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마치 확인사살처럼2017.12.08.
“그쪽 사람들은 자기 무덤 파는 게 취미인가 봐요.”
애주는 혀를 끌끌 찼다.
마진혜 모친은 결국 안 오니만 못한 결과를 안고 돌아가야 했다는 소리를 들은 후였다.
「따님께 죗값 제대로 다 치르라고 하세요. 억지로 깎으려고 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으니까.」
정한은 냉정하게 말했었다.
「다시는 저한테 전화하거나 찾아오지 마세요.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 생각 전혀 없어요.」
마지막으로 소현도 분명히 덧붙였고, 돌아서는 두 사람 뒤로 변호사의 투덜거리는 음성이 들렸었다.
「그러니까 이러시면 절대 안 된다고 제가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어휴…….」
소현에게 납작 엎드린 태도로 비굴하게 굴면서까지 겨우 자리를 만들었던 변호사는 기어이 성질을 못 참고 패악을 부리던 마진혜 모친을 탓했다.
그 모습을 보니 변호사는 아무래도 머지않아 사임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딴 사람 돈 받고 변호사질 해먹기 참 더럽네.’라는 눈빛은 그들의 미래를 말해주었다.
돼먹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 자신들이 지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건 스스로 판 무덤, 스스로 걸어 들어간 늪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아귀처럼 손을 뻗어 다른 이를 잡아끌고 들어가려 해도 소용없었다.
소현은 결코 그곳에 발을 담글 생각이 없었다.
카페 여주인이 탐미재로 전화를 걸어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말해주었고, 그 전화를 받은 정한이 뛰쳐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현을 데리고 왔다.
탐미재 문 앞에서 서성이며 걱정 속에 기다리던 애주는 함께 나타난 두 사람을 보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정한의 품을 의지하여 돌아온 소현을 보자 안도감이 느껴졌다.
소현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라고 알게 모르게 미심쩍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사라졌다. 그만큼 정한이 무척 든든해 보였다.
‘서은결’의 회장이자 유일한 회원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었다.
물론 정한이 ‘남편 될 사람’, ‘가족’과 같은 말을 먼저 내뱉었을 만큼, 누구의 도움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애주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카페에서 마진혜의 모친과 변호사가 어떤 식으로 땡깡을 부리며 난동을 피웠는지 소현에게 쭉 듣게 된 애주는 무척 분개하는 중이었다.
“어쩜 사람들이 이기적이어도 그렇게까지 이기적일까.”
한심해 혀를 차다가도 다시 화가 치솟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엄마에 그 딸이네요.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야, 정말. 아우, 생각하면 할수록 끔찍해요!”
더 말을 해 무엇 할까.
이미 바닥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맞닥뜨릴수록 더 깊은 바닥만 보게 될 뿐이었다.
“소현 씨, 이제 좀 괜찮아요?”
분하고 속상하고 놀랐을 소현이 아직 걱정되는지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짚으며 정한이 물었다.
“물 마실래요? 좀 가져다줄까요?”
소현의 시선은 소반을 향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 정한이 준비해 온 생강차는 이미 식어 있었다.
“나 이거, 따뜻하게 마시고 싶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다시 타 올게요.”
서둘러 돌아서려던 정한이 멈추어 서더니 짐짓 엄한 투로 말했다.
“또 소현 씨 마음대로 어디 나가지 말구요. 나한테 꼭 얘기해요. 아니, 어디 갈 거면 나랑 같이 가요.”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듯 하는 말에 소현은 쉽게 답을 못 했다.
갓난아기도 아니고 어떻게 꼭 붙어 다니겠다는 건지.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겠지만.
“정한 씨 귀찮게 하긴 싫…….”
“난 귀찮은 거 좋아해요.”
정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디 가면 간다고 얘기하고 나도 꼭 데려가고. 좀 귀찮게 해줘요. 내버려두지 말고. 소현 씨는 독립적인 여자인지 몰라도 나는 아니니까. 나 되게 의존적인 남자거든요.”
그래서 소현 씨 없으면 나는 이제, 못 살 것 같아요.
깊고 애틋한 눈빛에 절절함이 스몄다.
안심시켜주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이라는 사실이 이토록 커다란 위안인지 예전엔 미처 모르고 살았다.
소현의 가슴은 채워지고 또 채워져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아이고오, 로맨스 드라마 고만 찍으시고, 생강차 어여 타다 주세요.”
분위기를 깨며 두 사람 사이에 손을 휘휘 젓는 사람은 옆에 있던 애주였다.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듯.
마치 뉴욕에서의 앤드류를 보는 것 같아 소현과 정한은 웃음이 났다.
정한은 생강차를 다시 준비하러 안채로 향했고, 애주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소현에게 말했다.
“진짜 대박이에요. 아마 언니는 상상도 못 할걸요.”
“뭐가?”
“아까요. 서정한 씨, 전화 받고 뛰쳐나갈 때, 우와……. 세상에, 그런 모습이 다 있나 싶더라고요. 지금은 또 저렇게 나긋나긋하게 봄바람처럼 구는 걸 보니까 아까 내가 본 건 헛것인가 할 정도예요. 아까 어땠냐면요, 눈에 막 불꽃이 튀고…….”
애주는 상상도 못 할 거라고 했지만, 소현은 왠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한이 뛰쳐나갈 때라…….
자신이 곤경에 처했다는 전화를 받고 탐미재에서 뛰쳐나갔을 때라면.
그는 아마 평소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강렬한 눈빛도, 차가운 태도도, 빠른 움직임도.
평소의 정한과는 완벽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소현은 그런 그가 낯설지 않았다. 정한의 내면에 숨겨진 열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고 있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금방 폭발할 듯한 열정을, 그는 나른하고 부드러운 온기 안에 깊숙이 품고 있었다.
「은소현 씨 가족입니다.」
「남편 될 사람.」
그가 다른 이 앞에서 단언했다.
지금도 소현의 귓가를 내내 떠나지 못하는 말들이었다.
마진혜의 모친 앞에서 자신을 한쪽 품에 끌어안고 나직하게 던지던 말.
「그러니 제 사람한테 함부로 하지 마세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은 말.
「화나면 정말 무섭거든요, 제가. ……눈에 보이는 게 없을 만큼.」
솟구치는 열기를 주체하지 못해 으르렁거리듯 낮게 경고하던 말.
그의 품 안에서 완벽히 보호받았다.
더없는 아늑함을 느꼈다.
가족도 없고 가정교육도 받지 못했다며 막말을 해대는 마진혜의 모친을 향해 정한은 자신이 소현의 ‘남편이 될 사람’이라 칭하며 그 순간 가족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누가 보면 이미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을 나눈 사이로 보이겠지만 실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결혼이나 부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해본 적 없었다.
그럴 틈이나 있었던가.
마음을 확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3년 만에 재회한 후, 무더웠던 여름날이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씨로 변했을 뿐이었다.
겨우 계절 한 번 바뀔 시간.
진지하게 결혼을 고려할 만한 사이까지는 아직 아니었다.
그러니 진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진심에 가깝더라도 현재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고과정을 거쳐 나온 말은 아니었을 거다.
그저 순간적으로 정한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해준 말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아까 애주가 잘 어울린다느니, 꼭 부부 같다느니, 이대로 결혼을 해도 좋겠다느니 했던 말이 아직 잔상처럼 남아 있어서일까.
소현에게는 정한의 입술에 스쳐간 남편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괜히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댔고, 거센 박동은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 뉴욕까지 단숨에 날아온 남자였다.
화답을 할 차례였다.
“애주야.”
“네?”
“나 저 사람 놓치고 싶지 않아.”
소현의 눈길이 안채 쪽으로 향해 있었다.
블라인드를 걷은 안채 주방 통유리 앞에서 생강차를 타던 정한이 소현을 보았다. 마주친 시선에 그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금방 갈게요.
입모양으로 하는 말이 귀로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탐미재를 가득 채운 빛처럼 아름다운 미소였다.
“당연히 놓치면 안 되죠. 언니가 이만큼 사랑하고, 또 언니를 이만큼 사랑해주는 사람, 절대 놓치지 말고 꼭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만나야죠.”
“나 아무래도…….”
“네.”
“청혼해야 할까 봐.”
무심히 내뱉는 소현의 음성에 애주가 깜짝 놀랐다.
“네에?”
‘서은결’에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는 순간이었다.
“언니가요?”
“응, 내가.”
두 번째 회원은 물론, 당사자였다.
◇ ◆ ◇
소현은 류재언의 건물에서 사무실을 빼기로 결정했다.
많은 일을 겪는 동안 류재언이 아직 제게 마음이 남아 있었다는 걸 소현도 확인했다.
그런 상황에서 소현은 계속 그의 도움을 받으며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돈은 이자 쳐서 앞으로 꾸준히 갚는다고 해도, 적은 월세로 사무실을 계속 빌려 쓰는 혜택은 더 이상 받아선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그러든가.”
오랜만에 만나는 류재언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전처럼 서늘하고 무심했다. 풍파를 거쳐 이제 겨우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사무실을 옮기겠다는 말에도 아무렇지 않게 입버릇처럼 그러든가, 할 뿐이었다.
그래, 이래야 류재언답지.
그 모습이 반갑게 느껴졌다.
이제는 서운하지도, 원망스럽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제게 매달려 사정하던 류재언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들어줄 수 없는 애원은 서로에게 불행이었다.
진짜 타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이젠 정말 다행이었다.
지난 시간에 제대로 이별을 고할 수 있게 되었다.
너와 나, 정말 남남이 되었구나.
다행히도.
“고마웠어. 남은 빚은 앞으로 계속 갚을게.”
“그럴 필요 없어.”
“왜 그럴 필요가 없어.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처음부터 계산은 확실했으니까 갚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무슨 소리인지 헷갈려 소현이 다시 되물어보려던 때였다. 인터폰 소리와 함께 비서의 음성이 들려왔다.
- 대표님, 어머님께서 방문하셨…….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렸다.
“아들.”
더없이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미정 교수가 들어섰다.
시선은 아들인 류재언이 아니라, 정확히 소현을 향해 있었다.
“직원들이 우리 소현이 와 있다는 소리에 내가 너무 반가워서 막 서둘러 들어와버렸네. 두 사람 단둘이 있는데 갑자기 들어와서 내가 무슨 실수한 건 아니지?”
이질적이었다. 나 교수의 그런 친절한 미소는.
평소였다면 모를까, 지금은 거부감이 일었다.
소현이 얼마 전 비상계단에서 들었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애를 며느리로 들이겠다며? 지금 많이 힘들 텐데 좀 도와줘 보지 그래.」
「데리고 다니면서 TV 출연도 하고 인터뷰도 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그렇게 온갖 소리를 듣는 애를 어떻게 며느리로 들여. 당신도 다 알면서 그따위 말 함부로 하지 마.」
「생각해봐. 우리 아들한테 해가 되는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어. 결국 사고 친 사람이 잘못이지. 우리가 무슨 죄야.」
「우리라고 하지 마.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 당신뿐이니까.」
류재언의 부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서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의도와 평가를 모두 떠나, 적어도 소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 전까지 자신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기에 소현의 충격은 더욱 심했었다.
그런데 지금, 단 한 번도 소현에 대해 나쁘게 생각한 적 없었다는 듯 나 교수는 무척이나 친밀한 태도와 살가운 표정으로 다가섰다.
“소현아,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그새 살이 쭉 빠졌네. 내가 다 마음이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지냈는데 세상에, 너는 오죽했을까.”
내심 당황스러웠다.
어떤 의도인지 단번에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아하고 황당했다.
비상계단에서 부부의 대화를 듣지만 않았더라면.
그러면 적어도 나 교수의 태도는 일관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소현은 아마 류재언에 대한 마음과는 별개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마웠을지 모른다.
류재언과 헤어지고도 가장 마음에 걸린 건 친부모처럼 자상하게 보듬어주던 그의 부모였으니까.
“네가 마음이 복잡한데 괜히 부담 줄 것 같아서 난 그냥 기다리고 있었단다. 나야 우리 소현이 무조건 믿으니까.”
나 교수는 그 누구보다, 어느 때보다 자애로운 눈빛으로 소현을 바라보며 따스하게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제 알 것 같았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 오해가 풀리고 소현이 억울해 보이니 다시 태도가 바뀐 것이었다.
어차피 소현의 앞에서 비난을 하고 내친 것도 아니었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비상계단에서 문을 닫고 나간 이가 소현이라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터였다.
민낯을 들킨 지 오래지만 그걸 모르는 나 교수는 부끄러운 입술을 다물 생각도 못 했다.
“이렇게 꿋꿋하게 잘 이겨내는 걸 보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예쁜지. 다들 너 안됐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응원 전해달라고 하더라. 나도 얼른 너 만나고 싶어서 안 그래도 얼른 연락해야지 하고 있었어. 어쩐지,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재언이 사무실에 잠깐 들르고 싶더라니. 이게 다 너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나 교수에게 손이 맞잡힌 채 소현은 가만히 그녀를 마주 바라보았다.
진심이 아닌 이야기를 늘어놓는 목소리는 꿀을 바른 듯 달콤하기만 했다.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거짓을 말할까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낯익은 모습이었다.
인간의 바닥을 얼마나 더 봐야 그 끝에 닿을까.
아마 평생 깊디깊은 그 바닥의 끝에는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
기대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
아무 기대나 함부로 품지 않는 것. 사랑하지 않는 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심성 나쁜 애 때문에 네가 웬 고생이었다니. 그런 애는 진짜 큰 벌 받아야 해. 생각만 해도 내가 손발이 다 부들거려.”
마진혜는 이제 소현을 화나게 할 수 없는 존재였다.
분노가 사라진 곳에 남은 건 동정심뿐이었다.
나 교수 또한 사실상 마진혜와 다를 바 없는 부류라는 게 슬프고 아픈 현실이었다.
“그래도 우리 재언이가 많이 도와줬다지? 처음에 마크 윤 소송 막아주려고 애도 많이 썼다고 그러더라. 재언이가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그래도 네 생각은 끔찍이 하곤 해. 엄마인 나도 느낄 정도니까.”
한때 시어머니가 될 뻔한 여인이었다. 어쩌면 지금 제 앞에서 이러고 있는 이유도 다시 그 인연을 이어가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두 사람 사이는 이미 끝났다는 걸 인정하지 않은 채, 본인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하지만 이건 아니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범위였다. 나 교수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류재언이 입을 열었다.
“적당히 하세요.”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는 나 교수가 붙들고 있는 소현의 손을 일부러 잡아떼었다. 소현을 문 쪽으로 가볍게 밀며 류재언이 말했다.
“너는 그만 가.”
남의 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머니, 나 교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애써 흥분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표정관리를 해보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재, 재언아,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어머니, 소현이 이용하지 마세요.”
“내, 내가 무슨 이용을 했다고……! 너 말을 참 이상하게 하는구나.”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낼 수도 없는 나 교수의 얼굴이 구겨졌다.
「놓아주세요. ……은소현, 이제 제 사람 아니에요.」
아들이 했었던 말은 잊은 듯, 아니 무시해버린 듯.
그녀는 자신의 뜻대로만 생각하고 움직여왔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 교수는 소현을 향해 변명하듯 말했다. 그녀에게 소현은 아직 이용가치가 있는 예비며느릿감이었다.
“소현아, 아니야, 재언이가 지금 무슨 오해를 하고 이러나 보다. 그게 아니고…….”
류재언이 낮게 소리 내어 어머니를 불렀다.
차갑고, 슬픈 음성이었다.
“어머니.”
“…….”
스스로 아픈 이별을 고하는 형벌을 받기 위함이었다.
“저희 끝났습니다. ……완전히.”
마치 확인사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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