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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사제님이 아니십니까.”
우리 쪽으로 두 사람이 가까워진다. 목소리는 하나지만, 걸음소리가 두 사람이다. 나는 셀리안에게 안긴 채 다시 찾아온 성가심에 긴장했다.
시모갈의 사절들은 마치 물꼬가 트인 것처럼 줄줄줄 넘쳐 흐른다. 하필 이런 상황에, 민망하기 그지없다.
“아누휀 대신관님-이시군요. 그리고...”
요한은 조금 꺼리는 것처럼 다른 한사람의 이름은 부르지 않는다. 주춤주춤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구의 눈치를 보는 건지는 조금 불분명하다.
다른 한 사람이 이름을 부르기 힘들 만큼 높은 사람인 걸까, 싶었지만 기억 속 시모갈 사절단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아누휀 윈드아 뿐이었다. 원래는 오지 않았던 요한이 온 시점에서 인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누휀 대신관보다 높은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는 시모갈에 5명뿐인 대신관이자, 또다른 최고신관 후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이름을 부른 젊은 사제, 요한을 모함한 최고신관 후보는 물론 그는 아니다. 아누휀 대신관은 꽤 인자한 성품으로, 셀리안 크레이누의 유명한 신봉자였다.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데다가, 본인이 고대 역사에 관심이 지대했고 에피룬 크레이누의 사생팬-셀리안의 그에 대한 이미지가 그랬다-이었기 때문이다.
“오오, 이런이런-”
요한을 발견하고 다가온 그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셀리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안 좋은데.’
셀리안 크레이누는 그가 거북했다. 아니, 싫어했다. 이 늙은이는 그를 정말로 에피룬 크레이누를 대하듯 대했다. 에피룬 크레이누의 시대에 살지도 않은, 한참 한참의 후손이건만- 마치 에피룬 크레이누를 자기 생애에 다시 만난 것처럼, 더 없는 기적처럼 생각하는 듯 했다. 마치 그의 어머니마냥.
‘경우가 다른가.’
어쨌든 이치에 맞지 않는 셀리안에 대한 신봉은 대단했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셀리안의 편을 들었다.
본의 아니게 엿들은, 요한과 셀리안이 나눴던 이야기를 반추해보면, 역시 시모갈 사절단이 온 건, 셀리안의 생일날 있을 일이 앞당겨진 것이었다. 연이은 추락사건과 성물의 실종에 대해.
이 성물이란 게 보여주니 마니 논쟁을 하긴 했지만, 실제 공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볼 수 있는 건 당대의 왕 뿐이고, 왕은 민중, 귀족, 성국과 타국의 클레임을 요령껏 막아내면 된다. 그러면 상대도 적당히 넘어가준다. 성물은 단지 핑계이고 정치적인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고, 성물이 무용지물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히' 존재유무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이 세계에 혼란을 가지고 올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되려 농담 같은 룰이 생긴 것 뿐이다.
바깥의 공기가 닿으면, 부정한 것에 닿으면 성물이 풍화되어 사라진다- 그런 미명하에 왕의 즉위식, 오로지 크레이누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당대의 왕만이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성국 시모갈의 최고신관이 요청할 경우, 대신관 1명을 포함한 인정받은 사제 3명 앞에서 공개한다, 라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시행된 적은 거의 없었다.
결국, 성물의 유무는 왕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추락사건을 빌미로, 시모갈이 성물을 확인한다느니 뭐니 하는 것도 굳이 이야기하면 정치적인 쇼였다. 요한은 ‘성물을 보여 달라는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며 마치 성물을 보여주는 게 간단한 일인것마냥 이야기했지만 그건 그저 '척'일 뿐이다. 물론, 요한의 경우 젊은 최고신관 후보의 객기와 비슷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성물이라.'
셀리안도 즉위식 날 성물을 확인했다. 그 녹색 신전에 들어가 상자를 열고, 그 안을 보았다. 성물은-
[그래, 성물은 잘 있더냐.]
“폐하를 여기서 또 뵙게 되다니-”
머릿속에 스며들듯 파고드는 기분 나쁜 기억은 아누휀 노인의 떨리는 목소리로 인해 차단되었다.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떠봤자 셀리안의 가슴팍 뿐이었지만.
“정말, 몇 번을 뵈도 이 노인네에게는 더없는 영광입니다.”
그는 정중할 정도로 몸을 굽혀 셀리안에게 인사한다. 그의 손끝도 목소리만큼 부르르 떨리겠지. 이것도 전생 때와 똑같다. 만날 때마다 이랬다. 이 노친네는.
“마침, 낮의 기적에 대해 이야기 드리고 싶었습니다, 만-”
“아누휀 대신관,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짐에게도 굴뚝 같으나, 지금은 짐의 작은 새와 침실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군.”
셀리안은 아누휀의 이야기를 가로막는다. 이 남자가 할 말이야 뻔했기 때문이다. 아누휀의, 이야기를 빙자한, 에피룬 크레이누를 향한 건지 셀리안 크레이누를 향한 건지 모를 찬사가 시작되겠지.
“이런이런, 늙은이가 눈치가 없었군요. 그럼, 내일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아아-”
“가죠. 요한 사제님-”
“네.”
요한은 조금 불퉁해져 대답했다. 그는 아누휀의, 셀리안 크레이누와 대리자 에피룬 크레이누를 등가로 놓는 사고방식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시모갈에는 셀리안 크레이누의 반대파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에피룬 크레이누에 대해서는 대부분 칭송하는 분위기였다. 요한으로서는 같은 최고신관 후보라도, 대신관이 이렇게 나오면 성물을 직접 확인한다는 그의 발언은 점점 하기 어려워질 터였다.
“아아, 이런 내 정신 좀- 폐하, 죄송합니다만, 이왕지사 뵙게 된 거, 소개 시켜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발걸음을 돌리려고 했던 아누휀이 생각난 듯 이야기했다.
‘빨리 가.’
아마, 셀리안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가볍게 나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다. 미미한 힘이고, 거의 느끼지 못하게 했지만 어쩐지 알 수 있었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에게 아누휀과 시선을 마주하는 게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셀리안은 대수롭지 않은 척, 해보라고 이야기했다.
‘허세는...’
아마도, 요한이 부르려다만, 여태까지 꿀먹은 벙어리마냥 가만히 있던 사제에 대한 것이리라고 짐작한다. 높은 사람은 아니고, 요한보다도 낮은 지위의 사제였던 것 같다.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소리가 나고, 아누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은, 제 제자입니다. 저 못지 않게 재능이 있습니다만, 이거 너무 팔불출이었나요. 하지만 사제로서는 한참 멀었지요. 인사 드리거라."
"황제폐하께 정식으로 인사 드립니다."
"?"
이 목소리는-
"에피룬 윈드아, 라고 합니다.”
그 이름에 나도, 셀리안도 굳었다.
*
셀리안은 굳었지만 금방 몸을 풀었다. 요한과 마찬가지로, 전생의 생일 때는 오지 않았던 사절단이다. 이런 기분 나쁜 이름을 가진 사제따위, 왔다면 잊을 리가 없다.
“윈드아...입니까?”
“버려진 아기를 주워 제자로 삼았답니다. 그게 17년 전인가, 18년 전인가.”
아누휀이 감회에 젖은 듯 중얼거린다. 셀리안은 부러 에피룬이라는 이름을 지적하지 않았다. 정말 파격적이기 그지없다. 고아 아이를 주워 에피룬인가. 셀리안의 아누휀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을 파고들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거의 전설이 된 황제의 이름을, 후대의 신관이 제 아이에게 붙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먼 먼 옛날의 황제에다가 타국이다. 붙이지 못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괜히 그 화제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노친네야 그 소재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게 빤히 보였지만, 셀리안은 사양하고 싶을 테고, 싫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엔실렌의 감옥에서 셀리안이 했던 이야기나 몇 번이고 사절단과의 사이에서 오가는 기적이란 말을 반추해본다. 아무래도 셀리안이 엔실렌의 기로 사람들을 살리는 대규모 회복쇼를 벌인 것 같았다.
'지나쳐.'
그게 사실이라면 지나친 것이다. 성물에 대한 추궁이 정치적인 쇼인 이상 전생에도 지지부진하긴 했어도 별 탈 없이 해결되었다. 지금의 셀리안이 벌인 기적쇼는 이를 한 번에 입 다물게 한 것이기도 했지만 약간 오버한 면이 있었다.
셀리안은, 엔실렌을 만나고 감정적으로 한계에 몰려 있는 거라고,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위태롭게 느끼고 있다.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아이는 마나도 신력도 꽤 강한 아이였지만, 신관이 싫다며 가출을 했었죠. 그리고 몇 년, 다시 돌아와 수행 겸 함께 온 겁니다. 에피룬 본인도 꼭 오고 싶어 했습니다..”
꿈틀, 셀리안의 팔에 또다시 힘이 들어간다. 미미한 강약의 바뀜이었지만 어쩐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짜증이 강해지고 있었다. 아마, 이런 저런 책략을 짜서 이번 사절단은 초스피드로 키오스를 떠나게 될 것 같다.
“황제 폐하, 저는 줄곧 황제 폐하를 뵙고 싶었습니다.”
에피룬 윈드아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린다.
'설마-'
역시라고 해야 할까, 설마라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 듣기 좋은 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그것은, 알고 있는 목소리다. 지금 급격히 셀리안 크레이누로부터 몸을 떼 남자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만나서 반갑군.”
셀리안은 미동하지 않았다. 제2의 노친네, 젊은 노친네 탄생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다.
반면,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신하고 있었다. 기묘하게, '아닌 것 같아'라는 기분이 강요하듯 들었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만나서 반갑긴 하지만, 긴 이야기는 내일 나누도록 하지.”
“아, 죄송합니다- 다만, 추락사건, 해결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가슴이 아프시겠습니다. 이 이야기만은 꼭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감히 할 말은 아니지만, 이번 방문, 폐하의 마음이 더 아플 텐데 기묘한 추궁이나 하게 되어 송구스럽다는 것-을요.”
“윈드아 사제!”
요한이 당혹스러운 듯 그의 이름을 부르고, 아누휀은 침묵했다. 셀리안은 떨떠름하게 응수한다.
“백성들한테 미안할 뿐이지.”
“과연, 성군이십니다. 폐하의 동상에서 사람이 떨어지다니, 자살했다고는 해도 괘씸한 남자네요.”
“...선대왕의 동상이지-”
“그, 그랬나요?! 제가, 키오스에는 처음이라, 너무나 닮은 동상에 그만...”
남자는 부러 송구스러운 척하며 말을 더듬었다. 실상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 동상을 빌미로 성물을 요구하러 온 사절단이 그 동상이 셀리안이라고 착각하다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지만, 셀리안이 이 화제로 화를 내는 편이 오히려 이상하겠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남자는 알고 있다. 알고 이야기하고 있다. 셀리안에게 이런 식의 말투가 그를 화나게 할 거라는 것도, 그가 화를 내지 않을 거라는 것도.
나와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나눴을 때는 몰랐던 것을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이런 이런, 가출을 통해 여기저기 가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나 보구만, 에피룬군- 자네의 이름이 바로 그 동상, 선대 키오스 황제이자 우리들의 대리자님 에피룬 크레이누님으로부터 따온 건데 말입니다.”
아누휀은 에피룬과 셀리안에 대한 존경심을 듬뿍 담아 설교하듯 이야기했다. 의뭉을 떠는 제자와 달리, 아누휀은 셀리안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가 어떤 감정을 갖는지 배려하지 않는다. 그저 칭송할 뿐.
“네, 그럼요. 과연, 그 동상이 에피룬 크레이누님이셨군요...왠지...”
에피룬의 이름을 가진 남자는 한 템포를 쉬고 이야기를 잇는다. 교묘한 화법이었다. 그는 칭송하는 척 하지만, 칭송하지 않았고, 모르는 척 하지만 알고 있었다. 셀리안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칭송만 하는 무리와, 그에 대해 알면서 독 같은 말을 내뱉는 자-
“...저보다 제 눈앞의 폐하가 더 제 이름이 어울릴 것 같네요."
예전의 그는 셀리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독 같은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반면 지금은, 그에 대해 알고 알면서 상처 입힌다.
[하하, 기분 좋다. 황제도 기분이 더럽겠어. 자기 동상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완전 기분 나쁠 테니까.]
류-
류다. 류가 지금 여기에 있다.
"제가 감히 이 이름을 갖고 있는 게 죄송할 정도입니다.”
이 이름은 폐하 건데 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말에 셀리안이 굳는다.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모르지만, 지금은 류의 등장보다도, 그의 말이 품은 독이 이 남자를 상처 입히는 게 싫어서.
나는 멍하니 그에게 맡기고 있던 몸을 움직여, 손을 뻗어 젊은 왕을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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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금요일을 위해 해물라면과 닭강정 샌드위치를 만들어 맥주와 드링킹 했습니다. 오늘부터라는 마음으로 폰에 다이어트 일기 앱 깔았는데 지워야겠다...
스즈카님이 후원 쿠폰 주셨습니당~ 감사합니다.>ㅁ/ 연참은 ... 어,언젠가 꼭, 반드시...꼭-(불끈!)(...꼭 이러고 불켠이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 아저씨개그心...)
항상 선추코 감사 드립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