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르고 웨딩-51화 (51/52)

51화– 느리고 아름답게(完) / 외전 12017.12.25.

시원하게 높은 층고의 실내는 겉에서 보는 외관만큼 세련된 건 당연했다.

소현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지며 놀란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호숫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넓은 테라스부터 거실에 이르는 공간까지 은은한 빛깔의 꽃으로 가득히 깔려 있었다.

파티나 결혼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꽃집도 아닌데.

흰색과 연한 분홍빛이 아름답게 섞여, 쏟아지는 햇살과 한데 어우러지고 있었다.

마치 꽃밭처럼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너무 예뻐…….”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소현은 온몸이 굳어져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고 말았다.

거실 가장 넓은 벽에 걸린 그림을.

가로 3.5미터에 달하는 그림.

분명 정한이 뉴욕에서 마지막으로 그리고 있었던 미완성의 그 작품.

은하수가 물결을 이루고 별들이 꽃처럼 피어나는 그림이었다.

그때보다 분위기가 훨씬 화사해지고 산뜻하며 밝아진 느낌으로, 지금 이 집과 호수, 햇살과 여린 꽃들과 꼭 맞춘 것처럼 잘 어울렸다.

소현은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잠식당할 것만 같은 압도적인 느낌보다는, 포근히 안기는 듯한 설렘이 강했다.

두근거리고 심장이 뛰었다.

소현은 이끌리듯 그림 앞을 향해 꽃밭 사이로 천천히 다가갔다.

한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큰 그림이다.

그리고 그 앞에 선 그녀의 모습 자체가 정한에게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토록 꿈꾸고, 바라고, 소망했던 그림.

소현이 이내 벅찬 얼굴로 돌아보았다.

“정한 씨 이거 다, 설마…….”

“네.”

“설마 나한테, ……그래서 도망만 가지 말라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뉴욕에 있었던 사람이 언제 들어와 이걸 다 준비했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저 큰 그림을 여기까지 이송해 오는 그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며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아무리 앤드류를 비롯해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도 결국 정한이 일일이 신경 썼어야 하는 일들이다.

곳곳에 그의 마음이 녹아 있는 듯해 소현의 코끝이 찡해졌다.

정한이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 열었다. 단정하고 얌전한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너무 빠르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고민했어요.”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눈물이 솟구치고, 가슴이 일렁였다.

“결혼해요, 우리. ……같이 살아요.”

나를 살게 하고, 나를 버티게 한 사람.

앞으로 나를 살아가게 하고, 나를 살아내게 할 사람.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과 아픔과 행복 모두 함께 나눌 단 한 사람.

“응, 그럴 거야, 그럴 거예요…….”

소현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이 다가와 안아주는데도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할 거야, 결혼할 거야.

청혼은 내가 먼저 하려고 했었는데, 하고 소현은 그가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방언처럼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울먹였다.

정한은 거실을 가득 메운 꽃들 사이에 서서 호수를 바라보며 소현을 안고 그녀를 토닥였다.

마음이 짠했다.

그녀는 알까.

소현이 보고 싶어 하루라도 서울에 빨리 돌아오려고 밤낮없이 붓을 쥐었던 날들을.

그래서 자신으로서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업속도로 몰아쳐 그렸다는 것을.

이 작품을 한국으로 무사히 가져오기 위해 얼마나 까칠하고 예민하게 굴어야 했었는지를.

뉴욕으로 떠나기 전 알아보고 계약했던 이 집을 미리 세팅하고, 프러포즈 준비를 위해 현지에서도 얼마나 신경을 썼었는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모르는 게 나은 것도 있었다. 자신 역시 때로 조급하고 서툰 남자지만 소현에게는 한없이 완벽하고 근사해보이고 싶었다.

가만가만.

그녀를 토닥이는 손길에 사랑이 가득 배었다.

이보다 더 기쁜 날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청혼에 응한 여자가 품속에서 울고 있었다. 정한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 ◆ ◇

여름이 막 흘러가고 가을이 찾아든 날.

그날의 ‘탐미하는 밤’ 행사는, 서정한과 은소현의 결혼식이었다.

고즈넉한 한옥 탐미재는 아침부터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기 시작했다.

소현이 그렸던 모습 그대로, 한옥책방과 결혼식장으로서의 조합은 묘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냈다.

“언니, 안 떨려요?”

오히려 애주가 떨리는 얼굴로 물었다. 소현은 의자 장식을 살피다가 돌아보았다.

“응? 별로.”

“아니, 신부가 뭐 이래. 어쩜 이렇게 여유롭대요?”

“너무 익숙한 곳이라 그런가 봐.”

장소도 낯익고, 워낙 소규모 예식이라 사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결혼식 진행은 애주가 총괄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신부인 소현이 여유가 넘쳐 직접 살피기까지 하고 있던 것이다.

“언니는 그냥 좀 앉아 있어요. 아무리 메이크업이랑 드레스랑 다 간소하게 해도 오늘 하루는 플래너가 아니라 신부라구요.”

“헤헤, 몰라. 결혼식장에서 가만히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

할 일 안 하는 것 같고 땡땡이치는 그런 느낌.

애주는 왠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아무튼 언니 결혼하면, 나 울 것 같았는데 그럴 틈이 없네.”

아무리 작은 결혼식이라도 세세하게 챙길 건 매한가지라 애주는 쉴 새 없이 준비를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미리 자리를 배정하면서 명단을 보다가 영어로 된 이름들을 보았다.

정한이 미국에서 살았으니 외국인이 몇 명 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진짜 온다니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다.

“괜찮아. 그 중에 한국어 네이티브 스피커 있어.”

“네?”

명단을 보고 걱정하는 애주의 표정에 소현이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나중에 보면 알아.”

소현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을 그냥 가볍게 듣고 넘겼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결혼식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외국인 한 무리가 도착했다.

다른 하객들이 오기 전이라 신랑신부와도 여유 있게 인사를 나누었다.

플로리스트와 상의를 하다가 꽃을 옮겨 오는 걸 도와주던 애주는 순간 이상한 기분에 걸음을 멈추었다.

“결국 너희가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날이 오다니! 진짜 내 은혜 잊으면 안 돼.”

뭐 잘못 들은 거 같은데.

꽃뭉치를 품에 가득 안은 채 애주는 옆을 돌아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호숫가 그 집에 쳐들어가는 몰지각한 짓까지는 안 할 테니까, 너네 결혼했다고 여기 탐미재 비번 막 바꾸고 그러면 안 된다.”

“아니, 앤디, 몰지각은 어떻게 아냐구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비번 바꿔야죠. 무슨 소리예요.”

“너 변했어. 이렇게 각박할 수가 있어? 옛날엔 안 이랬잖아.”

애주는 입을 딱 벌린 채 소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금발의 외국 남자를 쳐다보았다.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저 사람이 어떻게 지금 여기 있지? 그것도 소현 언니랑 저렇게 얘기를 나누면서?

그것도 저 정도 유창한 수준의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이게 말이 돼?

“어, 애주야. 이리 와.”

소현이 애주를 보고 손짓했다.

“여기 정한 씨랑 가장 친한 친구. 나이는 더 많은데 친구야. 미국인이고 앤드류 베이커. 한국말 잘해.”

애주는 얼떨떨한 얼굴로 꽃을 안은 채 다가갔다.

“앤디, 이쪽은 예전에 나랑 찍은 사진으로 본 적 있었죠? 나랑 같이 일하는 동생, 차애주.”

사진을 본 적이 있다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소현의 말에 애주가 깜짝 놀랐고, 앤드류는 이제 알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맞네. 얼굴 본 적 있었던 거.”

두 사람의 반응에 소현이 더 당황했다.

“왜? 초면 아니야?”

“구면인 거 같은데.”

“어? 두 사람 어디서 봤는데요?”

“뉴욕이지, 아마.”

앤드류가 애주를 보며 대답했다. 그동안 ‘니혼진데스.’라고 해놓고는 ‘헐, 대박.’이라며 사라진 여자가 궁금해 죽을 뻔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뉴욕에서 서울로. 게다가 소현의 가장 친한 동생으로.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무료했던 일상에 초콜릿처럼 달콤한 순간이 찾아들고 있었다.

“뉴욕에서 어떻…….”

더 물어보려던 소현이 다른 사람의 등장으로 바빠지자, 이때다 싶어 애주가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걸 놓칠 앤드류가 아니었다.

“그때 왜 일본인인 척한 거야? 국적도 속일 만큼 내가 못 미더웠어?”

자신을 따라오며 묻는 말에 애주가 속으로 깜짝 깜짝 놀랐다. 아니, 무슨 한국말을 이렇게 잘해. 이쯤 되면 무서울 정도다.

“아니면 내 얼굴이 문제였나. 아닌데. 나 어딜 가도 신뢰감을 주는 얼굴이라는 평판을 듣는 편인데.”

이상하다는 듯 앤드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언니 결혼식 준비를 마저 해야 돼서 이만.”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녀에게 앤드류가 말했다.

“내일 점심 같이 먹자.”

“아…….”

“저녁도 같이 먹자. 모레 점심도.”

앤드류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이런 인연 흔하지 않다고 생각해. 나 이제 한국에도 자주 들어오거든. 그러니까 딱 모레까지 더 만나보고 판단해봐. 그래도 싫으면 조르지 않을게.”

애주는 원래 그가 싫지도 않았고, 안 그래도 여행 이후 계속 마음에 남아 있던 사람이라 그 못지않게 지금의 인연이 신기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알았어요. 그런데 왜 계속 반말이세요?”

“억울하면 너도 반말해.”

“그래, 그러자.”

냉큼 말을 놓는 애주를 보며 앤드류가 웃었다. 그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느껴져 애주의 심장이 쿵쿵 울렸다.

초저녁 가을하늘.

탐미재 작은 뜰, 꽃길 사이로 사랑스러운 부부가 새로이 탄생했다.

신랑은 그 어느 때보다 온후하고도 훤칠해 보였다. 옆에는 은은하고 귀한 빛이 흐르는 신부가 있었다.

언젠가 신랑의 어머니가 그려주었던 어여쁜 꽃과 똑같이 만든 부케를 손에 들고 신부는 환히 웃었다. 순수로 맺어진 귀한 선물이었다.

그녀를 보는 신랑의 눈빛에 내내 다정함이 넘쳐흐르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자꾸 잘해주면, 버릇 나빠진다는데.」

「잘해줘서 나빠지는 버릇이면, 백번 나빠져도 상관없어요. 버릇 좀 나빠지면 어때요. 내 사람인데. 나랑 같이 사는데 내가 상관없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는 늘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이유가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해서 언제나 안심이 되었다.

걱정을 걱정하지 않게 했다.

세상을 겁내지 않고, 속도보다 방향을 고민하게 하였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하고, 끊임없이 빈칸을 채우게 했다.

가짜로 둘러싼 세상을 깨고 진짜를 바라보게 했다.

오직 사랑에 애달고 사랑만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그로 인해 성숙해지고, 그는 그녀로 인해 온전해졌다.

작고 더디고 특별한 결혼식, 그들만의 완벽한 나날이었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

삶도, 사랑도, 인생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끝나지 않을 행복 속에서.

느리고 아름답게.

- Fin.

외전 1. 앤드류 베이커, 그리고 차애주

애주 혼자 떠났던 지난 뉴욕 여행.

“이 화가 그림 때문에 한때 우리 언니가 그렇게 고생을 했었단 말이지.”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라르고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명작을 감상하는 태도로는 불손하기 짝이 없었지만 곱게 볼 수 없는 건 순전히 사심 때문이었다.

생전 얼굴도 보지 못한 화가보다는 자매처럼 가까이 지내는 소현이 더욱 소중한 게 사실이니까.

귀하다는 그림 때문에 소현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게 그렇게 대단한가 반감이 먼저 싹텄으니.

그래, 얼마나 잘났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찾아온 곳이었다.

혼자 뉴욕 여행을 와서 찜해두었던 관광지를 다 돌고 결국 라르고 소장전을 하고 있다는 갤러리까지 오게 되었다.

“뭐…… 좋긴 좋네.”

잘 알지는 못하는 그림이었지만, 고귀한 빛이 흘러넘치는 라르고의 작품 앞에서 애주도 점차 여유로워졌다.

그림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똑같이 관대하였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라면, 누구든 그 안에서 편안한 위로와 휴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이 무슨 죄가 있으랴.

결국 죄가 있다면, 물질로써 가치를 매기려는 일부 사람들에게나 있겠지.

좋은 건 좋은 대로,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두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을.

무엇이든 억지로 되는 건 없다. 삶도, 사랑도, 그 무엇이라도.

그때 한 외국인 남자가 옆에 와서 서더니 자신을 노골적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애주는 돌아보았다. 자신을 볼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뒤쪽으로는 아무도 없는데.

어리둥절한 얼굴로 손가락으로 제 가슴을 가리켰다. 나요?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백인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 어디서 본 적 있죠?』

애주는 No, 대답하며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 우리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이건 또 무슨 국제적 작업스킬인가.

한두 번 해봤던 솜씨가 아닌 듯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시대나 국경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써먹는 방법이구나. 좀 신선한 거 없나.

애주는 한 발짝 물러섰다.

『한국인이에요?』

이어서 남자는 계속 영어로 질문을 던졌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아니냐고 먼저 묻지 않는 점이 기분 좋아서, 한국인이 맞다고 바로 대답해주려다가 애주는 괜히 말리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혼자 온 여행, 남자와 엮여 위험한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애주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니혼진데스.”

금발의 남자는 아, 하고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앤드류!』

저쪽에서 남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 갤러리의 관계자인 모양이었다. 일도 안 하고 노닥거리다가 딱 걸린 건가.

곧 가겠다고 손을 들어 보이는 그를 등지고 애주는 빠르게 걸어 나왔다.

그림 구경은 다 했으니 소호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갤러리에서 막 나왔을 때였다.

그 앞을 정신없이 달려오던 전동보드에 애주가 부딪힐 뻔하며 쓰러지던 순간.

“꺄아아악!”

애주의 팔을 당겨 몸을 돌리면서, 품에 단단히 안아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덕분에 전동보드를 탄 아이를 피할 수 있었고, 아이는 쌩 지나쳐 달려가며 큰 소리로 “Sorry!” 하고 외칠 뿐이었다.

순식간이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애주는 꼭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을 당겨 구해준 이를 올려다보았다.

“헐……. 대박.”

방금 갤러리 안에서 본 그 남자였다. 금발의 푸른 눈.

그가 애주를 안고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놀랄 만큼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맞네? 한국인.”

내려앉았던 애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한국어에 놀란 애주는 얼른 땡큐라는 말을 남긴 채,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얼굴만 기억나는 그 남자를 몇 달씩이나 계속 떠올리며 살게 될 줄은.

그리고 몇 달 후 절친한 소현 언니의 결혼식에서, 그것도 서울에서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이후 팔자에도 없던 장거리 국제연애를 하게 될 줄은!

세상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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