 용감하지만 바보 같은 인간 아이- 그 바람을 따르는 걸 넘어,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 처음. 누군가의 자유를 지켜, 곁에서 함께. 어느 순간 이 긴 방황, 인간을 따르는 방황을 이 남자가 죽는 순간 끝내겠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가 내 마지막 주인이다. 이 남자를 지켜봐야지, 지켜보고 돌아가 자신이 장로가 된다면.
대장로의 그 집착도, 호수의 고민도 모두 품는 일족의 바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에드나는 비틀비틀 미실랭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등 뒤에 히아신스 에이나가 따라오고 있다. 그녀도 비틀거린다.
함께 보았다. 본 것은 함께.
그녀의 도련님은 신전 위에 있었다. 초록의 신전 위에서 그 기분 나쁜 여자와 마주하고 있다. 미실랭의 눈동자는 여느 때와 같다. 피곤해보이지만 여전히 강한 기운을 품은 눈동자. 그 눈동자로 여성을 압박한다.
키도스 미실랭의, 에드나가 뗄 수 없었던 그 눈동자로.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 류라는 남자가,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자신이 맥없이 기억을 잃고 미실랭에 대해, 가장 소중하고 가장 중요한 그에 대해 잊다니.
“...”
에드나는 뒤따르는 히아신스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문득 생각했다.
죽일까. 죽여버릴까.
이 여자도 보고 말았어. 알고 있어.
도련님이 그 여자를 죽이는 걸-
함께 보고 말았다고.
안나, 그 기분 나쁜 찌꺼기가 죽은 것 따위 아무래도 좋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일족이다. 누가 어떻게 안 했어도 붉은 용에게 발견된 이상 언젠가 그에게 죽었다. 문제는 그게 하필- 하필. 그런 걸 죽인 게-
에드나는 절망적으로 미실랭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닿고 싶다. 그에게 닿아 확인하고 싶다.
그의 영혼은 무사한지. 줄곧 흔들렸던, 불안했던 그의 영혼. 그래도 키도스 미실랭은 키도스 미실랭이었으니까. 그러니 확인하고 싶다. 조금 오염된 거라면, 조금 묶여 있는 거라면. 상관없다. 본질이 무사하다면.
“도련님-”
에드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무섭다. 그에게 처음 계약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만큼이나 무서웠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인간과의 계약은 자신이 선택하는 거였다. 그의 조모도, 그의 이모도. 마치 친구가 되자고 말하듯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두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마음에 들어 당당하게 묻고는 했지만, 키도스 미실랭에게 권할 때만큼은 떨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거절당해 슬펐다. 그러면서도 그의 영혼이 자유로운 것을 알고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거절 당할 게 무서웠지만, 거절당해 상처 입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키도스 미실랭이 좋았던 거니까.
“도련님!”
뒤따르는 히아신스가 다시 흠칫 어깨를 떨었지만 에드나는 한 번 더, 조금 더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키도스 미실랭은, 아무에게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아무도 사로잡지 않는다.
소유하지 않고 바람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 그 생각은 소망과도 같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야? 에드나.”
“...”
“그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이런 때일수록 하영을 지켜야지. 진짜, 이게 왠 난리인지.”
도련님의 말투다. 도련님의 눈빛이다. 도련님의 웃음이다.
그런데도.
“에드나?”
에드나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놀란 히아신스 에이나가 그녀를 지지했지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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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ㅁ; 나무바라기입니다.
크흡,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ㅜ_ㅡ 주말에 제가 과식으로 인해(...) 토요일에 나타나질 못해서...;;; 선추코, 정말정말 사랑합니다!>ㅁ//
좋은 월요일...되세요. 근데 월요일은 좋을 수가 읎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