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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랭 가는 대대로 계약자를 많이 배출했다. 한 가문에 한 계약도 힘든데, 현재도 몇 개체의 신수나 마수가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인외생물체를 매료시키는 힘과, 유지하기 위한 올곧은 존중과 신뢰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힘이 없는 자는 부릴 수 없고, 억압하는 자는 언젠가 파멸한다. 노쇠했을 때든, 1대 뒤든 10대 뒤든 힘이 약해졌을 때- 인외생물체는 무례한 인간과 관련자들을 반드시 파멸시킨다.
미실랭 부대장 자체는, 분방한 성격이라 자기 몫의 신수는 없었지만, 그라면 충분히 족쇄의 인을 통제하고도 남을 것이다.
[대장은 가뜩이나 일도 많고- 엔실렌군은 모습이 완전 꼬마잖아. 신수나 마수는 오래 사는 대신 자기 외관에 성격이 좌우되거든. 대장은 그걸 몰라.]
[...]
[아, 엘킨 대장 욕이 아냐, 그 사람은 너무 신중하니까. 엘킨대장은 이 아이를 너무 경계하고 있어. 물론 하영이 무서운 일을 당할 뻔했으니. 오오, 이거 좋은 징조 아냐?]
[...]
[아아, 알았어. 안 말할게. 어쨌든~ 엘킨 대장 설득에 좀 애를 먹긴 했지만 대장도 결국 납득해줬고...납득해줬나.]
[...부대장...]
[하영~ 그런 얼굴 하지 말고! 내가 하영이가 좋아하는 대장님 부담을 덜어줬다고.]
칭찬해줘-라고, 어제 아침 미실랭은 장난치듯 이야기 하긴 했지만 사실... 괜찮은 인선이기는 했다.
정말, 엘킨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미실랭이 이야기한 이유 외에도 엘킨이 인외생물체를 부리기 힘든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가 하프엘프이기 때문이다. 엘프는 누군가를 소유하거나 부리지 않는다. 엘킨 정도면, 반은 인간이기도 하기에 억지로 가능은 하겠지만.
이런 골치아프고, 엘킨을 싫어하는 꼬마를 어중간한 부담을 지고 그가 관리하는 건.
나도, 싫은 것 같다.
'아, 진짜 싫다. 이런 생각.'
미실랭이라면 믿을 수 있다. 가벼운 남자지만 실제로 가볍지는 않다. 몇년이나 폼으로 칼미온의 부대장을 했던 게 아니다. 게다가 '이름'도 제대로 들은 것 같다.
엔실렌-
"뭐 필요하신 게 있나요?"
"아뇨, 괜찮아요."
그 이름을 떠올리고 있으면 깔끔한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수레를 끌고 내 앞에 멈춰섰다. 그녀의 수레에는 각종 먹거리와 큼직한 유니콘 모양의 하얀 솜사탕이 꽂혀 있다.
"그럼, 즐거운 여정이 되시길."
그간 모아둔 돈을 이용해, 수도의 변경까지 갈 수 있는 마법마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별로 비싸지 않기도 했고.
이제 곧 첫 번째 범인, 엘킨이 구하고 이 나라에 데려온 남자- 그가 일하고 있다는 곳에 도착한다.
'그 애에 대해서는 일단 그만 생각할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미실랭 부대장을 걱정하는 것도 미묘하다.
*
승차감이 편한 좌석과, 그럭저럭 저렴한 비용, 간간히 지나가는 먹거리 수레까지. 키오스의 수도 휴론의 자랑. 서민도 탈 수 있는 대중적인 마법마차-
나라에서 운영하고 마탑이 자금을 대는 만큼 적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람도 많이 타고 있었고 내부는 쾌적하기 그지없다.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거야 원, 나라의 재정위기나 마탑의 예산부족에 바로 잘릴 자랑이라고밖에 생각 못하겠다.
앉은 사람은 전부 서민으로 보인다. 높아봤자 중인이겠고. 물론 아주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도 없기는 하다. 가난한 하층민들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조차 부담을 할 수 없으니까, 다만 귀족 역시 한 명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귀족들이야, 자신 소유의 마법 마차나, 신수까지는 아니어도 타는 게 가능한 마법생물이나 말을 얼마든지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서민과 나란히 앉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마차는 완전히 서민들의 전유물이었다.
내가 전에 있었던 그 병원이 성공한 건 귀족과 서민의 구획을 확실히 나눴기 때문이다. 이 마차는 그런 점에서 만든 사람의 괴팍한 성질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용도도, 구성도, 그리고 외관도...
외관...
솔직히, 설마 하지만, 귀족들이 안 타는 것은 외관이 가장 크지 않을까. 흘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나는 마차의 몸체 밑에서 덜렁거리는 흰다리를 바라본다. 이미 ‘셀리안 크리이누’의 기억을 통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그로테스크하네.’
현대적인 감각으로 이 탈것은 ‘날아다니는 기차’에 가까웠다. 길게 늘인 것 같은 마차가 몸체다. 몸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바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달린 다리와 양옆에 달린 긴 날개가 문제였다. 신수 중의 신수 날개 달린 유니콘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마차는 안즈 밀레나가 직접 기획한 디자인이라고 했다.
‘...다리 근육질이야.’
천사의 날개처럼 아름다운 흰 날개와 튼튼한 말벅지가 마차에 달려 있다. 엘킨 어머니의 센스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안즈 밀레나는 독특하고 분방한 여자였다. 귀족의 서녀로 태어난 여자는 8살 무렵 이미 마법에 소질을 보여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말이 좋아 아카데미행이었지, 사실 쫓겨난 것에 가까웠지만 그녀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녀의 소질은 탁월했고 분방하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은 마법에 적합했다. 너무 자유로워서 가끔 이런 괴악한 디자인을 좋아라 내기도 했지만.
[폐하, 당신은 맛이 갔군요.]
요정의 숲을 쓸어버리겠다는 셀리안 크레이누를 똑바로 보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때는 모두 그 상황에 납득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세계의 대변인마냥 오만한 요정들과 셀리안 크레이누의 비호를 받는 인간들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었고, 요정들이 수도 휴론을 감싸고 있는 숲, 아셀란을 없애달라고 셀리안에게 요청한 것이다. 말이 요청이었지 없애주지 않는다면 직접 없애겠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그 교만함에 치를 떨었다. 그런 상황에서 반대한 건 마탑의 수장 안즈 밀레나였다.
사실- 그 당시 아셀란을 이루는 셀리안의 힘이 많은 마법생물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폭주에 가까웠다. 세계 각지의 마법생물들이 홀린 것처럼 아셀란에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축복이라고 여겼지만 요정들은 심상치 않다고 여겼다.
결국 요정의 숲이 멸망당할 때 그녀도 죽었다, 그리고 마탑은 셀리안의 통제에 들어갔다.
‘찝찝한 생각이 또.’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면 눈앞에 하얀 유니콘 모양의 솜사탕이 내밀어진다. 앙증맞다. 이렇게 앙증맞게 이 유니콘 마차를 디자인했다면 귀족의 어린 아이들은 타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적당히 생각을 끊어준 건 고맙지만.
"아, 됐어요. 안 먹어요."
솜사탕은 됐다. 히아신스는 좋아하겠지만 아침부터 내 돈으로 설탕 덩어리를 우물거리는 건 사양이었다.
"왜? 누나, 같이 먹어요~"
"!"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앞좌석에는 어느새 검은 머리의 엔실렌이 앉아 있다.
*
내 앞에는, 분명 방금전까지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상인 같아 보이는 남자와 그를 따르는 하녀 두사람이 무언가 두런두런 이야기했고 가끔 내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을 힐끔거리기도 했다. 나쁜 시선은 아니었고, 그냥 신기하다는 표정이어서... 그닥 나쁜 동행자는 아니었다.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바로 전까지만 해도 먹거리 수레에서 오징어를 사먹는 것도 봤는데.
지금 눈앞에는 작은 체구, 동그란 얼굴- 소년의 모습을 한 인외생물체, 엔실렌이 앉아 있다.
“우와, 심한 얼굴- 얼굴 풀고, 같이 솜사탕 먹어요, 누나-”
"원래 있던 사람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묻는다. 엔실렌은 웃었다.
"누구요?"
"니 자리에 있던 사람들 말이야."
"글쎄요."
천진한 눈으로 나를 보며 솜사탕을 내미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지만 그때 보았던 검은 어둠이 겹쳐진다.
무섭다-
그들을 어떻게 한 거야-
잘 모른다. 그가 내게 보여준 심한 짓이라고는 나를 조종하려고 했다든가, 이상한 어둠으로 짓누르려고 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그라면 능히 인간따위는 개미처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
"후후."
무섭다고 연신 생각하고 있으면 서서히 소년의 눈에 쾌감과 비슷한 감정이 스며든다. 그날밤과 비슷한 감정이다. 한 손에 나를 바스라뜨릴 수 있다는, 절대적 우위의 자신감에 기반해, 그것만에 취해 저런 표정을 짓는다.
"..."
"..."
"..."
"누나...?"
이상하다.
'...이상하네.'
방금까지 무섭다고, 어떻게 할 수 없는 두려움에 짓눌릴 것 같았지만 밝은 낮에 피곤함 없이 그를 보고 있기 때문일까. 그 의기양양하고 뻔뻔한 얼굴에 묘하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사라진 두 사람에 대해서도, 기묘하게 분노가 치민다.
"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야?"
말에 힘을 실어 다시 물었다.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건 싫다.
아카인 영애도, 셀리안 크레이누의 전생도, 히아신스의 가위도, 이 기묘한 꼬마도. 내 의지와 내 행동과 상관없이 휘두르려 한다. 생각도 없이 나에게 침범해 상관한다. 나를 몰아간다.
짜증나는 일이다.
"강한 척 하는 건가요? 귀여워라."
"그래, 강한 척 하는 거야. 계속 강한 척 할 거니까. 빨리 대답해."
"..."
"..."
“...인간이란 참... 신기하네. 아니 당신이기 때문일까. 금방... 돌아왔어.”
나름대로 트라우마가 생길정도로 겁을 줬다고 생각했는데-라고 이야기하며 엔실렌이 짓궂게 웃었다.
두렵다고 생각하는 만큼 괘씸해져 더 강하게 눈을 마주한다. 아이의 눈이 즐겁다는 듯이 휘어진다.
내 말이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나랑 상관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 보이기도 한다.
‘근거는 없어. 없지만-’
어차피, 이 아이는- 나를, 어떤 식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 좋아하고 있다. 죽이진 않을 것이다. 류로 인해 이상한 주술도 불가능해졌다. 그가 그날밤 말한 대로 ‘나를’ 부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놓고 부술 수는 없겠지. 그런 어중간한 압박에 부숴지고 싶지 않다. 부숴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지만.
"후-창밖을 보세요."
그가 한 번 손가락을 휘두른다.
"?"
창밖에 시선을 주면 바로 아래 풀밭에 상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하녀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다. 어리둥절해하며 두리번 거리는 게 이쪽에서도 얼핏 보인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놨는데 누나가 보게 다시 옮겼어요."
"뭐?"
"저는 키도스군의 족쇄가 걸려 있어서요. 키도스 미실랭, 그는 괜찮은 술사더군요. 사람을 죽이지 마라, 상처입히지 마라- 단순하지만 확실한 인이더군요. 누나 앞에 앉고 싶어서 밑으로 이동만 시켰어요."
"그런..."
민폐다. 하지만 반면 다행이었다. 이상한 짓 따윈 전혀 없이 그저 밑으로 이동만 시킨 거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역시 부대장은 유능한 사람이었네.'
실례되는 생각과 동시에 다시 의문이 고개를 내민다. 그런 부대장이 감독하는데 얘는 왜 여기 있는 거야. 미실랭 부대장은 뭘 하고. 내 의문을 알았는지 그가 눈을 찡긋한다.
“그는 방임주의더군요, 인외생물에게 관대하다고 할까~ 태평하다고 할까. 류의 허락 하에 몇 개의 제약을 나에게 거는 걸로 자유롭게 행동해도 된다고 했거든요.”
“하아...”
정정, 유능하지만 역시 헐렁하다. 헐렁하기 그지없다. 한숨이 나온다. 미실랭 키도스 만큼의 적합자는 없겠지만 그런 남자로 되는 걸까, 진짜~ 엘킨의 고민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강한 척이 진짜로 바뀌어가네요."
"뭐?"
"하아."
소년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쉽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고, 왠지 좀더 후련하게 즐거운 표정으로 미소짓고 있었다.
그게, 문득 매우 그리웠다고- 생각되었다.
============================ 작품 후기 ============================
왜 다음편이 안 올라왔던 것인가...
ㅜㅜ 요 이틀 야근과 잔업과 야근과 잔업과 잔업의 끝나지 않는 굴레에 빠져서, 도저히 글을 퇴고하고 예약해놓고 올리고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가 게름게름한 것도 한 몫 했고요. 죄송요. 아무래도 직장인이다보니...
쨌든 주말이당~~>ㅁ<입니다.
아래는 사족.
이 글은 사실 질척질척덴져러스한 로맨스로 설정했었습니다. 내가 전생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되고, 전생의 나를 증오하고 연민하며 전생의 나에게 사랑받게 되는 진흙처럼 위험한 로~맨~스★
...그랬대요.(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