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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다시 눈을 뜨다.
대한민국에서 괴수를 사냥한 신성 길드는 5일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괴수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고, 신민배가 함께 떠났다는 것에 그 어떠한 인물도 알지 못했다.
임창종은 신민배가 살았다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함께 영국으로는 가지 않았다.
비밀리에 신민배를 옮긴 베르나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또한 그만을 전문적으로 간호 할 사람과 의사를 배치. 그 어떠한 이도 이 사실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신민배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이 있다면, 남백호와 더불어 시란과 시현 세 사람만이 그의 생사를 확인할 수가 있게 되었다.
“저, 정말 오빠가 살아 있는 건가요?”
시란은 너무 놀란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시현 역시도 그 충격이 못지않아 손발이 떨리고 있었다.
“혀, 형은 지금 어딨나요?”
시현의 물음에 남백호가 말했다.
“현재 신성 길드의 길드장이 데리고 있다.”
“왜요? 저희가 형을 모시고 와야죠.”
“아니, 현 상태에서는 베르나가 민배를 보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거다. 얼마가 지나고 나면 그때 너희들을 데리고 가마.”
당장이라도 신민배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은 두 사람이었으나, 남백호의 완강한 성격에 그들 역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5일이 지난 시점에서 남백호가 두 사람과 함께 처음으로 신민배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베르나 역시도 그들이 온다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감은 없었고, 남백호의 부탁을 승낙했다.
세 사람이 베르나의 저택을 찾았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대저택.
정원의 크기 만해도 족히 200미터가 넘을 듯 보였으며, 저택의 뒤뜰은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을 정도였다.
입구에서부터 차를 타고 저택까지 도착하는데만 해도 3분 정도가 소요될 만큼 넓은 땅을 지닌 베르나.
그녀가 저택 입구 앞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발 아래까지 내려오는 하얀색의 원피스를 나풀거리고 있는 그녀를 보며 세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보통 사람들 같았다면 그녀의 미모에 넋을 잃었겠지만, 세 사람의 눈에는 베르나는 전혀 신경 쓸 가치(?)조차도 없었다.
“오빠! 오빠는 어디있죠?”
시란이 급히 베르나에게 묻자, 베르나가 살짝 미소 지으며 그들을 안내했다.
“따라오세요.”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계단이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타고 복도의 가장 끝 방으로 향한 네 사람.
베르나가 손잡이를 열자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밝게 들어오는 방안은 상당히 넓었고, 불을 켜지 않았음에도 환했다. 그리고 새하얀 침대에 미동도하지 않고 누워있는 신민배의 얼굴을 확인한 시란이 급히 달려 갔다.
“오, 오빠!! 민배 오빠!”
시란이 급히 그의 곁에 가서 다급하게 신민배의 이름을 불렀으나, 신민배는 미동도하지 않고 있었다.
“우, 우리 오빠가 대체 왜 이런거죠?”
그런 시란을 바라보며 베르나가 한 마디 했다.
“한 때 7개월 동안 잠을 잤던 걸 기억하시나요?”
“네? 물론이죠…… 그럼 지금도 그때와 같은 상황인가요?”
“네. 그러게 보시면 되요. 하지만 언제 깨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랍니다…….”
백호와 시현도 조심스럽게 침대로 다가서고 있었다.
숨은 쉬고 있으나, 움직이지 않는 그를 보며 세 사람이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시란이 신민배의 얼굴을 바라본다.
길다랗게 흉터가 생겨 있었다. 마지막 봤을 때와 달라진 점은 바로 그 흉터뿐이었다.
“이 흉터는…… 치유로 해결 할 수 없었나요?”
시란이 신민배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미 저희가 발견했을 때에는 상처가 모조리 나아 흉터가 생긴 상태였습니다. 이미 흉터가 되어버린 피부에 대해서는 치유계들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어요.”
“그렇군요…… 이 모습을 보면 안젤리나 언니가 너무 속상해 하겠다…….”
안젤리나를 생각하며 시란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미 죽었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그녀를 보며 베르나가 조금씩 입술을 떨고 있었으나, 어떠한 말도 내뱉지는 않았다.
네 사람은 그렇게 한 동안 아무런 말없이 신민배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시란은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같이 신민배를 보러 베르나의 저택으로 찾아왔다. 물론 시현과 남백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라도 일찍 신민배가 눈을 뜨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신민배를 영국에 데리고 오고 난 후, 전 세계에는 S급 괴수들이 모습을 더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능력자들은 S급 괴수에게 제대로 된 저항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S급 괴수에 한해 핵 사용의 허가가 떨어졌다.
대한민국에 최초로 S급이 나타난 후, 다시금 모습을 보인 곳은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 삿포로에 S급 괴수가 싱크홀 터널을 통해 모습을 보였고, 사포로 일대가 거의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문제는 이 S급 괴수는 삿포로에 머무는 것이 아닌 아오모리 쪽으로 이동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일본은 이런 S급 괴수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 급히 핵을 사용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핵이 사용 되었지만, S급 괴수는 죽지 않았고, 약간의 상처만 받았을 뿐이었다. 이날 이후 전 세계는 S급 괴수에게는 핵이 통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핵이 아무런 무용지물이 아닌, 좀 더 강력한 핵이라면 S급 괴수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만약 그런 핵을 사용하게 되면 엄청난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해서 그 어떠한 나라도 S급 괴수에게 핵을 사용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으며, 자국에 S급 괴수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은 흘러갔다.
아름다운 한 여인.
검은 머리에 늘씬한 몸매가 드러나는 슬림한 원피스를 입고, 검은색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 마치 모델과도 같았다.
섹시함이 묻어 나오는 그녀는 다소 짜증이 나있는 듯한 어투로 말하고 있다.
“아, 진짜 짜증나지? 오빠가 들어도 아마 열 받을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래도 나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와~! 진짜 사람을 그렇게 열 받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오빠. 열받지? 그지?”
그녀는 바로 연시란이었다.
10년이 지난 상태에서 그녀는 매력적인 여성이 되어 있었다. 이제 29살이었으나 20대 초반 못지않은 동안의 얼굴과 몸매는 많은 남성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듯 보였다.
시란은 뭔가 짜증이 난 듯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손톱 깎기로 한 남성의 손톱을 정리해주고 있었다.
딱! 딱!
손톱을 정리하는 소리가 연신들린다. 하지만 그 남성은 아무런 미동도하지 않고 있다. 바로 신민배였던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같이 신민배를 찾아와 시란은 그의 상태를 매일 체크하고 있었다.
“휴…… 아무튼 요즘에는 믿을 사람이 없어. 그래서 내가 친구가 없는 건가? 사람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가 있어야지? 마음 터놓으면 그걸 꼭 흠을 잡으려고 들더라구. 보니까 한국이나 영국이나 똑같은 사람이야. 어휴…….”
귀화를 한 후 영국에서 10년을 생활한 연시란. 그런 그녀 역시도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영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허나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래서인지 매일 같이 속에 있는 불만을 신민배에게만 털어놓고 있을 뿐이다.
“자! 손톱은 끝났고, 이제 발톱!”
톡톡.
그러면서 자신의 손으로 신민배의 두 손을 친다. 마치 발을 보여 달라는 의미인 듯 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고, 약간 표정이 변한 시란은 이내 자신이 스스로 신민배의 발 아래로 이동했다.
“오빠. 그런데 요즘 시현이 오빠 잘나가는거 모르지? 하~? 꼴에 4대 천왕이래. 웃기지 않아? 지가 4대 천왕이면 나도 속해야지!! 하…… 진짜 오빠 없으니까 내 처지가 말이 아니야…….”
오랜 시간을 괴수를 잡으며 생활하는 시란.
그녀는 근접 공격계로 정신력 회복을 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보니 치유계나 원거리 공격계에게 인기가 있는 편이었으나, 아무래도 공격계는 막강한 공격력이 가장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란은 시현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지는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10년. 두 사람은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시현은 노력을 넘어 스스로를 학대하는 수준에 올랐고, 그 결과 강력한 근접 공격계로 4대 천왕이라는 명칭을 얻을 정도였다.
4대 천왕이라는 명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근접 공격계 네 명을 말하는 것이다.
한 때 신민배와 함께 세계가 선정한 위대한 능력자 12인은 이제 사라진 호칭이다. 신민배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른 능력자 역시도 괴수 사냥을 하다 죽음을 맞은 이들이 있었다. 그런 비어버린 자리에 새로이 이름을 올리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어느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위대한 능력자 12인은 사라졌다.
대신 새로이 생긴 것이 바로 4대 천왕과 더불어 많은 호칭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런 4대 천왕의 호칭 앞에는 시현의 이름이 항상 붙어 다녔다.
“오빠~! 빨리 일어나라. 그래야 내가 좀 인정을 받지. 오빠가 없으니까 하…… 진짜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해.”
발톱을 연신 정리해주며 신세한탄을 하는 시란. 그녀는 자신이 가장 인정을 받았을 때가, 신민배에게 정신력 회복을 시켜주었을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빠. 우리 이제 친구해도 되겠다. 그치? 오빠 일어나면…… 민배라고 불러도 되려나? 킥킥.”
언제나 대답을 해주지 않는 그와 함께하길 벌써 10년.
그럼에도 시란은 그와 있던 10년이 전혀 지겹지가 않았다. 어디도 가지 않고 언제나 자신을 기다려주는 것 같은 신민배를 보며 하루의 힘든 마음을 힐링 할 정도였다.
손톱과 발톱을 모두 정리해 준 시란은 조심스럽게 그의 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쓰다듬었다. 이내 눈물이 그렁거리며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빠…… 제발 일어나…… 너무 힘들어…… 흑흑.”
무엇이 그렇게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신민배를 바라보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고는 탁자 위에 있던 티슈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저택의 정원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는 시란의 모습이 햇볕에 반사되어 실루엣만 남는다.
완벽한 몸매의 그녀. 그런 그녀가 급히 등을 돌리게 만드는 상황이 일어났다.
“안젤…… 리나?”
단 두 사람 밖에 없는 방에서 느닷없이 10년전 죽은 ‘안젤리나’의 이름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란은 놀란 마음에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신민배가 실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햇볕에 반사되어 제대로 된 윤곽을 확인하지 못하여 자신과 안젤리나를 혼동한 듯 보였다.
“오, 오빠?”
“안젤리나……?”
신민배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안젤리나인지 확실치가 않았다. 그림자의 실루엣만 본다면 긴 머리에 날씬한 몸매가 안젤리나와 흡사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그녀의 목소리와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빠!!!”
시란이 크게 외치며 급히 신민배의 곁으로 달려왔고, 자신을 향해 과격한 포옹을 하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순간 멍해진 기분을 맛보는 신민배였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그녀가 누구인지 대충 알게 되었다.
“시란……이니?”
시란 못지않을 만큼 놀란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신민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