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셔리버프-130화 (1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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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다시 눈을 뜨다.

“응! 오빠 나 시란이야!”

“너…… 화장을 왜 이렇게 한거야? 그리고 얼굴이 좀…… 늙었네?”

“뭐……라……구? 그게 10년을 곁에서 하루라도 안빠지고 지켜준 사람한테 할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29살이 되면서 나이에 대한 무서움을 실감하는 시란이다. 그런데 신민배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그 충격이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민배가 깨어난 기쁨 못지 않게, 그에게서 늙었단 소리도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뭐라구? 10년?”

“그래! 오빠가 정신을 잃고 벌써 10년이 흘렀단 말이야!”

“뭐가 그렇게……?”

그러고보니 신민배는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10년 동안 움직이지도 못한 몸이기에 제대로 감각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젤리나는 어딨어?”

“어? 어……? 그게…… 우선 다른 사람들 좀 부를게!!”

시란은 급히 말을 얼버무리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즉시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연락을 받은 사람들은 빠른 시간 안에 저택으로 달려 온 것이다.

남백호와 시현, 시란 그리고 베르나가 연락을 받고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들…… 많이 달라졌네요? 그런데 안젤리나는 어디……?”

현재까지 신민배는 그 어떠한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시란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에게서 안젤리나의 이름이 나온 순간 한 번 도 이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이 모였을 때에서야 비로소 함께 신민배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다시금 안젤리나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남백호가 천천히 다가와 말했다.

“혹시……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냐?”

“네? 당연히 기억하죠. 괴수에 의해서 무너지는 건물 더미에서 안젤리나가 다칠까봐 그녀에게로 뛰어 들었으니까요. 물론 그 뒤는 기억이 안나네요. 정신을 잃어서……. 그런데 그건 왜……?”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10년 전의 일이지만, 신민배에게는 단지 어제의 기억이었다. 기억을 못할 리가 전혀 없었다.

“안젤리나는 지금 어디 있는 건가요?”

신민배가 약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점차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형님! 빨리 말씀해주세요. 안젤리나는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그녀는…….”

남백호는 10년 전 그날의 사건과 더불어, 신민배를 구조했던 당시의 상황을 대충 말해주었다.

“그, 그럼 안젤리나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10년 동안 그들 모두가 안젤리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구의 건물 잔해 어딘가에 깔려서 죽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살아 있다는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잖아요? 전 분명히 안젤리나가 안전할 수 있도록 그녀를 보호 했어요. 그런데 저만 찾았다구요? 그 말은 즉 그녀가 어딘 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잖아요?”

신민배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는 듯한 말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설마요…… 안젤리나는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전 지금 찾으러 가야겠어요.”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신민배.

하지만 10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몸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쿠당탕!

옆으로 몸을 틀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신민배에게 시란이 급히 그를 부축했다.

“오, 오빠…….”

“아…… 시란아. 미안한데 오빠 좀 일으켜 줄래? 난 지금 안젤리나를 찾으러 가야하거든.”

“오빠…… 언니는 이미…….”

“닥쳐!! 누구 마음대로 죽었다고 생각하는건데! 난 분명히 안젤리나를 구하고 나서 정신을 잃었단 말이야! 어제 일처럼 기억이 분명해! 내 기억이 맞다면 안젤리나는 분명 어딘가에 있을거야!!”

10년이 지난 지금. 막상 안젤리나를 찾는다하더라도, 그것은 그녀의 시신이 부패되어 유골뿐일 것이다.

신민배는 시란의 손을 뿌리쳤다.

눈을 뜨자마자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설마하니 안젤리나가 죽었다니? 절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절대 안죽었어! 안죽었다고!!”

그들은 신민배에게 어떠한 말을 전해줘야 할지를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베르나였다.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베르나가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신민배가 베르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기억으로는 오래 된 시간은 아니지만, 베르나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물론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었기에 그녀를 잊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오래 전보다 더욱 성숙하고 아름답게 변해 있었다.

베르나를 보며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하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베르나가 신민배를 보며 말했다.

“오빠……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절대 거짓이 없어요. 그리고 무조건 믿으셔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터무니없는 말을 하려고?”

베르나는 그때부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모든 것을 신민배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빠도 알다시피 저는 능력자이면서 신탁을 받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오빠와에 대한 기억의 신탁도 받았습니다.”

“뭐? 기억에 대한 신탁?”

“네…… 어릴 때부터 받은 기억의 신탁은 모든 일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오빠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저에게 남아 있지요.”

“그거랑 신탁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녀가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베르나.

“저에게 내려진 신탁 중 일부는 바로 안젤리나씨의 기억을 고스란히 받았다는 겁니다.”

“뭐……라구?”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린가?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의 기억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신민배가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무서운 얼굴로 베르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안젤리나가 죽기 직전의 기억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너…… 그렇다면 안젤리나가 언제 죽는지 알고 있었다는 소리잖아!!!”

신민배의 말대로 그녀는 안젤리나가 어떻게 죽는 지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알아낼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기억들은 신탁에 의한 것입니다. 신탁을 거스를 순 없어요.”

“지금…… 장난해? 넌 사람이 죽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소리 아냐!!”

아마 모두가 신민배와 같은 입장이라면 베르나에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말씀 드렸다시피…… 신탁은 거스를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안젤리나씨는 자신의 목숨과 당신의 목숨을 바꾼 겁니다. 그녀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에요.”

“무슨…… 소리야? 목숨을 바꾸다니?”

베르나는 감정의 변화를 맛보지 않고 천천히 신민배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젤리나씨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는 것은 알고 계셨죠?”

“무, 물론이지…… 단지 말을 안해줘서 어떤 능력인지는 모르지만…….”

“그렇죠. 제 기억에도 안젤리나씨가 능력에 대한 말을 한 적은 없으니까. 그럼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말씀드리죠. 안젤리나씨는 생명교환 법칙을 사용했습니다. 그녀에게 생긴 능력으로, 타인에게 생긴 상처나 병들을 낫게 해주는 대신 그녀 스스로가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하지요. 죽은 자를 살리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안젤리나씨가 당신에게 말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당신이 만약 그 사실을 안다면 절대로 안젤리나씨에게 그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을테니까요.”

“지금…… 장난해? 그래서 나 대신 안젤리나가 죽었다고?”

“맞아요. 제 기억의 마지막 파편. 그것은 당신을 살리기 위해 안젤리나씨가 능력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신 죽었죠.”

“마, 말도 안돼…….”

멍한 표정이 되고 만 신민배는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가 안젤리나 때문이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신민배. 그는 그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베르나는 그런 신민배에게 다시금 이야기 했다.

“저에게 내려진 신탁 중 하나는 안젤리나씨의 기억입니다. 물론 이 기억이 왜 신탁으로 내려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또한 안젤리나씨의 기억을 제가 가지고 있다고해서 제가 안젤리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녀의 기억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죠.”

베르나의 기억은 신민배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안젤리나의 기억과 동일하다. 물론 24시간이라는 모든 기억이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감정에 대한 부분을 베르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기억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일 뿐. 정신 주인은 오로지 베르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안젤리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최소한 나를 살렸다면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야 하지 않나?”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 역시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처음 신민배를 구출 했을 당시에 그의 곁에서 안젤리나의 시신을 찾을 수 없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잠시 혼자 있고 싶은데?”

“알겠어요.”

베르나는 몸을 돌리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에게도 신민배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말을 해주었다. 그들 역시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하나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신민배가 깨어나고 삼일째가 되었다. 그 동안 그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식사까지도 포기한 상태였다.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다.

안젤리나를 구하기 위해서 몸을 날렸지만, 결국 그로 인해서 안젤리나가 목숨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만이 느껴지는 가운데, 그녀와의 기억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고 있었다.

‘안젤리나…….’

그는 3일 동안 내내 안젤리나에 대한 생각만을 했다. 10년이 지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동생들이 어떻게 컸는지, 백호 길드는 어찌 되었는지, 또한 자신이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 따윈 필요 없었다. 오로지 안젤리나의 생각만이 계속해서 강하게 들고 있었다.

고작 3일 동안 식음전폐하고 있는 신민배에게 강한 불만을 품은 시란이 그의 방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오빠! 정말 이런식으로 할거야? 언니 죽은 걸로 너무 궁상 떠는거 아냐?”

“닥쳐!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래! 우리 오빠 마음 몰라. 이해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말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오빠를 10년이나 지키면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럼 우리는 뭔데? 우리는 뭐냐고!!”

“나가…….”

“정말 짜증나! 이런 식이었으면 차라리 깨어나지 말지 그랬어!! 차라리 아무말 안하고 누워있는 오빠가 훨씬 좋았어!!”

쿵!

시란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대로 눈물을 흘리며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너! 형한테 무슨 소릴 하는거야! 형이 얼마나 힘들겠어!”

“알아! 나도 안다고! 안젤리나 언니 때문에 많이 힘든거 아는데…… 이제 우리도 좀 봐줘야 할 것 아냐…… 안젤리나 언니말고…… 우리도 있는 거잖아…… 우린 오빠의 가족이잖아!”

시란은 시현을 보며 마치 울부짖고는 그대로 저택을 나가버렸다.

“휴…….”

그녀가 저택을 뛰쳐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시현은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사실 신민배에게 섭섭한 것은 시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10년을 기다린 마음이…… 3일 만에 씁쓸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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