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68)

 [집안 이야기 그 전 6. 정혜 엄마의 과거]

 주인아저씨는 자기는 울산을 쉽게 떠날 수 없으니 정용에게 서울에 있는 마나님과 누나들을 잘 돌봐주라고 부탁한다.

 정용은 “예” 라고 얼른 대답은 하였지만 그가 왜 울산을 떠날 수 없는지는 이야기 해 주지 않아 잘 알 수 없었다.

 주인아저씨는 주머니에서 꽤 많은 액수의 돈을 꺼내 정용에게 주었다.

 옆에 계신 마나님이 돈을 받으라고 눈짓을 해 주어서 주머니에 받아 넣기는 했지만 어쩐지 좌불안석이었다. 얼굴로는 즐겁고 환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딘지 어색하고 영 힘들었다.

 정용은 저녁 시간이 늦어져 더 이상 삼청동에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 명륜동으로 넘어오기로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누나들은 ‘자고가라’고 성화가 대단하였다. 더욱이 큰 누나는 오늘은 자기 방에서 자고 갈 차례라고 말하는 것을 주인아저씨가 있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얼른 나와 명륜동으로 발걸음으로 옮겼다.

 그 덕분에 정용은 거의 밤 열 두 시가 다 되어서야 명륜동 집에 들어 갈 수 있었다. 그의 방문 앞에는 어머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가 세를 들어 사는 주인집은 이미 불이 다 꺼져 캄캄했다. 그가 있는 전세방에만 전등불이 환하게 켜 있었다. 아마 엄마가 아직 주무시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정용은 조용히 문을 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방에 이불을 펴고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아랫목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정용은 문간에 들어서다 말고 서서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마나님처럼 새하얀 얼굴은 아니지만 참 예쁘고 고운 얼굴이었다.

 초승달처럼 고운 눈썹이 까맣게 그려져 있고, 오뚝 솟은 코와 빨간 입술은 너무나 어울렸다.

 정용은 요즘 많은 여자들과 만나면서 새삼 자기 엄마가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제 겨우 갓 서른이니 나이도 많지 않은데, 남편마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결국 그녀는 새파란 청상(靑孀)이 되어 버린 셈이다.

 물론 나이가 어린 정용으로서는 엄마의 그런 내면 상태까지 감지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기 엄마는 예쁘고 고운 엄마라는 사실은 그의 마음에도 깊이 각인되었다.

 사실 정용의 엄마인 정혜(鄭慧)는 당시의 한국 여자치고는 아주 늘씬하고 예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말로 ‘남남북녀(南男北女)’란 용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남쪽에는 남자들이 미남이 많고 뛰어난 특징이 있는 반면, 북쪽의 여자들은 기마민족의 특성을 더 많이 타고 태어났기에 키가 크고 예쁜 여자가 많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그것은 속설이라기보다 실제적으로 그렇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동란이란 엄청난 위험 속에서 그녀는 정용의 아버지와는 결혼하려고 마음을 먹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였기에 한 결혼이었고, 그녀가 열일곱이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아기를 갖게 된 것도 정용의 아버지와 함께 동거하게 됨으로써(여기에는 말할 수 없는 깊은 사연이 숨어 있어 이 또한 나중에 이야기꺼리가 되지만) 벌어진 필연적인 결과였을 뿐이었다.

 그녀와 정용의 아버지는 본래 사랑해서는 안 될 사이였지만, 전쟁이라는 사회적 상황이 이 둘을 떼어 놓지 못할 형편으로 몰고 갔고, 더욱이 그녀는 정용의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였기에 둘 사이에 아기까지 생겨버리자 둘은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아예 결혼을 하고 말았다.

 전쟁 통에 아기를 임신하자 정용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그녀를 보호해야겠다는 단 한 가지의 일념으로 비교적 안전한 곳을 찾다가 서울 인근의 복사골인 부천을 점을 찍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오류동 공군정보학교 교장이었던 고씨 성을 가진 대령이 그를 찾아와 정보학교 무술 교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여 경기도와 서울 인근 야산인 둔덕산에 터를 잡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근 이년 동안이나 남편을 보지 못한 그녀는 남편의 몸이 너무 그리웠다.

 아니 그녀 속에 있는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열여섯 어린 나이부터 남자를 경험한 그녀는 남편이 있는 동안에는 왕성한 성생활을 유지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오직 한 남자인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즘 자기 뱃속에서 나온 아들, 정용의 얼굴에서 바로 그 남자의 모습이 묻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아주 어려서부터 사랑했던 바로 그 남자의 모습이었다.

 어린 정용의 얼굴은 그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보았던 사랑하는 그의 남자와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황해도 연백에서 자란 그녀는 위로는 두 명의 오빠와 함께 고명딸로 자랐다. 집안의 모든 식구들은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

 연백평야의 만석꾼 집안의 부잣집 딸이었던 그녀는 모자란 것이 없이 자랐다. 특히 큰 오빠는 그녀를 아버지 보다 더 사랑해 주었다. 아니 그녀를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

 그러나 큰 오빠는 이른 나이에 경성(京城)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만석꾼 집안으로 돈이 많던 그의 아버지는 신촌에 있는 Y 전문학교로 아들을 보내고 그곳에서 신식 학문을 익히게 한다.

 물론 그는 방학이 되면 집에 와서 동생인 그녀를 돌보아 주었지만, 해방이 되고 서울과 평양의 정세가 미묘해지면서 그녀도, 집도 커다란 환란과 풍파를 만나게 된다.

 물론 그 당시에 환란과 풍파를 만나지 않은 집이 과연 몇이나 있겠느냐만, 황해도 연안의 만석꾼 집은 공산당 무리들이 지주 집안은 쳐 죽여야 한다는 미명아래 해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살기가 힘들어졌다.

 그녀의 둘째 오빠였던 정석(鄭碩)은 해방 된 후 삼 년 되던 해 갓 스물의 나이로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산당 일당들에게 모진 매를 맞고 죽어 버린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집에서 머슴살이하던 녀석들로부터 구타당해 죽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네살.

 그러나 둘째 오빠가 죽고 난 후 그의 집은 지속적으로 부랑자들과 머슴들로 구성된 공산당 패거리들에게 시달림을 받게 된다.

또한 그녀의 성장을 훔쳐보던 한 마름 녀석은 어리지만 예쁜 그녀를 강탈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녀 또한 못된 마름 녀석이 자기를 노린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어찌하랴! 겨우 열넷의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것을!

 그녀는 둘째 오빠가 죽던 날 밤, 서울에서 몰래 연안으로 잠입한 큰 오빠의 도움과 부모님의 권유로 그녀가 살던 연백평야의 중심지인 연안 지방을 벗어나 큰 오빠와 함께 한참 떨어진 은율의 구월산으로 숨어든다.

 그 곳에는 그녀의 큰 오빠인 정현(鄭鉉)이 다년간 무예를 연마하던 작은 움막집이 있었다.

 두 오누이가 연안을 벗어나 구월산에 가 있는 사이에 연백평야 만석꾼 정 부자의 집안은 완전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큰 아들이었던 정현(鄭鉉)은 일신으로 갖고 있던 탁월한 능력으로 자신과 누이동생의 몸은 어떻게 지킬 수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와 곱고 여리며 그가 생전에 사랑하던 어머니의 사망과 일가 친족의 몰락을 구할 수는 없었다.

 공산당 무리들은 지주 집안의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여 머슴과 마름 녀석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준다. 이런 비참한 과거가 나중 그가 공군정보학교 무술교관이 되는 연유가 되기도 한다.

 하여튼 정현(鄭鉉)은 누이동생인 정혜(鄭慧)와 함께 구월산에서 잠시 동안 기거하게 되는데, 이 은둔생활이 그들 삶의 양식을 통째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구월산에서 정현은 자신의 사부가 남겨준 약간의 양식과 산에서 얻어지는 짐승 등으로 토굴과도 같은 움막에서 삶을 연명하게 되는데, 도저히 자신의 힘만 갖고서는 자기 집을 파산시킨 공산당 무리들과 그 일당들에게 복수할 길이 요원해 보였다.

 더욱이 공산당 치하에서는 지주 집안 아들로서 쫒기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에게 붙들려가서 인민군 졸병이 되든지, 아니면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길거리에 처형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였다.

 정현(鄭鉉)은 하는 수 없이 서울로 돌아가 다음을 기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서울에 가면 전문학교와 주변의 친구들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럭저럭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정든 고향집을 뒤로 하고 삼팔선을 넘게 된다.

 그것이 1948년 봄이었다. 정혜 나이 그 때 열 다섯. 소녀에서 여자로 바뀌는 때였다.

 정혜는 큰 오빠와 같이 있으면서 남자는 이 오빠 외에 다른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큰 오빠는 실질적으로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만석꾼 집안의 고명딸로서 그 위치에 있을 때에는 누구라도 그녀를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만, 부모가 다 죽고 실제적으로는 고아가 된 마당에 큰 오빠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거나 마찬가지로서 어떻게 해서든 이 오빠는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녀가 의지할 데라곤 큰 오빠, 딱 한 명의 남자뿐이었다.

 정혜도 열다섯이 되자 그녀의 속에 있던 여자가 점차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예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여성의 바램이다. 그녀도 천상 ‘예쁜 여자’였다.

 둘째 오빠의 죽음과 부모님의 죽음으로 이미 그녀 안에 있던 ‘소녀’ 시대는 끝났던 것이다.

 한 남자를 그리워하고 그 남자에게 속하고자 하는 바람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그리워하는 남자는 누구보다 훤칠하고 미남이며, 강인한 남자인데다가 자신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주는 아주 잘난 남자였다. 그녀의 눈에는 다른 남자는 남자 축에 끼지도 못하였다.

 조선이란 나라가 광복을 맞이하자 좋은 일만 찾아 온 것이 아니라 혼돈과 무질서를 몰고 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일제 시대를 그리워했다.

 아니 그리워했다기보다는 그래도 그 때가 광복 이후보다는 질서가 잡혔고 사람 살기가 좀 더 편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갓 해방된 조선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놀라운 자유를 선용할 능력이 없었다.

 1949년 서울의 혼돈은 극을 이루었다. 온갖 루머가 퍼지고 사회는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 판쳤다.

 이제 열 여섯 된 그녀는 점차 큰 오빠의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자를 아는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열 다섯 살 때, 오빠와 함께 구월산에서 나온 그녀는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걷는 어려운 탈출의 과정을 겪으면서 상남자인 큰 오빠의 품에 안겨 잠을 이루는 일이 다반사였다.

 큰 오빠의 품에 안겨 잠이 들면서도 자신의 작은 젖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오빠가 너무나 좋았다. 그녀는 오빠가 만져주는 사랑의 손길에 색색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도 가만히 그 감촉을 음미했던 것이다.

 이들이 구월산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시 연백으로 오는 길은 그래도 한 번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수월한 편이었다.

 그러나 연백평야로부터 시작하여 개풍군을 넘어 강화 위인 옹진과 경기도 일원의 파주 연천을 지나는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장성한 청년인 정현은 누구에게라도 붙들리기만 하면 무조건 인민군에 끌려갈 형편이었으므로,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일이었다.

 이들이 살 길은 오로지 서울이란 대도시 속으로 숨어드는 것이 그들에게 유일한 탈출로였다.

 둘은 연백부터는 해안가와 가까이 하면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방향을 잡았고, 날이 저물면 야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 노숙할 곳을 찾아 밤을 지샜다.

 산속에 외딴집의 헛간이라도 발견할라치면 다행이라고 여겼고, 어떨 땐 산비탈 움푹한 곳에서 혹은 동굴 같은 곳에서 작은 잠자리를 만들어 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아 항상 허기졌으나, 그녀의 큰 오빠는 언제든지 그녀에게 먹을 것을 주어 배고프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어떨 땐 산토끼나 뱀도 잡아먹었다. 산비탈에 심겨진 고구마나 감자를 캐서 먹기도 하였다.

 자신의 힘으로는 생존을 위한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오로지 오빠의 손에 의지해야 했다.

 이렇게 의지할 데라곤 오직 오빠밖에 없던 그녀는 너무 자연스럽게 오빠의 몸에 기대며 잠을 청했다.

 그럴 때마다 자기를 으스러져라 껴안아 주는 큰 오빠가 그녀는 너무나도 좋았다.

 그녀가 혼곤하게 잠이 들면 큰 오빠는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작은 젖가슴을 조물락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작은 젖가슴을 따뜻하게 만져주는 오빠의 손길이 너무 좋았다.

 둘은 밤을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차 큰 오빠의 손길은 그녀의 아랫배로 내려왔고, 그녀는 정겹게 만져 주는 오빠의 손길에 그냥 그녀는 자신의 허벅지를 자동적으로 벌리곤 하였다.

 이제 겨우 자락털이 나기 시작한 그녀의 도톰한 음부를 만져줄 즈음 그녀는 자신의 여린 손으로 오빠의 억센 가슴을 더듬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제 보풀어 오르는 아랫배를 부드럽게 만져주는 오빠의 억센 손길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녀는 자신을 껴안아 주는 오빠의 귀에 속살거렸다.

 “난, 오빠밖에 없어!”

 “오빠가 없으면 난 콱 죽어버리고 말꺼야!”

 “오빠가 날 가져줘!”

 “난 어릴 때부터 오빠의 여자였어!”

 “오빠가 내 전부야!”

 “오빤, 내 신랑이야!”

 그녀는 오빠의 손길 아래 흐느끼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현은 자기 귀에 예쁘게 속살거리며 반응하는 이 아름다운 누이동생을 으스러져라고 껴안아 주면서, 그 입술에 키스를 하곤 하였다.

 그는 이 사랑스러운 누이동생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 지옥의 소굴로부터 탈출시키리라 결심한다.

 그들이 구월산으로부터 탈출을 시작한지 스무날이 지나자 멀리 강화도가 보였다.

 그건 어느새 이들이 연백군, 개풍군을 지나 옹진군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이고 그건 이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삼팔선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윽고 스무닷새째 되는 날 임진강을 볼 수 있었고, 이들을 허술한 옷차림이었지만 더 이상 누구에게 붙들려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갖는다.

 정현은 임진강을 건너기 위해 도강이 가능한 곳을 찾으려고 파주 인근까지 임진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간 후에야 겨우 임진강을 건너고 다시 닷새 길을 걸어 지금의 불광동 언덕을 넘어 서대문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험난한 여정 속에 정혜는 완전하게 오빠의 여자가 되고 만다.

 그 때 겨우 열 다섯에서 열 여섯으로 바뀌고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겪고 나자 그녀도 무서운 것이 없는 여자로 변했다. 그리고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로 바뀌었다.

 그 당시 열 여섯이면 실제로 결혼하고도 남을 나이였다. 게다가 이북에서 죽음으로부터의 탈출 경험은 그녀를 강인한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임진강을 도강하기 전 비어있던 한 외딴 집에서의 하루 저녁에 그녀는 완전한 여자로 변신한다.

 그 날 그녀는 오빠에게 말했다.

 “날, 오빠의 여자로 만들어 줘!”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어 있던 외딴 집에서 솥과 대야 등을 찾아 불을 지피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몇 달 만에 목욕다운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은 몸으로 오빠 곁에 누웠다.

 잠자리는 신방이랄 수 없었지만, 그녀의 몸은 순결한 처녀의 몸이었다.

 자기 나름대로 신방을 차린 정혜는 오빠에게 자기 몸을 가져달라고 요구를 하였다.

 “난 오빠 말고 다른 사람이 없어”

 정현은 이북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사랑스러운 누이동생과 숱하게 애무와 키스를 나누었지만 정작 섹스만큼은 참아왔었다.

그것은 그녀가 친 누이동생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누이동생과 섹스를 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상피’를 붙는 못된 일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달라는 누이의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젊은 두 남녀의 욕망이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욕망의 비등점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 몸은 본래 오빠꺼야”

 그는 누이동생보다 많은 나이였지만, 그래도 여전한 청춘이었고, 한동안 여자와 섹스를 하지 않아 어느 때보다 힘든 터에 자신의 귓바퀴를 속살거리는 여동생의 요구에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의 여동생 역시 오빠와의 탈출 생활이 육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열 다섯에서 열 여섯으로 넘어가는 소녀의 육체는 격심한 외부환경의 변화와 함께 이북 지역의 탈출을 위해 매일 쫒기다시피 하는 삶과 저녁마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혼곤한 그녀의 육체를 만져주는 오빠의 손길에 의해 그녀는 서서히 소녀에서 여자로 탈바꿈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현은 자기 몸 아래에서 알몸으로 허벅지를 벌리고 자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자하는 사랑스러운 누이동생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몸을 활짝 열어 오빠의 남성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그녀의 내부에 숨어 있는 여성은 그녀가 어떻게 해야 자기 남자가 좋아하는지 저절로 알게 만들었다.

 정현은 여동생의 육체를 안자 오랫동안 참고 있던 자신의 남성이 순식간에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몸은 아직 다 익은 성숙한 여자의 몸은 아니었지만 세상의 그 어떤 여자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몸이었다.

 그녀의 어린 입술을 찾아 입맞춤을 하자 그녀는 헐떡이며 그의 혀를 빨아 왔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고자 하는 여린 심정의 발로였다.

 그는 천천히 발기한 자신의 음경을 그녀의 작은 보지 샘물 입구에 대었다.

 이미 그곳은 풍부한 음수가 질척하도록 솟아나와 있었다. 그는 누이가 최대한 상처를 덜 받게 하기 위해 신속하게 자신의 살 꼬챙이를 처녀 몸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녀 또한 그의 남성이 신속하게 들어오도록 자신의 몸을 활짝 열어 그의 남성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내부로 깊게 찔러오는 오빠의 살 꼬챙이에 의해 바르르 몸을 떨었다.

 그건 아픔이 아니라 환희였다.

 그건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정혜는 자신의 생살을 찢고 들어오는 그의 남성이 주는 고통에 오히려 기뻤다.

 “옵빠! 난 아파도 너무 좋아!”

 그녀는 아픈 것이 오히려 좋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각인되는 이 고통의 희열은 그만큼 오빠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아픔으로 오빠의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아프리라! 더 아파도 참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계산 착오였다.

 곧 그녀의 지금 겪는 아픔은, 아픔이 아니라 환희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몰랐다.

 지금 자기 몸을 아프도록 꿰뚫은 오빠의 살 꼬챙이가 자신의 육체에 얼마나 놀라운 기쁨을 가져다주는 기쁨과 환희의 방망이란 사실을 처음에는 잘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날 그녀는 그 빈집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되었다.

 처녀의 파과를 경험한 그녀가 계속하여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리란 사실을 알고 있던 정현은 누이동생이자 애인이 된 그녀를 위해 빈집 아랫목에 불을 때고 물을 데우고 밥을 지어 살뜰하게 먹여주는 애정의 표현을 더하게 된다.

 자기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를 더 묵어가며 돌보아주는 오빠의 사랑에 감동한 그녀는 두 번째 날 밤의 오빠와 두 번째의 섹스로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호롱불마저 없는 서늘한 초겨울에 가까운 가을 저녁에 정혜는 오빠가 불을 지핀 빈집의 따뜻한 아랫목에 일찌감치 누워 오빠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현은 내일 출발하여 어디로 어떻게 갈지를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사실 정혜는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무관한 일이었다.

 어차피 그녀는 오빠 곁을 떠나지 않을 거니까 그의 곁에 붙어 이끌어 주는 대로 행동할 생각이었지만 오빠는 평소에 말하지 않던 것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정혜도 그의 품에 안겨 그가 만져주는 젖가슴의 감촉을 음미하며 점차 단단해지는 유두를 찝어 주는 그의 단단한 손길에 맥이 탁 풀리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정혜와 정현은 이불 속에서 그들이 입고 있던 오래된 겉옷들을 모두 벗어 던졌다.

 그들은 더 이상 옷을 입고 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알몸과 알몸으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자는 것이 더 행복했다.

 정현은 그런 여동생의 몸에서 여인의 알싸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알몸의 여동생을 껴안으며 입술을 열어 자신의 혀를 밀어 넣었다.

 정혜는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혀를 쪽쪽 빨아대었다.

 그녀 역시 남자의 향기가 이렇게 강렬한지는 처음 알았다.

 오빠는 우악스럽게 그녀를 껴안았다. 정혜는 오빠가 으스러지게 자신을 껴안자 그 품 안에서 아스라이 혼몽해지며 정신을 잃는 것 같았다.

 “그래, 난 으스러져도 좋아!”

 오빠는 정혜를 껴안고 있다가 그녀의 단단한 젖무덤을 빨기 시작하였다.

 열여섯이라지만 아직 남자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그녀의 몸은 여전히 여인의 몸이라고 하기 보다는 소녀의 몸에 가까웠다. 정현은 정혜의 알몸을 입으로 애무하였다.

 그의 혀는 입술에서 귓바퀴로 흘렀고, 다시 목덜미로 갔다.

 그녀는 후끈한 오빠의 열기가 자기 몸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겨드랑이를 거친 그의 입술은 이제 피어오르는 그녀의 젖가슴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한 번도 다른 남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았던 그녀의 작은 젖가슴은 이제 오빠의 손길에 의해 놀라운 감각의 세포를 꽃피우고 있었다.

 오빠가 겨우 돋아난 분홍색 꽃 순처럼 여린 그녀의 젖꼭지를 빨았을 때 그녀는 다시 한 번 바르르 떨리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동시에 자신의 아랫도리 저 먼 쪽에서 마치 동통같은 아픔의 흔적이 되살아났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는 뜨거운 음수가 철철 흘러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오빠의 입술은 희고 편편한 그녀의 아랫배를 거쳐 그녀의 음부 위 돋아난 짜락털로 다가섰다.

 그녀는 두려움을 느꼈다.

 자꾸 허벅지를 닫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떤 놀라운 감촉이 그곳에서 퍼져 나갈지 모르는 갈증의 기대감도 있었다.

 그녀의 오빠가 허벅지 안쪽으로 입술을 옮기자 그녀는 저절로 “헉!”하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의 혀와 입술을 자신의 여린 보지로 이끌어 들이고 있는 여인의 몸을 경험해야만 했다.

 오빠의 입술이 그녀의 중심부에 닿자 그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허리를 튕기며 그녀의 보지가 그의 입술에 맞닿도록 강렬하게 부딪쳐 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큰 소리를 지르는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 -- 악 --- 옵빠! --- ”

 정혜는 자신의 음부가 오빠의 입술에 점령되자 허리를 치켜들며 그의 입술에 자신의 음부가 최대한 밀착되도록 밀어젖혔다.

 정현은 몸을 바르르 떨며 자신의 입에 음부를 부딪쳐 오는 누이동생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서는 그녀의 보지를 강렬한 흡인력으로 빨아대었다.

 동시에 혀를 그녀의 질 입구에 최대한 삽입되도록 계속하여 밀어 넣었다.

 그녀의 꽃잎 속에서는 맑은 꿀물이 계속하여 퐁퐁 솟아나왔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것보다도 맛있는 음수였다. 과거 그가 경험했던 그 누구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입술을 떼고 허리를 든 후 흥건히 젖은 그녀의 음부에 자신의 살 꼬챙이를 갖다 대었다.

 이미 홍수에 젖은 그녀의 꽃잎은 대문을 다 열어 놓고 살꼬챙이가 꿰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현은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거대한 살 꼬챙이를 정혜의 음부 안으로 꿰어 주었다.

 이렇게 그날 정혜는 두 번째로 오빠의 살꼬챙이에 의해 음부의 살을 꿰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겨우 두 번째 날에 그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좆에 꿰이는 것이 아픔이 아니라 환희란 것을,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란 것을,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쾌락이 여기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몸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남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자신에게 주는 아름다운 희열이었다.

 그 후 그녀는 오로지 한 남자만 원하였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 무엇이든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 남자라면 자기 생명을 줘도 괜찮다고 여겼다.

 그런 사랑과 숭모의 대상이 바로 그녀의 큰 오빠였다.

 그녀는 이렇게 이북으로부터의 탈출 도중 오빠에게 처녀를 주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먼저 줬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오빠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처녀를 달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고, 뽀뽀 수준의 키스는 했지만, 노골적으로 섹스까지 원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 생각은 달랐다. 지금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처녀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어차피 누군가에게 붙들리면 당할 건데 이런 죽음의 위협 속에 처녀 따위는 지킬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목숨인들 아깝지 않은데 처녀성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자기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에게 무언들 주지 못하랴!!

 1950년 6월,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약 십 개월 여의 기간 동안 두 오누이는 신촌 근방 작은 판잣집에서 신혼의 단꿈을 꾸며 알콩달콩 육체의 즐거움에 대해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Y 전문에 적을 두고 있던 그녀의 큰 오빠는 장교로 국군에 차출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이때 이미 배가 남산만한 젊은 아낙이 된 그의 여동생을 두고 전쟁에 끌려가야 하는 그들의 처지는 누구보다 비관적이었다.

 게다가 이북에서 인민군이 쳐들어와 서울이 온통 불바다로 변하자 두 사람은 다시 숨을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이북에서의 탈출 경험이 있었던 그들은 서울과 경기 일원의 산속에 근거지를 찾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부천 둔덕산 기슭이 된다.

 더욱이 일신에 무예를 갖고 있던 정현은 장교 훈련교관이 되어 최전선에 배치되지는 않았기에 그 숱한 젊은 목숨이 사라진 무시무시한 전쟁통에서도 겨우 목숨은 부지하게 된다.

 전쟁의 포화가 겨우 멈춘 1953년, 정현은 이젠 아내가 된 누이동생과 함께 오류동 지역에 터를 잡게 되는데 그것은 그곳에 공군정보학교가 세워지고, 이 전투 특전단에서는 계속하여 이북에 정보요원을 파견하게 됨으로써 이들을 가르칠 무술 교관이 필요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한국동란 중 장교 훈련단에서 단장 역할을 했던 고위급 장교가 이 공군정보학교에 부대장으로 부임하자 그는 정현에게 무술 교관을 해 줄 것을 위촉하였다.

 딱히 달리 갈 곳이 없었던 정현은 부대장의 요구를 수용하고 군속(軍屬)으로 일하며 무술 교관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황해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북의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므로 비밀리에 이북에 파견할 정보요원들에게 지리적 환경도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무술 교관 겸 생존교육 선생으로서 맞춤이었던 것이다.

 이 때 그녀의 누이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정현은 전쟁통에 자신의 족보를 새로 만들었다.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당시 내연관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전쟁통에 없어진 호적기록을 새롭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그냥 신고만 하면 호적에 올려 줬다. 그러니 누이동생과 결혼한 것은 약과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딸과도 결혼도 하였고, 그 딸은 아버지의 아기도 낳았다.

 그래도 면사무소, 동사무소 서기가 알지 못하도록 호적에 올리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동 서기나 면 서기가 안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이보다 더 심한 경우는 자기 엄마와 결혼하고 자식을 가졌던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을 탓하지 않았다.

 전쟁은 그랬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폐허로 만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통의 경우에는 도저히 엮일 수 없는 사람들도 엮어 주었다.

 그러니 정현의 경우처럼 누이동생과 잠자리를 나누고 아기를 갖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어떤 누이는 두 오빠를 남편으로 삼아 하루는 이 오빠, 또 하루는 저 오빠와 잠자리를 하며 아기를 낳았다. 그럴 땐 그냥 여동생 이 지명하는 남자는 저절로 아버지가 되었다.

 또 어떤 여자는 자기 아버지와 오빠를 동시에 남편으로 삼고 아기를 낳아 주기도 했다.

 어떤 젊은 엄마는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동시에 남편 삼아 아이를 낳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전쟁이라는 거대하고 엄청난 사회적 악은 상피를 붙는 근친상간 정도의 소소한 죄악은 죄악도 아닌 것으로 덮어 줬던 것이다.

 정현은 누이동생에게 ‘김정혜’라는 이름으로 호적을 만들어 주었다.

 그럼으로 그의 누이는 그의 아내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연백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의 도움으로 정씨 족보도 만들었다. 그 역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했으므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