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르고 웨딩-48화 (48/52)

48화– 청혼 준비2017.12.15.

“언니, 그럼 생각해둔 방법은 있어요?”

청혼 얘기였다.

애주가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과자를 먹다가 질문을 던졌다.

소현의 집에서 사무실 이전 문제에 대해 회의한 후 가볍게 시작된 대화였다.

“음……, 구체적으로는 아직.”

막연했다.

많은 커플들의 결혼 준비를 곁에서 지켜봤지만 청혼의 단계는 그리 익숙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남자 쪽에서는 아직 결혼 얘기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인데 여자가 먼저 청혼이라.

모든 게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정한이 좋아서, 정한도 좋아할 것 같아서. 함께 있고 싶어서.

그 이유뿐이었다.

‘난 감정 두고 계산 같은 거 못 해요.’

처음 하와이에서 보았을 때 그의 눈빛에서 읽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 그대로 정한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내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소현은 그걸 믿었다. 이제는 자신이 보여줄 차례였다.

“어떻게 하는 게 좋지…….”

애주는 함께 고민해야 할 숙명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일을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중이라는 얘기였다.

그냥 반지 주면서 결혼하자고 하는 건 소현도, 옆에 있는 애주도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나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면 사서 고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여자들이었으니, 청혼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떠들썩하고 요란한 건 취향이 아닌데.

그때 문득 소현의 시선이 어딘가에서 멈추었다.

벽에 걸린 작은 그림이었다.

소현은 다가가 표구해서 걸어둔 그림을 떼어 가지고 돌아왔다.

“서정한 씨 어머님이 그려주셨다는 그림이죠?”

“응. 그때 병원에서.”

“이거 정말 부케 같아요. 나중에 이대로 만들어서 결혼식 때 들어도 예쁠 것 같아요.”

“그러게.”

소파에 앉은 소현은 오하라로즈와 작약이 가득 피어난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정한의 어머니 손길이 꽃잎 하나하나에 느껴졌다.

곱고 아름다운 미소가 눈에 보였다.

소중함을 소중함으로 전하고 싶어졌다.

소현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다.

“나, 생각났어.”

“청혼이요?”

“응. 해수 씨한테 전화해야겠다.”

맑게 갠 하늘처럼 소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고민이 해결되었다.

◇ ◆ ◇

또 한 번의 ‘탐미하는 밤’ 후였다.

소현이 탐미재에 도착했을 때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정한은 책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케이크 배우는 건 어땠어요?”

“너무 어렵던데요.”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버렸다. 그냥 재미있다고만 하려고 했었는데.

소현은 대답을 해놓고도 아차 싶었다.

사실 사무실을 어느 지역으로 옮겨야 할까 고민이 많은 요즘, 기분전환을 위해 플라워 케이크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렵고 힘들다면 굳이 계속 배울 필요가 있을까.

“그럼 다른…….”

“아뇨. 재밌어요. 너무.”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울 뿐, 재미는 있었다.

소질은 없는 것 같았지만.

역시 금손이란 건 따로 있는 듯했다.

어떻게 같은 짤주머니에 같은 모양 깍지를 끼고 같은 색소에 같은 크림을 넣고도 전혀 다른 모양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신해수 대표의 손에서 피어나는 각양각색의 꽃들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넋을 잃고 보고 또 봐도 신기했다.

꽃잎들을 층층이 쌓아올려 입체적인 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도 놀라웠다.

손대면 금세 뭉개질 크림으로도 어떻게 저런 형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지.

소현은 백지 위에 향기를 입히듯 정한의 어머니가 그려낸 그 꽃들을, 다시 자신의 손으로 케이크 위에 만들어 올리고 싶었다.

“다음에 나도 같이 갈까요?”

“네?”

흩어진 책들을 함께 정리하던 소현이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요.”

“아니. 그게 아니고.”

이건 예상하지 못한 경우다.

“나도 소현 씨랑 뭐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럼 케이크 말고 서핑! 서핑 가르쳐줄래요?”

“서핑은 추워요. 내년 여름에 해요.”

정한이 싱긋 웃으며 소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시 책을 정리하는 정한의 뒷모습을 보니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아 소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기초를 배우는 중이긴 하지만 어머니의 꽃 그림을 놓고 케이크를 만들 예정인데, 그것도 청혼을 위한 케이크를.

그런데 당사자가 와서 옆에 있겠다니 말도 안 될 일이다.

서프라이즈도 아무나 할 게 못 되는구나 생각했다.

괜히 찔리는 마음에 소현은 말수가 많아졌다.

“그런데 신해수 대표가 어릴 때 결혼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미 학부모라고.”

“네, 그랬죠.”

“그 남편이 띠동갑이거든요. 아까 수업 늦게 끝난다고 데리러 왔었는데요, 아, 원래 나 가르쳐주는 개인강좌가 일정에 없던 건데 해수 씨가 따로 시간 내준 거라서요.”

정리를 마무리한 정한이 와인을 가져왔다.

그가 자연스럽게 잔을 채우는 사이 소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거의 끝나갈 무렵에 남편이 와서 기다리면서 앉아 있는데 어후, 분위기가……, 카리스마가……. 그냥 뭐 가만히만 있어도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 잡아먹을 것 같은 그런 거 있잖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긴장돼서 괜히 손이 다 떨리더라구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있더라구요.”

짠, 잔을 부딪치고 매끄럽게 넘어가는 와인을 마시고.

달빛을 받으며 서로의 일과를 나누고.

소소한 일상이 하염없이 좋았다.

“그런데 신기한 게, 소미 신부님한테 전에 듣기로는 해수 씨 남편이 어마어마한 사랑꾼이래요. 아주 해수 씨한테 꼼짝을 못 한다고 하더라구요.”

“무섭다면서요.”

“그러니까요. 신기하죠? 안 해줄 것 같으면서도 가만 보면 다 해주고, 해수 씨 힘든 건 하나도 안 시키려고 하고, 애들도 엄청 잘 보고. 아, 그리고 엄청 무뚝뚝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애정표현도 너무 잘한대요. 그렇게 맨날 차갑고 싸늘할 것 같은 사람이 세상에서 딱 나한테만 잘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요. 진짜 해수 씨 시집 잘 갔…….”

“그런 남자가 좋아요?”

순간 소현은 말을 잃었다.

정한의 표정이 생전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간 서운한 듯, 그러면서도 애써 차가운 듯.

그렇게 좋다면 기꺼이 나도 그런 남자가 되어주겠다는 듯한 오기가 조금 배인.

소현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작게 기침했다.

귀여웠다. 그런 정한이 너무도 귀여웠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런 남자 마다할 여자 아마 없을걸요. 남들한테는 다 쌀쌀맞아도 자기 여자한테는 온 세상을 다 줄 것처럼 구는 남자.”

“……그럼 그 남자는 별로 웃지 않겠네요.”

“안 웃죠. 왜 웃어요. 웃는 거 못 봤어요. 아마 해수 씨 앞이나 아기들 앞에서만 웃겠죠?”

정한이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제 웃지도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는 건가. 손님들 앞에서도 안 웃고?

뜻밖의 질투였다.

정한을 자극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었는데 의외의 곳에서 반응하고 있었다.

“혹시 소현 씨 이상형이 그런 남자였어요?”

“그런 남자는, 차가운 남자?”

말없이 그가 끄덕였다.

류재언을 생각하는 건가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었는데.

소현이 먼저 류재언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상형은 아니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호기심이 일고 꿈처럼 여기며 그렸던 것뿐, 그러다 연이 닿아 만난 것뿐이었다. 그게 전부다.

그러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내 이상형은, 서정한 씨예요.”

정한의 눈 속에 달빛이 곱게 비쳤다.

“웃는 얼굴이 예쁜 서정한 씨.”

3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니까 하던 대로 해도 돼요.”

소현은 그의 미소에 이미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사람이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 ◆ ◇

“다음 시간에 작약 짜는 것만 다시 한 번 연습하면 이제 케이크에 얹을 거 완성할 수 있겠어요.”

신해수 대표의 밝은 목소리에 소현도 기분이 좋아졌다.

기초도 아예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몇 번의 개인강습 끝에 이제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추어졌다.

그림 속 꽃들을 케이크 위에 재현할 수 있도록 케이크 샵 신해수 대표가 디자인과 기술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진짜 해수 씨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바쁜데 이렇게 늦게까지 미안해요.”

“그래봐야 일주일에 한 번인데요, 뭘.”

케이크 샵에 강습과 주문뿐 아니라 큰 계약도 많아져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초창기 인연이라고 소현을 특별히 챙기는 해수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마진혜로 인해, 부모의 탈을 쓰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로 인해, 그리고 익명성에 기대 칼을 휘두르는 이들로 인해, 상처에 또 상처를 입은 나날이었다.

그건 모두 사람으로 인한 아픔이었다.

재난이나 재해가 아니라, 사람들이 주는 상처였다.

누가 자신에게 상처를 줄지 몰라 자꾸 웅크리게 될 것만 같았다.

점점 더 작아지고 세상 속에서 등지고 도망치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곧 사람이라.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또, 사람에게 치유받기 마련이었다.

곁에는 정한이 있었고, 애주가 있었고, 해수와 소미처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 또 멀리 말을 하지 않아도 이를 알고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 또 멀리 이를 알고 안아주며 품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마움을 알고, 사랑을 알고, 웃음을 알기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상처는 계속 아물어갈 수 있었다.

“언니가 이렇게 케이크 배워서 어머님 꽃 그림으로 만드는 거 알게 되면 엄청 감동할 거예요. 정말로.”

은 대표님, 하고 꼬박꼬박 부르던 그녀도 이제 개인강습을 하면서 많이 가까워져 소현을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럴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여기 같이 오겠다는 얘기 안 해요?”

“안 해요. 다행이죠. 또 온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요즘에는 조금 바쁜 일도 있고 해서.”

정한은 서울 외곽에 작업실로 쓸 집을 알아본다고 했다. 이제 한국에서도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으니 안정적으로 작업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요즘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언니 얘기 들어보면 서정한 씨는 연하 같지가 않아요.”

“맞아요. 나도 가끔 오빠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세상 다 산 할아버지 같을 때도 많고.”

“아, 정말요?”

해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소현은 언니는 지금 궁서체다,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그래서 내 연상의 매력을 어디서 보여줘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은 거예요. 정한 씨가 되게 스윗하고 부드러운 거 같아도 알고 보면 본인이 전부 다 리드하고 있거든요. 자기가 다 날 챙기고 있고.”

“어, 그런 거 같네요, 정말. ‘누나, 이거 해줘.’ 하는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아요.”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덧붙였다.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아요? 너무 칭얼대거나 치대는 것보다는. 저는 한참 연상이랑 살아서 그런지 사실 연하엔 매력을 못 느끼겠거든요.”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한 씨가 속이 깊고 어른스러워서 좋다가도, 가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한테 그 얼굴 그대로 어리광도 좀 부려줬으면 좋겠고 그래요. 근데 절대 틈을 안 주면서 너무 현자처럼 굴어서 가끔은 좀 서운하고.”

“아, 그런 건가 보다.”

“어떤 거?”

“모성애.”

깨달음이 온 듯 두 사람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눈빛 같은 거 있잖아요. 그게 언니를 막 움직이나 봐요.”

“보듬어주고 싶고 그런 거?”

“네. 눈빛으로 실컷 모성애를 자극해놓고, 그러면서 틈을 너무 안 주니까 언니가 살짝 서운해지는 거죠.”

“그러네.”

품어주고 싶어 팔을 벌렸는데 굳이 다가와 안기지 않는 예쁜 아기를 보는 기분이랄까.

연상으로서 철든 연하를 만나 느끼는 고충을 이제야 새삼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요. 다 좋아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맞아요.”

해수의 말에 소현은 맞장구치며 웃었다.

정한에게 늘 위로만 받아 미안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 뿐. 결국 보듬고 품어주고 싶은 마음도 주고받는 사랑의 일부였다.

소현은 해수의 케이크 샵에서 나와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밤을 가르고 내리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차를 마셨다.

정한에게 언제쯤 전화를 할까 시간을 보았다.

오늘 탐미재는 닫고 오전에 집을 보러 갔다가 어머니 병원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그때 타이밍 좋게 전화벨이 울렸다.

“어, 안 그래도 정한 씨 생각하고 있었는데.”

- 거의 도착했어요.

“네?”

- 소현 씨 집에.

전화를 받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소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목소리 듣고 싶다는 생각만 해도 이렇게 마법처럼 눈앞에 나타나주는 사람이라니.

“네, 기다릴게요!”

전화를 끊고 소현은 얼른 창가로 갔다.

빗줄기가 굵어져 창문을 쉴 새 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소현은 창문을 열지는 못하고 딱 붙어 서서 골목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는 데다가 밤이라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정한이 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서 있었다.

맞은편 놀이터 옆에 정한의 차가 멈추어 섰다.

소현이 좋아서 빙그레 웃었다. 보고 또 봤는데도, 곧 또 볼 건데도 이렇게 좋을까 싶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정한이 내렸다.

우산도 없이.

천천히 내린 그는 다시 천천히 문을 닫고, 한 손을 차체에 올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다 맞고서.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후두둑, 후두둑.

창문을 때리는 비가 가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소현은 창문을 확 열어젖혔다.

촤아아아악.

단숨에 빗줄기가 안으로 쏟아져 들이쳤다.

푸슬푸슬하게 말려둔 머리카락도 금세 젖어버렸다. 하지만 눈에는 더 선명히 보였다.

울듯이 서 있는 정한의 모습이.

소현은 입술을 꼭 깨물고서 그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서 있는 그의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정한이 드디어 움직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집 건물 쪽으로 힘든 발걸음을 옮겼다.

보는 것조차 괴로운 그 걸음 속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지 차마 짐작도 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홀로 운전해서 오는 길은 또 어땠는지 감히 알 수도 없었다.

소현은 창가에서 비를 쫄딱 맞아 젖은 몸으로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정한을 기다렸다.

저 아래서부터 무거운 발소리가 울려 퍼지듯 올라왔다.

가까워질 때마다 가슴이 무너졌다.

어떤 마음으로 오고 있는지.

그래도 내게 오는 길 당신은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고 있는지.

부디 그러기를. 제발 그러기를.

소현은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마침내 마지막 층을 도는 정한의 얼굴이 보였다.

소현은 현관문을 놓아두고 계단 끝으로 갔다. 정한이 계단 아래에서 올라왔다.

마지막 계단 직전까지 차곡차곡 올라온 정한이 고개를 들어 소현을 바라보았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잔뜩 젖은 눈빛으로.

소현은 이유도 모른 채 쏟아지는 슬픔을 누르며 팔을 벌렸다.

무너지듯, 그가 안겼다.

“어머니는 나를…….”

“…….”

“아빠라고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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