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자업자득2017.12.01.
[단독] 하태랑 결혼설 유포자 A씨 인천공항에서 체포. 구속영장 청구
배우 하태랑(29·여) 씨의 극비결혼과 예비신랑에 대한 신상정보를 결혼업체를 통해 무단 입수하여 인터넷상에 소문을 퍼뜨린 최초유포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경찰서는 영업비밀침해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A(34·여)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지난 9월 하 씨의 결혼식 관계자 B씨의 사무실에서 결혼식에 관한 정보를 무단으로 입수하여 이를 인터넷에 악의적으로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의 부주의로 인해 하 씨의 결혼 소문이 퍼졌다는 허위 내용까지 무차별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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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A씨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옴? 비밀을 빼가서 일부러 소문냈던 거라고? 미쳤네.
xx: 헐, 그럼 원래 웨딩플래너 잘못이 아니었다는 거네? 반전!
xx: 하태랑 웨딩플래너가 경솔하게 소문 퍼뜨렸겠냐고 했던 사람이 바로 나임. 그때 반대 먹이던 사람들 다 어디 갔음? 말 좀 해보시지?
xx: 플래너 일부러 욕먹이려고 그랬나? 천 년의 원수야 뭐야? 어디선 아직도 그 플래너 탓이라고 욕하던데 A씨는 도대체 왜 그랬지?
xx: 사무실 몰래 들어가서 정보 빼내고 그걸 다른 사람 잘못으로 뒤집어씌우면서 전국적으로 소문까지 내고. 할 일 되게 없네. 인생 왜 저러고 사나 몰라.
xx: 근데 저게 구속까지 할 일인가? 태클 거는 거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xx: 공항에서 잡혔다며? 미친. 어딜 토껴? 해외로 튈 시도만 안 했어도 구속까진 안 됐을 수도 있다던데. 지 무덤 지가 팠네. 쌤통이다.
xx: 천하의 못된 년이네, 진짜. 내 주변에도 저런 주작왕 있어서 아는데, 당하면 진짜 미쳐 돌아버림. 저 웨딩플래너는 지금 정신상태 괜찮음?
xx: 하태랑이랑 마크 윤한테도 고소당하겠네. ㅉㅉ
xx: 잡범 주제에 가지가지 한다. 도주까지? 한심해서 말할 가치도 없다.
마진혜는 기소되었고 여론 속 비난의 상대는 금세 바뀌었다.
하지만 소현에게 사과하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저 화살이 마진혜에게로 옮겨갔을 뿐.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말로써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소현은 마진혜 스스로 낸 불을 이제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속에 자신이 있었다.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자 세상이 환해졌다. 화형 당하듯 타들어가던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마진혜가 이런 일을 저질러놓고 태연하게 친구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려고 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고 한편 어이가 없었다.
인천공항에서 붙잡혀 오는 길에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졌을까.
자신이 왜 그랬을까 후회스럽기도 했겠지.
미안함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그런 마음 정도는 느꼈을 거라고.
“도망가려고 했던 건지도 몰라요. 휴가 핑계로.”
“도망?”
“지금 제일 바쁜 시즌인데 억지로 휴가까지 내고 해외에 가려 했잖아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소현은 애주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까 지은이랑 통화했거든요. 안 그래도 바득바득 휴가 낸다고 해서 다들 이상하다 생각했대요. 하나둘씩 좀 꺼림칙했던 점들 말하기 시작하니까 막 쏟아져 나온다는데. 연정이 알죠? 걔한테는 유학 얘기도 물어보고 했다네요. 아니, 지가 유학을 왜 가? 그게 도망이지 뭐예요. 휴가 핑계 대고 슬슬 해외 나갈 거 알아보려 했나 봐요. 그러니 잡혀 들어간 거 하나도 안 심하다고 다들 그런대요.”
“회사는 지금 어수선하겠네.”
“발칵 뒤집어졌다고 하죠, 뭐. 대표님도 완전 멘붕상태고. 그래도 고 대표님이 마진혜 되게 아꼈잖아요.”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업계는 물론이고 주변에서도 A씨가 마진혜인지 다들 알게 된 상황이고, 그 여파는 회사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마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
모든 건 마진혜의 자업자득이었다.
김유리 변호사가 염려하면서 몇 번이나 조언한 대로, 소현이 마음 불편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뒤에서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랑 어떻게 계속 일을 하냐고 다들 대표님한테 몰려가서 마진혜 내보내라고 한바탕했다나요. 어차피 실형 받을 것 같은데 혹시나 보석으로 풀려나온다고 해도 그런 사람하고는 같은 회사에서 절대 일 못 하겠다고, 엄청 난리 났었나 봐요.”
소름 끼쳐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눈에 보이는 듯했다. 마진혜가 한 짓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중대한 범죄가 아니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일상에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일수록 충격이 더 심했다.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다들 마진혜라면 끔찍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차피 더 있었으면 자기 스스로 그만두고 해외든 어디든 나갔을 텐데 더 이상 회사가 데리고 있을 필요도 없죠. 아니, 마진혜랑 계약한 신부님들은 무슨 죄야.”
“엄청 놀라셨겠네. 좋은 일 앞두고 신경 많이 쓰일 텐데.”
“그러니까요. 한창 결혼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때 그게 무슨……, 어휴. 좋은 일도 아니고 그런 일로 플래너 바뀌면 신부님들은 어쩌라고. 하여튼 마진혜 민폐 덩어리.”
마진혜는 고객인 신랑신부들과 자신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인지 종종 주변에 얘기하곤 했다.
살가운 신부들에게 받은 감사카드며 선물 같은 걸 동료들에게 자랑스레 내보이기도 했었다.
마치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듯 뿌듯한 모습으로.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소현이 마진혜에게 알 수 없는 싸함을 느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신랑신부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소현을 향해 그녀는 칭찬을 섞어 깎아내리는 듯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마치 자신보다 더 큰 인정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듯이.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사자만 느낄 정도로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었다. 티를 내어 반응한다면 도리어 예민하다는 소릴 들을 게 분명했기에 소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참아 넘겼었다.
결국 이런 저런 감정이 쌓여 회사를 그만둘 때, 더 이상 마진혜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상황에서도 기어이 달라붙어 이 사달을 내다니.
알 수 없이 느껴지던 싸함은 결국 추악한 이빨을 드러내고 말았다.
부쩍 싸늘해진 날씨에 유치장에서 지내야 할 마진혜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그녀가 자초한 일이다.
“언니가 괜찮아 보여 다행이지만……. 그래도 언닌 어떻게 그렇게 속이 좋아요. 난 아직도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참 미웠다.
처음에는 참 밉기만 했었다. 왜 제가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부질없었다. 미움도, 증오도, 분노도 모두.
마진혜는 이미 스스로 만든 지옥에 갇혀 있었고, 그런 그녀를 미워하는 건 끝없이 깊은 지옥에 함께 들어가는 일이었다.
소현은 자신의 인생을 그런 식으로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결국 미움조차 놓아버리는 것이 가장 큰 복수였다.
그걸 깨닫는 과정에서 수없이 격동하던 감정을 가라앉히게 도와준 건 언제나 정한이었다.
안락하고 평온한 그의 품에 안겨 숨을 고를 때마다, 소현의 앞에 펼쳐진 건 끝없이 너른 천국이었다.
미워할 시간도 아까웠다.
사랑하며 살아갈 시간조차 너무도 부족하였다.
◇ ◆ ◇
하태랑의 집.
“미안해요.”
소현은 드디어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태랑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건넨 건 사과의 말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하태랑 역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다. 집에 꼼짝하지 않고 은둔하던 시간 속에서 그녀도 무척 힘든 날들을 보냈을 것이었다.
소현은 진심으로 하태랑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환한 미소였다. 하태랑은 수척해진 얼굴 가득 꽃처럼 아름다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난 은 대표님한테 고마운데요.”
그동안 하태랑이 출연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광고에서도 그렇게 편안하고 화사한 미소는 본 적이 없었다.
비즈니스가 아닌 진짜.
가슴속에서부터 우러나온 진짜였다.
“나, 알고 있었거든요.”
“뭘요?”
“마크 윤이 나쁜 남자, 아니, 나쁜 개새끼인 거.”
하태랑의 미소만큼이나 그 말이 놀라웠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자세히는 모르고 그냥 촉. ……왠지 어디에 여자 한둘 숨겨놨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아…….”
손채린의 존재를 모를 때부터 예상은 했었다니. 그러면서도 결혼을 결심한 하태랑의 심정이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쉽게 되지 않았다.
소현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그 새끼 사랑했던 거 아니니까.”
“그럼요?”
“돈 때문에. ……돈 때문이었어요.”
돈이라면 하태랑도 차고 넘치게 많을 텐데. 더더욱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나 돈 때문에 안 해본 거 없어요. 류 대표 만나기 전까지는, 뜨지도 못한 무명배우로 살면서 나쁜 인간들이 시키는 짓 다 했어요. ……그래도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류 대표는 나 데려오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했었고.”
하태랑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아픔이 배어 있었다.
“류 대표는 지저분한 짓 시키진 않았거든요. 얼마나 신사인지 몰라. 그냥 나 꼴통인 거 숨기고 교양 있는 척 꾸며서 공부 시키고 그런 것밖에 없었지. 그렇게 젠틀하게 굴면서도 이만큼 성공시켜줬어요. 그래서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내가 욕심이 너무 컸나 봐요.”
자조 섞인 말에 소현의 가슴마저 욱신거렸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욕심이 나서. 내가 늙고 더 이상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 퇴물이 되어도 돈만큼은 날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더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겨서, ……결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손채린이 확성기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이 결혼 강행하면 하태랑이 더 미친년이라고.”
비밀로 치르려던 결혼식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얽혀들었다.
“그때 알았어요. 마크 윤이 나쁜 새끼라는 촉이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그냥 결혼하려고 했던 나는…… 정말 미친년이었구나, 하고.”
당연한 듯 깨달아버렸다.
“어쩌면 내내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결혼 파투났을 때, 속이 너무 시원해서 완전 꿀잠 잤었거든요.”
그때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었는지 하태랑은 모두 생략했다.
결과는 분명했으니까.
“돈도 좋고, 비즈니스도 좋고, 부자도 좋고 다 좋은데. 내가 나를 속이면서까지 그렇게 살긴 싫더라구요. 그럼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태랑 씨…….”
“나한테는 너무 잘된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이 일 때문에 제일 고생한 건 은 대표님인데.”
소현은 류재언이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태랑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 듯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어쩌면 이전만큼 탄탄히 뻗은 길을 걸을 수 없을지라도.
퇴물이 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이 남아 있을지라도.
그녀는 ‘진짜’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건 하태랑 스스로에게 있어 더없는 축복이었다.
좋은 일은 때로 나쁜 일을 끌고 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쁜 일 역시 좋은 일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돌고 돌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생이었다.
◇ ◆ ◇
탐미재의 공기는 여전했다.
멈춘 듯 느리게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소현은 아무 생각 없이 정한의 일을 도우며 지내고 있었다.
애주는 그런 소현에게 왜 사무실에 나오지 않느냐고 재촉하지 않았다. 치유의 순간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가 원하는 만큼 탐미재에서 지내도록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애주는 소현이 보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찾아왔다.
“맞다, 애주야. 이소미 신부님 예식, 봄으로 미루셨다며?”
“네, 연락 받으셨구나. 안 그래도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까 해수 씨랑 통화하다가 잠깐. 자세히는 못 들었어.”
“소미 신부님 남친이 3개월 장기출장 가게 됐대요. 마진혜 때문에 다 계약 파기해서 딱 하나 남아 있던 예식인데, 연기된 덕분에 이제 아예 일이 없어졌어요.”
애주는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나마 몇 없었던 계약들마저 마진혜 사태로 줄줄이 파기됐었다.
하태랑의 결혼식을 준비할 때는 그 자체만으로도 워낙 큰 행사고, 이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눈앞에 아무것도 없다.
신기루처럼, 물거품처럼, 지금까지 노력했던 게 모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묘하게 마음이 편했다.
그동안 일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왠지 모르게 쫓기는 기분이 들고 항상 조급함이 앞서곤 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도 모르고 마냥 앞만 보고 뛰었던 시간들.
복잡하게 얽혀 있던 감정과 업무가 모두 깨끗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간 워낙 큰 사건에 휘말려 있다 보니 몸과 마음이 휴식을 원했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강차 탈 건데, 애주 씨도 마실 거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현과 애주 옆으로 정한이 다가와 물었다.
“네, 주세요.”
“여기 생강차도 있었어요?”
소현의 물음에 정한이 자연스레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듯 어루만지며 말했다.
“골목길 초입 카페에서 수제 생강청을 팔거든요. 소현 씨 감기기운 있는 것 같아서 아까 오전에 사왔어요.”
그제야 애주는 소현이 평소보다 두툼한 옷을 입고도 이따금씩 스스로 팔을 문지르며 추위를 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심한 정한의 배려에 옆에 있는 자신마저 훈훈해졌다.
“그 집이면 별로 달지는 않겠네요. 저번에 자몽청도 많이 안 달던데.”
“달게 해줘요?”
“네. 생강차는 조금 달게 먹고 싶어서요.”
“그럼 꿀을 좀 더 넣어줄게요. 이모네서 꿀 새로 가져온 거 있어요.”
생강차를 준비하러 정한이 안채로 들어갔다. 소현은 기대해도 좋다는 듯 말했다.
“정한 씨 이모님이 양봉 조금씩 하시거든. 꿀 진짜 맛있어.”
애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이고, 달다, 달아. 꿀을 뭐하러 더 넣어요. 여기 꿀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러다 목을 빼고 정한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넌지시 물었다.
“근데 언니, 서정한 씨랑 결혼할 거예요?”
“무, 무슨 결혼이야. 아직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현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나 앉았다.
“두 사람 꼭 부부 같아요. 완전 잘 어울려. 그냥 결혼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저렇게 잘 챙겨주고 자상한 남자라면, 내가 허락해줄 수 있겠어요.”
농담을 섞어가며 애주가 하는 말에 소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직 빨라, 그건.”
“어, 한 번도 안 생각해봤어요?”
난색을 표하는 소현의 모습에 애주도 진지해졌다.
“결혼상대로는 좀 별로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정한 씨 나이도 있고…….”
“스물일곱이랬죠? 아직 결혼하기 이르긴 하죠. ……근데, 무슨 상관이에요. 좋기만 하면 나이가 무슨 대수라고.”
결혼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소현을 세심하게 챙기는 정한을 보니 형부감으로 탐이 나는 게 사실이다.
애주의 생각에 외형적으로 본다면야 예술책방을 운영하는 서정한보다는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류재언이 좀 더 나을 것 같긴 했다.
게다가 정한은 아버지가 안 계시고, 어머니는 치매로 병원에 계시다고 했는데.
직업뿐 아니라 집안 배경으로만 봐도 류재언 쪽이 더 나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류재언이라면 바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여력이 있을 테고.
애주의 마음속에 류재언은 안쓰러운 형부감 위치였다. 좀 더 일찍 정신을 차렸으면 좋았을까 싶었다. 물론 과거의 일이지만.
지금은 서정한을 밀어줘야 했다. 소현이 좋아하는 사람이 우선이니까.
소현이 행복하려면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남자여야 했다. 그런 면에서 서정한은 무조건 합격이다.
좋은 남자는,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요,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 먹고살 만큼만 있으면 됐지, 뭐. 돈 아무리 많아도 불행한 사람들 많잖아요.”
“응?”
어떤 사고의 흐름 끝에 나온 말인지 모르기에 소현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고, 애주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어 보였다.
소현의 입맛에 맞추어 정성껏 만든 생강차를 가지고 나온 정한을 보며 그녀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일단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지만, 얼굴은 있다가 없을 순 없으니…… 저 정도 비주얼이라면 게임은 끝이라고.
거기다 이렇게 무자비한 스윗함이라니.
외모와 성격이 끝판왕이면 됐지, 여기에 돈과 배경, 능력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다.
형부.
정한을 부르기에 참 적당하고도 마음에 드는 호칭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아직 전혀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서정한과 은소현의 결혼준비위원회’라도 발족해야지 싶었다. 물론 회원은 자신 하나뿐일 것이다.
‘줄여서 서은결? 좋네, 서은결.’
홀로 북 치고 장구 치는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하는 기분이었다.
저 느릿느릿 달팽이 커플은 이대로 천년만년 연애만 하다 끝날 수도 있을 테니까.
애주는 어떻게 두 사람을 부부로 만들 수 있을지 차차 궁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소현의 전화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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