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5화 (1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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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히아신스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가 죽어버렸다. 눈까지 검지는 않지만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귀족 아가씨는 제 어미를 죽이고 태어났다고 손가락질 받는다. 지체 높은 에이나 가의 외동딸이 대놓고 멸시 받진 않았지만, 그녀는 은근히 따돌려졌다. 하지만 에이나 경은 사람들의 수군거림 따위 불식시킬 정도로 딸을 사랑했다. 아내가 남긴 하나뿐인 딸을 소중히 했던 것이다.

에이나 경을 정말 많이 닮은, 강하고 올곧은 마음의 히아신스는 주위의 시선을 이겨내고 칼미온의 여기사로 이름을 날린다.

그런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사랑은 아니지만 좋아했다.

“...”

쿵, 콰직 하고- 떨어진다. 떨어져서 박살난다. 정수리부터 깨져나가 두개골을 부수고 안에 있는 뇌수와 피가 튄다. 분명 딱딱한 것이 떨어졌는데 결국은 물풍선이 터지는, 토마토가 뭉개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나’는 바라본다.

어두운 밤하늘, 검은 머리카락이 밑으로 밑으로 추락하는 한순간을, 이 세상에 고결하고 깨끗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엘킨과 히아신스 뿐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그 중 하나의 고귀함이 뭉개지는 순간순간을 눈에 새긴다.

한순간 초록색 눈이 크게 떠지며 ‘나’를 본 것도 같지만- 이 거리라면 착각이겠지.

게다가 보면 어떤가, 우려와 달리 고귀함이 뭉개지는 끝까지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는 휘어진다.

그리고 잊는다. 순간적으로 새겼지만 잊는다. 그녀를, 이 순간을- 필요없는 기억이다, 가치없는 이야기다.

‘나’는 돌아선다.

잊는다. 하지만 그 소리만은 잊혀지지 않겠지.

쿵, 콰직하고.

한 세상이 사라지는 소리를.

셀리안 크레이누는 그날 자신이 엘킨 다이브를 사랑함을 인정했다. 자신의 약혼녀 히아신스 에이나, 녹빛 눈동자가 아름다웠던, 이 세상에서 그를 이해했던 단 두 명의 기사 중 한 사람을 죽도록 한 순간.

*

“어떻게... 내 이름을?”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군인 특유의 경계심이 떠오르지만 혹시 그 때문에 나를 불안하게 할까봐 조심스럽게 웃으며 묻는다.

고지식하기는 엘킨이나 그녀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소꿉친구 아니랄까봐.

알 텐데. 내가 그냥 더러운 노예계집이라는 걸. 아는데도 조심한다. 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롭게, 최선을 다해.

“죄, 죄송합니다!”

나는 땅에 쳐박듯 머리를 조아리며 고개를 숙였다. 감히 귀족 영애의 이름을 노예가 부른 것이다. 히아신스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용서할 테지만, 나는 그냥 납작 엎드리는 걸 택했다.

셀리안 크레이누가 아는 그녀의 올곧음이나 너그러움 따위를 더 이상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런 의미가 아니예요.

그녀가 당황한 듯 내게로 다가와 일으켜 세운다. 나는 고귀한 귀족 영애가 자신을 일으킨 것에 감격한 얼굴로 울먹였다. 그녀가 서툴게 나를 토닥인다. 주변 영애들과 어울리지 않고 줄곧 남자들 틈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녀는 이런 게 서툴다. 서툰데도 최선을 다 한다.

“그냥, 놀라서요. 제 이름을 불러서...”

“히, 히아신스 에이나, 아름다운 녹색 눈을 가진, 칼미온의 여기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나는 머뭇머뭇 수줍은 척 웃으며 대답했고 그녀는 얼굴을 굳혔다.

[부끄럽다고 얼굴을 굳히고 무서운 얼굴을 하니까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도 인기가 없는 거다. 머릿속까지 군인인 건 엘킨이나 너나 마찬가지군, 바보여자. 그나마 엘킨은 기생오라비 같이 웃을 줄이나 알지.]

화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쑥스럽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히아신스의 그 버릇을 알아보는 건 소꿉친구인 엘킨과, 셀리안 뿐이었다.

그랬다.

“아, 흠흠... 감사합니다.”

"..."

히아신스는 엘킨의 소꿉친구였으며, 셀리안과는 그의 호위기사로 발탁되어 처음 만났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셀리안 크레이누를 이해했고, 그녀는 처음으로 셀리안이 마음에 들어했던 인간이었다.

사랑은 아니었지만, 그녀라면 반려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색이야 어쨌든 그녀는 충신으로 유명한 에이나 공작의 외동딸이었으며 용기 있고 긍지 높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힘으로 인정받은 기사였다.

다른 여자들이 사교계에 나갈 무렵에 독특하게도 검을 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랬다.

그랬었다.

“그런데... 기사님께서 저 같은 것에게 왜...”

나는 감상을 지우고 묻는다. 엘킨을 생각할 때와 다른 고요하게 흔들리는 마음의 정체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왜 셀리안 크레이누가 생전에는 느끼지 않았던 감정을 내가 느껴야 하는 거야? 내가? 왜?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셀리안 크레이누’와 관련된, 다른 어떤 전생의 누군가보다도 그녀를 피하기로 결심한다.

“저 같은 미천한 자에게 왜...”

다만 지금은 일단-

그녀가 왜 여기 있고. 나는 왜 여기 있는가를 알아야했다.

사실 내가, 노예나 난민 보호소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독방에 혼자 모셔진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나를 직접 방문한 것은 더 이상했고 말이다.

그녀는 귀족 영애에 칼미온의 촉망받는 여기사이며 아는 사람은 아직 적지만 황제의 약혼녀였던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말하는 건 좋지 못해요.”

“네?”

그녀는 조금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미천하다니, 그런...솔직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렸습니다만 당신을 보니 폐하께서 좋은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

히아신스는, 조금 믿기지 않는, 아니 전생에는 없었던 파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

이야기인즉, 셀리안 크레이누는 노예제도와 흑발흑안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상한 게 천민 중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을 가진 사람을 골라, 왕궁 하녀로 들이는 것이었다.

치밀하게 훈련을 시켜 상징적으로 왕궁 하녀로 일하게 한다. 왕실에 들일 수 있는 하녀는 말단조차 중인이상, 비중 있는 일일수록 하급귀족의 영애들이 맡기도 한다.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인식을 바꾸는 데도, 그리고 노예출신의 천민들이 희망을 갖는데도 좋은 선전이 될 거라고. 황제의 의지도 공고히 할 수 있고 말이다.

이번에 구한 노예들도 억지로 잡혀 왔다면 고향으로, 고향을 잃었다면 수도에서 일을 알선 받게 했다고 한다. 일은 대개 왕궁 소속의 공공시설에서 하게 된다.

그리고 왕실에서 직접 쓸 사람이 한 명, 적합한 대상을 찾는 중, 내가 선택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상징적인 검은 눈,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를 왕궁 하녀로?’

그런 정책이 있었나. 뭔가 되게 의미없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일단 맥이 닿긴 한데 뭔가.

“거짓말 같아...”

“네?”

“저, 저같은 자를 왕궁에, 너무 기뻐서, 거짓말 같아서.”

나는 울먹이며 감격한 듯 더듬었다. 연기가 점점 빛이 난다.

‘셀리안 크레이누가 이런 일을 할 성격이던가.’

그럴리 없다. 솔직히, 성군이고 유능하긴 했지만 이런 눈 가리고 아웅스러운 일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더군다나 만약 변덕으로 이런 일을 해도 그는 좀더 철저히 한다.

내 앞에는 따뜻한 코코아와 스프가 놓여 있다. 나는 코코아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죠?”

“...”

“기록에는...”

히아신스의 손에는 종이가 들려 있다. 서류같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내 진짜 기록이 이 세계에 있을리는 없고, 아마 아카인 영애가 만든 기록일 것이다.

변경 지방 출신의 창녀짓을 하던 고아소녀, 도둑질을 하고 지온으로 도망... 이라고 적혀 있을 걸 생각하자 끔찍해진다.

하지만 그 상사에 그 부하라고, 히아신스의 눈은 어린 아가씨의 고생에 대한 동정과 당혹스러움만 있을 뿐, 경멸은 없었다. 정말 이런 성격의 인물이 둘이나 있다니. 칼미온의 미래는 밝구나 싶다.

‘...아니, 근데.’

아카인 영애의 기록이야 급조한 걸 텐데, 저게 공식기록 취급되고 있다는 게 이상하다. 물론 내가 아무 말 안 했으니 고작 노예 계집을 위해 기록이 가짜인지 확인은 안 했겠지만.

“저.”

“네?”

이제라도 오해라고 이야기하려 했지만 어쩐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이상했으니까.

정말로 셀리안 크레이누가, 아카인 영애가 노예마차를 따로 뺀 걸 기점으로 꼬리를 잡은 거라면... 나를 그런 ‘상징적인 존재’로 쓸 예정이라면... 정말 따로 조사를 하지 않을까.

셀리안은 이왕 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한 스타일이다. 오히려 그런 상징적인 존재라면 성적인 의미는 없는 게 좋다. 고아고 불쌍하고 핍박받았지만 순결한 처녀인 게 어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아.'

알았다.

"하영 양?"

말을 잇지 않고 있으면 히아신스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뇨, 정말 감사하다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아니에요."

"..."

아마도, 셀리안은 자신의 감시망에 생각지도 못한 수확, 노예마차가 걸리는 순간 ‘아카인 영애’의 존재를 깨닫고 아카인가와 하루드의 연결을 좀더 빠르게 눈치챘으리라. 동시에, 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분명.

‘나’에 대해서도 알았다. 그러나 방치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노예제도를 폐지하려고 한 건 사실 왕권강화의 의미가 더 컸다.

여느 왕들이 그렇듯, 노예제도 폐지는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어둠 속에서 횡행하는 세력을 다스리게 해준다. 즉, 왕권강화인 것이다.

셀리안은 너그럽다기보다는 결벽적인 쪽에 속했다. 그는 왕권강화도 하고,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너저분한 세력도 제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루드를 포함한 수면 밑의 존재들에 대한 제거-

“그래서 당장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몸이 회복되는 대로 왕실의 기초 예절과 일을 배우게 될 거예요.”

“저 같은 게, 왕실예절을...”

“또 같은 게...라고, 일단 그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하영양은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로랑 선생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예절 교사로 이름 높으신 분이라 하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셀리안의 생각을 깨닫자 기분이 나쁘다. 좋은 기회라면 좋은 기회인데 참 뭐라고 할까. 일단 내 추리가 맞다면 오해를 바로 잡기는커녕 그냥 이대로 있어야 했다. 흘러가는 대로. 불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

'하루드'는-

그 전까지 세계의 어둠을 장악하고 있던 조직이다. 암살, 납치, 노예, 각종 불법적 매매의 뒤에는 하루드가 있었다. 다만, 셀리안은 '하루드'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암살이든 납치든, 매매든 그가 기르고 있는 조직이 담당하면 되고, 워낙 짱센 셀리안이라 왠만한 건 혼자서 처리할 수도 있었다. 그런 남자였다.

때문에

쓸데없이 역사가 깊고 나름의 조직이 있는 하루드 따위 필요없다고, 실제로 셀리안은 제위기간 동안 하루드를 철저하게 짓밟아갔고 말년에는 정말 미미한 세력으로 만들어버린다.

물론 처음에는 그 대단한 셀리안조차 난항이 있었다. 하루드에 소속되어 있던 중추들은 능력도, 배경도 엄청난 자들이 많아 그들은 그들이 빛의 세계에서 하던 일들을 그대로 하면서 하루드도 요령좋게 유지해갔다. 셀리안의 감시망을 피해가면서 말이다.

그걸 무너뜨린 계기가 노예제도 폐지와 게트룬 남작의 암살이었다.

하루드의 중추는 1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 게트룬 남작은 서쪽 나라 미든의 실권자며, 하루드의 노예 관련 사업은 전부 그가 맡고 있었다.

그리고 게트룬 남작에게 지온의 하층민을 대주던 자가- 아카인 후작이었다. 아카인 후작, 유례없이 무역을 키운 남자, 그 남자가 게트룬 남작의 끈이었다.

실제 전생에선 셀리안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 치밀한 추적 끝에 게트룬 남작의 꼬리를 쫓다가 아카인 후작을 발견한다. 산이 몇 년 후 아카인의 사위가 된 것도 도움이 되었다. 셀리안은 산을 통해 그조차 모르게 아카인가에 침투할 수 있었다.

셀리안은 바로 후작과 교섭을 했고, 후작과 게르룬 남작을 함께 암살하는 대신 아카인가의 유지와 번성을 약속한다. 코너에 몰린 후작은 자신은 파멸해도 아카인가는 계속되는 걸 선택한다. 딸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행복하게, 달리 길이 없었다.

아예 아카인가를 숙청하면 되지만, 아카인 후작의 무역망은 키오스에는 제법 필요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게트룬 남작을 암살하고 아카인의 무역망까지 살려 남쪽 나라의 상권을 장악한다면 완벽했다.

그런데 이게 ‘내 존재’로 앞당겨진 것이다. 무너뜨리는데는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일단 그는 몇 년이나 일찍 아카인 후작의 꼬리를 잡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아카인 영애의 심기를 거슬러 그녀가 개인적으로 노예마차를 쓰게 한 게 원인이다.

셀리안 크레이누에게, 그 다음은 보너스다.  내가 지금 히아신스에게 억울함을 호소해도 좋고, 훗날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서 조작된 기록을 유지하면 더 좋다.

어쨌든 ‘나’란 존재가 그의 손안에 있는 건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왕실 하녀.

아카인 가의 치부와 연결된 나를 수중에 넣고, 적절한 보상이랍시고 이 웃기지도 않는 노예제도 캠페인의 수혜자로 만들어준단 게 아마 계획.

이건 과거에 없던 일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맞지 않을까.

'여기서 내가 억울함을 호소하면 어떻게 될까.'

오해받았다, 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그러면 ‘나’란 존재는 단발성 경고로 효용가치가 끝이 나겠지. 두고두고 사용은 할 수 없는 카드지만, 노예제도의 폐해-되어서는 안 될 자를 노예로 만든다든가-도 알릴 수 있고, 아카인 가에 경고의 의미도 될 수 있다.

다만 나에게는 좋지 못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꺼낼 수 있는 카드로서 가치를 잃은 나는 셀리안이 별로 주시하는 존재가 아니게 될 것이고, 조작을 한 영애는 경고 정도나 받을 것이다.

아직은 하루드, 게트룬 남작까지 잡아낼 수 없을 것이기에 셀리안이 아카인가를 무너뜨릴 일은 없고 그냥 가벼운 경계정도로 끝.

그러면 나는 모든 게 잊혀질 즈음 영애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무서운 보복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이걸 다시 셀리안이 훗날 이용하고.

그러니까...

나는 엘리자베스가 준 기록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당분간은.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

뭐, 왕궁하녀가 되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거지같은 기록을 달고 당분간 살아야 하는 걸 감수하고라도 좋았다.

일단, 독방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마 다른 상황이었다면 대충 몸이 회복되고 바로 다음 단계를-일자리 알선이나 신분 등록 등- 가야 하겠지만, 나는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치료 자체도 치료마법을 사용해 빠르게 해결되었는데 그것은 굉장한 호사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 후 히아신스를 만날 기회가 없던 것도 좋았다.

그녀는 바쁜 사람이고, 지체높은 에이나가의 영애였다.  그런 그녀를 아무리 캠페인 걸이라도 천민 따위가 우연이라도 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

‘우연히라도 마주치기 힘들어야 하는 거잖아.’

산더미 같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거리에서 히아신스를 봤다.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소녀들이 모여 있는 노점상을 50m 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죽어라 노려보고 있었다.

“...”

몸이 회복되고, 내가 본격적인 왕실 예절 수업을 받게 된 즈음이었다.

왕실 하녀 일도 조금씩 배우게 되었는데 그외 자진해서 병원일을 돕기로 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왕실 소속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평민 이상이다. 그런데 천민 계집애가 갑자기 왕실하녀로 발탁되었고 자신들의 지극정성 수발까지 받는다. 그 비싼 마법 치료까지 받아가며.

미운털이 박혀도 100번은 박혔을 텐데, 굳이 정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성실한 모습은 좀 보이자고 생각했다. 생각해서, 일을 돕겠다고 했는데 심술인지 아니면 호구로 본 건지 점점 일이 많아졌다.

왕실 하녀일에 예절 수업, 병원 허드렛일까지 해 숨도 못 쉬고 있는 와중이었다.

오늘도 산더미 같은 장보기가 내 몫이었다. 두 손 가득 들린 엄청난 짐에 머리가 핑핑 돈다.

그런데, 히아신스까지 마주친 것이다.  관심 갖기 싫은데 그녀의 모습은 절로 눈에 들어온다. 모습도 모습이지만, 아무래도 무시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셀리안 크레이누'가 그녀를...

'이런 우연이라니.. 재수가 없다는 거겠지.'

히아신스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노점상을 바라본다. 노점상은 그거다. 새콤 달콤 푹신한 솜사탕을 파는 가게다. 동물 모양이 귀엽다. 대상 연령대는 어린 여자아이부터 20대 이전의 소녀까지.

'여전하네.'

오해하기 쉽지만 그녀는 결코 남성스러운 여자는 아니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또래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아버지와 기사단 동료들과만 지내서 그렇지. 사실, 검만큼이나 프릴도 레이스도, 달콤한 디저트도 정말 좋아했다. 쑥스러워서 감히 대놓고 즐기진 못했지만.

"..."

뭔지는 알겠지만 모른 척, 그녀 곁을 지나 걷기로 한다. 아예 피해 걷고 싶지만 길의 구조상 무리고. 짐도 많은데 돌아가기는 좀 그래서, 모른 척 밝은 얼굴로 해맑게 인사하며 그녀를 지나친다.

“윤하영 양?!”

“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를 본다. 절박하게, 조마조마하게, 눈을 반짝이며.

‘어째 불길한데.’

하고 생각하면-

“솜사탕 먹고 싶지 않아?”

라고 물어왔다.

============================ 작품 후기 ============================

근성으로 전부 리코멘 달 때는 힘들었는데 막상 리코멘 신청 하시는 분이 없어서 슬퍼요. 리코멘 좀 시켜주세요. @를 달아주시고!(<<)

언제나 선추코 감사 드립니다, 많이 부족한 글인데도 분에 넘치는 관심에 막 씽나서 1일 연재 하고 싶은데 손이 곰손이네요.ㅜㅜ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네르비안 님 // 당분간은 잉여능력입니다. 오늘 너무 더워요.ㅠㅠ 몸 건강히,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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