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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패러독스-9화 (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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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전하가 제 몸을 통해 태어나신 것이야말로 영원한 영광이랍니다."`

그 '여자'의 입버릇은 그것이었다. 사람들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렇게 이야기했다.

언제나, 언제나 과시하듯 지저귄다.

셀리안은 그녀가 ‘지저귄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고 가련하고 시끄러운 새, 자신의 어미는 그런 자였다.

"신께, 이 몸을 빌려드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뿐입니다."

라고.

셀리안 크레이누, 12살부터 주변으로부터 소년왕이라 불리고 있는 아이를 향해 여자는 찬양한다.

그녀의 눈빛에는 무한한 경애가 담겨 있었으며, 그녀의 찬양도 경애도 오로지 ‘셀리안’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녀의 존재 자체가.

“...”

그런 그녀를 황제, 다리스 크레이누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자신의 부군인 황제를 향해 그녀는 '동정'과 '경멸' 외에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왕은 그에 대해 화내지도, 분노하지도, 치욕스러워하지도 않는다.

황제의 마음은 이미 꺾였으니까.

셀리안 크레이누, 그의 장자가 태어난 뒤부터 줄곧.

사실, 현재의 황제, 다리스 크레이누는 유능한 남자였‘었’다.

키오스의 왕족, 크레이누는 고대부터 강력한 마법사의 가계였다. 그 피의 힘이, 어느 순간부터 왕족에게서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수대, 수십대를 거쳐 옅어져 갔다.

피가 섞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면서 퇴화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족이 신에게 버림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로, 왕권은 흔들렸다. 대제국임은 변하지 않았지만 주변국의 침략이 잦아졌고 반란도 많아졌다. 서서히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런 난세에 왕이 된 다리스가 처음 한 일은 옅어지는 '마법사의 피'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 역시 마법의 힘은 옅었지만 타고난 무관으로서의 재능과 자신의 야망만으로 무너지는 왕권을 강화해갔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그도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성군이었다. 그는 마법사의 힘과 관계 없이 나라를 정비해갔다. 이 유례없는 성군의 등장으로 제국의 내정은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괄목할만했다. 제국의 영토를 침범하던 타국들을 완전히 진정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 정도야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으니까.

훌륭한 왕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가 '아실리안 헤르티아', 셀리안 크레이누의 어미를 정비로 들이면서 시작 되었다. 아니, 그녀가 셀리안을 낳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약소국의 공주였는데 허수아비 왕비였다. 외척 세력의 개입을 막기 위해 황제가 일부러 정비의 자리에 앉힌 하찮은 여자. 소문에 의하면 모종의 사고로 '아기'도 낳지 못한다고 한다. 나라가 정비되면 조만간 '치울' 여자.

‘그런 여자’가 희대의 왕을 낳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나이 먹었다고 하기도 뭐할 만큼 정정한 다리스가 황제로서 살아있었음에도.

소년왕,

셀리안 크레이누에 대해, 아무도 그것을 '반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감히 말 할 수 없다. 주변에서 그리 생각했고 황제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다리스왕이 평생을 통해 그 자신의 재능과 힘으로 회복하고 복구한 것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뒤집어 엎어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소년왕, 존재 자체가 세계의 정점인 남자.

신의 화신.

"아아, 전하- 전하야말로 이 제국입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제 어미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헀다. 알고 있다고.

"..."

여자는 자신을 낳은 것을 기뻐한다. 자신은 그녀의 행복이며 전부이다.

하지만...

‘자식'은 아니겠지.

분명 그는 그녀의 배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왔건만.

*

“배고프다.”

“그렇네.”

“...졸려.”

“그건 자면 되지, 그건 그렇고 아가씨 굉장한데. 어떻게 고대마법을 아는 거야.”

눈을 뜬다. 어느새 내 옆에는 실눈 남자가 앉아 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빙긋 웃더니 말을 잇는다.

“노예 마차에서- 마법주문을 그렇게 다양하게 중얼거리는 여자를 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남자가 생글 웃는다. 빙글빙글 웃고 있지만. 그 눈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다. 다른 생각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텅 빈 눈동자. 황금빛 눈동자는 날카롭게 반짝이는데 그 안에 어떤 감정도 없다. 읽어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포커페이스?’

문제는, 그의 눈빛은 읽을 수 없지만 목소리는 왠지 나를 비웃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가 낯설지 않아 이상하다.

‘이런 불쾌한 놈을 나는 모르는데.’

그것도 노예 마차에 지인이 있을리도 없다.

“처음에 뭐, 괜찮았어. 마법하는 사람도 있겠지.  외는 주문도 그냥 간단한 불마법이나 공격마법이었으니까.”

그야, 창살을 녹이거나 부수는데는 그 정도로 충분하니까.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주문들이 어마어마해지는 거야. 시 읊듯이 메테오를 외칠 때는 나도 모르게 하늘을 봤다니까.”

남자는 동의를 구하듯 킬킬 웃으면서 창살 틈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정말 운석이 떨어지나 살피는 듯한 자세다.

“파이어볼도 못 하는 여자가 운석을 불러올 일은 없겠지만. 주문만도 흔히 욀 수 있는 주문은 아니니까.”

“...”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운석이 떨어질리 없다고. 그냥 영 안 되니까 해본 거였을 뿐인데.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여튼 별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도 남의 입으로 들으니까 영 기분이 좋지는 않다. 아니, 나쁘다.

“어라, 화났어?”

“...”

“욕이 아니야. 칭찬이지! 그 다음에는 더 굉장했어, 나 감동했다니까!”

“...”

“고대마법이라니! 세상에- 마계의 괴수 소환 주문까지 들었을 때는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동정하듯 바라보며 비웃는 어조, 마이페이스로 중얼거리는 목소리.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확실하게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하여튼 정말 재미있...”

“생각났다.”

“어?”

이거 뭔지 생각 났어.

“뭐가? 새로운 주문? 이번에는 빙산이라도 소환하게?”

재차 깐죽거리기 시작하는 수다쟁이 남자, 이 새끼가 뭔 새끼인지 떠올랐다.

“너, 그때 그 개새끼지?”

“?...아?”

그 새끼다. 그 개새끼. 그 후드 쓴 놈. 귀족 노인이 아이에게 살갑게 구는 걸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를 납치 했던 개새끼, 후드 쓴 미친놈. 악력이 굉장한 횡성수설남이다. 체구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떠올리니 맞는 것 같다. 아니 맞다. 분명하다. 이건 그거다.

“그 납치범 새끼.”

“...”

“맞지?”

“...흐응.”

그는 내말에 소리없이 묘하게 웃었다. 평범한 얼굴인데 내 말에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는 모습이 미묘하게 야해서 이상하다.

‘야하다고?’

상황에 맞지 않는 감상이다. 그 단상을 지워버리고 다시 한 번 따지려 하면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설핏 웃으며 제 말을 이어갔다.

“그건 됐고.”

“되지 않았는데?”

“아니,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잖아. 덕분에 나도 생각나긴 했지만.”

“...잊고 있었다는 거야?”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니까.”

“...”

그때, 이 납치범으로부터 도망칠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범죄자는 응징, 그러나 상대가 미친놈이라면.

피해야 한다고...

나는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남자로부터 슬금슬금 몸을 피했다.

*

슬금슬금 피하는 나를 향해 미친놈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또다시 입을 연다.

“그보다 본론, 이야기해도 될까?”

“이 대화에 본론이 있었어?”

그냥 되는 대로 떠들고 내 속을 긁는 줄 알았는데- 눈을 깜빡거리며 핀잔을 주면 그가 다시 그 이상하게 야한 미소를 짓는다. 남자가 그 미소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야하다고 생각하는 게 굴욕스럽다.

“대답해주면 더 이상 말 걸지 않을게.”

“아니 그냥 내가 알아서 피할 건데.”

“이 안에서?”

그가 씨익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뒤에는 창살, 앞에는 미친놈. 마을거리와는 다르게 피할 곳이 없다.

“으윽...”

“대답해주기야.”

“...”

젠장.

“있잖아, 네가 그런 주문들을 어떻게 아는 거야?”

“...”

“그런 주문은 마탑 지하창고에도 없을 걸?”

“그야...”

내가 셀리안 크레이누의 환생이니까, 라고. 아마 지금도 열심히 살아, 황제로서 군림하고 있을 남자의 환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 입을 다문다. 그럼 눈앞의 남자보다 내가 미친놈 같을 테니까.

미친놈에게 미친놈으로 보여지고 싶지 않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가 재차 묻는다.

“안 가르쳐줘?”

“...”

“...마나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주문을 아는 건지... 어떻게?”

“뭐?”

“응?”

“어? 마나가 없다고? 나?”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 얼굴이네. 하하.”

그가 이번에는 소리내서 웃는다. 기가 막히다는 웃음소리다.

“유감이지만, 없어.”

“조금도?”

“하나도.”

“왜?”

“그걸 왜 나한테 물을까?”

“없을 리가...”

셀리안 크레이누는 유례없이 강한 마법사왕이었는데. 역시 ‘능력’만 쏙 빠지고 환생한걸까. 불공평한 건 둘째치고.

“말도 안돼.”

말도 안 된다고.

게이의 기억만 있고 능력은 없는건가, 라고 나도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지, 마음 속으로는 그럴리 없다고...

‘나는 생각한 건가.’

그도 그럴 게, 셀리안 크레이누- 그의 영혼은...

“...”

고민하고 있으면, 남자가 손가락을 멋대로 남의 미간에 댔다. 덕분에 가까웠던 거리가 더 좁혀진다. 바로 앞에 황금빛의 눈동자가 있다.

“?”

“...”

대고 꾹 상처를 눌렀다.

“아씁!!”

“푸핫!”

“뭐하는 거야?!”

아픔에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손을 쳐낸다. 그는 다시 소리내서 웃었다. 말라 붙었지만 조금 남아 있던 건지 그의 손에 내 피가 묻는다. 역시 미친놈은 상종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 미간을 찌푸리길레 펴줄라고 했는데 주름보다 큰 상처가 있어서.”

“미친놈! 이, 미친...?...헐...”

버럭 화를 내려 하면, 남자가 씨익 웃으며 혀로 지 손에 묻은 내 피를 핥는다. 핥았다. 아까보다 더 야하게 눈을 뜨고 야한 동작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변...”

태라고, 진심 생각한다. 무섭다. 역시 미친 변태는 생리적으로 무서워진다.

“...음... 신기하네.”

그는 음미하듯 중얼거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네....응, 재미있어.”

“...”

나는 짜게 식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변태다. 상변태다. 개새끼에 미친놈에 상변태... 총체적 난국이라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기로 다짐했다.

다행히 남자가 먼저 몸을 바로 세우고 나로부터 떨어졌다. 그대로 멀어져 퀭한 눈의 사람들 쪽으로 돌아간다. 다만 그 순간에도 나를 보며  눈가를 접으며 웃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선추가 늘어 기뻐요!

하루이즈 님 // 오늘은 주무시기 전에 올립니다★

A사계절 님 // 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헷, 생각 나는 대로 짠 설정이 있어서 어색해도 용서를...ㅎㅎ 산은 언젠가 다시 나옵니다. 언젠가. ㅎㅎ

디롱 님 // 저 아가씨도 후에 다시 나옵니다, 어떤 모습일지는 그때 기대해주세요!

세이야츠키 님 //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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