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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패러독스-81화 (8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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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안의 기억 속 안나는 그의 12살 생일날 봤던 게 거의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최악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 후의 안나는 별로 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실제로 눈앞에 선 하녀의 인상 자체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머리색, 눈동자- 눈빛만은 제법 힘이 있었지만, 그게 끝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윤하영. 아니 하영 세르미아라고 합니다. 그, 에드나."

“서둘러야 하니까, 내려놓기 귀찮아.”

그녀와 오래 있는 건 사양이지만, 에드나에게 안긴 채로 인사를 하는 것도 뭐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에드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나는 개의치 않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는 안나라고 합니다. 세르미아 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왕비님께서도 만난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 대로네요."

"그때는 정말 감사했어요."

"후후. 전해드리면 왕비님도 기뻐할 겁니다."

“영도 헤르티아 님과 아는 사이였구나. 근데, 영은 에드나 님과 어딜 가는 거야?”

“시내의 빵집이랍니다. 히아신스 님이 소개해준 빵집의 닭고기 파이가, 아주 맛있다고 들어서요.”

에드나는 너스레를 떨며 히아신스만을 보고 히아신스와만 대화했다. 기분탓이 아니었는지 안나에게는 여전히 시선도 향하지 않는다.

“아! 닭고기 파이라면- 안나! 바구니에 닭고기 파이도 있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마침 잘 됐네요. 에드나 님과 영도 왕비님과 함께 티타임을 갖지 않겠어요?”

“왕비님도 적적하시니 좋아하실 겁니다."

이건 또 의외다. 나는 눈을 도록 굴렸다.

헤르티아는 꽤 편벽된 면이 있어서, 왕궁 누구에게도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그녀를 칭송하는 독사 같은 신하들과, 귀부인들이 있었지만 그녀 자체가 딱히 권력욕이 강한 것도 아니고 셀리안의 왕권이 워낙에 강해서, 그들과는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친한 하녀라고 해봤자 고향에서 데려온 안나뿐이었다.

그런데, 히아신스는 헤르티아와의 티타임을 권하고 있다. 안나와 히아신스도 친숙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냥 왕비의 하녀와 왕의 약혼자가 갖는 친밀감이라기에는 너무 허물이 없다.

"...거절하죠. 닭고기 파이보다 종달새 파이가 더 좋으니까요."

내가 헤매고 있으면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건 에드나였다. 히아신스는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에드나는 나를 안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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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나오고서야 에드나는 깊게 한숨을 뱉었다. 그녀는 양 눈썹을 찡그린 채 답답한 듯 연거푸 순을 쉰다.

심호흡을 하는 것조차 지독하게 예쁘다니, 역시 외모가 짱이라고 새삼 생각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혹시 그녀는... 인간이 아니야?”

"그녀~라고?"

"...안나 말이야. 그녀는 인간이 아닌 거야?"

에피룬 시대의 용 이외에 다른 이생물이라던가.

나는 나답지 않게 누군가에 대해 상대의 의견을 묻고 있었다.

윤하영으로서 본 안나에 대한 인상은 셀리안의 기억 속과 좀 달랐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셀리안의 생일 때의 기억이 강해서 그녀는 약간 이상한 여자였다. 인상은 약하지만, 이상한 여자. 불길한 여자. 재수없는 여자. 광기에 찬 듯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묘한 여자. 헤르티아와 닮은 여자-

그러나 실제 그녀는 그냥 딱딱하지만 마음 좋은 하녀처럼 보였다. 오랜 시간 소외당한 왕비님을 모시는 여유로움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내가 본 안나의 인상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셀리안을 상처 입힌 사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던 여자. 그 여자를 좋게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 질문은 에드나의 입을 통해 그녀의 불길함을 확인받고 싶은 거다. 나는 확인할 수 없었으니까.

“아닌데? 인간이야. 인간.”

“...그럼, 나이가 엄청나게 많다던가.”

에피룬 시대부터라면 몇 백살, 어쩌면 천살 가까이...

“그럴 리가. 끽 해야 사십 몇 살 아니겠어?”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셀리안의 기억 속 그녀는 헤르티아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에피룬 크레이누에 대해 셀리안이 역사서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았고, 아니, 에피룬 자체를 아는 것 같이 말했었다.

“그럼, 왜 에드나는 안나를 피한 거야?”

“뭐?”

“피했잖아. 시선도 안 마주치고, 지금도 도망치듯... 그녀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야? 에드나는 셀리안이, 셀리안이 무섭다고 피했잖아. 그럼 그녀는 더 불길한 무언가이기에 무언가 나쁜 게 얽혀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으음...”

에드나는 눈을 깜빡인다. 그녀는 언제나, 호박색 눈동자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이 많았고 눈을 깜빡이는 일이 드물었기에- 나도 모르게 마주 깜빡이고 있으면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연다.

“나는 엘프가 싫어.”

“응?”

“엘프란 선조니 세계니 너무 거시적인 것을 신경쓰지. 같은 의미로 우리 일족의 노친네들도 싫어. 자신의 의지보다 선조의 의지 같은 걸 내세우니까.”

“에드나?”

“그 여자는 그런 것의 결정체야.”

에드나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동시에 불쾌한듯 내뱉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여자를 피한 건 개인적인 취향이야.”

“개인적인 취향?”

“그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지니까. 전혀 다른 존재의 의지를 긴 시간을 거쳐 자신의 존재 자체라는 듯 떠받드는 일족이라니. 우웩.”

“안나씨가... 무슨, 일족인데?”

사람, 아닌가.

“킥. 안나라. 내가 본 안나만 해도 수십명은 되겠네. 그것도... 셀리안 크레이누가 태어나면서 태반은 붉은 용에게 죽었지만.”

“붉은 용?”

“저건 인간이야. 그냥 40몇살 먹은 늙은 여자인간. 다만, 선조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존재 가치로 삼아, 개미 같이 하나의 유지를 위해 살아가는 멍청한 존재지.”

“안나가 수십명...”

금시초문이었다. 칼미온 선배인 앤도, 앤이라는 이름이 여자아이의 이름으로 꽤 많이 붙여진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에드나가 말하는 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셀리안도 모르는 이야기가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동시에 셀리안이 줄곧 궁금해했던 이야기다. 에드나는 눈썹을 찌푸린다.

“유명하지 않아. 그것들은 음침하고 음지에서 슬금슬금 움직이는 좀비 같은 것들이니까.”

“좀비...”

“그래, 좀비이자 개미. 마치 자신들이 한 개체인 것처럼 행동하는 기분 나쁜 존재들-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그런 쓸데없는 개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야. 특히 인외종족들에게는. 그들은 오래 살아 그녀들의 본질을 파악하기 수월하고 그녀들의 숙원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존재들이니까.”

그녀의 눈에 혐오가 깃든다.

“에드나는,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야?”

“나는-”

“...”

“내가, 뱀일족의, 예언의 호수를 지키는 공주이기에 아는 것 뿐이야. 그 여자는 뱀일족의 예언을 들으러 몇 번이고 찾아왔으니까! 최초의 안나부터, 셀리안 크레이누가 태어나기 바로 전까지는 그 후손들이-”

그녀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 입을 다물며 나를 떨어뜨린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

“내가 고향을 떠난 데는 그것들이 보기 싫은 것도 한 몫 했어. 안나로서 살아가는 그 인형들이 뱀일족의 호수를 몇 번이나... 뻔뻔하게- 대장로는 ‘최초의 안나’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 후손들의 편의도 봐줬지만, 정말 역겨워서...”

그녀는 진심으로 분노한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저도 알 수 있게... 으앗!”

그녀의 하이힐이 바로 내 앞에 내리꽂힌다. 바닥이 패였다.

“이제 그만할래.”

“에드...”

“한 마디라도 하면 찍어 죽일 거야...”

“...”

“검은 용의 주인을 찾자. 시간이 아까워졌어.”

*

그 후에는 조금 서먹한 느낌으로 시내를 돌았다. 어색하게, 짧지 않은 시간을 돌았지만 류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는 류보다도, 안나나 에드나가 알고 있는 ‘최초의 안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알고 싶다.

내 안의 셀리안도, 나도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기에 곧 윤하영이 먼저 포기했고, 내 안의 셀리안도 체념했다.

“...그, 에드나.”

“뭐야?”

에드나의 눈이 날카롭다.

“...우리.”

“...”

“닭고기 파이나 먹을까요?”

그녀의 눈에 빛이 스쳤지만 스러진다.

“먹어요? 네? 배고프단 말이에요.”

“...”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른다. 조르고 조르면, 한결 누그러진 것 같은 분위기를 숨기며 에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닭고기 파이를 먹은 뒤, 시내와 시내 주변 구석구석까지 뒤적였지만 류는 찾을 수 없었다. 지루한 탐색이었지만 에드나는 의외로 짜증을 입에 내지 않았고 전과 다름없는 느낌으로 시내를 함께 돌아주었다. 물론 시내의 빵가게란 빵가게는 전부 들러 각 가게의 닭고기 파이를 섭렵한 건 옵션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는, 그녀가 제일 맛있다고 칭찬한 빵가게였다.

‘대체 몇 개째야.’

통통하게 솟아오른 배를 남몰래 쓸며 우아하게 닭고기 파이를 우물거리는 에드나를 바라본다.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다녀 피곤했지만, 그녀는 멀쩡해보였고, 전혀 배도 나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안나가 아니라, 류야.’

안나에 대해 궁금했던 건, 엄밀히 말하자면, 미련이다. 셀리안 크레이누의 미련. 그는 그야말로 안나와는 12살 생일 이후 접점이 없었지만, 그녀가 모든 것의 흑막은 아닐까 줄곧 생각해왔다. 생각해왔지만, 실마리를 잡을 수가 없어, 윤하영은 그 감정에 초조했던 것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면, 에드나가 문득 입을 열었다.

“신수들과 마수들 사이에 도는 소문이 있었어. 마법왕 에피룬 크레이누의 사후 용들은 깊은 시름에 잠겼고, 에피룬 곁에 있던 성녀는 타락했다-고.”

“!”

마음을 정리한 순간, 에드나의 입에서는 아까의 이야기가 계속 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닭고기 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핥으며 나를 보았다.

성녀- 셀리안이 읽었던, 에피룬 크레이누의 역사서를 힘껏 떠올려 본다. 그에게 두 마리 용이 복종했다는 기록, 그의 업적- 하지만 성녀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의문에 차 그녀를 바라보면 에드나가 옅게 웃는다.

“내가,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건- 네가 마법왕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야. 이건 거진 우리 대장로의 독단이기에- 외부로 새어나가게 하고 싶지 않지만, 당사자라면 역시 조금은 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 것 뿐이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요.”

“뭐?”

“저랑, 셀리안이랑... 그리고.”

에피룬이... 이상한 고집이었다. 여전히 안나에 대해 듣고 싶으면서도, 그러면 조용히 듣는 편이 나을텐데도 반사적으로 반박하고 만다. 에드나는 웃었다.

“후후.”

“?”

“그래서, 나는 네가 제법 마음에 들어.”

“...”

“이야기를 계속 할게. 성녀는, 인간의 기준으로는 매우 천한 존재였다고 하더군. 그래서 인간들은 기록하지 않았지만, 인간이 아닌 자는 마나로 판단하니까. 그것은 매우 깨끗하고 강한 마나를 갖고 에피룬을 지지했다. 에피룬을 사랑하고, 에피룬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를 아는, 에피룬을 아는 인외존재에게는 그게 진실이었어.”

에드나가 먼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마, 대장로는- 그 여자를...”

“...”

“어쨌든- 아름다운 관계였겠지만, 에피룬이 스스로를 봉인한 후가 문제였지. 인간들은 천한 여자가 그들의 마법왕 곁을 지키길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는, 그 주변을 미친 사람처럼 맴돌았어. 맴돌며 자신의 마나를 이용해 이것저것 실험을 시작했고, 자신들을 알던 인외종족들에게 조언을 얻었어. 에피룬을 깨우고, 자신이 그를 계속 기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 여자가 혹시...”

에피룬을 계속 기다린 여자. 마치 에피룬처럼 셀리안을 대하던 여자. 헤르티아 곁에 있던 여자 하녀.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성녀는 최초의 안나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서 그 하녀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만둬. 그건 성녀의 찌꺼기일뿐이니까.”

내 의도를 짐작한 에드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 작품 후기 ============================

일주일의 반이 지나가니 피곤하네용...

에이리엘 님 // 저도 고3때 그랬던 것 같아요. ㅎㅎ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씻는 건 제법 좋아해요. 피로가 풀린다고 착각 하게 되지용.ㅜㅜ 씻고 착각 속에서 출근하고 일하고 글 쓰고...ㅎㅎ 그렇습니다.

lokoko 님 // 여자는 평생 다이어트...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은 악마인가 현자인가...ㅜㅜ 또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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