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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꿈은 깨지 않고 계속된다. 그 이상한 광경이 계속 되고 있다.
공간이 뒤틀린다. 엔실렌이 숨이 막힌 듯 가볍게 숨을 몰아쉰다. 셀리안은 그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걸 보는 것처럼 바라본다.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는다. 가면처럼 웃는다.
"정말이지 대단한, 선조님이시군."
"..."
"정말 대단해. 용을 미치게 하고, 전혀 접점도 없을 여자를 포로로 만들어- 나를-"
그는 말을 멈춘다. 멈추고 오래도록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이제 그의,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걸 보는 시선'은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하다 셀리안은 돌아섰다.
"기, 기다려!"
엔실렌은 숨도 못 쉬게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애원하는 듯한 시선으로 셀리안을 바라보았다. 고통을 멈춰달라는 게 아니다, 그는 셀리안을 멈추고 싶어했다. 가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너는... 인간이니까 잊을 수 있을 거야. 그래, 응.”
“...”
“나는 네 마음도, 이해- 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는 매우 복잡해보였다. 복잡한 얼굴로 셀리안을 바라보았다.
“잊은 것도 이해해, 네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해해.”
“...”
“너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지금까지 계속 인간들 속에서 살아왔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그를 붙잡고 싶어서.
“...필요없어.”
셀리안은 일갈했다. 일갈하고 손을 들어 검은 감옥에 다시 하얀 구멍을 만든다.
“나는 너따위 알리도 없고- 잊어버릴만한 기억도, 이해받을 만한 감정도 없어. 그러니, 너는- 그냥 여기서 썩으면 되겠네.”
하얀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며, 셀리안은 엔실렌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다만, 한순간 허공을 바라본다. 빤히 허공을 바라보고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다시 공간에는 엔실렌 뿐이었다. 엔실렌은 고개를 숙인 채 셀리안이 사라진 자리를 본다. 사라진 자리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허공에 말을 건다.
어쩐지 그 허공은, 셀리안이 사라지기 전 바라봤던 허공 같았다.
“...괜찮아 보이네- 그야 내 기를 썼는 걸, 다른 쓰레기 같은 인간들도 다 치유돼서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정작 네가 안 나으면 의미가 없지.”
그의 눈에는 체념인지 분노인지 배신감인지, 계속해서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정말 저 ‘너’는 애교가 없어, 애교가. 사내라 그런가 싶으면, 옛날에 너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하아.”
허공, 아니 나는 간신히 그것이 나에게 거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애교가 없고, 오만해. 나나 류가 꽤나 쉽게 보이나봐. 류 녀석은 인간이지만, 내가 에피룬 이후 처음으로 선택한 주인이라고.”
그는 쇠사슬에 묶인 손을 흔들어 보인다.
“힘만 더럽게 세서.”
그리고 싱글 미소지었다.
“그럼, 몸조리 마저 잘해. 조만간 그렇게도 소중히 여겼던 이 나라와 함께 박살내줄 테니까, 그때는 저 ‘너’도 이름 정도는 불러주겠지.”
쩨쩨한 놈, 하고 중얼거리며 검은 공간이 사라져간다. 내 의식은 밀려나듯 물러나 그 이상한 광경은 끊겼다.
*
눈을 뜨면 그 황금빛 천장이다. 멍한 기분이었다.
‘방금 그건 뭐였지?’
꿈?
나도 모르게 다시 침대를 바라본다. 침대 밑의 바닥, 그 바닥의 밑 왕궁의 지하, 그곳에 펼쳐진 이공간에 최악의 인외생물체를 가두는 감옥이 있다.
검은 콜타르처럼 녹아가는 엔실렌.
“...”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지만 오싹해져 침대로부터 벗어난다. 무섭다고 생각한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셀리안의 시선이 내가 아는 셀리안의 시선과 닮아 무섭다.
셀리안에게 ‘에피룬 크레이누’와 관련된 모든 것은 역린이다. 그의 어머니, 용, 동상, 자신의 생일- 그리고 엘킨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까지도. 그의 상처를 이해하고, 그를 셀리안 크레이누로서 이해해주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결정적일 때 그를 그로서 받아주었다.
‘...싫어.’
문득, 싫다고 생각했다. 그 올곧게 살고 싶어하는 다정한 왕이, 변하는 것따윈 보고 싶지 않다. 잔인해지는 건 보고 싶지 않다.
잠들기 전에도 그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히아신스에게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며- 아, 그런 생각을 했겠구나, 하고 오만하게 내가 아는 셀리안 크레이누와 대화 정도는 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하지만- 환각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어쨌든 실제 그를 본 지금은-, 그 서늘하게 식은 광기에 찬, 상처 입은 눈을 확인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진다.
'꿈이겠지...'
셀리안 크레이누를, 그가 지금 어떤 눈을 하는지. 그게 현실인지
그렇게
강하게 생각하는 순간, 몸이 바닥 밑으로 쑥 빠지듯이 꺼지고, 그런 나를 엘킨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엘킨?’
*
아무리 나라도, 갑자기 바닥이 꺼져 추락하는 걸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심장은 아니다. 분명히 막혀 있던 바닥이 푹푹 꺼지는데, 떨어진 게 그 밑도 아니고 끝도 없이 새까만 어둠이면 아무리 나라도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악!!”
소리를 지른다. 나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고 소리만을- 어느새 추락이 끝났지만, 여운은 남아 눈을 꼭 감은 채 계속 소리를 지르면- 내 입을 누군가가 막았다.
“시끄러운 아가씨네.”
“히끅.”
입이 막힌 채로 눈을 뜨면- 컬쳐쇼크로 딸꾹질이 나올정도로 아름다운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지 오랜만이고 놀랍도록 의외였다.
“으흡-”
진이다. 그에게 입이 막힌 채로 조그맣게 진이라고 중얼거리면, 그의 은색 눈동자가 다정하게 가늘어진다.
“시끄럽지만, 말귀는 알아듣는 아가씨네. 이제 조용히 할 거지?”
끄덕인다. 끄덕이자 진이 내 입으로부터 손을 뗐다.
*
정신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면, 일단 진은 혼자였고, 나는 모르는 방에 있었다.
새까만 방이었다. 새까만 건 지금이 늦은 새벽 무렵이라 그럴 테지만, 기본적으로 이 방이 어두운 위치에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여자 방.'
그렇다고 귀족이나 왕녀의 방은 아니다. 하녀의 방 같아 보이는데, 침대가 하나였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기묘한 분위기의 방이었지만, 이것저것 놓여 있는 것들을 보면, 주인이 있다. 아마도 독실. 꽤 지위가 있는 하녀일 거라고 얄팍한 추측을 해본다.
"...여기, 궁 맞죠?"
"내가 잘못 온 게 아니라면 그렇지 않을까."
그는 어쩐지 심드렁한 얼굴로, 벽에 손을 미끄러뜨리고 있었다. 표정은 그랬지만, 손은 섬세하게 벽을 더듬고 있다.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왜, 진이 궁에 있는 거예요?"
"찾을 게 있어서."
"류도 있나요?"
"응? 걔가 여길 오면 안 되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라고 할까, 그녀석 꽤 똑똑해."
그는 여전히 류를 높이 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다. 아마 셀리안을 필두로 류를 찾는 사람은 왕궁에 많을 테고, 류가 여기에 올리는 없다. 다만, 진이 오는 것도 별로 똑똑해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매우 매우 어설픈 추측이지만, 그는 아마도.
"그보다, 아가씨는 갑자기 여기는 왜 온 거야?"
류에 대해 좀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진은 이야기를 돌린다. 의도적인 건지, 아닌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여기가 어딘데요?”
“모르고 온 거야?”
“그게...”
진은 벽으로부터 손을 떼고 정말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대로 이 방을 나가도 되지만, 여기가 정확히 왕궁의 어디인지 알고 행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사정을 설명하기로 했다.
갑자기 방 밑이 푹 꺼져 이곳으로 왔다고 하자, 진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내쪽으로 고개를 숙인다.
언젠가와 비슷했다. 처음 만났을 때 확인하듯 내게 다가오던 것과 비슷했다.
그가 나에게 가까워져 있는 동안, 나는 조용히 상황을 반추한다. 방이 밑으로 꺼졌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닥이 꺼지고 내가 추락하는 순간 엘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킨이, 와 있었던 걸까.
그 방에?
‘착각이겠지?’
그 시간, 그 상황에 왜 엘킨이- 심장이 강하게 뛰는 건 거의 자동적인 반응이었다. 무슨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엘킨과 여러가지 눈에 띄는 생리적인 반응이 연결되는 게 부끄럽다.
“갑자기 흥분은 왜 하는데?”
“...당신, 이번에는 당근향기 안 나네요.”
양파향기도. 귀신 같이 내 감정변화를 알아챈 그에게 부러 핀잔을 준다.
“덕분에. 고맙다.”
“뭘요.”
뭐가 고마운지는 모르겠지만. 놀려주려고 했는데 감사가 돌아오다니, 역시 이 사람도 류만큼이나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는 나로부터 얼굴을 떼고, 가볍게 선고했다.
“흐음. 여분의 마나가 생겼는 걸.”
“마나가요?”
"응, 생겼어. 꽤 많은 양이 증가했'었'는 걸?"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진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는 진지했다.
"잠깐만요."
"?"
서둘러 하녀의 방 창가로 달려간다. 창밖을 바라보면 역시 궁이었다. 층수로는 한 2층정도- 나는 새까만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불꽃이여 내 손에 깃들어 타올라라-”
우왕, 중2병 같아. 중2병 같지만 언젠가 실패했던 주문을 읊는다. 읊었고-
“...”
“...”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너무 난이도가 높았나.
“내 안에 깃든 빛이여, 앞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라!”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이번에는 기초 중의 기초- 등불마법이다.
“...”
“...”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진...”
“애초에 아가씨 마나는 바닥인 걸. 바닥인 마나는 싹싹 긁어 쓰는데가 있으니까, 마법이야 당연히 무리지.”
“방금-”
여분의 마나가 생겼다고.
“보통 사람들도 마나는 어느정도 있어, 근데 아가씨는 그것도 없었는데 딱 그 정도가 생겼다는 이야기야."
“...완전 마나 지진아네요."
“큭,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어쨌든- 아가씨가 셀리안 크레이누에게 치료 받고, 엔실렌의 기를 받으면서 약간 마나가 남았던 것 같은데.”
진이 터벅터벅 걸어와 다시 내 어깨에 이마를 댄다.
“그것도 거의 다 썼구만. 추측을 해보자면- 아가씨가 말한 바닥이 꺼지는 현상으로 다 써버린 것 같은데.”
"대체 그게 뭔데요..."
"순간적인 기적의 발현 아닐까?"
바닥이 꺼지는 게 기적의 발현?
“혹시 바닥 꺼지기 전에 무슨 생각한 거 있어?”
“...그, 누구를 좀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누구는 아마 셀리안 크레이누 같은데. 별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가씨가 강하게 만나고 싶다고 바라니까- 그 방이 이루어준 거 아니겠어?"
“방이... 살아 있나요?”
그건 또 몰랐던 일이다. 셀리안 크레이누의 전생의 기억을 뒤져봐도 방이 의지가 있다거나 하는 기억은 없었는데.
“푸흡- 방은 방이지. 아가씨가 있던 방은 아마 황제의 방이지? 그곳은 특히 황제가 오래도록 머문 곳이고, 아래에는 렌이 갇혀 있으니까, 아가씨에게 여분으로 생긴 마나와 방에 남은 마나가 반응해서 순간적으로 황제의 이동마법 같은 현상이 일어난 거야.”
“...대답이 잘 이해가 안 되요.”
“아가씨는 황제와 같은 영혼이잖아. 황제의 이동마법은 이 왕궁에서 웬만큼 바라는 곳에는 자유자재로 이동하게 하지. 애초에 마나나 마법은 원하는 걸 이루어주는 수단 같은 거니까. 그게 순간적으로 충족되어, 방이 주인의 소망을 이루어준 거야. 세계가 셀리안 크레이누의 소망에는 관대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지.”
내 표정에 진이 고생스럽게 긴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뭔지 알 듯 말듯할 뿐이다.
“...여긴... 없는데.”
방이 내 소원을 들어주었다 치자, 하지만 이곳에는 진과 나뿐이다. 셀리안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없다. 기적이니 뭐니 했지만 어설프기 그지없다.
“아가씨는 황제가 아니잖아. 어설픈 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답도 있겠지만- 혹시 도중에 딴 생각 한 거 아냐?”
“...”
문득 마지막에 들은 엘킨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왜 자꾸 흥분은 해? 얼굴이 빨간데?”
“흥분...이란 말 좀 그만 해요.”
점점 빨개진다며,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진을 외면하며 나는 밤바람에 얼굴을 식히는 걸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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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웟...ㅜㅜ 비가 와도 덥네요.
교X치킨이 먹고 싶은 밤이네요. 근데 나는 왜 맨날 먹는 이야기만 하는가...
셀니 님// 리코멘은 @지만, 왠지 셀니님의 *에서 강렬한 리코멘의 요구를 느꼈습니다... 만약 아니면 그냥 더워서 뻘소리 하는 걸로 봐주세요/ㅁ/ 제 루트는 하영이랑 제가 이어지는 건가요. 아니면 셀니님이랑 제가 이어지는 건가요. 경우에 따라 제가 글에 트립을 해야 하는 사명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셀니 님 꿈 속으로 쳐들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