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르고 웨딩-42화 (42/52)

42화– 합리적 의심2017.11.24.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니.”

“응?”

“그게 누군지, 시작이 어딘지, 찾을 수 있다구요.”

“어떻게?”

소현은 애주의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면 벌써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 않았던가.

발단조차 애매모호한 사건이었다.

이미 진흙탕이 되어버린 이상 시작을 알기 어렵다고 했다.

광활한 인터넷 세상 속에서 수많은 글이 산발적으로 올라왔다 삭제되길 반복했고, 최초유포자의 글이라는 것도 무엇이었는지 꼭 집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명확한 사유로 수사가 진행되기 이전에는 사이트에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도 없기에 어떤 이들이 떠들기 시작한 건지 통 알 수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아까 지워진 어떤 글에서 그런 얘기 있지 않았어? 하태랑 결혼한다는 말 본 것 같은데. 잘못 봤나?]

[나도 봤어. 삭제됐네? 근데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본 것 같은데. 이미 다 퍼졌잖아. 그쪽 업계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라던데.]

[웨딩플래너가 그렇게 입 털고 다녔다며.]

그저 지워진 글을 봤다는 사람, 들은 걸 또 전해 들었다는 이들만 있었다.

정말 ‘처음’이 누구인지는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던데?]

[그 여자 하도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녀서 비밀인데 이래도 되냐고 하니 어차피 곧 결혼식이라 상관없다고 하더래. 개념상실. 진짜 대가리 텅텅이다. 말하고 다니면 그게 비밀이냐고.]

살이 붙고 덩어리가 커졌다.

그곳에 책임감은 없었다.

마치 어떻게 해야 덜미가 잡히지 않을지 잘 알고 있는 이가 시작한 게임 같았다.

어둠 속에 숨어 낄낄거리며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은 의미 없었다. 말이란 형체가 없기에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었다.

“이건 고의예요.”

애주는 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진짜 언니가 할 법한 말들만 퍼진 거라면 그게 실수인지 뭔지 알 수가 없지만, 절대 하지 않았을 말까지 퍼졌다면 그건 고의잖아요.”

“맞아.”

“누군지, 잘못 생각한 거죠.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디까지가 선인지 몰라서.”

제법 화가 난 목소리였다.

생각이 모아지자 애주는 점점 감정이 끓어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누가 고의로 이랬다는 거잖아. 그게 누구인지 알아? 누가, 어떻게? 아니, 왜?”

사실 ‘고의’라는 것조차 소현에게는 충격이었다.

‘고의로’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자신을 나락으로 몰아버릴 만큼 누군가에게 미움을 산 일이 있던가.

그렇게까지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었던가.

“언니, 나도 사람 쉽게 의심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일단 정황이란 게 있으니까. 지금 떠오르는 게 딱 한 사람 있거든요. 우선 하나하나 차근차근 짚어볼게요.”

소현은 일단 정신을 다잡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차라리 괜찮았다. 일이야 살다 보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일부러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끔 만들었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더 이상 모호한 사건이 아니다. 괴로움을 느끼며 지탄받아야 할 쪽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이 상황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래, 짚어보자. 의심스러운 것부터 얘기해줘. 무슨 일이 있었어?”

“일단 언니, 나한테 컴퓨터 부팅한 적 있냐고 물어본 거 기억나요? 뉴욕 갔다 왔을 때 언니 컴퓨터요.”

“어, 기억나.”

소현은 그때를 떠올렸다.

사무실 컴퓨터에 깔린 메신저는 휴대전화 앱과 연동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팅하면 로그인이 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휴대전화에도 동시에 떴다.

하지만 컴퓨터를 켜지 않았는데도 로그인 메시지가 뜨는 경우가 가끔씩 있었다.

「애주야, 나 없는 동안 혹시 컴퓨터 켰었어?」

「아뇨. 왜요? 또 메신저 알림 잘못 떴어요?」

「응, 또 그랬네. 알림 와 있길래 네가 켰구나 했거든.」

「제 거 고장 나지도 않았는데 언니 컴 켤 일이 없었죠.」

종종 그렇게 오류가 나는 것을 알고 메신저 삭제 후 재설치를 하려고 생각했으나 잊고 있었다.

그때도 그런 경우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언니 없을 때 알림 뜬 날, 그날이 언제인지 혹시 기록 남아 있어요?”

“있을 거야. 잠깐만.”

뉴욕에 있던 기간 중에 도착한 알림이니 대충 날짜를 가늠해 찾을 수 있었다. 소현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알림창을 열어 위로 쭉 올렸다.

그리고 날짜와 시간을 찾아 말했을 때 애주가 자신 역시 무언가를 찾아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맞아 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사고 났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전화 받고 내려간 시간. 딱 그때네요.”

“그게 왜?”

“그날 사무실에 온 사람 있었어요.”

“누구?”

“마진혜 팀장님.”

소현은 일순 멍해졌다.

마 팀장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올까.

모든 건 하나로 모아졌다. 애주가 말하는 사람이 바로 마진혜였다.

“의심 가는 사람이 마 팀장님이었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설마.

살가운 척 약점을 후비며 말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 조금 꺼림칙했다고 해도 설마.

그런 설마가 지금 사람을 잡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맞다고 확언하고 싶은데, 그러다가 진짜 아니기라도 하면 그건 정말 안 되는 거니까 저도 좀 조심스럽긴 해요, 사실.”

적어도 마지막까지는 도리를 지켜야만 했다.

그래도 이쪽은 인간이니까.

소현의 머릿속이 오히려 더 맑아졌다. 가슴은 뜨겁게 끓어올랐지만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머리는 그저 차가워졌다.

“그럼 정리해볼게. 그러니까 사무실에 마 팀장님이 왔던 날, 너는 지하주차장에 사고 처리 때문에 내려갔었고.”

“네. 자긴 사무실에 있을 테니 다녀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때 좀 이상한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사고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눈치챘어도 별수 없었을 거야, 작정하고 한 일이라면. 그리고 내 컴퓨터가 켜진 시간이 네가 자리를 비운 바로 그 시간 중이었고.”

“맞아요.”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마크 윤’이라는 사람에 대한 말은 내가 밖에 꺼낸 적도, 얘기할 필요도 없던 거고. 내 컴퓨터에 하태랑 결혼 관련 폴더에만 그 정보가 있었어.”

“그렇죠.”

애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내 컴퓨터에 접근했던 사람이 ‘마크 윤’을 포함한 결혼설을 인터넷상에 ‘고의로’ 유출했다는 게…….”

“합리적 의심이죠.”

“그리고 그 사람은 마진혜 팀장이고.”

“아무래도 지금으로써는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서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게 뻔하다. 마 팀장에게 달려가 따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사건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도달한 데에 대한 증거를 모아야겠지.”

그 사람이 내게 왜 그랬을까, 그런 감정적인 부분은 완전히 배제했다. 소현은 냉정하게 생각해갔다.

“건물 CCTV로 마진혜 팀장이 다녀간 모습이랑 시간 등을 확보해야겠어.”

“아, 류 대표님한테 사정을 얘기해서 보안실에 협조해달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날 마 팀장님이랑 들어갈 때 류 대표님하고 로비에서 마주치기까지 했었거든요.”

“……걔가 지금 그렇게 해줄 정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얘기할게.”

애주는 류재언이 소현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소현은 그의 진심을 이용하지 못할 것이다.

류재언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마음.

일 전체에 대한 수습을 하느라 바쁠 사람에게, 본인의 누명 하나 벗겠다고 사사로운 부탁을 하는 걸 죄스럽게 여기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소현의 표정을 통해 오롯이 느껴졌다.

애주는 가슴이 아팠다. 왜 그런 죄스러움을 소현 혼자 모두 짊어져야 하는 걸까. 일을 벌인 쪽은 따로 있는데.

“이건 언니가 잘못한 일이 아니에요.”

끊임없이 말해주는 애주가 아니었다면.

“죄를 지은 사람이 아파야지, 언니가 그렇게 아픈 얼굴 하고 있을 필요 뭐 있어요. 그러지 말아요.”

그리고 곁을 지켜주는 정한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소현이 이겨내지 못했을 시간들.

사랑으로 채운 순간들이 있기에 소현은 결국 견딜 수 있었다.

“혹시 마 팀장님이 아니라면, 그래도 또 찾아낼 수 있으니까 언니 기운 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내 얻어맞고 억울해서 어떡해요.”

사실 찾아낼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세상에는 훨씬 더 억울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단순한 선악의 기준으로 가를 수 없다는 것도, 정의만으로 쉽게 엄단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것도, 이 모든 게 가혹한 현실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응, 그러자.”

하지만 소현은 해보는 데까지 하고 싶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더 큰 괴로움을 느끼더라도, 이대로 무너져 있고 싶지는 않았다.

바닥을 찍어야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녀는 굳게 마음먹었다.

“일단 사무실로 가보자.”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시간이었다.

◇ ◆ ◇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갈피를 잡자 다음 절차는 착착 진행이 되었다.

탐미재에 도착한 정한은 소현과 애주의 이야기를 듣고 동행하여 사무실로 향했다. 그가 방금 류재언을 만나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소현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다시 나타난 정한을 보고, 류재언은 여긴 또 왜 왔냐는 듯 불쾌한 시선을 던졌지만 소현이 그 이유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범인이 마진혜인지 아닌지에만 쏠려 있었다.

“어려운 건 아니야.”

의외로 류재언은 협조에 꽤 적극적이었다. 자신의 알 바 아니니 알아서 보안실에 부탁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건물 곳곳의 CCTV에서 그 사람의 동선과 움직인 시간을 파악해서 컴퓨터 로그인 시간과 비교해 정리하면 되겠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세세하게 얘기할 수도 없고, 건물 내 CCTV가 한두 개도 아닌데, 보안실에 가서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내심 걱정스러웠던 소현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컴퓨터를 켰다는 증거는?”

소현의 사무실 안에는 CCTV가 없다.

그러니 그 시간에 사무실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마진혜의 행각을 증명해낼 수 없었다. 그때 정한이 입을 열었다.

“단순접속정보나 웹페이지 열람기록 같은 건 컴퓨터 제어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다만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불충분할 테니까 더 자세한 건 정보보안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알아내야죠. 부팅하고 로그인을 시도했던 시간, 횟수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언제 어떤 폴더에 접근했는지 그 경로까지 전부 세세하게.”

소현이 말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에 최근 열람한 파일 기록은 없었어요.”

“삭제했나 보네요.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는 일단 삭제된 부분들까지 다 복구해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럼 정말로 자동으로 부팅되는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니라면, 그 시간에 사무실에 있었던 사람이 일부러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했다는 얘기겠네요.”

사무실에 있었던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마진혜였다.

듣고 있던 애주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짚었다.

“그럼 우선 유능한 정보보안업체부터 알아봐서 의뢰를 해야겠어요.”

“그건 내가…….”

“내가.”

정한과 재언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내가’로 시작하는 말이 순간적으로 맞물려버렸다. 모두 자신이 하겠다는 의미였다.

일순 날카로운 시선들이 공기 중에서 세차게 엉켰다.

소현이 난감한 얼굴로 겨우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감사하지만, 제가 할게요.”

정한이나 재언 모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는 사람들이라는 건 소현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이 고맙긴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해내겠다고 생각했다.

정한을 사랑하기에, 존재만으로 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재언을 사랑하지 않기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사랑해서, 그리고 사랑하지 않아서.

아픈 모순이 그녀를 찔렀지만 분명한 건 자신이 중심을 잘 잡고 스스로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쉬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 소현은 여린 모습 안에 강단을 품고 있었다.

그건 모두 견고한 사랑 덕분이었다.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더욱 든든해짐을 느꼈다.

◇ ◆ ◇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CCTV를 통해 마진혜가 방문했던 날의 모습을 모두 확인했고, 그 영상과 기록을 완벽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애주의 말대로 그녀가 자리를 비웠던 시간에 마진혜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중에 소현의 컴퓨터 메신저가 자동 로그인이 되었다.

컴퓨터의 고장은 아니었다. 확실한 접속기록이 있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최근열람파일 기록은 쉽게 지웠더라도 접속기록까지는 손대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당일 출장은 힘들다는 몇몇 업체를 거쳐 다행히 한 정보보안업체에 의뢰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도착하면 곧바로 소현의 컴퓨터 기록정보를 분석해줄 것이다.

심증을 뒷받침할 물증이 하나씩 확실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겁이 났다.

“무섭네.”

오한이 든 듯 애주가 자신의 양팔을 스스로 안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소현은 냉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애주와 같은 심정이었다. 때때로 소름이 돋았다.

그토록 악랄한 화살이 자신에게로 당겨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나도 좀 무섭다.”

“그쵸? 이 정도면 거의 굳어진 거나 마찬가지인데.”

보안업체에서 와서 복구하고 분석해줄 정보는 그저 확인사살을 위한 것일 뿐, 이미 결과는 나와 있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마진혜였다.

아침부터 내내 굶고 오후가 된 시간.

한참 전에 재언은 보안실에서 CCTV를 확인하는 것까지 도움을 주고 업무를 보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늦은 식사를 위해 정한이 도시락을 사온다며 밖으로 나갔고, 소현과 애주 둘만 사무실에 남아 보안업체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 배고픈 것도, 지친 것도 몰랐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잡히자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애써 배제했던 ‘왜’라는 질문이 가슴을 끊임없이 건드렸다.

“사람이 설마 그렇게까지 바닥일까 했어요. 처음 의심이 들 때만 해도.”

“그래, 설마.”

그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게 더욱 버겁게 느껴지는 사실이었다.

마진혜가 한 일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렸던 순간들을 떠올리니 더욱 가슴이 쓰렸다.

오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그냥 오해라면 적어도 마음은 편할 텐데.

이렇게까지 괴롭지는 않을 텐데.

그건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마진혜가 아무리 울면서 빌어도, 그녀가 저지른 짓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겠어서.

원망보다 더 큰 건, 깊은 절망이었다.

미워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언니, 좀 괜찮아요……?”

“응, 괜찮지, 그럼.”

괜찮지 않은 얼굴로 괜찮다 말했다.

인간의 민낯을 보게 되는 건, 생각보다 슬픈 일이었다.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 욕망의 찌꺼기를 마주하는 기분.

마진혜의 악의, 그 끝에 자신의 불행이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소현을 아프게 했다.

“마 팀장님은, 아니, 그 여자는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요?”

그때였다.

문 쪽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년이 못돼 처먹은 거지.”

소현과 애주가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미친 짓에는 ‘왜’가 없어요.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거든요. 그따위 썩어 문드러진 생선 가, 시, 발라먹을 쓰레기가 세상에 섞여 살고 있으니, 우리들 인생이 이렇게 피곤한 거 아니겠어요?”

거침없는 언사와 다르게 생기 넘치는 음성, 여유롭게 싱긋 웃는 얼굴이 묘하게도 어울리는 여자였다.

“인사가 늦었어요.”

길에서 마주쳤다면 바로 돌아볼 정도로 대단한 미인이 또각또각, 사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해수 부탁으로 왔어요. 아, 케이크샵 신해수 대표요. 미리 연락 받으셨죠?”

그녀가 명함을 내밀었다.

“변호사 김유리입니다.”

든든한 아군이 한 명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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