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1 52. 다른 공간 =========================================================================
괴수가 쓰러지고 신민배는 멀리 날아가버렸던 과학자 네명을 데리고 왔다. 그들 중에서는 다리가 부러진 사람과 팔이 부러진 사람도 있었으나, 록산의 치유에 금방 낫게 되었다.
“사체는 아깝지만 어떻게 해서든 마력석이라도 가지고 가는 게 낫겠죠?”
“그렇죠. 억 단위도 아닌 조 단위의 마력석을 놔두고 간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과학자들도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조 단위에 해당하는 마력석을 놔두고 갈 생각은 없었다.
해서 그 부분은 세이빌에게 맡겨졌다.
“이히히히히! 먹을거야! 내가 먹을거야!”
세이빌은 웃으면서 괴수의 가슴 안쪽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파고 들어갔을 때 세이빌의 행동이 멈추었다.
신민배가 안드레로 통해서 세이빌의 기능을 정지 시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이빌은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로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세이빌을 또다시 발목만 잡고 끌어 올리는 안드레였다.
마지막 마력석을 찾는 작업은 더런이 대신 했다. 그는 세이빌이 다 파헤쳐 놓은 괴수의 마지막 부위를 손으로 헤집었고, 이내 손에 무엇인가 잡히는 느낌을 밥았다.
뽑아보니, 농구공 크기만한 거대한 S급 마력석이 눈에 들어 왔다.
“오…… 이게 S급 마력석이군요?”
신민배 이외에는 모두가 S급 마력석을 처음 보았다. 해서 무척이나 놀라워하고 있었지만, 신민배의 표정은 약간 달랐다.
‘응? 일반적인 S급 마력석과는 다른 것 같은데?’
그가 알고 있는 S급 마력석은 농구공보다는 약간 작은 축구공 크기의 정도였다.
‘이건…… 잘하면 부르는게 값일지도?’
일반적인 S급 마력석보다 더 크다면 이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과학자들은 그런 마력석을 조심스럽게 장비에 옮겨 담았다.
마력석을 옮겨 담고 그들은 다시 출구가 있는지를 면밀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홀에서 벽을 기준으로 그들은 서서히 이동했다. 걷고 또 걸어도 언제나 벽과 마주하는 검은 공간.
한 없이 걷기를 시작, 어느 순간 걸음 소리가 달라졌다.
사박. 사박.
“응?”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신민배였다.
“잠깐만요.”
신민배는 바닥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었다.
“어? 풀인데?”
“예? 풀이라구요?”
뒤에 있던 과학자들은 바닥에 있는 풀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저, 정말 풀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지하에 풀이 자라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곳의 온도를 감안한다면 풀은 절대로 자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풀은 대략 잔디와도 같았지만, 가지각색의 풀들이 자라 있었다. 크게 자란 것도 아니다. 고작 십 센티 안팍으로 자라나 있었다.
“빨리 갑시다. 풀 보고 좋아할 수 있을 상황이 아니니.”
“자, 잠시만요. 표본 좀 채취하고 가겠습니다.”
그들은 과학자들이다. 당연히 표본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정보 수단이었다.
과학자들이 표본을 채출하고 다시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이동한 걸까? 눈 앞에 아주 작은 빛 같은 것이 보였다.
“신민배씨. 지금 제 눈이 이상한 겁니까? 앞에 약간의 빛이 보이는 것 같은데?”
“그러게요. 제 눈에도 그렇습니다. 수정에 반사 된 빛인가? 벽과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 곧장 걸어가보면 알 수 있을 듯 하네요.”
“그럽시다.”
그들은 곧장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차 빛의 크기가 강해지기 시작했고, 이후 그것이 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출구는 출구인데, 그곳은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환경이었다.
감히 하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대한 공간과 물과 풀, 그리고 나무들이 자라나 있는 지하 세계.
이곳이 과연 지하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들이 길을 걷다가 지상으로 나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체…… 이 공간은 어떻게 된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공간이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인지? 그것도 몇 미터도 아닌…… 수 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눈에 보이는 길이만 해도 지금 푸른 공간은 엄청나게 넓었다. 이런 공간이 있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그들은 밝은 공간으로 들어왔다. 이제 그곳은 더 이상 조명이 필요하지 않는 장소였다.
“대체 여긴 왜 이렇게 밝은거죠?”
“음…….”
신민배의 질문에 과학자들은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고, 이내 하늘에 떠 있는 밝은 구름들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하늘에 떠 있는 가스 층이 빛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스 층의 빛이 이렇게 풀을 자라게 할 순 없을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전 도무지 모르겠군요.”
과학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휘이이익~!
그런데 그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과학자의 눈에 무엇인가가 가스 층 구름 위로 사라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헉! 괴수입니다!”
바스락!
“여기도 괴수거든요?”
지금 눈에 보이는 괴수만 해도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하늘을 날아 다니고 있었으며, 또다른 한 마리는 지금 저 먼 숲에서 나무들 사이로 이동을 하는 듯 했다.
“처음 왔을 땐 낙원으로 보였는데…… 직접 보니 이건 낙원이 아니라, 괴수들의 둥지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군.”
더런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괴수만 하더라도 최소한 A급 괴수로 보였다. 그리고 수풀 사이로 보이는 괴수의 크기는 당연히 S급이었다.
나무의 크기가 엄청나다고 하지만, 그런 나무 위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괴수라면 당연히 S급이 분명했다.
이곳의 자연은 지상의 자연과는 사뭇 다르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일반적인 잔디로 보이는 풀이 그들의 허벅지까지 자라 있을 정도였다.
이곳의 자연은 모든 것이 거대해 보일 정도였다.
“버, 버섯이…….”
저 멀리 보이는 버섯이 보였다. 그런데 버섯송이의 모습이 가히 2~3층 건물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을 정도였다.
과학자들은 물론 일행들까지 잠시 멍하니 그 버섯을 바라보고 있다.
괴수들은 아직 일행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곧장 공격을 하러 달려오지는 않고 있었으며, 일행들은 조심스럽게 다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감을 잡을 수 없는 거대한 돔의 형태.
그들이 지나온 어두운 벽을 사이로 끝을 알 수 없는 벽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있다. 그리고 그 벽이 점차 옅어 보일 정도로 그 길이는 어마어마했으며, 벽은 매우 높게, 그리고 길게 뻗어 있었다.
현재 그들이 있는 장소는 약간의 언덕이라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었으며, 저 멀리에는 호수 같이 보이면서도 아주 거대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물결들도 눈에 들어 왔다.
“정말…… 지구공동설이 사실이었던 건가?”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허구와 상상으로만 한 말인 줄 알았는데…….”
과학자들은 그동안의 가설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일행들은 천천히 미지의 숲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괴수들이 즐비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괴수들과 눈이 마주쳐도 괴수들은 그들에게 섣불리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혹시 아시는 분?”
“글쎄요…… 혹시 길들여지기라도 한 건가?”
“그럴수도 있겠지만, 전혀 공격 성향이 없어 보이는 괴수들이네요…….”
이곳의 괴수들은 일행들을 전혀 공격할 의사가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안심을 하며 걸음을 걸을 수가 있었다.
록산의 표정이 매우 밝아 보인다.
“록산. 무슨 일 있는 건가요?”
“후후…….”
록산은 아무런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단지 미소만 지어 보일 뿐. 그러다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자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저와 같은 사람이 있군요…….”
“같은 사람?”
“아뇨. 정확히 말하자면 능력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록산은 미소지은 채로 모두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신민배는 궁금한 마음에 그에게 다시 말했다.
“그런 대상에 대한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겁니까?”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의 자연은…… 일반적으로 자랄 수 있는 자연이 아니라, 저의 능력처럼 자연을 다룰 수 있는 자가 만들어 낸 것이지요.”
“아! 그렇군요. 그럼 이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만들어 냈다는 거군요…….”
일행들은 끝없이 펼쳐진 숲을 거닐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저 멀리 보이는 황금 빛 산이다.
황금빛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산 주변에 황금의 빛깔이 계속 나고 있었다.
“혹시 저곳이 아닐까요?”
“글쎄요…… 이미지로만 본다면 정말 저곳에 마지막 운명을 걸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도 드네요.”
신민배 역시도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지금 멀리 보이는 황금의 산. 어쩌면 그곳이 마지막 운명의 장소가 될 것이다.
그런 장소로 향하던 중 그들의 앞에 괴수 하나가 나타났다.
은빛의 털이 바닥까지 흘러내리며, 두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의 아름다운 괴수.
“너, 넌?”
“쉬이이잇!”
그 괴수는 한 번씩 신민배의 앞에 나타났던 괴수였다. 그런 괴수가 지금 다시금 신민배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쉬이이잇!!”
그런데 그 괴수가 난데없이 일행들을 향해서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일행 모두가 아닌, 바로 록산 한명에게 보내고 있었다.
“치잇!”
록산은 갑자기 인상을 구기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쉬이이잇!!!”
그런데 갑자기 은색 빛의 괴수가 빠르게 록산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뻗었다.
푸확!!
그의 가슴팍에 선혈이 작렬했다.
“이 무슨!! 이 망할 자식!!”
더런이 빠르게 괴수를 향해서 주먹을 뻗었지만, 괴수는 빠르게 주먹을 피하고는 다시금 록산을 노릴 기회를 보고 있었다.
록산은 자신의 상처를 빠르게 회복했다. 그 속도가 지금까지 보여준 회복 속도와는 현저하게 달랐다.
상처도 남지 않고 빠르게 회복 된 상황에서 록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어먹을 자식!”
록산이 처음으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는 괴수를 바라보며 살기를 뻗어내고 있었지만, 특성상 그 어떠한 공격도 할 수가 없었다.
“네놈은…… 같은 편이 아니군!”
록산이 은빛 괴수를 보며 한 말이었다.
“쉬이잇!”
그런데 괴수는 그 말을 알아들은 듯 오히려 록산에게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다.
“무슨 말입니까? 같은 편이 아니라니? 당신은 그런 것도 알 수 있어요?”
“흥!”
록산은 신민배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바닥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빠르게 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그 크기가 순식간에 몇 십 미터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 이봐! 뭐하는거야?”
루카스가 그 모습을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멍청한 인간들…… 이제 네놈들과도 안녕이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당장 내려와.”
록산은 빠르게 넝쿨을 움직이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저, 저녀석 뭐하는 놈이야? 방금 우리들 더러 인간들이라고 한거야? 그럼 지는 인간이 아니고 뭐란 소리야?”
“음…….”
신민배는 한참이나 고민을 하며 록산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록산이 사라진 곳은 바로 그들이 향하는 황금색 빛이 흐르고 있는 산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록산이 보인 행동을 모두 종합하여 과학자들과 일행들에게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제가 느낀 록산은 절대로 의뢰를 맡은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한 가지 목적을 두고 이곳에 왔을지도 모릅니다.”
“목적이라구요?”
“그래요. 그 목적이라는 것이…… 아마도 자신과 같은 성향을 가진 자들을 찾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같은 성향을 가진 이들? 그럼 록산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