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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용은 단 네마리 뿐이었다. 용은 세계 그자체이면서도 이 세계에 속한 누구보다 독립되어 있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검은 용은 인간을 파괴하며 즐겼고 붉은 용은 세월을 방관하며 방랑했으며, 하얀 용은 긴 잠을 잤다. 또다른 검은 용은 인간을 사랑해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 중 파괴하는 검은용과 방관하는 붉은 용이 인간인 에피룬 크레이누에게 찾아온 게 그의 나이 12살이다.-
에피룬 크레이누, 그 기록을 읽으며 셀리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에피룬 크레이누는 열두살 생일에 두 마리의 용을 만나 그들의 주인이 되었다, 고 적혀있다.
‘그 여자의 말 대로야.’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이제는 어제가 된, 셀리안의 12번째 생일날. 아부에 능숙한 귀족 부인들과 지나치게 술을 나눈 어머니는 즐거운 듯한 얼굴로 셀리안의 방에 찾아왔다. 어머니는 술에 약했다. 연약하고 가벼운 사람-
생일 연회가 끝나고 방에 들어와 잘 준비를 하는 셀리안에게, 예법도 무시한 채 다가온 그녀는 드물게 셀리안을 꼭 껴안는다.
셀리안은 놀라 눈을 깜빡였다. 어머니에게 안긴 게 얼마만일까. 그녀는 언제나, 아기였을 때는 모르겠지만 그가 자랄수록 선망어린 시선만 보낼 뿐, 그에게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숭배해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가끔 셀리안은 그녀가 자신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했기에 더욱.
[아.]
따뜻한 품, 약간 술냄새가 나지만 향그러운 꽃향기가 난다. 헤르티아가 좋아하는 은방울꽃 향수 냄새다.
[...어ㅁ...]
어머니, 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부르려고 하면, 헤르티아가 황홀하게 읊조린다.
[아아, 에피룬 님-]
이라고.
그렇게 불렀다. 셀리안은 눈을 찌푸렸다. 어머니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 알지만 그 이름을 직접 부른 건 처음이다.
굳은 것처럼 그녀의 품에, 어느새 지옥같다고 생각하는 품에 안겨 있으면 문이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들어온다. 헤르티아가 모국에서 데려온 하녀다. 그녀는 매우 수수한 분위기의 평범한 생김새를 한 여자였다. 눈동자도 이 세계에 넘치고 넘치는 밤색. 다만, 같은 밤색 눈동자여도 헤르티아가 몹시 아름답게 반짝이는, 흔한 밤색조차 특별하게 만드는 눈빛이었다면 그녀는 그야말로 평범하다.
그런 존재감이 없는 하녀. 그녀가 능숙하게 셀리안으로부터 헤르티아를 떼어놓는다.
[이런, 이런- 황후께서 술에 취하셔서... 오늘밤부터 내일 새벽까지는 중요한 날인데 말입니다.]
[...중요한 날?]
어머니가 자신에게서 떨어지는 게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그 와중에 멍하니 되물으면 하녀는 묘한 웃음 지으며 이야기한다.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묘한 웃음을 띠는 순간 기이한 기운이 감돈다. 광기와 애정- 마치 헤르티아처럼.
이 하녀의 이름이 뭐였지, 하고 셀리안은 생각했다.
[열두번째 생일은, 이전 당신에게 두 마리 용이 찾아온 날이랍니다.]
[뭐.]
[그 분들도 추억을 소중히 여기니, 오늘 올게 틀림없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들의, 아니 꼭 그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매우 기대하고 있을 거예요.]
하녀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헤르티아를 부축하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기다려-]
[아- 엄밀히 말해 찾은 건 당신이기에 복종한 날에 가깝지만요. 그럼 실례합니다.]
[기다리라고!]
문이 닫힌다.
[기다려, 안나-!]
그래- 그런 이름의 하녀였다.
셀리안은 책을 덮으며 하늘을 보았다. 이제 곧 새벽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해지는 아침이다. 그녀의 말을 틀렸다. 용따위는 오지 않는다.
그때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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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저는 인간이 아니에요."
왜 아무도 안 깨는 거지. 어느새 침대 위에 나와 아이는 마주 보고 앉아 있다.
"부끄럽지만 누나의 마음,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이해한다는 거야?"
"네- 용서를 구하고 싶어서 온 거구요."
아이의 눈이 호소하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제가 생각이 부족했어요. 하지만, 이해해주세요."
"..."
"저는 이미 류의 것이 되어버렸고 그 선택을 무를 생각은 없어서, 그 생각에 골몰하고 만 것 같아요. 내가 누나의 것이 될 수 없다면 누나가 나의 것이 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버렸어요."
엘킨과 있을 때와는 180도로 행동이 다르다. 많은 고심 끝에 정말 반성했다는 듯이, 내 신뢰를 되찾고 싶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고요? 누나가 특별하니까요. 잘 설명은 못 하겠지만... 우리같은 자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 수명이 너무나 짧은 인간과 가장 가까이, 오래 함께 하는 방법으로 계약을 하는 거예요... 본능 같은 거죠... 그러니까- 죄송해요."
"..."
"왜 누나가 좋은지는 잘 설명하지 못 하겠어요. 다만, 누나가 나에게 몹시 특별하다는 걸 알아주세요."
왜 아무도 안 깨는 거야. 그는 조곤조곤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소근소근은 아니다. 주위따위 신경쓰지 않고 말하고 있다.
하아, 하고- 아이는 한숨을 쉰다. 자연스럽게, 천진하게.
"화나셨죠. 누나를 내 마음대로 하려고 했으니까요. 저는 인외생명체, 인간의 상식이 부족합니다. 외관 그대로... 인간보다는 나이 먹었지만, 정신연령은 미숙하기 그지없고요."
정중하게, 애원한다.
"...저를, 용서해주시겠어요?
검은 눈이 말갛게 나를 비춘다.
"너- 거짓말쟁이구나."
그 모습 하나하나에 화가 난다. 정말로 화가 났다.
이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확실히 알겠다. 그때는 왠지 이 아이가 꾸미는 모습 그대로만 보였다.
지금은 다르다. 류의 피 때문인지 맑아진 정신으로, 소년을 볼수록-
'가증스러워.'
제 하고 싶은 말만 떠드는 건 류랑 같다.
'류도 정말 답답하고 싫다고 생각했지만.'
종류가 다르다.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류가 하는 말은 전부 속이 비어 있다. 굳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세류 키스톤으로서 이야기할 때는 아이와 제법 비슷했지만, 이 아이에 비하면 가벼운 처세술에 불과한 느낌이다.
'...용서해달라고?'
거짓말쟁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으로 인간을 현혹시킨다. 인간이 이해하고 납득할만한 설명을 곁들여 현혹하는 것이다. 아주 능숙하게.
근본적으로 류와 다른 부분이 그것이다. 자신의 말이 갖는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
괘씸한 아이, 아니 어른이다. 천진한 얼굴, 순진한 말투. 류와 비슷하게 마이페이스로, 상식 따윈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모두 지어낸 것이고 희롱하는 것이다.
"누나-"
"됐어. 내가 틀렸다면 미안하지만, 만약 류가 나에게 피를 주지 않았다면 너는 또 시도했을 거야. 그렇지?"
아이의 검은 눈이 깜빡깜빡, 몇번을 깜빡이다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용서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너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아."
"그만 이야기하고, 여기서 나가. 이상한 주술을 부렸다면 풀고- 어서, 안 그러면 다른 누군가를 부르겠어."
인외생명체를 앞에 두고 있다. 내가 나갈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아이는 류에게는 약한 것 같다. 그는 통제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통제할 수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런 확신이 든다. 류는 그에게 나를 건들지 말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했었다.
"어서-"
"후우-"
아이는 절망한 것처럼 고개를 숙인다. 완벽하다. 보통이라면 마음이 가고, 마치 내가 괴롭힌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아, 역시-"
아이가 곧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
분위기가 일변한 건 한순간이었다.
평범한 방이 따로 독립된 것만 같았던 공간이 되었고, 지금은-
모르겠다. 눅눅하고, 그저 어둡고, 고립된 것 같다. 이것은 독립이 아닌 고립이다.
"헉...크흑...콜록-"
아이가 고개를 든 것도 분위기가 바뀐 것도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 가늠하기 힘들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콜록거리고 있다. 눅눅한 어둠이 나를 껴안은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폐부를 눌러댄다. 꽤 소리나게 콜록거렸지만 아무도 깨지 않는 것도 같다. 그 모습을 아이는 음미하듯이 천천히 지켜본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만 본다.
검은 눈동자가 진흙처럼 진득하게 나를 즐기고 있다.
"아아-"
어린 목소리로 그는 가볍게 전율했다.
"거짓말만 있던 건 아닌데, 너는 특별해. 사랑스러워."
호칭이 바뀌었다. 아이의 검은색 눈동자가 즐거운 듯 휘어진다.
"인간은 외관에 좌우되는 어리석은 생물이지만, 너는 역시 달라. 아니, 나를 알아본 걸까. 옛날 생각나네-"
"...흑-"
"난- 정말 행운이야. 나를 거부하고 거부하는 부숴버리고 싶은 '너'와, 이렇게 연약하디 연약해 당장이라도 부숴버릴 수 있는 '너'- 사랑스러운 '너'와 '류'까지 있는 시대라니."
그는 부르르 떤다.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작은 체구이기 때문에 일어나도 위압감이 없다. 없지만 내 얼굴 바로 앞으로 다가와 몸을 숙인 그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
작은 몸이 급격히 자라난다. 자라나고 노화한다.
"지금은 류의 영혼이 먹은 나이만큼의 모습밖에 취하지 못하지만- 봐, 네 영혼도 잠시간은 투영할 수 있어."
검은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샌, 거구의 노인이 변치 않는 진득한 검은 눈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기묘하게 휘어지는 주름진 눈가와 깊은 미소. 쪼글쪼글하지만 다부진 근육질의 팔이 내게로 뻗어져 내 볼을 쓰다듬는다.
"사랑스러운 '너', '너'는 듣지 않았지만, 내 앞에 있는 '너'는 들을 수밖에 없지."
"...하윽...커..헉..."
"나는 말이야."
그는 가볍게 숨을 들이키고, 황홀함을 곱씹으며 천천히 입을 연다.
"내 이름은, 엔실렌-이야."
엔실렌-
"다시 만났을 때는 이름으로 불러줘. '누나'"
어느새 어린 아이로 돌아온 검은 소년은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눅눅했던 공기가 풀렸으나 기침은 계속 된다. 기침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
머리가 지잉지잉 울린다. 아침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걱정하긴 했지만, 내일이 휴일인 이상 쉴 수는 없다. 어째, 칼미온에서의 내 이미지가 연약한 소녀로 굳어가는 것 같다.
"후우-"
청소도구를 들고 칼미온의 복도를 걷는다.
어쨌든, 일은 일이다. 오늘은 열심히 일을 하고, 내일은 예정대로 첫번째 범인에게 찾아갈 생각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건 사실이니까.'
그 불길한 아이는 둘째치고, 당장 내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면 반대편으로부터 미실랭 부대장이 복도를 걸어오고 있다. 나를 보자, 험악한 인상이 부드럽게 풀리며, 그가 손을 들었다.
"오, 하영."
"미실랭님 안녕하세요...어?"
힘이 없긴 했지만, 그가 웃는 모습에 따라 웃으며 인사했고, 절로 몸이 굳었다.
"응?"
"..."
미실랭의 뒤 그의 허리춤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살랑거린다.
"안녕하세요, 누나."
검은 머리카락의,
[내 이름은, 엔실렌-이야.]
엔실렌이었다.
"아,아아."
미실랭의 눈이 내 시선을 따라 제 뒤의 엔실렌에게로 향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는 봉변이었다지."
"반성하고 있다니까요."
"진짜~ 키스톤 경이 이런 통제불능의 인외생물체를 숨기고 있을 줄이야. 젊음이 문제야, 젊음이."
"류를 나쁘게 말하지 마세요!"
굳은 나와는 달리 둘은 제법 친해보인다. 엔실렌이 그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면, 미실랭이 알았다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아이는..."
"응? 아아, 이야기는 들었어. 오늘 엘킨 대장에게서 족쇄의 인을 넘겨받았지."
미실랭이 주먹에 새겨진 인을 보여주며 안심하라는 것처럼 미소짓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엔실렌이 빙글 웃는다. 여전히 나에게 갖고 있는 호의를 숨기지 않고 기쁘게 미소짓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무지 더운데, 에어컨을 틀면 막상 또 엄청 춥네요.; 에잇, 이 몹쓸 날씨? 몹쓸 제 체질?
오비7님 // 리코멘 원한 거 맞으시죠?! 코코0블티... 먹은 것도 같고 안 먹은 것도 같고/ㅁ/ 제가 버블티 매니아라... 그런데 기억도 못해용. 뀨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