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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막판에는...
'막판이란 게 뭘까.'
'셀리안 크레이누'의 죽음이 가까울 때였는지, 아니면 엘킨 다이브가 그 사랑을 '이해'했을 때인지, 그도 아니면 이해한 주제에 그 깊이를, 그 절망을 알면서도 거절할 때였는지.
멍하니 생각한다. 생각하는 게 셀리안 크레이누인지, 윤하영인지 모르겠다. 다만 엘킨 다이브를, 엘킨 다이브만을 사랑하는 '나'인 건 분명하다.
어쨌든 막판에는...
그가 나를 어떻게 대했으면 하는지도 잘 모르게 되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건지
미움받고 싶었던 건지
그냥 나를 보게 하고 싶었던 건지
'그야 사랑받고 싶지.'
상식적이지만 약간 이상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엘킨-"
아, 지금 그의 이름을 부른 게 누구인지는 알겠다. '셀리안 크레이누'다. 들고 있던 와인잔을 탁자에 놓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기사를 바라본다.
와인을 내려놓는 손은 쪼글쪼글했다.
그도 나이를 먹은 것이다. 젊은 시절 그가 강한 '인간'이었다는 걸 증명하듯 다부지고 큰 손이긴 하지만 젊은이에 비해서야 쪼글쪼글하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부르셨습니까."
강대한 마법왕이었지만 수명은 인간과 같다. 마법으로 얼굴을 젊게 유지하는 것도 왠지 폼이 안 난다고, 그때는 생각했던 것 같다.
'남자라서, 그런데는 관심이 없나.'
윤하영이라면 그 마법을 이용해 수명은 어찌되었든 젊음은 유지했을 텐데.
"엘킨."
"네, 엘킨 다이브입니다."
"큭..."
충성스러운 말이다.
그는 셀리안을 떠나지 않았다. 떠나지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선택한 건 그다. 그는 '충성스럽고' '고결한' 채로 셀리안의 곁에 있는 걸 선택했다.
그런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지켜야 할지
파멸시켜야 할지
망가뜨려야 할지
그저 소중히 바라봐야 할지
엘킨 다이브, 인간과 요정의 혼혈로 태어난, 가장 고결하고 위대한 기사.
변하지 않는 기사. 나의, 나만의...
셀리안은 발걸음을 내딛어 영원한 맑음에게 걸음을 옮긴다.
"엘킨, 나의 엘킨-"
그래도, 하나는 알겠어. 사랑스러워.
너는 여전히 사랑스러워.
셀리안이 다가갔지만 엘킨은 평온해보인다. 처음에는 어땠지. 그래, 몸을 굳혔던 것 같다. 그도 긴장했었는데.
이제는 그저 동정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게 참을 수 없어졌다.
"훈렌 소국을 멸망시켜볼까 하는데."
"..."
그의 동정은 '훈렌 소국'으로 옮겨진다. 푸른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연민만이.
"필요한 일인 건 알지?"
"멸망까지는..."
반대하듯 이야기했지만 그는 곧 입을 다물었다.
훈렌 소국, 그곳은 한때 이 세계의 어둠이라고 불렸던, 하루드 수장의 마지막 도피지였다.
“하루드의 수장은 아직도 그 두 마리 용의 주인이지. 그 정도면 충분히 위험인물이고, 그런 위험인물을 숨기고 있는 훈렌도 괘씸하지.”
사실, 하루드는 이제 거의 힘을 잃었다. 두 마리 용도 그저- 이번 세대의 주인을 끝까지 따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셀리안이 셀리안인 이상 그들은 셀리안에게서 지금의 주인을 지키고 싶다는 감정밖에 없을 것이다. 밟을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훈렌만 해도 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셀리안에게 반항하기 위해 그를 보호하는 게 아니다. 하루드의 수장과 훈렌 소국의 왕이 사소하게 맺은 인연으로, 그에게 도피처를 제공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알지만- 그곳이 바로, 엘킨의 여동생이자 마지막 혈육이 왕비로 있는 곳임을 아니까.
'나'는 웃는다.
"죽기 전에 확실히 하고자 하는데."
표면적으로는 하루드와의 지겨운 싸움을 끝내고 싶다는 이야기다.
‘사실, 엘킨이 소중하게 여기는 걸 전부 치워두고 싶을 뿐이면서.’
황제는 주도면밀했다. 광기에 차 엘킨을 속박하려는 행동 하나하나에도 명분이, 표면상으로는 나라를 위해, 세계를 위해라는 명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꾸민 일인지, 아니면 세계가 그의 편인건지 황제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세상의, 역사의 판단.
워낙 유능한 남자였기에 기계적으로 성군으로 군림한 거지 애초에 그는 사랑하는 사람, 엘킨 다이브에 미쳐 있었다.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을 파멸시킨다.
'그러니까, 이딴 게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 따위 필요없어. 그런 무서운 건 하고 싶지 않아.
'윤하영'이 오열인다. 셀리안에게 '윤하영'의 자아가 말을 걸 수 있을리 없는데도 셀리안의 붉은 눈동자는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듯 반짝인다.
"그런 말씀을... 폐하는 영원한 키오스의..."
"알고 있잖아. 나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더욱 보고 싶은 것이다.
네가 소중히 여겼던, 너를 버렸던 주인을 파멸시켰을 때도
네 소꿉친구였던, 네가 축복했던 나의 약혼자, 그녀의 죽음을 방치했을 때도
네가 귀히 여기는 부하를 전쟁터에 보내 시체로 돌아오게 했을 때도
네 아내를 몸도 마음도 내가 취한 뒤 자살하게 했을 때도
키오스의 번영을 위해 엘프의 숲을 쓸어버렸을 때도
너는 계속해서 고결하고 청명하게, 나를 보지 않지.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멸망시키자."
"..."
"너와 나의 마지막 전쟁이야."
셀리안 크레이누가 웃는다. 잔혹하게, 무미건조하게, 황홀하게.
*
리나 테일과의 해프닝이 있었던 그날 이후.
칼미온으로 들어가는 3일 동안은 더이상 아무 일도 없었다.
리나 테일은 나한테 말도 걸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녀의 입장이 조금 미묘해진 모양이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병원을 떠나며, 더 이상 야채를 깎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외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던 같다.
사실 이 세계 자체에도 미련 따윈 없었지만, 원래 세계에 돌아가지 못하니 말할 필요도 없다고 해야 할까.
꿈 같은 이야기다. '전생의 내'가 있는 세계에서 그가 있는 왕궁으로, 그가 사랑하게 될 엘킨의 칼미온 기사단에 들어간다.
그게 악몽인지 뭔지는 왕궁 앞에 도달할 때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환영해요. 하영."
왕궁에 도착해 소개받은 대로 칼미온 기사단의 건물 앞에 서면 히아신스 에이나가 미소짓는다. 송구스럽게도 전장의 에메랄드가 직접 마중나와 준 것이다. 내민 손은 환영과 축복을 담아 나를 반겼다.
"잘 부탁합니다."
그 손을 잡는 순간에도 ‘언젠가는 떠나야지’ 라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굳이 원래세계로 떠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 꿈 같은 이야기의 공간에서.
셀리안 크레이누가 엘킨 다이브를 사랑하기 전에
히아신스 에이나가 죽기 전에
엘킨 다이브가 불행해지기 전에
도망가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왕궁에 들어섰다.
============================ 작품 후기 ============================
이런 건 영 쑥스럽지만... 이 설정만 무쟈게 복잡한 막장소설의 진행을 위해 한 번 정리 해봅니다.
윤하영(29)
포지션 : 여주인공
특이사항 : 전생을 기억하고 있음, 기억하지 못한 전생도 있는 듯, 그런데 다 남자.
능력 : 동안
셀리안 크레이누(24)
특이사항 : 짱센 마법왕, 윤하영의 전생
능력 : 사기급 마법
엘킨 다이브(25)
특이사항 : 엘프와 인간 혼혈, 칼미온의 대장
능력 : 검술, 궁술, 남녀 다 후려후려
히아인스 에이나(21)
특이사항 : 칼미온의 아이돌, 황제의 약혼녀
능력 : 검술
류(19)
특이사항 : 도덕심 결여, 뇌 청순
능력 : 능력좋은 단검이 두 자루 있음
진(???)
특이사항 : 류의 엄마 포지션
능력 : 만능
엔실렌(???)
특이사항 : 또다른 전생의 꿈에 진과 함께 출현
안나
특이사항 : 또다른 전생의 꿈에 진과 함께 출현, 아마 인간이었던 듯
산(26)
특이사항 : 하영이를 짝사랑하던 농촌 총각(?)
앨리자베스 아카인(18)
특이사항 : 욕 먹고 있어요
그외 더 있습니다만, 일단 여기까지입니다.ㅎ
카에데의 숲 님 // 류랑 안나랑 저랑 여러분이랑 같은 종족이라고 합니다.
담찬 님 // 히아신스는 엘킨에게는 여동생 포지션이고요. 결혼한 여자는 따로 있어요/ㅁ/ 제가 전달력이 부족해서.ㅠㅠ
에이리엘 님 // 언니...라니...(털썩) 저보다 어리시군요. 저는 영계랑은 안 놀아요. 질투나서+_+// 막 이러구? ㅎㅎ 농담입니다. 언니라고 불러주셔서 좋아요. ㅎㅎ 문제는 대체 에이리엘님이 몇 살이냐는 것이지요. (+_+번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