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럭셔리버프-8화 (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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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창회는 아픔을 남기고

동창회까지 남은 시간은 5시간이다.

‘후…… 머리가 많이 지저분하네. 머리만이라도 손질 좀 할까?’

그길로 미용실로 가서 머리 손질하고, 잘 입지 않는 옷을 꺼냈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맞춰서 로타리로 향했다.

동창회라 그런지 로타리 내부는 시끌벅적 했다.

신민배의 경우 남녀공학이 아닌 남자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동창회에는 거의 다 남자들만 자리하고 있었고, 간간히 여자들이  한두 명씩 보였으나, 동창회에 따라나선 그들의 여자 친구 쯤으로 여겨졌다.

저 멀리 고창식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고창식 역시도 신민배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자신 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왔냐? 얘들아! 민배 왔다!!”

고창식이 큰 소리로 외쳤다. 떠들썩하던 로타리 안의 이목이 순식간에 신민배에게로 쏠렸다.

“와! 신민배. 오랜만이다. 능력자 됐다면서?”

“설마 동창 중에 능력자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크~! 난 떨어졌는데 말이야.”

“큭큭, 너만 떨어졌냐? 나도 떨어졌다. 게놈 프로젝트고 나발이고. 나라에서 돈 처먹을려고 아주 지랄을 다한다.”

여기 있는 동창들 중 과연 게놈 프로젝트의 약물을 투여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능력자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확률이 앉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신민배를 보며 부러워하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넌 특성이 뭐야?”

“어? 어…… 저기. 난 보조계야.”

그 순간 잠시 적막이 흘렀다.

능력자라도 같은 능력자가 아니다. 이들 모두가 보조계라는 능력이 얼마나 고달픈 특성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 하하…… 뭐. 보조계면 어떠냐? 어차피 같은 능력자잖아? 안 그래? 자자, 모두 한 잔 하자고.”

어색해진 분위기를 고창식이 무마시키려는 듯 보였다. 사실 이곳에 있는 동창생들 중 신민배에게 잘 보이려기 위해서 참석한 이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

능력자가 되면 그만큼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등급이 낮다면 힘들겠지만, 꾸준한 괴수 처치를 하다보면 결국 능력자가 일반인에 비해서 여유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간이란 언제나 그렇듯 금전에 모여들기 마련.

그런데 하필이면 보조계라는 말에 동창생들의 분위기가 수그러들고 말았던 것이다.

“들었냐? 보조계란다.”

“내참…… 걸릴게 없어서 보조계나 걸리다니?”

“기대도 못하겠다야.”

몇 몇 이들은 신민배에게 들리지 않게 그를 험담하는가하면, 애초에 흑심을 품고 동창회에 참석했던 이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로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광휘다. 광휘가 왔어.”

“와! 제대로 된 능력자. 광휘가 왔네!!”

이곳에서부터 이미 차별은 시작 되었다. 같은 능력자인데 제대로 된 능력자라니? 보조계는 이미 접어두고 있는 것이 모든 인간들의 생각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마다 술을 마시고 있던 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180 정도의 키에 다부져 보이는 체격을 지니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수트만 하더라도 꽤나 값이 나가 보이는 옷이었다.

“이여~! 모두들 오랜만이다.”

“이야! 정말 반갑다. 광휘야.”

대다수의 이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 들었다.

노광휘.

5등급의 방어계로 능력자가 된지 2년 정도가 되었다. 그런 사실들을 잘 알기에 동창들은 광휘에게 저마다 얼굴을 비추려고 하고 있었다.

“너무 기죽지마라. 그래도 난 네가 자랑스러우니까.”

“자랑스럽긴 뭘…….”

고창식이 신민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디서 파스 냄새가 이렇게 나지?”

이상한 눈으로 코를 ‘킁킁’ 거리고 있는 고창식에게 신민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미안. 내가 파스를 좀 붙였거든.”

“그래? 보조계도 여간 힘든 게 아닌가보구나. 능력자가 파스 붙이고 다닌다는 소리는 또 난생 처음 들었다.”

대다수 능력자들은 치유계의 힐 한 번으로 신체를 회복하곤 한다. 신민배 역시도 치유계에게 힐을 한 번만 받아도 근육통 정도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짐꾼에게까지 정신력을 소모할 착한 치유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광휘 저놈. 나름 잘나간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엔 클랜도 들었다더라.”

“그, 그래? 쟤는 그래도 능력자가 된지 2년이나 됐잖아.”

“뭐 그렇긴하지. 그리고 방어계니까…… 중상위 정도의 클랜에 들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좀 잘나가나보더라. 주변에 여자들이 계속 꼬이나봐…… 크. 부러운 놈.”

클랜은 길드보다 하위에 속한다. 주로 마음이 맞는 인원들이 20명 이하로 뭉쳐서 괴수를 처치하는 일종의 고정 팀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클랜 위에 길드가 존재하는데, 길드는 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길드에 가입되기 위해서는 출중한 능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대기업에 입사하면 주변의 이들이 부러워하듯, 능력자가 길드에 속하게 되면 다른 능력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노광휘의 경우 중상위에 속할 정도의 클랜이지만, 클랜 역시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것이 현재 실정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인사를 한 후, 고창식과 눈이 마주친 노광휘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야~! 오랜만이다 고창식? 어? 민폐도 있었냐?”

신민배의 과거 별명이 민폐였다. 어릴 때는 항상 그렇듯, 이름으로 별명을 지었기 때문이다.

“어. 그래. 오랜만이네.”

“소문 들었다. 너도 능력자가 됐다면서? 그래. 특성이 뭐냐?”

말하기 힘든 질문이 연이어 이어졌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입을 열었다.

“어. 보조계야. 별 볼일 없지.”

“아하? 그렇구나. 뭐 그래도 능력자 생활하다보면 강해질 날이 오게 될지도?”

그의 말은 강해질 날이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 노광휘의 말에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그였다.

“그럼 재밌게 놀아라. 난 저쪽에 가서 인사나 좀 해야겠다.”

노광휘가 물러가고 술잔을 기울이는 신민배.

쪼르르륵~!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고창식이 말했다.

“너…… 많이 힘드냐?”

“어? 뭐…….”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는 고창식은 뭔가 불만인양 눈썹이 움찔 거렸다.

“항상 보면 착한 놈은 벌을 받고, 못된 놈은 칭찬 일색이지…… 학교 다니면서 솔직히 너처럼 남에게 피해 안준 녀석이 어딨었냐? 더군다나 능력자가 되었는데 하필이면 보조계고…… 여친은 능력자에게 빼앗…….”

입을 연 것에 대한 실수인지, 아니면 신민배를 보고 입을 다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창식의 말이 끝을 맺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의 표정을 바라보니, 고의적으로 말을 끊은 것이 아니라, 다른 한쪽으로 시선이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야? 왜그래?”

“어? 아…… 저기…….”

고창식은 짜증나는 듯 술잔을 기울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쟤가 여기 왜 있는거야?’

한쪽에는 현민주가 있었다.

현민주는 얼마 전까지 신민배와 연인 사이었던 여성이다. 그리고 능력자와 눈이 맞아 그를 버리고 떠났던 여인. 그런 그녀가 지금 이곳에 와 있었다.

“야! 설마 저년. 널 버리고 도망갔던 녀석이 노광휘였어?”

두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을 보니 진실을 알 것 같았다.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신민배와 현민주가 헤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친한 사람들은 몇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능력자가 노광휘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동창회의 장소에 두 살이나 어린 현민주가 왔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이야기가 된다.

왜냐하면 동창 중 능력자는 노광휘와 신민배 두 사람 뿐이었으니까.

“와…… 씨발. 엿같네. 하필이면 꼬여도 이딴 식으로 꼬여……?”

고창식이 신민배의 눈치를 살핀다. 무턱대고 위로의 말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이럴 때는 여자의 욕을 해주는 것이 차인 입장인 신민배에게는 마음을 덜 아프게 할지도 몰랐다.

지금 다정하게 있는 노광휘와 현민주를 보니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알 것 같았다.

현민주는 능력자 장비 판매소에서 일을 한다. 신민배 앞에서느 언제나 맨얼굴로 수수한 모습을 보였지만, 장비 판매소에서는 곱게 화장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 역시도  화장 하나만으로도 얼굴이 바뀔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니 저 두 사람이 우연치 않게 만났는지도 모르며, 애초에 노광휘는 여자를 잘 꼬시기로 유명한 언어의 마술사였다.

“야야, 분위기도 엿 같은데 우리 다른데 가서 한잔하자.”

“그, 그러자…….”

보조계가 된 이후 신민배는 계속해서 의기소침 되어 있었다. 뭐하나 당당하게 어깨를 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평범한 인생. 평범한 능력. 그리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그가. 이제는 평범 이하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던 그 찰나.

“민배 오빠?”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신민배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신민배에게 말했다.

“오빠 혹시 여기 동창 모임으로 온 거에요?”

모른 척 하고 싶었으나 차마 말까지 걸어오는 와중에 그럴 수가 없었던지라, 어색한 웃음을 짓고 인사했다.

“어… 그래. 오랜만이야. 나도 여기 동창이거든.”

“그렇구나…… 그럼 광휘 오빠라고 알아요?”

역시나 광휘에 대해서 물어본다.

“아니… 동창이긴 한데 이야기도 못해 본 사이라서…….”

그녀의 표정은 다행이라는 듯 약간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신민배와 노광휘가 서로 알아서 좋을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노광휘가 다가왔다.

“서로들 아는 사이야?”

노광휘는 당당하게 현민주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아마도 자신의 여자라는 것을 인식시키려는 행동 같이 보였다.

“어, 오빠. 예전에 좀 알고 지냈던 사인데. 오늘 여기서 오랜만에 만났거든.”

그녀의 말에 고창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아참. 민주야. 이 녀석도 능력자래.”

“누구? 설마 민배 오빠가?”

그녀는 상당히 놀라는 듯 보였다. 설마하니 신민배가 능력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런데 보조계래.”

“아…… 그렇구나.”

보조계라는 말 자체에 약간의 무시를 내포하고 있는 노광휘의 말투. 그리고 그것을 듣자마자 곧장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하는 현민주.

“그런데 너희들 어디 가려고?”

“어. 우리들은 그냥 조촐하게 둘이서 따로 한잔하려고.”

“아, 그래? 그럼 잘 가라. 종종 연락하고 지내자.”

“그래. 그럼 재밌게 놀아라.”

신민배를 대신해 고창식이 빠르게 그의 말을 받아주었고, 서로들 마음에도 없는 인사만을 하고 그렇게 모임 장소를 빠져나와버렸다.

“일이 정말 엿같이 꼬이는구나…….”

“후후…….”

힘없이 웃기만 하는 신민배를 바라보며 고창식이 어깨를 다독여주었지만, 위로가 전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야. 억울해서라도 성공해라.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널 한 대 날릴지도 몰라.”

보고 있는 고창식이 더 열 받는 상황인데, 당사자인 신민배는 오죽하겠는가?

“그래……. 열심히 해야지……!”

두 사람은 그렇게 그날 미친 듯이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언제 헤어졌는지도 모르는 만남을 뒤로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 작품 후기 ============================

잠시 정리하다가 한편 더 올려드립니다.

역시 아직까지는.... 코멘트도~ 손님도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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